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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법과 의학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

 

글 이수진 ● 사진 손홍주


법의학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법의학은 의학이지만 법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합니다. 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근무하지만 상당수는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하는 동시에 실제 업무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법원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법의학 중점 병원을 개원하기도 합니다.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법적인 관점(legal mind)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의학자에게는 법을 기준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즉, 의학적 혹은 과학적 사실이 법적으로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법이나 법의학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염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인권’과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의학자로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사건 하나는 모두 특정인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법의학자가 제공한 의학적·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정리되는 순간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면 가장 어려움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법의학은 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사회제도로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느 나라든 제도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도의 한계로 업무를 진행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정보를 얻지 못할 때 판단의 활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많이 안타깝습니다.

법의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자질이 궁금합니다.

의대에 입학한 뒤 병리학 전문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 후 좀 더 세부적인 전공으로 법의학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길입니다. 의대 입학을 위한 일반적인 자질 외에 사람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또 일반적인 의학 영역보다 법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 등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역량 계발을 위해 다양한 법적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회가 안정되고 변화가 많을수록 법의학이나 법과학에 대한 요구는 증가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고 앞으로 상당 기간 그러하리라 예상합니다. 다만 법의학자가 하는 일은 공적인 영역에서 발생하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보상이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아닌 사회적으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법의학자에 도전해보세요.


법의학이란?
법의 영역에서 필요한 의학적 사실을 연구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학문 분야를 말한다. 세부 전공에 따라 법의병리학, 법의유전학, 법의독물학 등으로 나뉜다. 이 외에 최근에는 의료법학이나 배상의학, 법치의학 등과 연결되고 있으며 나아가 법과학 등으로 확장되는 경향이다. 업무는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다. 법의병리학은 부검이나 검안 등을 통해 사망과 관련한 의학적 사실을 밝힌다. 법의유전학은 유전자의 다양한 특성을 이용해 범인 식별이나 과학수사에 기여한다. 법의독물학은 특정 약물의 사용 여부와 사용 분량을 판별하는 업무 등을 맡는다.

검시제도?
전 세계적으로 검시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검시관 혹은 법의관이 주체가 되어 검시하는 ‘전담 검시제’와 행정 책임자가 검시를 전담하는 ‘겸임 검시제’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겸임 검시제로 검사가 검시권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버 윤리의식”

사이버포렌식 전문가 김대형, 이정남 인터뷰

글 전정아 ● 사진 손홍주

두 분 모두 1990년대 말부터 이쪽 일을 시작하셨네요?

김대형(이하 김) ─ 1990년대 말 우리나라에 IT 붐이 일었어요. 자연스레 해커도 많아졌죠.(웃음) 이전에는 국가 관련 정보보호기관에서 일했답니다.

이정남(이하 이) ─ 저는 본격적으로 사이버수사를 시작한 게 1995년부터고요. 경찰청 해커수사대 수사반장까지 맡았죠. 해커가 많아지니 해커를 잡을 경찰들이 필요해졌거든요. 사실 해커와 보안 전문가는 윤리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기관을 설립해 내가 검거한 어린 해커 친구들을 모아 윤리 교육을 했어요.(웃음) 그 친구들이 지금 우리나라 최고의 보안 전문가로 일하고 있답니다.

사이버포렌식을 의뢰하는 대표적인 범죄군이 있나요?

─ 사이버포렌식은 모든 범죄, 모든 사건에 적용할 수 있어있어요. 그런데 특히 사기 사건이 많죠. 금융사기 사건은 피해를 당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뢰하는 일이 많아요. 또 이혼소송과 관련해 배우자의 내연 관계를 증명해달라는 가사 사건도 적지 않고요. 기업이 영업 비밀 유출을 의심하는 직원을 조사해달라는 경우도 꽤 된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 한 교수의 이혼소송 중 부인이 실종됐어요. 후에 부인은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시신이 큰 가방 속에 들어 있었죠. 누가 봐도 살인이잖아요. 경찰은 남편을 의심했어요. 그런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거예요. 결국 디지털포렌식으로 카카오톡 데이터를 복구하며 조사한 결과 이런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마음 굳게 먹어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범죄의 물증이 될 수 있는 말이었죠. 결국 경찰은 남편의 내연녀를 밝혀냈고, 남편은 살해 혐의를 인정한 사건이었죠.

이 ─ 이 외에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굵직하고 민감한 사건을 맡은 적이 많지만 쉽사리 말할 수가 없어요. 아직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우리의 한마디가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현재 과학수사 분야의 핫이슈가 궁금해요.

─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안티 포렌식’이라는 게 있어요. 포렌식 방식으로 검사해도 자료가 남지 않도록 지우는 건데, 이렇게 기록이 너무 깔끔할 때는 또 그 자체가 혐의의 근거가 돼요. 증거 인멸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사이버포렌식을 공부한다면 알아두는 게 좋겠죠?

마지막으로 사이버포렌식 전문가를 꿈꾸는 청소년이라면 어떤 활동을 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 경찰서에서 봉사활동이라도 해보기를 바랍니다. 실제 경찰관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자문도 구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는 거예요.

─ 프로그래밍 기술, 특히 코딩은 꼭 배워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파이썬, 스크래치는 고등학생도 충분히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논리력도 키우고 우리 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글 이수진 ● 사진 오계옥

일반 과학과 법과학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일반 과학과 크게 구별되지 않지만 법과학은 매우 종합적인 학문입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죠. 일반 과학처럼 분석적인 면도 있지만 거기에 해석을 포함합니다. 과학적으로 증거를 분석하고 주관적 평가의 해석을 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사관의 통찰이 개입됩니다. 이를테면 이 지문이 저 사람의 지문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왜 이 지문이 그 사람의 것인지 평가와 증명을 해야 합니다. 현장에 이 지문이 있었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접근해야죠. 또 그 행동이 범죄의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즉, 범죄와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하죠. 법과학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그러한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야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 사람의 행동이 범죄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증명해야 하니까요.

법과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나요?

법과학 개론, 지문, 혈흔 형태 분석, 법 사진 등을 담당합니다. 이 중에서 법 사진은 일반 사진보다 빛을 더 많이 다룹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빛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죠. 특수한 환경에서 뭔가를 찾아내 기록하는 일이므로 자외선, 적외선 등을 활용합니다.

교수님의 전공이 궁금합니다.

석사는 과학수사학, 박사는 범죄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사관들의 관점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범죄를 다루는 사람들, 즉 수사관이나 법과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을 잘 받아들이고 훈련해서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법과학자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저는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 근무를 15년 정도 했습니다. 그 후에 법과학을 연구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학부 때부터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것을 권합니다. 법과학은 물리, 화학, 생물 등의 기초과학 능력이 매우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또 기초과학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으면 응용과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기초과학을 철저히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을 추천합니다. 물론 과학에 대한 지식만큼 현장 경험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범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법과학자나 분석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크게 관찰력과 끈기를 꼽고 싶습니다. 법과학자는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사물을 관찰하여 증거나 단서를 끌어내는 사람입니다. 감각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이 필수죠. 예를 들어, 지문을 떠야 하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물건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건이 지나온 역사에 대해 많은 정보가 들어와야 합니다. 어디에 있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등 하나의 사물을 통해 역사를 추론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능력이 관찰력입니다. 과학적 사고도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논리는 관찰을 통해 만들어지고 새로운 것은 그 논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찰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관찰력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사물을 쉽게 보지 않고 현상의 원리를 궁금해한다거나 그 안에서 특별하거나 규칙적인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지 검토해보세요.(웃음) 다음으로 끈기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달려 분석하는 자질을 뜻합니다. 이 과정은 정성과 몰입 등의 부수적인 자질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건에서 하나의 지문이 발견됐습니다. 이와 대조할 수 있는 지문이 100명 정도 나온다면, 끈기 있게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미제 사건이 지문으로 해결되는 이유는 컴퓨터가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문의 식별이 더 빨라졌기때문에 사람들이 앉아서 지문을 더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렇듯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끈기 있게 결과를 분석하는 자질이 중요합니다.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건 속에서 지문을 통해 신원을 밝혀냈을 때 뿌듯합니다.

4차 산업사회라고 하는데, 과학수사나 법과학 분야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나요?

법과학 교육 분야를 예로 들면, 현재 가상현실을 사용한 과학수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드론을 활용해 사람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현장을 수색하고 기록하는 것도 4차 산업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 사건 등을 포함하는 범죄 현장은 여전히 일일이 손과 발, 눈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상이나 무선 등의 기술이 발달할지라도 범죄는 매우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 일부 분야에서 4차 산업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은 4차 산업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법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과열되어 있는 범죄에 되도록 늦게 노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과학을 꾸준히 공부해 과학적 사고가 몸에 배길 바랍니다. 법과학자는 증거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작은 목표라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해보길 추천합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버워치의 디바 성우 김현지

무대 인사나 게임 이벤트를 통해 성우들이 화면 밖에서도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성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이다. 애니메이션이 시작될 때 성우진이 주목을 받고, 신작 게임들은 스타 성우를 앞세워 홍보를 한다. 애니메이션 속 귀여운 캐릭터들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김현지 성우는 그중에서도 꼽히는 ‘스타 성우’다. 인기 게임 <오버워치>의 디바(D.Va)로도 친숙한 목소리다.

글 박성조 ●사진 손홍주

성우님을 검색하면 ‘현지냥’이라는 별명이 나와요. 어떤 뜻인가요?

애니메이션 <케이온!>에서 맡았던 아즈사 역에서 나온 거예요. 아즈사의 별명이 아즈냥인데 그 캐릭터가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우리말 목소리를 연기한 저도 현지냥으로 불렸죠. 거기에 제가 지바냥(요괴워치), 샴푸(란마1/2) 등 고양이 캐릭터를 많이 맡아 계속 그 별명이 따라다니게 됐어요. 아무래도 관심이 있어서 별명을 붙여주시는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요.

고양이를 비롯해 귀엽고 어린 캐릭터를 많이 해서 그런 연기는 좀 편할 것 같아요.
비슷한 역을 많이 맡긴 했지만 연기는 무엇이든 쉽지 않아요. 오히려 비슷한 걸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다른 캐릭터를 똑같은 연기와 똑같은 목소리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만큼 연구도 많이 하고, 또 연구한 걸 표현하기 위해 노력도 해야죠. 표현하는 사람이 같으니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구분을 지어서 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캐릭터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캐릭터를 골라서 할 만큼 섭외가 많이 들어오진 않아요.(웃음) 주시는 캐릭터를 그저 열심히 할 뿐입니다. 조금 사양하고 싶은 연기는 있어요. 농염한 성인 연기 같은 거요. ‘19금’ 호흡이 필요한 연기들 있잖아요. 그런 건 몇 번 거절했어요. 기존의 제 캐릭터와 이미지가 안 맞기도 하고, 그런 이미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농염한 연기는 저보다 잘하는 분들도 많고.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대본을 받았다가 캐스팅을 조정해달라고 부탁드린 적도 있어요.

‘성우 김현지’의 목소리 특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 스스로 ‘특색 있는 목소리입니다’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워요. 예전에는 저와 비슷한 목소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도 했는걸요. 제 생각엔 그냥 ‘높은 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정도? 예쁜데 촌스러운 목소리라고 할까요. 제 목소리라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뭔가 촌스럽다고 느꼈어요. 그러다 얼마 전에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이 ‘높은 톤인데 힘도 있고 전달도 잘되는 목소리’라며 ‘그 목소리를 가진 몇 안 되는 여자 성우인데 목 관리 좀 잘해’라고 말씀해주시는 걸 듣고 깜짝 놀랐죠. 저는 그냥 촌스러움을 캐릭터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제 소리가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렇게 생각하기 전에는 예쁜 목소리를 가진 성우 선후배가 워낙 많으니까 제가 얼마나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을지 항상 두렵고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걱정을 하기엔 인기 캐릭터가 많았는데요.

그래서 더 감사했어요. 제 소리가 부족한데도 많은 작품에 캐스팅해주시고, 영광스럽게도 몇몇 작품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캐릭터들도 있었으니까. 사실 유난히 이런 얘기를 잘 못해요. 스스럼 없이 장점을 말하는 자신감이 있으면 연기에도 도움이 될 텐데, 솔직히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워요. 알리고 싶은 게 있어도 거기에 제 자랑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말이 잘 안 나와요. 다른 사람 칭찬은 잘하고 표현도 많이 하는 편인데 유독 저에 대해선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마이크 앞에서 연기할 땐 자신 있게 하시잖아요.

말로 못할 뿐이지 저도 마이크 앞에선 자신감이 넘치죠. 마이크 앞에서 말을 하는 직업인걸요. 거기선 기가 죽으면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연기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을 많이 해왔지만 요즘은 게임 속 목소리로도 이름이 많이 나와요. 애니메이션 녹음과 게임 녹음의 차이가 있나요?

많이 달라요. 애니메이션은 영상과 대본을 미리 받아서 입도 맞추고 충분히 연구를 할 수 있죠. 전체 대본을 보면서 캐릭터의 성격이나 특징을 구상해서 목소리를 만들어갈 수 있고요. 물론 녹음할 때 PD님이 총괄을 하지만 성우도 미리 준비를 해서 가요. 반면 게임은 스토리 전체를 알고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어요. 업데이트를 하면서 상황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몇 마디 말만 가지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소리를 만들어가야 하죠. 게다가 그 업데이트 기간이 길잖아요. 6개월에서 1년씩 걸리는데, 그러면 전에 제가 어떤 목소리로 표현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많아요. 그럴 땐 ‘전에 제가 했던 거 들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요청하죠.

게임 녹음에는 순발력이 필요하겠네요.

우리말이 정말 어렵잖아요. 같은 말을 해도 상황에 따라 뜻이 굉장히 달라지기도 하고, 작은 느낌에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게임을 처음 녹음하러 가면 캐릭터 얼굴조차 없을 때도 있어요. 그러면 동작만 보고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거죠.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상황을 연결해서 떠올리며 하는 거예요. 반면 애니메이션은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 반복해서 연습하고 가면 현장에서 나오는 주문을 바로 적용하기 어려울때가 있어요.

요즘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행사에서 성우가 무대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어요. 직접 팬들을 만나는 자리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편이에요. 제가 나가서 뭘 보여드릴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해요. 스태프들이 열심히 준비한 자리이고, 팬들도 어렵게 시간을 내서 모인 자리이니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모인 분들이 만끽하셔야 할 텐데 그렇게 만들 자신이 없는 거죠.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도 떨리고. 그러다 보니 엉뚱한 소리도 많이하고 주절주절 말도 길어져요. 조금 더 편하게 웃고, 에너지를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아쉬워요.

그런 무대에선 주로 어떤 말씀을 하나요?

무대 인사를 하거나 인터뷰를 한 게 별로 오래되지 않았어요. 전에는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 콘셉트였고요. 저는 SNS도 아무것도 안하거든요. 캐릭터를 좋아해주시는 팬들의 판타지를 깨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저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어요. 특히나 제가 어리고 귀여운 캐릭터를 많이 하잖아요. 서로를 지켜주자는 생각으로 조용히 다녔는데, SNS나 공개적인 소통을 안 하니까 사람들의 사랑에 감사를 표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SNS를 한다면 ‘감사해요’ 라고 한마디 쓰면 되는데 그 말을 할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무대 인사나 인터뷰 자리가 있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요.

요즘은 성우를 내세우는 이벤트가 많아져서 연예인 같은 느낌도 들어요. 성우로서 이러한 트렌드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성우라는 직업도 알릴 수 있고, 본인 개개인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되고요. 그렇게 해서 성우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면 더욱 좋겠죠. 지금은 성우의 영역이 많이 좁아졌어요. 예전에는 영화나 외국 드라마도 더빙이 많았는데 지금은 원어로 보시는 걸 선호하잖아요. 내레이션이나 광고 목소리도 성우가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배우나 아나운서들도 목소리로 참여를 많이 하고 있고, 연예인들도 내레이션을 자연스럽게 잘하시고요. 이런 상황에서 성우를 앞세운 이벤트를 통해 성우의 활동 분야가 넓어질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죠.

※ 김현지 성우 인터뷰 전문은 11월 69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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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수진 ●사진 손홍주 ●헤어&메이크업 이국화

촬영해보니까 어때?

스튜디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유쾌해서 촬영 내내 행복했어. 다만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라 긴장했는지 다양한 포즈를 잡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 그래도 잘 웃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사진작가님 덕분에 잘 마친 것 같아. 모델
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하고 멋있어 보이더라. 30분 촬영한 것처럼 시간이 금방 지나갔어. 그만큼 즐겁고 좋았나봐.

이전에는 어떤 촬영 해봤어?

사실 내 꿈이 모델이거든. 작년에 모델 학원 다닐 때 프로필 촬영을 해봤어. 그때 워킹과 연기를 배우며 기본기를 다졌지.

기억난다. MODU 모델 지원서에 프로파일러와 모델이 꿈이라고 적었더라.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 너머의 의도에 관심이 많아. 그래서 프로파일러도 하고 싶었어. 근데 지금은 모델로 진로를 결정했어.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야. 중학교 진로체험 시
간 때 모델학과 형, 누나들을 만난 뒤 더욱 구체적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럼 대학 입시도 모델학과를 준비 중이야?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모델 학원에 등록했어. 그때 오디션도 보고, 작년에 1년 정도 소속사 생활도 했어. 어느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패션쇼로 무대 경험도 쌓았고. 런웨이에서 워킹할 때 사람들이 집중해주는 게 너무 즐거워. 현
재는 모델학과나 모델연기과에 진학하려고 실기 연습에 매진하고 있어.

닮고 싶은 롤 모델 있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동 중인 박형섭 형을 닮고 싶어.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봤는데, 누가 봐도 모델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존재감이 강렬했어. 모델은 자기만의 개성이 중요한데, 이분은 어떤 옷을 입어도 본
인만의 오라가 확실해서 닮고 싶어.

 

영민이의 올겨울 최대 관심사가 궁금해.

아무래도 고3이다 보니 수능이 최대 관심사야. 곧 스무 살이 된다는 것도 너무 기대되고. 사실 수능을 보면 이제 스무 살, 성인이잖아. 여전히 실감이 안 나. 또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만났던 친구들과 만나기 어려워지니까
아쉽기도 하고. 그래도 모두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친구들아, 애정한다!(웃음)

 

    글 김현홍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코스트코는 전자제품, 식료품, 생활용품 등의 제품을 판매하는 창고형 대형 할인점이다. 쿠키, 치즈케이크, 연어 등 푸짐한 양은 물론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대형 할인 마트들이 줄줄이 폐점하는 동안에도 코스트코만은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코스트코 양재점은 전 세계 매장 중 매출 1위(2012년도)를 차지할 정도였다. 세계적으로 유통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코스트코의 매출은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최소한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하고자 했던 짐 시네갈의 경영 철학이 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곳에서 29년간 일하다

 

짐 시네갈은 193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혼자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시네갈을 보육원에 보냈다. 그래서 그는 11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이후에는 어머니와 살았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려워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던 짐 시네갈은 친구의 부탁으로 우연히 미국 최초의 창고형 마트인 ‘페드 마트’에서 매트리스 하역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짐 시네갈은 처음으로 대형 할인매장 일을 접하고,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페드 마트에 정식 입사한다. 이를 시작으로 25년간 페드 마트의 CEO였던 솔 프라이스의 밑에서 일하며 수석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다. 하지만 페드 마트의 사업주가 바뀌고 멘토 같은 존재였던 솔 프라이스가 회사를 떠나자, 짐 시네갈도 퇴사를 결심한다. 그리고 솔 프라이스가 새롭게 설립한 ‘프라이스 클럽’으로 직장을 옮긴다. 하지만 짐 시네갈은 언젠가 독립된 회사를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29년간 함께 일한 솔 프라이스를 떠났고, 그의 나이 49세에 창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살려 대형 유통 할인매장 코스트코를 창립한다.

최저 가격, 최대 만족의 원칙을 고수하다

 

짐 시네갈은 ‘가치를 창출하고 직원과 고객을 섬김으로써 주주들에게 보답하라’고 했던 솔 프라이스의 영향을 받아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최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코스트코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영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마진율 15% 규칙’이다. 이 규칙으로 고객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최저가에 제공하고, 기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보통 유통업계가 20~30%, 백화점이 50%까지 마진을 내는 것에 비해 그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대신 코스트코는 저렴한 제품을 ‘많이’ 파는 것으로 승부를 봤다. 일례로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는 짐 시네갈의 끈질 긴 설득 끝에 코스트코에서만큼은 싼 가격에 다량의 제품을 판매할 정도다. 꾸준히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저렴한 가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품의 품질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서 짐 시네갈은 소수의 엄선된 제품만 판매하는 전략을 폈다. 실제로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품목은 4000여 가지로, 경쟁사인 월마트가 10만 가지 넘는 품목을 판매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품목만 취급한다. 이로써 물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관리 비용을 줄여 제품 가격을 더욱 절감시키는 효과를 냈고, 이는 곧 코스트코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 됐다.
 

 

코스트코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하지만 짐 시네갈이 코스트코를 경영하는 방식은 이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기업은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고민하지만, 짐 시네갈은 이윤을 많이 내면 낼수록 더욱 저렴한 가격을 만들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경영 방식은 ‘마진율 15% 규칙’을 만들어냈고, 2008년 금융 위기 때에도 제품 공급업체를 설득해가며 이 비율을 지켜 고객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게 했다. 이런 노력으로 코스트코는 창업한지 30년이 되기도 전에 매출액 148조 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할인매장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코스트코는 740여 개의 매장에 9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90%는 매년 재가입할 정도로 높은 만족도를 자랑한다. 현재 짐 시네갈은 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코스트코는 창업 당시의 규칙을 지키며 꾸준히 성장하는대형 할인매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 전정아 ●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 협조 MODU 서포터즈

종전 선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통일도 멀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전국 각지 14세부터 19세까지, MODU 독자에게 생생한 통일 찬반 의견을 들어보았다.

  • 분단된 상태더라도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두 나라를 합쳐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박규리)
  • 통일에 찬성하지만 내가 돈을 버는 동안에는 이뤄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도 있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우리나라가 많은 지원을 해야 하니까. (김도연)
  • 통일을 하기에는 많이 건너버린 강…. 현실적으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봐. 이제는 남한과 북한이 다른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박시연)
  • 여행과 철도를 좋아하는 나에게 통일은 더 멀리, 더 간편하게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기회를 줄 거야. (박태정)

 

#인도주의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찬성 입장이다. 한민족이라면 한 나라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와 함께 이산가족이 더는 분단의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북한 사람들의 자유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친구도 나왔다.
#미래의_경제_발전 북한의 우수한 군사력을 이용할 수 있고, 남한은 현재 국방비에 드는 막대한 예산을 다른 곳에 분배할 수 있다. 또 북한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면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더_쉬운_여행 여행을 즐기는 ‘욜로(YOLO)족’이 꼽은 이유다. 유라시아 철도를 타면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횡단할 수 있어서 유럽 여행이 간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안 하이웨이가 연결되면 자동차를 타고도 중국, 홍콩 등 여러 나라를 갈 수 있다.

 

#막대한_원조 낙후된 북한의 경제 상황을 살리기 위해 남한이 지불해야 할 천문학적인 기회비용을 걱정하는 의견이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 비용은 결국 남한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도 이로 인한 남한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조차 불투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단물_빠진_북한 북한은 핵실험을 위한 비용을 얻기 위해 이미 백두산의 절반, 광산 채굴권과 조업권을 중국, 대만 등 여러 나라에 판 상태다. 따라서 북한과 통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황폐한 영토와 굶주린 주민들뿐이라는 것이 반대 의견에서 엿보였다.
#심리적_거리감 자본국가와 공산국가에서 오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는 물론 언어와 문화, 화폐가치 등 너무 달라진 남북의 사회문화적 차이점에서 오는 거리감은 금세 메우기 힘들 것이다.

 

#블루오션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남한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발전 가능성이 많은 북한에서 돈을 벌겠다는 당찬 친구가 눈에 띄었다.
#앞길_걱정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치열하게 산다. 이런 독한 사람들과 경쟁할 때 유약한 자신이 버티고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의견도 있었다.
#징병제_폐지 통일로 징병제가 폐지된다면 좋아하는 아이돌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찬성이라는 열혈 팬도 출현!

 

  • 차근차근 준비해 모든 측면에서 합의점을 만들려면 통일은 아직 시기상조. 45년 떨어져 산 독일이 통일되고 혼란을 빚은 걸 생각해봐. 70년이 넘은 한반도라면 더하지 않을까? (이재민)
  •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나는 통일 적극 찬성! (이현준)
  • 통일이야말로 일장일단. 나도 내 입장을 정확히 모르겠어. (이윤서)
  • 통일하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면 옳다고 볼 수 없어. 꾸준한 원조를 통해 북한을 발전시킨 뒤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게 좋을 거야. (박민하)

[글로벌 롤모델] 따뜻한 독설가, 열정을 말하다

스타 셰프 고든 램지

 글 박성조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고든 램지,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타 요리사이자 레스토랑 경영인. 그러나 인터넷 인물사전의 분류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대중에게 고든 램지는 ‘열정’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스타 셰프이자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외식사업을 이끄는 탁월한 경영자. 다른 한편으로는 TV 프로그램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식당 주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반대로 기가 죽은 요리사 지망생에게는 따뜻하게 격려를 건네는 방송인. 10대 시절 무릎 부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이 남자는 음식을 매개로 소통하며 많은 이들에게 ‘열정의 맛’을 전해왔다.

 

배울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감수하는 열정가

 

고든 램지는 1987년 노스옥슨 기술대학에서 호텔 경영을 전공한 뒤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화려한 레스토랑 경영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주방의 가장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하루 17시간을 일해야 했다. 그렇게 주방 일을 하며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와 알베르루 등 유명 셰프들에게 기본기부터 배워나갔다. 런던에서 일을 하던 고든 램지는 ‘요리의 고향’에서 더 배우겠다는 목표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 하고, 프랑스에 아무 연고도 없는 상태였지만 배움에 대한 집착이 그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급여나 근무 여건 등은 고든 램지의 ‘배움의 여정’에 고려되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 당시를 돌아보며 “월급 인상을 요구하는 일은 꾀병을 부리며 하루 병가를 내달라고 전화하는 것만큼이나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고 쓰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영국 런던으로 돌아온 고든 램지는 영국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 피에르 코프만의 주방에서 일하며 더욱 성장한다. 이후 1993년에 그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지는 수석 셰프 자리를 제안받는다.

마침내 자신이 이끄는 주방 팀을 가지게 됐지만, 고든 램지가 마주한 현실은 ‘인기 없는 낡은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나 고든 램지는 ‘오베르진’이라는 이름의 이 레스토랑을 살려낸다. 훌륭하고 현대적인 유럽식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맛으로도 인정받으며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그 중심에 있던 수석 셰프 고든 램지가 유명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베르진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고든 램지라는 이름을 알린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레스토랑에서 훗날 자신의 글로벌 브랜드를 함께 세워갈 동료들을 얻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하루 17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며 일을 배워왔다는 수석 셰프의 경험에 주방 직원들은 유대감을 느꼈고, 이후 고든 램지가 자신의 비즈니스를 꾸릴 때 기꺼이 손을 잡는 관계로 남았다. 그의 열정이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다.

 

영국에서 세계로, 레스토랑에서 미디어로

 

글로벌 롤모델 _ 1

 

1998년 고든 램지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옛 스승인 피에르 코프만이 자신의 레스토랑을 옮기면서 매우 싼 가격에 그 자리에 가게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스승의 배려로 고든 램지 앳 호스피털 로드’가 시작됐고, 레스토랑은 이내 명소로 떠올랐다. 장인어른이 비즈니스를 이끌어주는 사이 셰프인 고든 램지는 음식과 레스토랑 관리에 집중해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다. 이후 그는 영국 곳곳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갔고 2001년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베르’를 열면서 해외로 진출했다. 2006년엔 미국 지점 ‘고든 램지 앳 런던’을 세우면서 뉴욕에도 깃발을 꽂았다.

고든 램지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셰프이자 외식 사업가로 성공한 이 시기 즈음이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가던 2004년 이후 <헬스 키친>, <키친 나이트메어>, <마스터 셰프> 등에 출연하며 외식업계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향력 있는 스타 셰프로 떠올랐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주방 경험과 훌륭한 셰프들에게 배운 탄탄한 기본기가 방송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방송에서 그는 어릴 때 좋지 못했던 가정환경을 비롯해 자신의 지난날을 종종 언급하기도 한다. 축구선수로서의 좌절, 고된 주방 생활, 무작정 요리를 배우기 위해 감행한 프랑스 생활 등이다. 고든 램지의 거침없는 욕설이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이해되는 것은 이와 같은 삶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Stop doubting yourself. Be bold(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 담대해지세요.).”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에서 시각장애인 도전자에게 따뜻하게 건넸던 말이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 곧 그가 삶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그 모습 때문에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 독설가 요리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