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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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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함께하기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글 – 고보경

“그가 습관처럼 말했듯이, 삶이라는 건 당신이 좋은 이야기와 그 것을 들려줄 사람이 있는 한 절대 끝나지 않은 거야. (Like he used to say, you’re never really done for, as long as you’ve got a good story and someone to tell it to.)”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번역된 이 영화의 원제는 ‘1900의 전설(Legend of 1900)’입니다. 1900이라는 숫자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동시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해요. 20세기가 밝아오던 때 있었던 선상파티에서 부모를 잃은 채 발견된 갓난아기에게 뱃사람들은 1900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여주었죠. 아이는 이 여객선에서 살면서 음악을 만나고, 멋진 피아니스트로 자라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음악을 하기에 더 좋은 기회를 제안 받기도 해요. 또 자신을 두근거리게 하는 여자도 만나지요. 하지만 그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에 드는 여인도 여객선 밖의 세계로 걸음을 내디딜 자신이 없는 그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해요. 이런 소극적인 그에게 한 노인은 이렇게 외칩니다. “걱정만 많은 것 같으니라고! 삶은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엄청난 거야! 이해하겠어? 엄청나다고! (You!! With shit instead of brain!! Life is immense! Can you understand that? Immense!!)”

 

영화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 2001)「샤인(Shine, 1996)같이 천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천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들의 천재성보다는 남들보다 부족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요. 영화의 주인공인 1900 역시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있고 또 그 능력을 즐기면서 사용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모습은 부럽기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워 보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사람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더라도 배가 도착지에 닿는 그 순간부터 그는 혼자가 되니까요.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문장처럼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그걸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알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세계에 갇힌 1900은 세상을 마주하고 누군가와 함께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죠.

이 영화는 제가 고등학생 때 하굣길에 자주 들르던 단골 DVD 대여점에서 무심코 집어 든 영화에요. 한창 음악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때라 제목과 피아니스트의 사진이 박힌 케이스를 보고 관심이 갔었죠. 하지만 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한 영화는 음악적으로도 엄청난 감동을 주었어요.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엔리오 모리꼬네라는 영화음악계의 거장이에요. 그는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함께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이라는 고전을 제작한 바 있는데, 이 영화의 O.S.T.는 아직까지 사랑 받고 있어요. 그 중 ‘Love Theme’이라는 곡은 독자 분들의 귀에도 익숙하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에서도 주인공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멋진 음악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요. 여담이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팀 로스는 사실 피아노에 문외한이라고 합니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의 신체 동작을 연구해 연기를 했을 뿐이고, 여기에 실제 연주를 입힌 것이지요.

다시 영화의 스토리로 돌아가보도록 해요.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볼 때는 한창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때라 더 큰 세상을 두려워하는 1900의 마음도 이해가 갔어요. 하지만 그보다는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갇혀있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제 자신을 보고, 스스로도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마음을 먹었죠. 용기를 내어 여객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신의 꿈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는 거잖아요.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시선을 자신 안으로만 돌리고 있다면, 나와 함께할 사람들은 외면하게 되니까요. 영화 「인 디 에어(In The Air, 2009)에서 라이언(조지 클루니)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삶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나은 거야. (Life is better with the company)”. 이상, 아름다운 음악과 이야기로 가득 찬 피아니스트의 전설이었습니다.

[필자 고보경님은 삶과,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든 것을 격하게 아끼는 사람입니다. 현재는 함께 영화를 보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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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천재 싱어송 라이터, 브루노 마스

글 – 권오수

 몇 달 전 2PM의 전 멤버, 재범이 B.O.B의 ‘Nothin’ On You(feat. Bruno Mars)’를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원곡의 피처링을 담당했던 브루노 마스(Bruno Mars)는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작년 10월에 출시된 그의 앨범, “Doo-Wops & Hooligans”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월 16일 정식 발매되었는데요. 이번 앨범은 그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을 마음껏 뽐낸 첫 정규 앨범인 만큼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브루노 마스’라는 천재 싱어송라이터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퍼커션을 연주하던 아버지와 훌라 댄서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음악적인 재능을 물려 받은 그는 하와이 와이키키 태생입니다. 사실 그의 본명은 피터 진 에르난데스(Peter Gene Hernandez, 1985.10.8 ~)인데요. 그가 현재 사용하는 예명 중 브루노(Bruno)는 프로레슬러 브루노 사마티노(Bruno Sammartino)와 닮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입니다. 그리고 ‘화성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마스(Mars)를 본인이 직접 덧붙이게 되었고, 결국 브루노 마스(Bruno Mars)라는 이름이 탄생하였죠.

브루노 마스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기 전 프로듀서로 굉장히 유명했는데요. 앞서 이야기 했던 ‘Nothin’ On You’뿐 만 아니라, 플로라이다(Flo rida)의 ‘Right Round(feat. Ke$ha)’, 남아공 월드컵 테마송이었던 케이난(K’NAAN)의 ‘Wavin’ Flag’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곡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피처링이 아닌, 나의 이름이 따로 써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 무대에 올랐는데 관중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그 순간의 느낌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했을 정도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현재 역할을 즐기고 있답니다.

그럼 다시 그의 앨범 ‘Doo-Wops & Hooligans’로 돌아가 볼까요. 가장 먼저 2번 트랙인 ‘Just The Way You Are’가 눈에 띄네요. 이 곡은 브루노 마스의 첫 싱글 타이틀로 4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제 5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브루노가 최우수 남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받게 만든 일등 공신입니다. 이 노래는 경쾌한 피아노소리와 그루브한 비트, 밝고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일품입니다. 이 외엔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선호와 그래미 어워드가 이 곡의 진가를 증명하고 있지요.

그리고 1번 트랙인 ‘Grenade’는 두 번째 싱글 타이틀로 앞서 소개한 ‘Just the way you are’와 마찬 가지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답니다.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멜로디에, 브루노의 애절한 음색과 절제된 감정표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Grenade는 소울 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3번 트랙 ‘Our First Time’은 레게 비트와 그루브 소울이 어우러져 잔잔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4번 트랙 ‘Runaway baby’는 앞의 세 곡과는 다르게 정말 ‘달리는 곡(Runaway)’입니다. 조금은 탁한 일렉기타 소리와 빠른 드럼비트를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얼터너티브 락(Alternative Rock)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곡을 듣다 보면 모든 분위기의 곡을 소화해내는 브루노의 팔색조 같은 모습에 그저 감탄하실 거에요.

그 외에도 타이틀인 ‘Marry you’와 10번 트랙 ‘The other side(feat. Cee Lo Green and B.O.B)’ 역시 강력 추천합니다. 여러분에게 익숙한 ‘Nothin’ On You’ 처럼 브루노의 노래는 랩과 어우러졌을 때 또 다른 멋을 내는데요. ‘The other side’는 이런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곡입니다. 마치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네요.

브루노 마스는 자신의 이번 엘범에 대해 “멜로디가 너무 좋다. ‘두 왑’(Doo-wop)에는 코드를 4개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모두 멜로디 위주로 갔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팝(Pop)처럼 편하지만 가볍지 않고, 소울(Soul)처럼 애절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신나게 들을 수 있는 ‘Doo-Wops & Hooligans [International ver.]’와 함께 활기찬 3월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학교생활이 지칠 땐 음악이 최고랍니다.

[필자 권오수 님은 꿈 많은 경영학도로, 음악이 좋아 2년간 여러 밴드의 보컬로 떠돌다 군 제대 이후 전공분야에 매진 중입니다. BUT I believe that music can enrich our lives, YES, it’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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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JYJ 사이의 갈등과 진실 

 

필명: 노부타

<예시기사> 5인조 남성 그룹 동방신기는 200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가수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렇게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큰 인기를 받고 있던 소위 잘 나가던 대표 한류 가수 동방신기가 팬들의 아쉬움을 남기고 결국 두 팀으로 갈라섰다. 현재 동방신기, JYJ으로 나뉘어 각자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상태. 그들의 갈등과 그 진실에 대한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고, 각 입장이 말하는 주장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결말, 소송

동방신기의 멤버였던 박유천, 김준수, 김재중 세 멤버가 2009년 7월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사를 대상으로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을 냈다. 그들이 SM과 맺은 계약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불공정한 계약이 문제였다.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란? ‘전속계약’이라는 계약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하라는 처분을 법원에 신청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JYJ 세 멤버가 SM과 맺은 계약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고 법원에 신청을 한 것이다. 이 신청을 해당 법원이 받아들여주면 전속계약이 임시적으로 효력을 발하지 못하여 당사자 간 계약에서 정한 내용에 대한 권리행사가 불가능하고, 의무가 면제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세 멤버는 SM이 5인조 동방신기 활동 당시 멤버들을 인간으로서 대하기는커녕 상품으로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하루에 평균 3시간만 자고, 일 년 중 일주일 정도 빼고는 빠듯하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응하는 수익은 터무니없이 낮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전속계약이 불공정하므로 이들의 의사에 반하는 계약을 체결하거나 독자적인 연예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해당 내용 일부를 받아들였다. SM은 세 멤버의 의지와 맞지 않는 공연계약을 맺거나 독자의 예능활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후 2010년 4월, SM은 세 멤버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앞서 말한 재판 결과에 이의를 신청함과 동시에 계약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다. SM과 동방신기 멤버들의 계약은 공정한 것이며, JYJ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인해 동방신기 그룹의 이미지 훼손과 활동에 제약을 주면서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받았다고 SM측은 주장했다. 이 소송은 2011년 2월 17일 지방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법원은 “전속계약은 연예인이 자신의 독자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연예기획사의 일방적인 지시를 준수하도록 되어 있어 ‘종속형 전속계약’에 해당한다”며 SM에 비해 일방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인 JYJ의 손을 들어줬다.

기각이란? 법률용어로, 소송을 수리한 법원이 소송이 이유가 없거나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무효를 선고하는 일.

 

신경전은 계속된다

이렇게 소속사와 멤버들의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까지 옮겨가 치열해질 때, 해당 가수(동방신기, JYJ)와 SM 소속사 측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료 연예인들도 신경전에 가담했다. 슈퍼주니어 신동은 자신의 트위터(@ShinsFriends)에 의미심장한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 신동 트위터:적(敵):서로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 배은망덕(背恩忘德):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즉, 내 가족에게 서로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라고 말한 것은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안무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룹 블랙비트의 멤버였던 심재원과 슈퍼주니어 성민도 한 수 거들었다.

 

 

 

“RT @Famous_Jae: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아우님 그게 정말 아니잖아요… 누가 누구한테 손가락질을 해 속상한척 하지마 정말 아픈게 누군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사건의 당사자인 JYJ의 박유천과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이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JYJ의 뮤직 에세이 <Their Rooms, 우리 이야기>에는 박유천의 자작곡 <이름 없는 노래>가 실려 있다. 박유천은 “해외에서 대박을 만들어 상상치도 못한 실적을 올렸단 소리에 가벼운 걸음으로 급여 날 회사로 들어갔어. 그때 받은 정산서엔 실적이 마이너스. 젠장, 그 많던 게 다 경비로 빠졌다”, “우리를 필요로 할 땐 가족, 우리가 필요로 할 땐 남” 등의 직설적인 가사를 담았다. 또한 JYJ의 뮤직 에세이가 발매된 며칠 뒤 반영된 KBS 2TV <연예가중계>에서 최강창민은 “아이돌은 시간이 지나면 주변 사람들 말에 현혹되기가 쉽다”고 말했다. 이는 해체 위기에 처한 걸그룹 카라를 위한 충고의 측면에서 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동방신기를 탈퇴한 JYJ를 겨냥한 말로 해석될 수 있다.

또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는 “(JYJ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없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세 명의 연락처가 바뀐 상태다”고 말하자 JYJ의 김재중이 트위터를 통해 “이건 직접 대답해주고 싶다. 본인인 내가 말해줄게. 그 문자들 얼마나 보내기 힘들었는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렇듯 동방신기 사태에는 다양한 관계자들이 나서는 바람에 더욱더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신경전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명인들의 트위터나 싸이월드, 블로그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서 사건의 내면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JYJ는 피해자인가? 동정론의 확산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에 동방신기가 출연한다는 소식은 방영 전부터 연일 화제에 올랐다. JYJ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시청자들은 ‘개운치 않다’는 반응이 컸다. 특히 JYJ 팬들은 방송 내용에 대해 크게 불만을 드러냈다. JYJ 팬들은 동방신기 2인이 JYJ가 소송을 냈을 때 이를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거짓이라며 각종 기사들을 증거로 제시하고 나섰다. 이어 JYJ팬들은 “JYJ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해당 프로 게시판에 섭외를 해달라는 요구를 빗발치게 했다.

JYJ는 소속사를 등지고 활동하기에 난관이 많았다. 지난해 9월 JYJ는 첫 앨범 ‘더 비기닝’을 발매했지만 활동규제가 컸다.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회가 지상파방송 2사와 케이블방송, 음반사, 음원유통사 등에 JYJ의 활동규제를 요청했던 것이다. 그들이 JYJ를 결성하고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것은 KBS 2TV <뉴스타임>을 통해서였다. 그 이후 <2010 KBS 연기대상>에 초대되어 노래를 불렀고, 소수의 정보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전부였다. JYJ가 출연했던 SBS 토크쇼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 아침> 편성이 여러 차례 지연되다 겨우 전파를 탔다.

또한 JYJ의 리얼TV가 편성이 돌연 취소된 사건도 있었다. 팬들의 항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해당 방송사 측은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여전히 JYJ를 둘러싼 외압설 등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상파 출연이 막힌 JYJ를 응원하는 인터넷 방송국이 개국한 지 나흘 만에 문을 닫았던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JYJ는 승승장구를 해왔다. 신인연예인 및 연예인 지망생 캐스팅 오디션 사이트 엠스타TV (www.mstartv.com)에서 올해 3월 10일부터 20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JYJ가 최고의 아이돌로 선정되기도 했다.

JYJ가 실제 방송에 비춰지는 횟수는 적었을지라도, 이러한 한계 속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입장은 더욱 공고해져만 갔다. 몇몇 지하철 플랫폼에는 JYJ를 지지하는 광고가 크게 실려있다. (이미지 첨부해요) 또한 118개국 총 8만 여명 해외 팬들은 서명운동을 통해 JYJ가 방송 출연을 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줬다. 서울 중앙지방법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JYJ의 방송 활동 권리 보장과 인권 보호를 요구하며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렇게 JYJ가 아직도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 SM 소속사에 비해 약자라는 인상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카라 해체 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예인과 소속사 간에 부당한 계약 조건과 대우 등이 암암리에 존재해 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 멤버가 동방신기라는 잘 나가는 가수의 타이틀과 몇 년간 함께 해온 다른 두 명의 멤버를 버리고 극단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것은 그들이 받은 부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두 팀의 최근 활동 모습과 바라는 점

지난 해 말, KBS에서 성황리에 종영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3인 체제 JYJ의 활동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박유천은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 네티즌상, 베스트 커플상 등 3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박유천의 연기 활동을 시작으로 JYJ의 활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준수는 지난 2월부터 약 두 달 간 진행된 뮤지컬 <천국의 눈물>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김재중은 4월 초부터 예정된 <JYJ 월드 투어 콘서트 인 2011>에서 총감독을 맡았다. 박유천은 또 한번 연기 도전을 하는데 MBC 새 드라마 <미스 리플리>에 출연을 확정지었다. <미스 리플리>는 <짝패> 후속으로 오는 5월 전파를 탈 예정이다.

그들이 다양한 분야로 활동을 재개한 것과 동시에 SM에 남은 동방신기 두 멤버는 2011년 1월 동방신기의 이름을 그대로 해서 5집 <왜 (Keep your head down)>을 냈다. 최근에는 후속곡 <이것만은 알고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조속한 갈등 해결이 필수적일 것이다. 앞으로 두 팀의 왕성한 활동을 기대한다.

[필자는 동방신기의 실질적 해체를 가슴 아파하는 평범한 여대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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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COACH

-수능, 그리고 연애.

 

10대, 풋풋한 사랑을 시작하기에 딱 알맞은 때지요.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구요? 가까워질 방법을 찾지 못해 머리가 아프다구요? 상대가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졸인다구요? 자자 이제 MODU에게 물어보세요. 자칭 연애고수들이 모여 여러분의 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

 

Q

안녕하세요? 저는 남고를 다니는 19살 학생입니다. 제가 다니던 학원에 어느 날 새로운 학생이 들어왔어요. 사람이 워낙 많았던 학원이라 웬만해선 서로 모르고 지내기 일쑤인데, 그 아이는 유난히 눈에 띄게 예뻤습니다.

처음에는 그 애에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친하게 지내는 것을 꿈꿨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 친구 녀석이 그 여자애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중학교 동창이라고 했어요. 그런 우연으로 저는 어색하게 그 아이와 인사를 하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사탐 과목 경제를 선택하게 되면서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어요.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연락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죠. (문자를 100번 넘게 주고받은 날도 있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워낙 성격이 좋고 활발해서 친한 남자 친구들이 많아요. 저도 그런 남자 친구들 중에 한 명이겠지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단 한 번도 이성에 관계된 이야기를 하거나 진지하게 서로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어요. 정말 순수하게 매우 ‘친한 친구’사이죠. 그런데 그 아이가 워낙 착하고 성격도 저랑 맞고 매력 있어서 저는 차츰 욕심이 생기네요. 특히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데(기타랑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해요) 그 여자애도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얘기가 잘 통해요. 이렇게 얘기가 잘 통하는 여자 애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수능을 앞둔 학생으로서 연애를 하면 공부할 시간을 뺏길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그 여자 애도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그래도 한번쯤 말을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우리 사이도 어색해지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계속 이렇게 있으면 결국 친구로만 남게 될 텐데 이것도 너무 속상하네요.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답니다.. 도와주세요~

A

L: 어쩌면 그녀도 다가와주길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요! 좀 더 이성으로 어필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할 거 같은데… 같이 밥 먹고 영화 같은 것을 보는 걸 자연스럽게 권유해봐요!

Y: 처음부터 같이 영화를 보자고 하면 부담스러워 할 가능성이 커요. 자연스럽게 같이 문제집 사러 가자고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문제집 사고 커피 한잔 마시고, 며칠 후에 다시 만나서 서로 문제집 풀었던 거 공부하고… 그러다가 머리 식히게 영화 한편 보자고 하고 하면 더욱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S: Y군의 말처럼 하면 좋을 수 있는 게, 중간중간 그녀의 반응을 보고 과연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그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녀는 적당히 그리고 계속 거절할 겁니다. 만약 그녀가 계속 그의 제안에 응한다면 마음에 있는 거니까 자신감 가지고 대쉬하세요^^

K양: 학원에서 만난 친구와 음악얘기로 가까워졌다면 공부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풀만한 주제들로 다가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 아이와 얘기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는 식으로 어필할 수 있게 말이에요.

 

L: 맞아요. 여자들은 굳이 문제집을 같이 사거나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진 않을 것 같아요! 음악을 서로 좋아한다고 했으니 그 부분에서 어필을 하고, 데이트 코스도 그렇게 짠다면?

K: 그러니까요. 저도 고등학교 시절 항상 집에서 CD를 몇 장 가져와서 야자시간에 같이 들었던 친구한테 좀 호감이 생겼었거든요. 아무래도 이야기할 거리도 더 생기고 말이에요. 그리고 왠지 ‘음악에 관심 있는 친구’라는 점이 멋있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L양: 그러다 점점 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물어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나 공부도 하는 애”라는 걸 알리면 더욱 좋겠네요. 그럼 그녀가 보기에 “나랑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말이 잘 통하는 동시에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될 테니까요.

Y: 사실 고민을 상담하러 온 친구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입장도 한 번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여성분들이 말 좀 해줘요.

K: 음… 마음으로는 남자 분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 신분이다 보니까. 같이 독서실을 다니고 공부를 하며 차츰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더라도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연애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관계맺음이라는 것을 천천히 느끼게 해주면 어떨까요?

 

S: 좋네요. 소소한 관계맺음. 남자 분이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어요. 본인이 아마 알 거에요. 연애를 하면 공부를 망쳐버릴 성격일지, 그렇지 않고 현명하게 자신을 잘 컨트롤 할 수 있을 지.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일단 공부에 더 집중해야 될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그 사람을 잡아보고 싶다면, 부담스럽지 않지만, 둘만의 교감을 만들 수 있는 자그마한 이벤트들을 몇 가지 추천해 드릴게요. 주의할 점은 쿨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거에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요. 먼저 이야기 해오기 전에는 선물에 대해서 이야기도 먼저 꺼내지 않는 게 포인트입니다. “~~야 너무 고마워!!” “뭐 그런 것쯤은~” 이 정도로 하면서 잽을 계속 날리는 거죠.

자칭 연애박사, 오글오글 종결자 S군

1. 좋은 책을 선물해라. 사랑에 대한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같은 책이면 더 좋다. 이 선물을 그녀의 가방에 몰래 넣어놓는다.

2. 그녀 몰래 가방 안 이곳 저곳에 사랑에 대한 명언이나 명대사 등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3. 학교나 학원 끝나고 같이 집에 갈 때, 빵 살게 있다면서 같이 빠리바게트 가서 치즈케익을 산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먹으라면서 손에 쥐어주고 헤어진다.

4. 만날 때 마다 조그마한 것들을 선물한다. 예를 들어 껌이나 츄파츕스를 주거나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5. 머리나 옷에 뭐가 묻어있다고 하면서 털어주고 정돈해준다.

6. 장신구들을 칭찬하며 살짝 만진다 – 끼고 있는 반지를 봐도 되냐면서 살짝 손가락 잡기 등

7. 그녀를 살짝살짝 놀리면서 가볍게 툭툭 친다 (장난조로 팔 살짝 톡 치는 거 있죠?)

8. 무턱대고 전화해서, 자장가로 피아노 치는 것을 들려준다.

 

S: 이렇게 교감할 수 있는 자그마한 것들을 계속 하세요. 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나와 사귀어달라고 하지 않으면서, 그쪽이 먼저 마음이 동하게 만드는 거죠. 어차피 선택은 여자가 하는 거니까요~ 참고로 여자 쪽에서 위의 행동들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듯하면, 먼저 반격기를 날리세요. “야, 너 과민반응 하는데?ㅋㅋ 내가 너 좋아하기라도 하는 줄 아나봐?” 입으로는 이렇게 가면서 행동은 계속… 그리고 절대로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과도하게 사과하거나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마시길. 무조건 당당히!

L: S군 … 대박… 연애 고수네요.

K: 마지막으로 공부와 시간에 관한 건 그 친구와 이야기해서 현명하게 결정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서 그렇게 하면 되죠. 하루에 딱 10분만 보기로 시간제한을 건다든지… 오히려 당신과 연애를 하는 게 공부에 더 좋은 시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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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가다

 

글 – 조강민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그러나 아직은 낯설기만 한 스페인 어가 기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옆에 않은 뚱뚱보 쩍벌남 아저씨는 저가 항공 타기를 고집한 나의 선택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 한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시작부터 사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르려는 순간 기장이 내뱉은 한 단어,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가 나의 귓전을 때리며 나의 마음을 다시금 설레게 만든다. “바르셀로나”. 그렇다. 나는 바르셀로나로 가고 있었다.

마드리드 교외의 IE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온 지 2개월. 동네 나들이 및 마드리드 구경이 더 이상 특별해지지 않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왔다. 그 때 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제의한 바르셀로나 여행. 수업 무단 결석을 감행해야 하는 여행 일정이었지만, 바르셀로나에 대한 끝없는 로망을 작렬 중이던 나에게 수업은 아무런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열심히 살지 뭐.” 무단결석에 대한 자기 변명이 완성되는 순간 내 손은 이미 비행기 표 예약 버튼을 클릭하고 있었다.

 

좌충우돌 입성기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친구들과 만남의 기쁨을 즐기는 것도 잠시. 우리는 곧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야 원래 동양인들은 부지런하잖아 너희들이 계획 짜 오는 거 아니었어?”,

“야 나는 급하게 따라 온 거잖아 너희들이 원래 바르셀로나 오자고 했으니깐 계획을 좀 짜와야 되는 거 아님?”

그렇다. 아무도 여행계획을 짜오지 않은 것이다. 당장 주변에 보이는 맥도날드에 들어가 작전회의를 시작한 우리들. 각자가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을 읊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하면 메시를 보러 가야지! 축구는 꼭 봐야 돼!”

“나는 가우디 건축물 보고 싶어”

“스페인 하면 자라(Zara) 아니니! 바르셀로나에서 쇼핑 한 번 갑시다!”

스포츠 매니아인 나와 쇼퍼홀릭, 거기에 고상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친구까지. 결국 우리는 바르셀로나 방문 일정 동안 자라(Zara)에서 쇼핑을 하고,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마지막으로 축구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 세가지만 하면 바르셀로나를 완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애써 서로를 위안한 채, 100% 유기농 무대책이었던 이번 여행은 시작되었다.

 

Zara를 찾다 가우디를 만나다

쇼핑 중독 말기 증상을 보이던 친구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던 떨리는 간절함 덕분에 우리는 첫 날 폭풍 쇼핑을 먼저 끝내고 나머지 일정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오늘의 목표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주요 쇼핑 골목을 전부 가보는 것! 빡빡한 예산 속에 얼추 2000원이 넘는 바르셀로나의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사치였기에 친구들과 나는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그야말로 종횡무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지도 상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도 한 두 시간씩 걸리기 일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서로의 저질체력을 비난하며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길거리 벤치에서 하염없이 아픈 다리를 주무르던 그 때, 일상적인 유럽식 건물 숲 사이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첨탑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저기 뾰족하게 솟은 건 뭐지? 되게 크다.”

“바보야 저거 사그라다 파밀리아 잖아.!”

“으응..? 사그라다 파밀리아?”

그렇다. 우리가 하염없이 걷는 동안 우리는 가우디 건물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게 된 것이다. 쇼핑에 대한 의지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난 상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첨탑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길 30분…

성당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가우디의 초현실적인 작품 성향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인데다 아직 건축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성당의 외관은 징그럽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죽기 전 일부만 완성하는 바람에 현재까지 미완성인 상태로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건축비용을 순수하게 성당의 입장수익 및 기부금으로만 충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성당이 언제 완성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고…

 

 

유적지 보수공사 현장 사무소처럼 보이는 성당 앞 매표소는 이 특이한 건물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인파들로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몸은 지쳐있었지만 성당이 발산하던 웅장한 에너지에 이미 압도되어 있던 우리는 한 명의 이견도 없이 긴 줄을 기다린 후 입장료를 지불하고 성당을 견학했다.

Barca의 힘, Camp Nou에서의 에피소드

쇼핑을 하고 가우디를 만난 후, 바르셀로나의 해변을 즐기던 우리는 바르셀로나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하이라이트로 축구를 선택했다. 마지막 날 저녁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 Camp Nou를 찾았다. 생각대로 축구장은 바깥에서부터 엄청난 수의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겨우 표를 구한 우리.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우와 사람 진짜 많다 +_+ 으악!!!”

“무슨 일이야???”

“지갑이 없어졌어!!”

그렇다.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푼수 끼가 다분했던 중국 친구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이미 늦었다. 가방은 열려 있었고 지갑과 여권은 우리가 모르는 바르셀로나의 뒷골목으로 향하고 있는 상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페루 친구가 능숙한 스페인어로 경찰을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결국 우리는 도난물 신고를 위해 팔자에도 없는 바르셀로나 경찰서를 관광하게 되었다. 삼십 분을 걸어 경찰서에 들어가니 이미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둘 셋씩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고, 우리는 바르셀로나 소매치기들의 프로페셔널한 기술력에 경악하며 이미 시작해버린 경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열의 도시 바르셀로나

축구 관람을 끝마친 우리는 지갑 도난으로 풀이 죽어버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피곤을 던져버리고 번화가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람블라스 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맛있는 음식과 정열적인 스페인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음식점들은 각종 해산물 요리로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고,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활보하며 그들만의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

“일상이 충실해야 여행, 일탈도 행복하다. 여행, 일탈이 충실해야 더 행복한 일상도 있다. 지금은 여행에 충실해야 할 때.”

나는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밤에 빠져들고 있었다.

[필자 조강민 님은 장신의 스포츠 매니아입니다. 스페인에서 자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빡센 삶에 다시 적응하는 중입니다.]

서울대학교 컬쳐플래닝 동아리

s.crewbar를 만나다!

 

편집/기자-임수정

대학교에는 중고등학교에서보다 더 다양한 동아리들이 있어요. 따라서 자신의 학과에 관계없이 관심 있는 분야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이 코너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좀 더 멋진 대학생활을 위해 이러한 동아리들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해보려고 해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멋진 파티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Culture Planning 동아리 s.crewbar(스크루바) 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s.crewbar 11기 회장 서울대 건축과 05학번 심규대라고 합니다.

s.crewbar라는 동아리는 어떤 곳인가요? 동아리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s.crewbar(한글 표기명: 스크루바)는 서울대학교의 새로운 파티/축제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했던 소수의 학부생들이 모여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직접 주최하는 대규모 파티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동참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수십명의 스텝들이 모이게 되었고 2006년 2월 10일 제1회 에스파티인 The S Party 2006이 성황리에 마무리됩니다. 이후 s.crewbar는 제1회 에스파티 기획을 위해 모였던 일회성의 프로젝트팀에서 서울대학교 동아리로 정착해 발전되어갔습니다. s.crewbar의 “S”는 Seoul National University의 “S”를 따온 것이며,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크루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crew”를 첨가하여 “s.crew”가 되었는데요, 무언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bar”라는 단어를 붙였고 “s.crewbar”라는 동아리 공식 명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Culture planning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말그대로 하나의 새로운 문화 창출을 위한 문화 기획입니다. 가령, 첨단 스마트폰의 등장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s.crewbar 1기 선배님들이 직접 기획한 한국 최초의 대학생 파티 제1회 The S Party는 대학생 파티문화라는 새로운 문화의 장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획기적인 대학 문화 행사는 새로운 대학생 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지게 되는겁니다. 즉, s.crewbar가 말하는 culture planning은 대학생들의 새로운 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지는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아리 회원들의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기획, 홍보 담당 등)

s.crewbar는 파티를 비롯한 각종 문화 행사를 기획, 홍보, 디자인하고 진행하는 동아리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행사 기획 단계부터, 장소 대관, 스폰서쉽, 디자인 작업, 프로모션, 예산 관리 등의 일련의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크루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하나의 또는 다수의 작업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가령, 디자인 작업에 관심이 있는 크루라면, 행사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과 장소 데코레이션 작업에 참여하게 되겠죠? 회계에 관심있는 크루라면 각종 행사에 필요한 예산을 관리하고 동아리에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관리하는 식이죠. 이렇게 모든 크루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열심히 일했을 때야 비로소 s.crewbar라는 한 조직이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crewbar의 활동들은 모든 크루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다같이 힘을 모아 대규모 문화 행사들을 완성해나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티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어떻게 쓰시나요?

지금까지 운영비를 제외한 각종 문화 행사들을 통해 번 수익금의 대부분을 “사랑의열매”와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해왔습니다. 작년 하반기 같은 경우 10기에서는 서울대학교 가을 축제에서 이벤트를 통해 학생들로부터 읽지 않는 도서들을 기부 받아 도서가 부족하거나 예산이 부족해 도서관을 설립할 수 없는 곳을 돕는 단체에 기부를 했습니다. 이번 2011년 2월에 있었던 연고대 동아리들과 연합으로 주최한 파티로 남은 수익금은 춘천에서 사랑의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하는데 사용하고 기부 받은 의류들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했습니다.

이 동아리에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나요?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갈 수 있나요?

통상 동아리들이 한 취미로 모인 단체(예를 들면 기타 동아리)라고 치자면 s.crewbar는 다방면의 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고 또한 그런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자신들의 끼와 창의력을 문화행사 기획이라는 과정을 통해 마음껏 펼쳐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매학기 s.crewbar를 찾고 있습니다.

 

s.crewbar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기존의 틀을 바꾸어 버리는 생각, 즉 창의성이 바탕이 된다면 culture planning의 장은 무궁무진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열정이 추가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죠. 지금까지 s.crewbar의 주된 문화행사였던 대학생 파티라는 틀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문화행사들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것이 s.crewbar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s.crewbar만 이 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실현에 옮긴다면 대학 그 어떤 동아리보다도 멋진 동아리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꿈과 열정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준비된 자들 뿐입니다.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희 동아리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저야말로 감사드리죠. MODU도, s.crewbar도 함께 번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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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표 공대 11학번 새내기

최정문 양을 만나다!

 

의상협찬-스타일리즘(stylism.com)

메이크업-양혜경

아직 앳된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MoDu의 첫 번째 모델, 최정문 양을 만나보았습니다. 화장기 하나 없이 촬영장에 나타난 그녀는 메이크업을 가볍게 받고 곧바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멋쩍어 하는 듯 했지만 이내 적응이 됐던지, 예쁜 미소와 포즈가 굉장히 자연스러웠습니다. 포토그래퍼님이 놀라실 정도로요! 결과로 나온 사진 한 컷 한 컷마다 최정문 양의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최정문 양과의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MoDu 창간 특집호의 모델로 발탁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공학계열 11학번 최정문입니다. 창간 특집호의 표지모델이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

아, 공대! 공대는 남자가 엄청 많지 않나요?

과마다 남녀 비율이 다르긴 한데, 대체로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 예전에 어느 TV CF를 보고 공대 ‘아름이’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ㅠㅠ

 

미팅이나 소개팅은 많이 하셨나요? 대학생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이잖아요..

정말 아쉽게도 한 번도 못해봤어요. 공대 여자들한테는 미팅이 잘 안들어오더라구요.. 남자애들은 미팅 엄청 많이 하던데.. 뭐,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겠죠?

하하 그럴거에요. 정문 양은 피부도 너무 좋으신 것 같은데, 혹시 특별한 관리 비법이 있나요?

사실 피부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데요, 톤이 하얀 편이라 실제보다 좀 더 좋아 보이는 것 같아요. 일명 ‘훼이크’라고 할 수 있죠. (웃음) 특별히 관리를 하는 것은 아니구요, 잘 씻고 기초화장품을 열심히 바르면 모두 피부 미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에요!

촬영을 해보니까 표정이나 포즈가 굉장히 자연스럽던데, 혹시 예전에 모델을 해본 적이 있으세요?

하하 정말요? 과찬의 말씀이세요. 고등학생 때 표지모델, 잡지모델을 간혹 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사진이 예쁘게 나온 건 모두 포토그래퍼님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죠! (웃음)

 

 

즐겨 입는 옷 스타일은 어떤가요?

옷 입는 센스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그냥 편하게 입고 다녀요. 입었을 때 불편하지 않고 활동하기가 편한 옷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사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지, 대학생이 되어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음.. 놀 땐 정말 빼지 않고 잘 놀고, 공부해야 할 때는 초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그런 대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동아리가 있나요?

‘몽환’이라는 서울대학교 마술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평소에 마술에 관심이 있던 터라 앞으로 분발해 열심히 배우고 활동할 계획입니다. 학교에 다양한 동아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것을 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뭐에요?

아직 구체적으로는 정하지 못했어요. 아직 신입생이니까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해보면서 차차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려구요.

마지막으로 MoDu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MoDu 독자 여러분! 저도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난 지 불과 몇 달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심정이실지 약간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한 상황인 것 같아도 늘 자신을 믿고 꾸준하게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늘 큰 꿈을 꾸는 사람이 되셨으면 해요. 저도 여러분이 꿈을 꼭 이루시기를 바랄게요. 항상 힘내시고 MoDu도 많이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표지 모델 촬영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정문 양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드림컨설턴트

꿈을 찾는 여행

 

“ 공부하기도 바쁜데 꿈을 찾는데 낭비할 시간이 어딨어?”

“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자 더 보겠어”

짜잔! 안녕하세요? 드림컨설턴트입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꿈 찾기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 왔어요. 꿈을 찾는 여행! 해본 적 있나요?  다소 막연하고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함께 떠나 보자구요!

꿈? 꿈? 꿈!

저희도 여러분과 같이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답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꿈,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죠. 왜냐구요? 저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은 우리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 지는 가르쳐 주지 않은 채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라고 말씀하시죠. 왜 해야 하는지를 납득을 하지 못하니 공부가 즐거울 수가 있나요. 그래서 저희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심한 끝내 내린 결론은 ‘공부는 수단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위한 수단? 그건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겉핥기 식으로 문제를 봐선 해결하기 힘들죠. 마음에 드는 이성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성이 여자라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꽃을 선물하고, 이성이 남자라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될까요? 애석하게도 그 여성분은 꽃에 알레르기가 있었고 그 남성분은 게임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본질적인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절대 마음을 얻을 수 없겠지요.

공부가 재미없다면, 아마도 공부를 해야 할 동기를 아직 찾지 못해서일 거에요. 그렇다면 공부를 하는 동기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꿈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공부라면? 이제 조금은 관심이 생기나요?

 

“한 사람이 가장 진실 되게 사는 방법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위의 문장처럼 살지 못하고 있어요. 물론 저도 그렇구요. 그러나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넬슨만델라, 테레사 수녀등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혹은 이전에 역사에서 이름을 남겼던 사람들은 좀 달랐어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었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삶의 모든 과정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었기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갔고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꿈을 찾는 데 들이는 시간이 많다 할지라도 그 시간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꿈을 찾게 되면 그것만 볼 수 있게 되거든요. 우리가 장애물이 보이는 이유는 목표물에서 시선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목표만 본다면 장애물 따윈 보이지도 않죠. 장담하건 데, 꿈을 찾게 되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드림컨설팅을 해주면서 모든 것의 최우선은 꿈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늦었다고, 이제는 공부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꿈을 찾은 다음에는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과 꿈을 찾는 여행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소개시켜 드릴 거에요.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꿈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꿈을 찾았을 때, 그 때의 기분은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을 거에요. 그럼 우리, 같이 힘내볼까요?

여행 1.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먼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써내려 가 보기로 해요. 자신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거든요. 이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후에 현재의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봅시다. 마지막으로는 미래의 나의 모습이 되길 희망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이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간이 많지 않을 거에요. 그런 만큼 생각을 해내기도 힘들죠.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드릴 조언은 “모든 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에게만 집중하라” 에요. 진지하게 자신을 대하는 순간 희망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꿈찾기 멘토링 프로그램 1

<자기소개 :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쓰기>

1. 과거 :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10줄 이상)
2. 현재 :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싫어하는 일(or 못하는 일)은? (각각 5개 이상)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싫어하는 일

 

 

 

 

 

 

   
3. 미래 : 나의 20년 후의 모습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10줄 이상)※ 참고 Keyword – 학력, 직업, 자격면허, 외국어 능력, 사회활동(동아리, 학회, 봉사활동), 해외여행·연수, 특별한 경험, 이상형, 결혼 및 가정, 인간상

먼저 여행을 떠난 친구의 이야기

K군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집안에서의 반대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명확하지 않아 많이 힘들어 했죠.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만 학자집안에서 용납하지 않으셨고 또 연기자가 되는 것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K군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친구의 생각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었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이 친구도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처럼 꿈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방황한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연기’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이것은 K군의 ‘과거’에 관한 질문이었어요. 그러나 대답은 “그냥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 연기를 하는 자기 자신이 생각나서 희열을 느낄 뿐 ‘과거’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렇다면 ‘현재’의 모습을 파악해보기 위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하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막상 적으려면 잘 생각나지 않죠. 그래서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지, 어떤 일을 할 때 제일 싫은 지와 같이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본 후 K군은 “저는 사람이 없는 곳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아요. 그렇지만 잘하는 것은 수학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막연하죠? 아마 전에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야 꿈을 찾을 수 있어요. K군은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막상 생각해보라면 생각하기 힘든 것!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죠.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K군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역시 명확하게 표현해 내지 못했어요. 당연한 결과였죠.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데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더 어려웠을 거에요. 이럴 때 제가 권하는 방법은 “가치 찾기” 입니다. 가치 찾기는 스스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 세가지를 꼽아보는 작업입니다. K군에게 저는 가치를 명확하게 설정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군에게 중요한 가치는 행복이었어요. 그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해서 지금도 막연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구요.

 

마무리하며

첫 번째 여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날들, 생각하는 것들,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술부터 배부를 순 없어요. 만약 처음부터 쉽게 꿈을 찾을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은 꿈을 이미 찾았겠죠?

마무리를 하면서 K군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해보긴 해봤지만 진지하게 임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제 이야기를 같이 해보고 저 자신에게 집중을 했던 시간을 가지고 나니 저의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찾을 수 있다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즐겁게 느껴질 것 같아요. 그 시작이 되는 만남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꿈을 찾는 여행은 정말 즐겁습니다. 앞으로 K군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릴 거에요. 여러분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K군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낄 테니까요. 삶에 의욕이 나지 않고 지금의 생활이 즐겁지 않은 당신!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꿈’ 을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드림컨설턴트는 자신의 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주체적으로 꿈을 설계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꿈을 찾기보다는 경쟁, 성적, 공부에 매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꿈이 아닐까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다양한 멘토 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학생은 저희 홈페이지로 찾아오세요. http://www.dreamconsultant.net/ 

스포츠서울 기자, 장강훈 

 

편집/기자-고보경, 김민석, 임수정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죠. 지난 시즌에는 구장을 찾은 관중의 수만 600만을 웃돌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직도 야구에 대해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아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경기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는 스포츠서울의 장강훈 기자님을 만나봤습니다.

<자기소개 및 업무소개>

안녕하세요. 먼저 MODU의 독자 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예, 저는 스포츠서울에서 야구담당을 맡고 있는 장강훈입니다. 처음 기자가 된 것은 2003년이구요, 스포츠서울에는 2008년 2월에 와서 야구에 대해 본격적으로 기사를 쓰게 됐어요. 그 전에는 야구담당을 목표로 교육부 출입기자로 3년 있었구요, 다음에는 2년 반 정도 농림부, 식품안전의약청, 보건복지부 출입을 했었죠. 스포츠마케팅 관련해서도 1년 반 정도 했구요. 그러다가 스포츠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야구담당 기자가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기본적으로는 신문에 야구기사를 게재하는 일을 해요. 직접 경기 보고, 감독이나 코치, 선수들하고 얘기를 해서 야구관중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대신 물어보고, 전달해 드리는 거죠. 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씩 쓰고. 선수단과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잖아요. 그 창구 역할을 저희가 한다고 생각해요. 또 선수단이나 코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밖에서 보는 모습이 다를 수 있잖아요. 저희는 그 부분을 다루면서 간극을 좁혀주는 일을 하는 거죠.

<진로 선택 및 준비 과정>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제가 음악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밴드도 하고, 대학교 때도 홍대 같은 데에서 노래도 했었고. 그래서 어렸을 때는 라디오PD가 되고 싶었어요. 밤에 공부도 안하고 맨날 라디오만 듣고 그랬거든요. MBC FM의 24시간 프로그램을 다 알았고, CM까지 다 외우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교복 안에, 팔 쪽으로 이어폰을 빼서 계속 라디오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연히 기자가 라디오PD보다는 더 비전이 있다는 조언을 들어서, 지원을 해봤다가 운 좋게 붙었어요.

, 정말 우연히네요. 그럼 특별히 야구 담당 기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신 건요?

2003년 3월 10일에 첫 출근을 했어요. 그 때부터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는 게 뭘까’하는 고민을 시작했죠. 사람들한테 뭔가 좀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거,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을 해보니까 야구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야구부였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인야구부 하고 있거든요. 뭐, 어떻게 보면 넓은 의미에서는 다 선후배들이니까 더 애정이 가고, 뭔가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 싶죠. 특히나 야구 싫어하시는 분들, 또 야구 모르시는 분들이 제 기사보고 ‘아, 야구에 이런 매력이 있구나. 야구장가서 한 번 봐야겠다’ 하셨으면 좋겠어요.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음. 사실 기자가 되고 나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아까 얼핏 눈치 채셨겠지만, 초등학교 3년, 중학교 3년 동안 수업을 한 시간 이상 들은 적이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 (머리에) 들어있는 게 없겠죠? 그래도 뭐 어떻게 수능 점수가 잘 나와서 대학 갈 수 있을 정도는 됐어요. 근데 그렇게 가 봐야 할 수 있는 게 없겠다 싶어서 그냥 전문대를 가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공부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편입해서 졸업 하고 군대 갔다가, 말년휴가 나와서 언론사에 아무 생각 없이 원서를 냈는데 덜컥 된 거예요. 그때는 학력 위조 스캔들 터지고 그래서 이력서에 출신 학교를 안 쓰게 했었거든요. 뭐 그래도 아마 행정착오였을 거야 (웃음). 어쨌든 그렇게 덜컥 기자가 됐는데, 동기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학교 출신인데다가,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무지 잘한 아이들인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정말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대화가 안 되니까. (웃음) 그래서 그때부터 책도 되게 많이 읽었고, 고등학교 전 과목 교과서를 한 서너 번 읽었어요. 이해가 안 되도 그냥 읽었어요. 그때 배운 게 교과서에 뭐가 있는 지만 알면 사회 나와서 뭘 해도 사람들이랑 대화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야구 같은 경우로, 이론들을 많이 공부하고 가능하면 자주 야구장에 와서 경기를 봤어요. 선수들이랑 코치들하고 얘기도 많이 했고. 이런 것들이 지금 저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디 가서도 다른 사람들한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거죠.

, 정말 노력파세요.

뭐 일단은 남들보다 좀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글쓰기 같은 거는요? 그것도 노력하면 느는 건가요?

그렇죠. 쓰면서 늘죠. 이게, 글쓰기의 3원칙이 있어요. 이것도 문학 교과서엔가 나와요. 다독. 다작. 다상념. 3다라고 하거든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면 느는 거에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 더해서 조중동의 1면 기사랑 각 면의 톱기사들을 원고지에다가 그대로 따라 썼어요. 칼럼이나 신문수필도 매일 읽고 거기에 대한 감상도 쓰고. 이렇게 6개월 정도를 하니까 글의 오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제가 구성을 다시 해서 기사를 써 봤어요. 그렇게 한 1년 하니까, 주변에서 기사 좋아졌다고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구요.

 

<야구, 그리고 기자 장강훈>

아무래도 야구장에도 자주 오시고, 관련한 글도 많이 쓰시고 하니까 선수들하고도 친하시겠어요?

그렇죠. 원래는 ‘불가근불가원’이라고 취재원들하고는 가깝지도 멀지도 말라는 게 취재 원칙이거든요. 근데 저는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밥 먹고 사는데, 가까워질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대신에 그들이 뭔가 청탁을 해왔을 때,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면 내가 거절할 수 있어야죠.

안 그래도 채태인 선수랑도 사진 찍으셨더라구요.

2009년 시즌 때 찍었죠. 제가 채태인 선수랑 닮았대요. 2011년 개막전 때 태인이가 만루홈런 치니까 문자가 한 백 통 이상 왔어요. 네 동생이 만루홈런 쳤다면서 (웃음). 저야 뭐 좋죠. 유명한 사람 닮았으니까.

기자 생활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2008년에 문학 경기장에서 기아랑 SK랑 경기를 했는데, 그 때 제가 SK 담당이었어요. 그 때 윤길현이라는 투수가 최경환 선수한테 좀 안 좋은 행동을 해서 난리가 났었죠. 제가 그 날 현장에서 있었는데, 경기 흐름이라든지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봤을 때 저는 길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전의 상황을 보면 경기 양상이 그럴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내가 투수래도 그렇게 했을 거다’하고 기사를 썼죠. 경기는 선후배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끝나고 가서 사과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선배라는 이유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선수는 마운드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날 제 기사 때문에 회사가 마비가 됐고, 제 회사 메일 용량이 다 차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고 다음 날 잠실에서 SK랑 두산 게임이 있었는데, 기아 팬들이 출입문 앞에서 스포츠서울 장강훈 데리고 오라고 막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나가서 대표랑 얘기를 했죠. 결국에는 그 분이 수긍을 하고 갔어요.

그러고 그 다음에 윤석민 선수가 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게임 끝나고 팬들이 선수를 때려서 이 친구가 그 다음날 경기에 못나왔어요. 그래서 또 썼지 (웃음). ‘그건 아니다, 안에서 유니폼 입은 애들끼리 말하고 풀었으면 그걸로 된 거다. 팬들한테도 모자 벗고 인사를 했으면, 그걸로 끝난 거다. 그런데 왜 팬들이 선수들을 때리고 욕하고 그러냐. 그거는 구단이나 야구를 사랑하는 행동이 아니다.’ 근데…

그날 또..?

그날 또 난리가 났어요. 아마 네이버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맨 위에 뜰 거에요. 장강훈 뭐 하는 사람이냐고. (웃음)

하하. 그래도 장강훈 기자님의 기사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렇겠죠? 근데 사람들이 저보고 절대 평범하지는 않대요 (웃음). 아까도 얘기했지만, 다수의 기자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가서 엘리트 코스 밟아서 온 사람들이에요. 이 분들은, 물론 안 그러신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야구를 머리로 이해를 해요. 근데 제 생각에는 야구라는 게임 자체가 모순덩어리에요. 논리로 설명이 될 것 같으면 드라마일 수 없죠.

야구시즌이 아닐 때는 뭐하세요?

농구를 하죠. 저는 농구도 담당을 하거든요. 근데 농구 같은 경우에는 그 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기사 쓴 거 보면 너무 잘 쓴 거에요. 그럼 쉬는 날에도 농구를 보러 가요. 그 때 감독이나 코치들 잡아서 설명해달라고, 물어보고 그래요. 내가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있어야 글로 최대 80%까지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사람들이 기자들보고 얇고 넓게 안다고 그러는데, 저희 같은 전문지 기자들은 담당 종목은 누구와도 대화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야 여기 종사하는 분들도 저희 말을 신뢰할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하는데도 신문 보고 ‘에이 찌라시같이 썼네’ 그러면 정말 자존심 상해요. 그런 말 안 들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웃음)

 

<언론사 문화, 그리고 신고식>

기자실에서는 직급에 자를 안 붙인다고 들었어요. 부장님이 아니라 부장, 이런 식으로. 왜 그러는 건가요?

음. 예를 들어 정치부 기자가 대통령을 만났어요. 근데 막 주눅들어서 한 마디도 못하고, 대통령이 얘기하는 것만 굽신굽신 듣고 있으면 그건 취재가 아니잖아요? 반대로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를 만났어요. 괜히 무시할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노숙자들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뭐 힘든 것 없으세요?’ 이렇게 접근을 해야 되는 거에요. 옛날에 어떤 유명한 선배가, ‘기자는 대통령보다 낮지 않고, 구두닦이보다 높지 않다’라고 명언을 남긴 게 있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저희 정체성이죠. 누구하고도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으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이런 걸 조직에서부터 트레이닝을 해야 밖에 나가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호칭으로나마 그런 걸 연습하는 거예요.

, 독특하네요. 실제로 그런 게 도움이 되나요?

네. 물론 윗사람에게 존대를 하긴 하지만, 호칭이라는 게 의외로 영향을 많이 미치거든요. 이 것 말고도, 처음 기자실에 들어오면 부장이 미션을 줘요. 아침 8시쯤에 어디 경찰서 가서 서장 자리에 앉아서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담배 피면서 서장 올 때까지 있으라고. 가서 그러고 있으면 서장이 들어오잖아요? 그때 ‘죄송합니다. 사실은 부장이 시키셔서~’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서장이 막 욕하고 그러면 같이 하고 그래요. 그럼 비서들이 와서 말리고 (웃음). 이런 것들도 기자들 트레이닝 과정 중 하나에요.

독특한 신고식이네요.

그렇죠. 조직폭력배들하고도 취재할 때에도, 겁내고 그러면 취재가 안 되니까요. 그 때 이런 깡이 있어야죠. 그리고 예전에는 사람을 잠도 안 재우고 극한으로 몰기도 했어요.

요즘은 그런 게 좀 없어진 건가요?

요즘은 그렇게 시키면 아이들이 회사를 그만둬버리니까요. 사실 이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에요. 사실 사회인이라는 건 프로페셔널이니까. 프로가 누군가에게 뒤진다는 건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루하루 되게 절박하게 최선을 다해야죠.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해서 3년 동안은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되게 매너리즘에 빠져서 일도 하기 싫어지고 게을러져요. 그럼 도태되겠죠.

<미래 계획>

기자님의 10년 후의 모습은 어떠실 것 같으세요?

10년 후에도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조금 더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야구해설을 할 수도 있고, 책을 꾸준히 내서 지면에 다 못다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 수도 있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야구장 근처에서 동네 아저씨로 있지 않을까 해요.

<끝으로>

기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거는요, 제 기준으로 보면 저는 야구를 좋아하니까 일단은 공짜로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거? 전국에 있는 야구장에 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요. (웃음). 그리고 선수들, 코치, 팬, 야구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 그건 정말 최고죠.

나쁜 거는 음.. 집에 잘 못 가는 거? 사생활이 없어져요. 친구들 못 본지가 벌써 4년째니까.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나서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게임 끝나고 마감하고 집에 가면 11시 반, 12시거든요.

어떤 성격의 사람이 스포츠기자라는 직업과 맞을 것 같으세요?

일단은 사람을 좋아해야 돼요. 사람 만나는 게 좋고, 서로 알아가는 데에서 재미를 느끼면 기자가 될 기본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포츠를 좋아해야겠죠.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그 내면을 보는 게 더 좋은 사람, 또 전반적인 흐름까지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일단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해요. 꼭 고전이나 명작소설일 필요는 없고, 만화책도 괜찮아요. 뭐든 읽으면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공부 잘하라는 소리는 저는 안하고 싶어요. 교과서에 뭐가 있는 지만 알면 나중에 그거 응용할 수 있거든요. 그것 보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뭔지, 또 자기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성적은 그냥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했는지는 판단하는 사회적인 기준일 뿐이지,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부 잘한다고 그 사람이 꼭 사회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부광득 변호사님

 

편집/기자 – 고보경

판사, 검사,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로스쿨 도입 이전까지는 법대 역시 다수의 학생들이 꿈꾸는 최고의 학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법조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추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죠. XXXX는 이런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법무법인 지인에서 기업자문변호사로 계시는 부광득 변호사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자기소개 및 업무소개

안녕하세요. 먼저 MODU의 독자 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명함을 건네주신 후) 보시다시피 지금 하는 일은 변호사에요. 저는 고려대 법대 97학번이고, 사법시험은 2004년도에 붙었어요. 2005-2006년은 연수원에 있었고, 2007~2009년 3년 동안은 법무관을 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법무법인 지안)에는 작년에 입사해서, 실제적으로 일한 기간은 만 1년 정도가 됐죠. 변호사가 하는 일이 다양한데, 저는 기업 자문과 관련된 송무와 금융 쪽 일을 하고 있어요. 기업 자문 같은 경우, 공정거래나 M&A, 노동 문제 등을 주로 다루고 있구요.

법무법인 지안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20명 정도 되요. 한국변호사분들도 계시고, 외국변호사분들도 계시고, 세무사, 회계사분들도 계시고. 특히 저희는 기업자문 일을 많이 해서, 회계나 세법에 대해 다른 전문가 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현재 외국계기업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있잖아요. 영문계약서 검토할 부분도 많고, 미국법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외국 분들도 많이 있어요.

지금 하고 계신 기업 자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변호사에 대해 생각하면 법정에 나가고 피고를 변호하는 일들이 먼저 떠오르실 수 있어요. 물론 그게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건 맞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인 기업자문 같은 것들은 법정에 나갈 일은 거의 없어요. 기업 담당자 분하고 연락 주고 받으면서 계약서 같은 거 검토하고, 또 의견서 같은 거 보내주고, 그런 업무가 주가 되는 거죠. 이에 관련해서 소송이 생기면 그 때는 법원에 나가기도 하구요.

기업자문이라는 일을 하기 위해서 특별히 필요한 경력이 있나요?

변호사분들 중에 회계사자격증이 있는 분들도 있고, 기업에서 근무하다 오신 분들도 있어요. 확실히 그런 경력이 있으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죠.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크게 제약을 받지는 않아요.

법조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고지식하다거나 공부만 했을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기존에 법조인들 상이 그렇잖아요. 법대를 나와서 고시공부를 하고, 연수원에 가고… 법대생들의이미지도 고리타분하고, 고시촌의 이미지도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어요. 법대뿐만 아니라, 다른 과, 공대나 경영대 출신도 있고. 저희 회사만 해도 오히려 법대 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요. 저희는 기업 자문이라든가 금융 쪽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대표님이 두 분이신데, 한 분은 경영학과, 다른 한 분은 물리학과에요. 정치학과도 있고, 경제학과도 있고, 다양한 분들이 많아요. 예전에 사람들을 잘 안 뽑을 때는 법대출신의 단일화된 통로를 통해서 법조인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진로 선택 및 준비 과정

현재 직업이신 변호사를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뭐 대부분 고등학교 때 대학 과를 선택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고등학생 때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기자도 되게 좋아 보였고. 글을 잘 쓰지는 못하는데, 사람 만나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처음에 법조인을 생각하게 된 것은 좀 단순해 보일 수 있는데, 왠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 비춰지는 검사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리고 검사가 마음만 먹으면 되게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럼 처음에는 변호사보다는 검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던 거네요?

네. 근데 경험을 해보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법무관도 했었고, 연수원 때도 실무실습을 할 기회가 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조직에 들어가서 경험을 해보고 나니까, 저랑 적성에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검사가 되면 일반적으로는 형사사건을 주로 하게 되거든요. 쉽게 말해서 범죄자를 잡아서 수사를 하고, 법원에 넘겨서 형벌을 가하는 일만 쭉 하게 되는 거에요. 물론 그 자체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저는 막상 또 경험을 해보고 나니까 좀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검사가 되면 제약을 받지 않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까 한계가 있기도 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됐고, 지금 변호사를 하고 있는 거죠.

대학에서 법조인이 되시기까지 준비과정이 있잖아요? 법대 공부도 그렇고 사법고시도 그렇고. 그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들은 없었나요?

기본적으로 고시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었죠. 저 같은 경우는 학교를 졸업하고 신림동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었는데, 일단 신림동 생활 자체가 되게 답답해요. 그리고 저는 2차 시험을 세 번 봤거든요. 시험에 떨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죠. 그 때는 군대도 아직 안 갔었으니까, 만약 시험 떨어지고 군대 가고 그러면 장래가 좀 막막해지겠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런 불확실성이나 불안감 때문에 힘들었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도 그렇지만 시험 자체도 굉장히 고되다고 들었어요.

네, 2차 같은 경우는 4일 동안 봐요. 그런데 사실 연수원시험이 더 빡세요. 연수원에 가면 2학기 끝나고랑 4학기 끝나고 각각 시험을 보거든요. 또 등수를 매겨야 하니까. 근데 그 시험이 정말 힘들어요.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하루 종일 앉아서 쓰는 거거든요. 한 7~8시간을 연이어 보는데도 시간이 모자라요. 기자님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연수원에서 시험 보다가 사람 죽고 막 그랬어요.

예???

시험을 2주정도 보거든요? 하루 걸러 보고 그래요. 밥도 시험 보면서 먹어요, 막 김밥 먹고. 그거 시간 아까워서 안 먹기도 하고 그래요. 이렇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제가 연수원 들어가기 전에 임산부 한 분이 돌아가셨었어요. 그만큼 시험이 가혹해요. 비합리적인 부분도 많은데, 기존 법조인들이 생각이 좀 막혀있는 부분도 있어서, 같이 고생을 해야 법조인으로 끼워주겠다, 그런 거 있잖아요.

연수원 후에는 보통 어떤 일을 하시나요?

검사 같은 경우는 뽑는 사람의 수가 매년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서 연수원 등수가 높은 분들은 법원에 많이 가고, 그 다음에 있는 친구들이 검찰에 가고. 최상위권에 있는 친구들 중에는 대형로펌에 가는 친구도 있었고. 그 외에는 다른 중소형 로펌에 취업하거나, 혼자 개업하거나, 사내변호사 (in-house lawyer) 등으로 갔죠.

 

프로 보노(Pro Bono), 재능 기부

프로보노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프로보노가 뭔가요?

쉽게 얘기하면 재능기부에요.

프로보노 일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고등학교 친구의 소개를 받고 시작하게 된 건데, 아름다운 가게라고 혹시 아시죠? 친구가 거기서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해주고 있었는데, 마침 법률자문 건이 있었던 거에요. 근데 그 친구가 아는 법조인이 저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한테 한 번 나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가봤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았거든요.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았고. 저는 법대를 나와서 고시공부하고 그런 정형화된 코스를 밟았다 보니까, 경영컨설턴트 하시는 분들을 처음 본거에요. 생각하는 것도 법조인들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이런 분들과 만나서 회의하고 그런 게 되게 재미있었고, 또 보람도 있었어요. 지금도 아름다운 가게 분들이랑 계속 연락도 하고, 정식으로 법무부에 위촉도 받아서 활동하고 그러고 있거든요. 되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해서, 3년 정도 쭉 하고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적 기업들 자문을 해드리고 있죠.

변호사 일을 하시면서 프로보노 같은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사실 그게 좀 문제인데요, 전 주말에 주로 하죠. 또는 퇴근 이후에. 메일 같은 것도 많이 쓰고.

되게 바쁘시겠네요.

재미있으니까, 뭐 괜찮아요. 프로보노는 매주 회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만나서 회의를 하는 건 한 달에 1~2번 정도?

로스쿨 이야기

요즘 로스쿨제도가 이슈가 많이 되고 있잖아요. 로스쿨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은 과도기라 제 의견을 말하기가 좀 조심스러워요. 그런데 로스쿨제도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것은 맞아요. 최근에는 검찰선발 때문에도 이슈가 되고 있구요. 기존의 연수생 같은 경우에는, 사법연수원 성적과 본인 지망에 따라 검찰에서 선발을 했었는데, 로스쿨생들 같은 경우에는 로스쿨 원장들 추천을 받아서 뽑겠다고 법무부에서 발표를 한 상태거든요. 로스쿨은 입학 때부터 국가가 관여하는 게 아니라 사립이나 공립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뽑는 거고, 또 그 중에서 로스쿨 원장이 학생을 추천한다는 게, 연수원생들이 봤을 때는 좀 불공평하다는 거죠. 근데 아직은 로스쿨 1기생이 졸업을 안 했거든요. 사실 지금 제도가 완비가 안된 상태에서 제도가 도입이 되고 운영을 하려다 보니까 여러 가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로스쿨생들이 입학을 위해 학점관리도 열심히 하셨을 거고, 로스쿨 수업도 만만치 않겠죠. 또 결국에는 연수원이 없어지고 로스쿨제도가 안착이 될 테니까, 로스쿨생들 입장이 좀 더 배려가 될 수밖에 없긴 한데. 현재는 연수원생들이 남아있으니까 반발이 있는 거죠. 그래도 말씀 드렸다시피 아직은 과도기라서 뭐라고 확실히 단정짓기는 어려워요.

그럼 로스쿨생들이 검사가 되더라도, 기존에 계신 분들과 잘 어울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겠죠. 현재 연수원생들 사이에서는 기수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나이가 어려도 기수가 높으면 선배 대접을 받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로스쿨 출신은 학교도 다 다르고, 기수 개념도 없으니까 이런 문화에 어울리기가 어렵겠죠. 로스쿨생은 자기가 나이가 많은데, 연수원생들은 나이가 적어도 선배니까 대접을 받으려고 할 수 있죠. 이런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요. 근데 뭐 어쩔 수 없이 로스쿨로 갈수밖에 없는거니까, 변화가 생기겠죠.

변호사일 하시면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점은, 일단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후에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저처럼 프로보노 활동 같은 것도 할 수 있는거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또 판사나 검사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잖아요. 개인적 역량으로 사회에 그만큼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이 또 없는 것 같거든요. 힘든 점 같은 경우는, 글쎄요. 다른 직종에 계신 분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업무가 과중한 것은 맞아요. 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기도 한데, 그런 건 어느 직종에나 있는 거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별한 단점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미래 계획

부광득 변호사님의 10년 후 모습은 어떨까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갈 생각이신지 궁금해요.

일단은 10년 정도는 변호사 업무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동안 깨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요. 그 이후에는, 제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게 되고 클라이언트 기반을 갖추게 되면.. 저는 프로보노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사실, 사회적 기업은 영세하고 발전단계에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조금만 도움을 드려도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이런 활동을 짬짬히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여유를 가지고 더 많이 활동을 했으면 해요.

조언

어떤 성격이나 성향의 사람이 변호사라는 직종에 맞을까요?

음.. 일단은 모든 직업이 그럴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니까,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언변에 능한 분이면 좋겠죠. 글도 잘 쓰고. 변호사 일이 기본적으로 상호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거니까, 좀 얘기를 많이 들어보고 정리할 수 있는 분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을 최대한 즐기시되, 장래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게 하세요. 법조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대학생이 되신 후에는 천천히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 학점관리라든지, 영어공부도 그렇고. 또 판검사에 뜻이 있는 분이면, 직업윤리나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진로고민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사실 가장 좋은 건 현업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건데, 그게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잖아요. 근데 그게 안되면, 책을 읽는 것도 좋겠죠. XXX같은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도 좋고.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