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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사이즈모델

[만나고 싶었어요]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너라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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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시도한다는 것

 

김지양을 수식하는 직업이 굉장히 많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매거진 <66100> 편집장, 쇼핑몰 ‘66100’CEO, 이제는 방송인까지. 제 일 궁금한 건 역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일에 대해서다. 원래 부터 모델이 꿈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기존에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다들 직종이나 일을 바 꾸게 된 이유나 계기를 묻는다. 모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드라마 틱한 계기는 없었다.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1>에 지원할 당시, 일하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안 된 거다. 내가 정말 원하는 분야에서 일한 것도 아닌데 여기에서까지 실패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굉장히 컸다. 그때 우연히 <도전! 수퍼 모델 코리아 시즌1>의 모델 모집 광고를 봤다. 광고 속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라는 문구가 와닿았다. 이제까지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 으로 살아본 적이 있었나 고민하게 된 거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지 원했다. 운 좋게 1차에는 합격했지만 2차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런데 모델 데뷔는 미국에서 했다. 미국에서 데뷔한 최초의 모델이 된 비법 좀 알려달라.

‘구글링’이다.(웃음) 내 키와 체중으로 나를 기용해줄 만한 쇼를 찾 다가 미국 LA에 ‘풀 피겨드 패션위크(Full Figured Fashion Week)’ 라는 플러스 사이즈 패션쇼가 열리는 걸 알게 됐다. 한 달간 모델 워 킹 수업을 받은 다음, 프로필 사진과 동영상을 준비해 서류를 보냈 다. 덜컥 합격해서 그대로 미국으로 떠나 실물 면접을 봤고, 쇼에 섰 다. 그게 2010년이다. 2년 뒤 ‘캐러비언 플러스 사이즈 패션위크 (Caribbean Plus Size Fashion Week)’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데뷔부터 쇼에 서기까지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나 보다.

전혀! 경제적 측면에서 힘든 점이 굉장히 많았다. 풀 피겨드 패션위 크는 모델들에게 숙소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캐러비언 플러스 사이 즈 패션위크 측도 숙식은 제공했지만 항공편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2012년 뉴욕에서 열리는 풀 피겨드 패션위크에도 참가하고 싶 었는데, 그러려면 면접, 쇼 스케줄 등을 포함해 미국에서 최소 90일 을 체류할 비용을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돈이 엄청 많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설거지 일도 하고 쿠킹 클래스도 열어가며 돈을 모았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지만 나를 보고 모델의 꿈을 키우는 친구들이 생기는 건 별로 달갑지 않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되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는 질문은 많이 받고 있지만 일일이 답해주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질문을 하는 경우는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얼굴이 예쁜데 뚱뚱한 경우, 둘째, 모델이 꿈인데 살이 안 빠 지는 경우, 셋째, 뚱뚱하지만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경우. 그런데 왜 꼭 모델이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본 친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저 미디어에서 예쁘게 보이니까 모델이라는 직업을 갖고 싶은 거라 면 정말 말리고 싶다. 모델은 철저하게 기용당하는 입장이다. 자신 의 잠재력에 대해 고민해보고 여러 일을 거친 뒤에 모델을 꿈꿔도 좋지 않을까? 나만 해도 보통 모델이라면 은퇴할 나이인 25세에 데뷔했다. 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매거진 <66100>도 궁금하다. 모델이 직접 매거진을 창간했다는 게 새롭게 느껴졌다.

나를 커버에 세울 매거진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 인턴을 한 곳이 잡지사였는데, 창간을 준비하던 차라 어깨너머로 잡지 제작 프로세스 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가장 공들인 건 아마추어처럼 보이지 말자 는 것이었다. 대중의 눈에 익숙지 않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나오 는 만큼 편집 레이아웃이 어설프거나 너무 독특한 시도를 하면 본질 이 흐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꼴은 맞춰보고자 기획서 들고 발품 팔아가며 자문을 구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 었고 3개월 동안 준비해서 2014년에 창간호를 냈다. 현재 7호까지 나왔다. 지금은 잠시 휴간 중이다.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웃음) 곧 8호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서 인터뷰하고 화보 촬영하고 기사까지 쓰려니 고생은 많이 했지만 ‘이 잡지 한 권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생긴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쇼핑몰 ‘66100’도 그런 취지에서 열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낸 결과다. 쇼핑몰 ‘66100’은 2015 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서 시작한 사업이 다. 올해로 4년 차인데, 처음엔 란제리 쇼핑몰로 시작했다. 그런데 모델로서의 나와 CEO로서의 나 사이에서 자꾸 갈등이 생겼다. 모 델로서의 나는 내 몸이 너무 좋은데, 상품을 팔아야 하는 CEO의 눈 으로는 자꾸 부족한 점이 보이는 거다. 그 당시만 해도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일명 서구형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을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 게 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란제리 대신 일반 여성의류 쇼핑몰로 전향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는 건 정말 싫었으니까.

 

오프라인 쇼룸도 운영해서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들었다.  

우리 쇼룸은 의류 선택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다. 우리나라에서 ‘프리 사이즈’는 44에서 66까지다. 그런데 실상 55 사이즈 이상은 시중에서 찾기도 힘들다. 심지어 누가 봐도 마른 사람인데 44 사이즈 옷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시판되는 의류가 이 런 상황이니 플러스 사이즈 고객들은 단순히 옷을 사는 일 자체가 힘들다. 그러니 주체적으로 옷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제품 의 디자인이나 질을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단지 몸에 맞는 옷을 사는 거다. 나도 돈 벌려고 쇼핑몰을 운영하지만 이런 플러스 사이즈 구 매층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쇼룸도 그래서 만든 거다.

 

쇼룸에서는 옷만 입어볼 수 있나?

아니다. 방문한 고객의 가슴, 허리, 엉덩이 등 신체 치수를 측정한 뒤 정확한 사이즈를 알려주고 그 자리에서 우리 쇼핑몰의 옷을 살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고객에게 맞는 스타일도 제안해준다. 어떻게 보면 ‘퍼스널 쇼퍼’로서의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는 거다. 쇼룸을 운영하는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쇼룸에 와서 옷을 사고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쇼핑을 했다는 분들을 보면 그만둘 수가 없다.

 

지난해 종영한 <바디 액츄얼리> 프로그램에서는 MC로도 주목을 받았다. 방송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명견만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은 프로그램 측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바디 액츄얼리>는 전에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PD님 추천으로 합류했다. 방송이고 예능이고 전부 초보라서 내가 방송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방송으로 유명해져야겠다고는 생각한다.

 

방송이 적성에 맞았던 건가?

단순히 방송 일이 즐거워서 유명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예전부터 인터뷰를 해오면서 정말 수많은 악플을 받았다. 악플을 일일이 고소하는 게 지칠 정도로. 특히 내 주위, 내 소중한 사람까지 모욕할 때는 차라리 더 유명해져서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 서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들에게 해코지하지 못하는 사회도 만들어 보고싶다.

 

사회구조까지 바꿔나가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

나는 일을 벌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다. 일이 많으면 내가 통제하 지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내 손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 느는 게 싫다. 그리고 일에 매몰되는 것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더 워커홀릭이 된 데에는 다른 이 유가 있다. 한 여중생이 비만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SNS에서 조리돌림을 당해서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연을 보고 잠이 안 오더라. 그때 생각했다. 내가 이런 친구들의 자살을 막 을 수 있는 ‘난간’ 정도는 되어야겠다고. 나를 모른다면 어쩔 수 없 지만 나와 내 활동이 더 알려지면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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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진행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 온라인 투표 부분에 지원한 사진. 김지양은 세계 지원자 991명 중 8위를 차지했다.
➋현재까지 발행된 매거진.
➌캐러비언 플러스 사이즈 패션위크 관련 기사에 한국인 참가자로 소개됐다.
➍2012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LS 1426’ 런웨이에 선 모습.

 

 플러스 사이즈를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못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은 괜찮지만 할 수 있는 걸 안 하는 건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내가 시작하고 있으니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문제의식을 찾는 프로 불편러가 되길

 

자기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자존감도 관계가 깊을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self-regard, self-esteem, self-respect처럼 대부분 ‘self’라는 말이 붙는 다. 난 자존감이 정말 ‘셀프’, 즉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인지의 문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값의 자존감을 갖고 태어나지만 점차 외부 환경에 따라 자존감이 깎이면서 낮아지는 건 아닐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인격적으로 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지 못했던 경우가 많더라.

 

자존감이 높고 낮은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다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바깥에서 찾으면 될까?

자신의 낮아진 자존감을 대면하고, 나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서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첫걸음이다. 모든 병이 그렇듯 만병통치약은 없다. 누구의 강연을 듣거나 인터뷰를 읽는다 고 자존감이 갑자기 확 높아질 수는 없다. 그런데 자존감이 높은 사 람들을 보면 대부분 외부 요인에 크게 상처를 받지 않았거나, 오히려 외부에서 문제의식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 자존감을 깎은 외부 요인은 무엇이었는 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분명 자신의 외모나 행동, 사고방식 을 억압해가며 상처를 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요인은 부모가 될 수도,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이나 미디어 속 모습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을 탐색해보고 원인에 화내고, 따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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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 셀러브리티>의 2017년 봄호에 실린 화보.

 

당신도 그런 과정을 거쳤나?

물론이다. 나 역시 유치원 때 “많이 먹으면 미스코리아 못 된다”는 말을 들어가며 컸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을 사랑한다. 나름대로 외 부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 환경과 싸워 이긴 결과겠지. 나를 불편하 게 하는 것을 찾는 것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 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페미니즘에서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이 이렇게 연결되다니, 안 물어볼 수 없겠다. 여성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여자이면서 청소년인 여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 경험 을 조급해하지 말라는 거다. 어릴 때 부모나 사회로부터 충분한 사 랑을 받지 못하고, 주변 상황에 의해 자존감이 낮아지면 이성 교제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게 된다. 이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 에게 관계를 요구하면 떠밀려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자주지 않으 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의 욕망 에 집중하길 바란다. 내가 원할 때, 스스로 행동하고 표현하면 된다. 또 불합리한 상황, 이를테면 성폭행과 강간을 당해도 그 당시 자신 이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았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친 구들이 많은데 전혀 아니다. 본인이 싫었으면 그건 성폭행이고, 강 간이다. 이럴 때 피해자를 돕는 기관도 정말 많다. 어린 친구들이 성 관계로 트라우마를 갖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굉장히 다행인 건 불편한 것, 불합리한 것에 대해 의견을 표출하는 10대 친 구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10대의 김지양은 어떤 사람이었나?

초등학교 때는 뭐든지 앞서서 해보고 싶은 아이였다. 자연히 ‘잘난 척하는 애’, ‘나대는 애’로 찍혔고, 그래서인지 친구가 많지 않았다. 아, 18살 땐 우울증을 앓았다.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는데 어제까 지 풀었던 문제가 갑자기 안 풀리더라.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학 교를 3~4개월 가까이 못 갔다. 고3 때는 그냥 놀러만 다녔다. 조퇴 하고 싶으면 조퇴해서 놀러 다니고. 그 방황하는 시간 자체가 진짜 재밌었다. 그러면서 연애를 정말 많이 했다. 난 늘 외로웠고 내가 너무 궁금했다.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 탓에 나 를 알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문제는 그렇게 놀다 보니 대학 원서 쓸 때쯤에는 갈 대학이 없었다는 거지.(웃음)

 

그래도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나.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한 건 진로적성검사 결과지를 보면서 고민하 다 결정한 선택이었다. 요리를 전공하면 최소한 굶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요리 스킬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원래는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해서 백일장도 많이 참여했는데 다 떨어졌다. 실내 백일장 대회에서는 더위를 먹어서 아픈 적도 있었고. 잠깐 청소년상담사를 꿈꾼적도 있지만 ‘내가 청소년들을 좋은 길로 이끌어줄 수 있을까? 일단 나조차 학교를 잘 안 나가는데’라는 생각에 그만뒀다.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한 건 차선책이기는 했어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게 그때 배운 요리다. 요리하면서 만난 사람 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었고, 지금 나에게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삶에 재미를 더하는 것도 요리니까.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나 보다. 더 파고들고 싶은 분야는 어떤 것인가?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문제를 직접 풀 수 있는 스킬을 갖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게 멋지다. 물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수영을 좀 더 배워서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 지금 하는 일에 만족을 못하는 것 같지만.(웃음) 물론 지금 하는 일도 재밌기는 하다. 하지만 ‘enjoy’에 가까운 개념이다. 기왕이면 ‘fun’, 정말 깔깔 웃을 수 있는 ‘재미 요소’ 가 담긴 직업을 갖고 싶다.

 

참 많은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벌일 것 같다. 함께 진 로를 고민할 <MODU>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난 직업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부모님이 자녀의 결혼 전까지, 혹은 자녀의 전 생애를 관리하고 서포트하는 것 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다. 그래서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족 하지 않아 일찍 독립하게 되는 친구들이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 비해 손해를 본다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냥 애 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고 마음을 먹으면 편하다. 그리고 원하는 일 을 하고 싶다면 경제적 자립부터 생각해봐라.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면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 해도 결국은 빚으로 남는다고 생각 한다. 나는 내가 돈 벌어 악착같이 아껴가며 독립했다. 그래서 부모 님의 허락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의 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면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해보길 바란다. 물론 내가 아무리 뭐라고 얘기해도 직접 겪어보고, 그 시기를 지나야만 알게 될 거다. 섣불리 조언은 하 지 않겠다. 그냥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게 생기면 뭐든 해봐라. 그 일이 의미 있는 일이든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든, 뭐든 좋으니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