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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요즘 중국어 공부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통역사가 되고 싶은 꿈이 생긴 고예나 멘티. 외국어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니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통역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매력 있게 느끼고 통역사가 되기위해  외국어 공부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외고에 진학을 했다. 요즘엔 중국 드라마와 영화, 노래도 자주 접하고 중국 친구와 SNS로 소통하면서 어휘력을 키우는 중이다.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중국어통번역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국제회의 통역사가 되고 싶은데 어떤 준비와 자격이 필요한지 궁금해서 멘토를 만나고 싶다.

 

대학생 오주연 멘토가 알려주는 통번역학과

외국어 관련 활동을 활발히

 

Q.  목표가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하는 건데 이렇게 선배님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통번역학과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통역과 번역을 배우고 해외 문화와 국제관계, 미디어 관련 수업도 함께 이뤄져요. 한국어와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을 쌓는 거죠. 1~2학년 땐 언어 실력을 키우고, 통·번역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배우는 것에 집중해요. 말하기와 듣기, 쓰기 수업이 많아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처음엔 외국어를 어려워하던 친구들도 실력이 금방 늘더라고요. 교수님들이 학생 개개인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시스템도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 되고요.

Q. 수업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통·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들은 말을 기억하거나 적어서 다시 전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업에서도 듣고, 적고,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해요. 경제, 사회,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주제의 오디오를 1분 정도 들은 뒤, 그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중요한 키워드나 논리적인 흐름, 인과관계를 기호로 표시해 노트에 적죠. 말하는 모든 내용을 다 받아 적기가 힘들거든요. 필사를 하고 나면 번역이 잘못됐거나 어색한 표현, 빠진 내용이 있는지 교수님께 평가를 받아요. 역할을 나눠 외국어로 상황극을 하는 롤 플레이를 하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언어를 듣고 말하는 연습을 자주 할수록 표현력이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Q. 선배님만의 통역 공부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잘 쓴 외신 기사를 많이 찾아보기도 하고요. 특히 우리나라의 이슈를 BBC나 CNN 등의 해외 언론에서 어떻게 보도했는지 눈여겨봐요. 같은 사건을 두고 기자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서 다양한 표현법과 단어를 접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메모해놓죠. 하루에 적어도 2개 기사는 꼼꼼히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외국어를 우리말로 해석해서 전달하려면 한국어 표현력도 풍부해야 해서 국내 기사도 많이 보고요. 또 오디오 파일이나 해외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내용을 받아 적는 스크립트를 만들어보거나 들은 내용을 그대로 따라 읽는 연습을 하면서 메시지를 매끄럽게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어요.

Q.  통·번역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면 입시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주연─ 전공하고 싶은 언어가 있다면 그 언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 활동을 다양하게 하는 게 좋아요. 저는 영어를 좋아했는데, 독해는 수업 시간에 충분히 하니까 듣기 연습을 개인적으로 많이 했어요. 주요 뉴스 사이트에 있는 영어 학습 코너를 자주 들여다보거나 BBC 방송을 즐겨 봤죠. 영자 신문 동아리를 하면서 EBS 교과서 지문을 번역하기도 했고, 중국어 수행평가 때는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 한국어로 제작한 UCC를 만들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외국어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해보는 것도 추천해요. 저는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 봉사와 국제구호기구에서 번역하는 일도 해봤어요. 국내 기부자와 해외 수혜자가 주고받는 편지를 번역하고,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보낼 동화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해보니 기초 실력을 탄탄히 다지는 데 도움 되더라고요.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 실천을 입시 준비할 때 활용해보세요. 외국어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자기소개서에 잘 담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직업인 이주연 멘토가 알려주는 통역사

국제사회 교류에 기여하는 일

 

Q. 통역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요. 통역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나요?

 

통역사는 언어가 서로 달라서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만났을 때 서로 이해하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요. 통역이 필요한 행사와 장소, 참석자에 따라 통역 방법이 달라지는데요, 크게 동시통역, 순차통역, 수행통역으로 구분돼요. 동시통역은 국제회의나 세미나 등 큰 행사에서 여러 사람에게 연사의 말을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거예요. 통역 장비가 있는 부스 안에서 화자의 말을 듣는 동시에 다른 언어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통역이죠. 동시통역은 높은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해서 혼자 진행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2명의 통역사가 짝을 이뤄 통역을 진행합니다. 순차통역은 화자가 말한 내용을 기록한 후 말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통역하는 거예요. 동시통역보다는 통역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정상회담이나 재판같이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호하는 방법이죠. 수행통역은 특정 사람을 위해 통역하는 것으로, 통역이 필요한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의사소통을 돕는 거예요.

 

Q. 주로 어떤 경우에 통역사를 필요로 하나요?

다양한 경우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국제회의나 기업의 비즈니스 미팅, 국가 간 회담이 있을 때 통역사가 꼭 필요해요.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모인 공식적인 외교 행사에서는 대표자가 외국어를 잘해도 모국어를 사용하는 게 원칙이어서 통역사를 통해 소통하죠. 전문적인 지식을 교류하는 국제회의에서도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통역을 필요로 하고요. 이런 면에서 통역사는 단순히 화자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국가 간 소통에 기여하고, 국제사회 교류에 큰 축을 담당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통역사도 있나요?

이 멘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그 분야의 통역을 경험해본 통역사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특정 분야의 일을 계속 맡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의료나 의약 분야는 다양한 질병과 약, 화학물질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법률 분야도 증인을 신문하거나 중재하는 상황을 통역해야 해서 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죠. 특히 재판에서 이뤄지는 통역은 정확성을 위해 단어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되고, 다른 말로 표현하는 의역을 해서도 안 돼요. 이렇게 전문 분야를 통역하려면 많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해서 한 분야를 꾸준히 맡기도 하죠.

 

Q.  다양한 분야에서 통역을 하려면 여러 공부를 많이 해야겠네요. 보통 통역 일을 맡으면 어떤 준비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통역 일은 대부분 행사가 열리기 몇 주 전, 혹은 몇 달 전부터 미리 의뢰받는 편이에요. 그러면 통역해야 할 행사가 뭔지, 어떤 프로그램이 열리는지,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고 토론을 벌이는지 확인하고, 관련 분야의 책이나 논문, 행사 자료 등을 보며 공부해요. 전문용어를 정리하기도 하고요.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통역사가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어야 원활한 소통을 이끌 수 있어요. 공부한 만큼 통역 수준도 높아지고요. 행사 당일에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도착해서 통역할 장소, 통역 장비, 자료 등을 확인하며 통역에 필요한 준비를 합니다.

 

Q.  통역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통역사는 행사에 모인 사람들의 목적이 잘 달성될 수 있도록 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그런데 사람의 말버릇이나 뉘앙스, 악센트에 따라 말의 의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파악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게 어렵죠. 번역은 틀리면 나중 에 수정할 수 있지만, 통역은 현장에서 대화의 맥락을 빠르게 이해해야 해서 순발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행사에 참석하는 화자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말투와 억양이 어떤지 살펴보기도 하죠. 유명한 연사들은 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경우는 말할 때 특별한 습관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요.

 

Q. 통역사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어떤 곳들이 있을까요?

통역사의 고용 형태는 크게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해 그곳의 통역을 전담하는 인하우스(In-House)와 소속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로 구분돼요. 비율로 보면 인하우스 통역사가 훨씬 많은데, 수출입이나 해외 업무가 많은 회사, 외국인 직원을 보유한 곳, 해외 지사를 갖춘 회사, 해외 인력을 많이 채용하는 회사등에서 통역사를 채용하죠. 정부나 지자체의 각 부처에도 통역사가 있고요.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전달법을 고민할 것

 

Q.  통역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우리나라에서 통역사가 되  는 일반적인 방법은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는 거예요. 대학원 입학은 전공 상관없이 학사 학위가 있어야 하고, 입학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의 경우는 외국어와 한국어를 작문하는 필기시험과 한국어, 외국어로 통역해보는 구술시험을 진행해요. 국내 통번역대학원이 많지 않아서 경쟁률은 높은편이죠.

 

Q.  통역 공부를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게 외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말하는 능력도 키워야 하는 건데요. 두 언어를 모두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통역은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해서 복잡한 문장 구문과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아요. 문법에 맞으면서 쉽고 간결하게 말해야 하는데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죠. 그래서테드 같은 강연 영상을 자주 보면서 롤모델로 삼을 연사를 찾아보는 게 좋아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연사를 발굴해서 그들이 말하는 법을 따라 하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될 거예요. 누군가를 가르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돼요. 가르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인데, 그게 곧 통역이거든요. 외국어나 한국어로어떤 정보에 대해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연습을 해보세요.

 

Q.  통역사가 되려면 어떤 자질과 소양을 갖춰야 하는지도 궁금해요.

 

이 멘토─ 통역은 사람들과 말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통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요. 언어 공부하는데 욕심도 있어야 하고요. 두 언어를 빠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판
단력과 순발력도 필요하죠. 국제회의나 세미나처럼 행사가 긴 경우는 오랜 시간 통역을 해야 하는데, 딴생각을 하거나 쉴 틈이 없기 때문에 끈기 있게 집중하는 자세도 갖춰야 해요. 또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통역해야 해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하는 호기심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Q.  저처럼 통역사를 꿈꾸는 친구들이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청소년 때는 통역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힘드니 일단 언어 익히는 감각을 먼저 키우세요. 예나 학생이 좋아하는 중국어를 예로 들면, 중국 사람마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중국어로 내 감정과 느낌을 설명하는 연습도 해보고요. 중국 책이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면 여러 표현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친구들과 주제를 정해서 중국어로 된 자료를 조사하고, 중국어로 발표하는 훈련을 하면 말하는 실력도 늘어요. 짧고 간단한 문장부터 듣고,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외국어를 구사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될 거예요.

 

 

글 강서진 ●사진 권지영, 이주연

글 전정아 ● 사진 최성열, 정제희

어린 시절 환상을 좇아 꿈의 나라이란으로!

 

한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여자 이란어 통번역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의외로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그동안 인터뷰를 거절해왔다. ‘나를 왜 인터뷰하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읽는 사람,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의아했다. 무엇보다 딱히 나를 특이한 케이스라고 여긴 적도 없고. 그러다 모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진로 탐색을 주제로 한 강연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 강연을 한 뒤 내 후배들, 어린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연락을 받고서 생각이 달라졌다. 다들 외국과 외국어를 좋아하는 열정 넘치고 똑똑한 친구들인데 그 열정을 어디에 쏟을지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다 내 강연을 듣고 정해진 길, 그러니까 무역회사 입사나 외교관이 되는 것 이외의 진로가 보였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은 취지가 좋은 인터뷰나 대외 행사에는 조금씩 응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을 보고 중동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정제희는 중동 문화의 어떤 점에 마음을 뺏겼나?

아버지가 외항선을 타고 해외, 특히 중동을 자주 다니셨기 때문에 가져오는 기념품들이 남달랐다. 히잡부터 대추야자까지, 남들보다 중동 문화를 훨씬 빨리 접했다. 기념품 상자 뒷면의 아랍어를 보면서 막연하게 ‘중동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다. <알라딘>의 주인공인 ‘자스민 공주’도 중동에 대한 호감을 갖는 데에일조했다. 드레스를 입은 여느 디즈니 공주들과는 달리 자스민은 배꼽이 드러나는 상의에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다. 그 패션이 멋져 보였다.(웃음)

 

해외를 오가는 직업에 대한 선망은 어릴 때부터 가졌나?

다리 수술을 받은 경험이 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 4학년때 큰 수술을 치르고 치료와 요양을 목적으로 거의 1년을 꼬박 갇혀 지냈다. 학교도 못 가고 뛰어놀지도 못했다. 거기다 완치가 안 되는병이라 부모님의 걱정으로 인한 과잉보호까지. 나에게 좁은 병실, 좁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뿐이었다. 그때부터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것, 머나먼 해외에 대한 환상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중동 중에서도 이란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왜 이란어를 선택했나?

사람은 결국 자기 안에 있는 경험을 탐색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선택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터키어와 아랍어, 이란어사이에서 뭘 전공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깊이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나를 매혹시킨 <천일야화>의 배경인 페르시아·이란 지역이 가장 마음에 남더라. 우리나라에서 이란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한국외국어대학교밖에 없어서 한국외대 이란어학과를 선택했다.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했으니 정말 열심히 공부했겠다.

그렇지도 않았다. 막상 입학하니 나만큼 이란어 자체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랍어만 해도 수능시험 제2외국어 영역으로 있지 않나. 그런데 이란어는 나라의 위상 때문인지 특수어 중에서도 특수어다. 이란어학과 학생들은 미리부터 전과를 준비하거나 경영 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해 회사에 입사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마저 편입 생각이 들 만큼 침체된 학과 분위기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학점은 당연히 좋지 않았고, 많이 방황했다. 2년은 그냥 놀았다.(웃음)

 

그래도 10여 년 전이면 취업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졸업하는 해, 그러니까 2008, 2009년부터 취업난이 심해졌다. 그제야 마음이 조급해져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봤다. 학과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맨 뒷자리에서 강의를 듣던 학생이 교수님 바로 앞자리에서 공부하게 된 거다. 그리고 대기업 취업, 은행 입사, 아나운서 준비까지…. 이란어 전공자를 선발하는 해외 영업직에는 몇 군데나 지원했지만 전부 떨어졌다. 중동 지역 부서는 여성 지원자를 잘 뽑지않아서였다. 그래도 졸업 후 3개월간 직장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얼마 못 버티고 그만뒀다. 그리고 바로 이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고민하고 방황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나?

그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확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니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면 내 결정에 자꾸만 변명거리를 던져줬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아하는 것을 향해 내달렸다면 아주 지쳤을 테고. 무엇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7년 차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업계에서는 어린 나이에 속하는 편이다.

 

취업 시장에서 이란어 전공 여성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면 완전히 다른 분야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나, 그래도 여전히 이란이라는 나라가 좋은데.

 

그래서 실제로 가본 이란은 어땠나?

난 ‘진짜’ 이란어, ‘진짜’ 이란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란에 가보니 이란인들이 한국에서 배운 이란어와 너무 다른 말을 사용하는 거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언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언어의 기술을 익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난 언어의 기술을배우고 싶었고, 이란인 사이에 섞여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학연수를 마친 뒤 테헤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 과정까지 밟았다. 그렇게 이란에서 총 5년을 지냈다. 테헤란대에서는 국제관계학과를 전공했다. 우리나라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와 비슷한 학문이다. 원래는 ‘이슬람 여성학(Islamic Feminism, 이슬람 문화에서 발달된 남녀의차이에 기반을 둔 여성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외국인 학생은 받지 않더라.

 

독기와 오기를 나만의 무기로

 

탁월한 이란어 실력뿐만 아니라 이란의 문화 자체를 이해한 통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이란의 문화는 막연히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

틀렸다.(웃음) 이란은 지역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중간 지점이다. 쉽게 말하면 하드웨어는 백인, 아리아인의 모습인데 소프트웨어, 즉 사고방식은 동양인에 가깝다. 우리나라 1980~90년대 사회 분위기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보수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사회에 무슬림 문화가 조금 섞인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란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노인 공경이나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습 말이다. 그리고 매일 더울 것 같지만 우리 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다.

 

이슬람 국가여서 굉장히 보수적이고 성차별이 심할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편견이다. 이란 사람들은 참 다정하다. 물론 동양인에 대한 신기함과 궁금함에서 오는 지나친 관심과 무차별적인 폭언, 성차별도 겪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이슬람 국가는 남녀의 지위가 다른 나라다. 여성을 보호 대상,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니까.

 

5년간 이란에서 살면서 실생활 이란어를 익혔을 텐데, 언어를 배우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나?

대학 과정에서 읽기는 어느 정도 익혔기 때문에 말하기와 듣기 실력을 높이는 데 가장 힘썼다. 이란어는 문어와 구어가 다르다. 존댓말도 따로 있다. 그래서 매일 5시간 이상 이란 방송과 읽을거리를 챙겨 봤다. 방송은 드라마와 뉴스를 반반씩, 읽을거리는 시사 잡지부터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난 현지인의 억양까지 배우고 싶어서 이란인 가족 집에서 3년간 홈스테이를 했다. 할머니부터 내 또래 손자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학교와 편도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집이었지만, 전 연령층의 이란어를 들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기숙사 생활이나 자취, 가끔 만나는 현지인 친구로는 절대로 원어민만큼 언어를 습득할 수 없다. 실력이 늘수록 보이고 들리는 게 달라지니 신나더라.

 

이렇게 들으면 순탄하게 타지 생활을 한 것 같다. 어려운 순간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일단 대기오염도 심하고 교통이 몹시 불편해서 어딜가든 두 시간은 걸린다. 영화, 쇼핑, 술 등 스트레스를 풀 만한 ‘엔터테인먼트’도 없었다. 놀 거리가 없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도 깊어지고, 성격도 내향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공부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시간이 그저 즐겁고 재밌었지만 나중에는 만나는 사람들마저 비슷해서 자연히 우울해지더라. 게다가 이란 정부와 대학의 텃세도 심했고.

 

정부와 대학의 텃세라니?

오랫동안 비자를 못 받았다.(웃음) 대학에도 학생으로 등록은 돼 있는데 학생증 발급을 안 해줬다. 어떤 수업에서는 교수가 “넌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니 나가라”고도 했다. 그렇게 학교와 싸우고, 신분을 증명해줄 학생증이 없으니 경찰과도 싸우고, 비자가 없으니 공항에서 싸우고. 정말 다툼의 연속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푸대접을 받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진짜 힘들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결국 전부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짐을 싸기도 했다.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홈스테이했던 집의 이란인 가족들의 힘이 컸다. 이란 아빠, 이란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벌써 1년 넘게 이란 가족들을 못 봤지만 지금도 거의 매일 통화한다.

 

※ ‘이란아토즈’ 정제희 CEO의 인터뷰 전문은 <MODU> 9월 67호 지면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