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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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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서진●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참고 자료 워크넷(www.work.go.kr)

 

미래 직업 찾기를 돕는 나침반

미래학자들은 사람들의 일자리와 직업에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고 전망하고 있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지금 존재하는 직업이 미래에는 사라질 수 있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 진로를 찾으려면 다양한 직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겠지?
올해 초, 한 교복 업체에서 청소년 직업관에 대해 조사했는데 대다수의 학생이 연예계나 의료계, 공무원 관련 직업을 선호한다고 답했대. 또 직업에 대한 교육과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청소년들이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잘 모르며, 제대로 된 진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처럼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중학교 때 진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 자유학기제가 2016년부터 시행됐어. 청소년들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하고, 보다 체계적인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진로체험코디네이터라는 직업도 주목받게 됐지.

 

진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총책임자

진로체험코디네이터는 진로 교육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진행 과정을 관리하는 일을 해. 진로 체험 교육이 이뤄지려면 체험을 진행할 직업 현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직업
인이나 기업체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해. 또 학생들이 직업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도 하지. 이렇게 진로 교육 프로그램들을 구축하고 나면 학교나 기관 등 진로 체험을 요청한 의뢰자와 교육 내용, 일정을 논의해. 교육을 받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심 있는 직업에 대해 조사하기도 하고. 의뢰자가 원하는 교육을 파악하면 요구 사항에 적합한 직업 현장을 선별해 진로 체험 교육을 진행하는 거야. 이뿐만 아니라,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상담해서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주거나 해당 직업인과 만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연결해주기도 하지. 진로 교육을 진행하는 현장에서 체험 프로그램과 직업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경우도 있어. 이처럼
진로체험코디네이터는 진로 교육이 이뤄지는 전체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인 거야.

 

 

지자체 전문 센터에서 주로 활동해

자유학기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각 지역의 교육청과 자치단체에서는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진로체험코디네이터가 주로 일하는 곳도 지역의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야. 현재 서울시는 25개 모든 자치구
에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를 설치했는데, 정부가 전국에 센터를 더 개설할 계획이어서 진로체험코디네이터가 일할 곳도 더욱 많아질 거야. 이 밖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직업체험관이나 한국잡월드, 키자니아와 같은 직업 체험
기관에서도 일할 수 있어. 또 기업의 사회공헌팀이나 인사팀, 교육팀 등에서 일하면서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고. 진로체험코디네이터의 소득과 근로조건은 정규직, 계약직 등 고용 상태나 직급, 경력, 수행 업무에
따라 저마다 달라.

 

 

세상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

진로체험코디네이터는 학교와 청소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진로 교육을 진행하는 관계자들과도 의견을 조율해야 해.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 청소년의 진로 고민을 이해할
수도 있어야 하고. 경제나 과학기술 등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 유망 직업들도 달라지기 때문에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기르는 게 좋아. 다양한 직업에 관심을 갖는 호기심도 있어야겠지? 진로 교육이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게 프로그램과 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꼼꼼함도 갖췄다면 진로체험코디네이터가 되기에 충분해. 또 진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어야 하지.

 

 

청소년과 직업의 특징을 이해하는 공부 해야

진로체험코디네이터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 있는 건 아니야. 다만 다양한 직업에 대해 알아야하고, 직업 체험을 진행할 기업체를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생활 경험이 많을수록 유리해. 또 청소년에게 진로를 가르치는 일을 하니까 교육학, 청소년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사회학 등 청소년과 사회 환경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을 전공하는 게 도움이 돼. 여러 산업 분야와 기업체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도 좋아. 직업상담사, 청소년상담사등 진로 상담과 관련된 자격증을 갖추면 진로체험코디네이터로 일하는 데 좀 더 수월할 거야.

 

 

진로 교육 확대로 활동 분야 넓어져

자유학기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진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서 직업 체험 활동을 진행하는 학교와 기관이 늘고 있어. 또 자치단체마다 진로 교육 제도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진로체험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더욱 커질 전망이야. 기업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직업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여서 진로체험코디네이터 업무를 전담할 인재를 필요로 하기도 해. 이렇게 진로 교육이 점차 확대되면 진로체험코디네이터가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넓어지고 활동도 활발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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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디스하지 않고
리스펙하는 법
힙합 래퍼 아웃사이더

글 강서진 ● 사진 안지섭, 아웃사이더

음악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

 

<MODU> 독자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

힙합하는 래퍼다. 아마 10대들은 나를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데뷔한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지금은 예전만큼 가수 활동을 활발히 하는 편이 아니니까. 그래도 방송에 한창 출연할 때는 음반 순위 1, 2위를 제법 해서 20~30대들에겐 꽤 유명하다.(웃음)

요즘엔 어떻게 지내나?

누군가를 계속 키우는 삶을 살고 있다.(웃음) 세 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고, 동물을 워낙 좋아해 강아지부터 도마뱀까지 다양하게 키운다. 또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돕고 있다. 그래서 많이 바쁘다.(웃음) 얼마 전에는 <3.14>라는 새 앨범을 발매했다.

곡명을 ‘3.14’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곡 발매일이 3월 14일이어서.(웃음) 물론 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고, 원의 둘레인 원주율을 뜻한다. 원래 원주율은 3.14159… 이런 식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소수이지 않나. 이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 값이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닌데,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이 정답인 거 같고 그에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하니 힘들어지는 거 같다. 학생 때는 시험 점수를 잘 받아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취업 후엔 결혼을,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마치 삶의 표본처럼 돼가고 있는 거 같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창 호기심도 많고 생각도 많은 시기에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정해진 교육제도에 맞춰 지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시험 성적에 압박받고 상처받는 청소년들에게 원주율처럼 무한대의 답이 미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3.14’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곡처럼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 많다. 가수로 오래 활동해온 만큼 발매한 곡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애착이 큰 노래가 있다면 무엇인가?

2010년에 발매한 ‘주변인’이란 곡을 좋아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내 모습을 가사로 써냈기 때문에 나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가수로서 과도기를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 ‘외톨이’란 노래로 갑자기 큰 관심을 받으니 혼란스럽더라. 데뷔 전보다 상황은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주류와 비주류의 애매한 경계선에서 떠도는 혼란스러움을 ‘주변인’이란 곡으로 표출한 건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주변인처럼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이 노래에 끌린다.

아웃사이더의 노래들 중에는 유독 외로움을 주제로 한 곡이 많다.

맞다. ‘외톨이’, ‘주변인’, ‘피에로의 눈물’, ‘심장병’, ‘슬피 우는 새’… 노래 제목들도 슬프고 어두운 편이다. 스스로 꽤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사는 꼭 슬픈 내용으로만 쓰게 되더라. 돌이켜보니 언제나 외로웠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일부러 더 밝아 보이려고 애썼던 거다. 연기하며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음악에서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막 하소연하고 싶지 않나. 그래서 가사에 슬픈 감정을 다 끄집어내 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거 같다. 또 누군가는 내 노래를 들으며 공감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을 거라 생각한다.

음악으로 외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가명을 ‘아웃사이더’로 지은 것인가?

그런 건 아니다. ‘아웃사이더’는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소수자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다수가 바라는 대로 맞춰 살다 보면 그 기대에 휘둘려서 결국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서 남들과 다른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랩을 빨리 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됐다. 1초에 17음절을 구사하는 가장 빠른 랩을 하는 가수, 일명 ‘속사포랩’으로 주목받았다.

발음이 빠르면서도 정확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데, 타고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원래는 발음이 좋지 않아서 어렸을 때 별명이 ‘시옷’이었다. 시옷 발음을 잘 못해서다.(웃음) 발음을 정확히 하게 된 건 읽는 연습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글자들을 무조건 읽었다. 버스, 지하철 노선이나 메뉴판 같은 것은 물론이고 책이라면 장르 가리지 않고 소리 내어 읽었다. 점점 빠르게…. 가사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고 싶어서 발음 연습을 한 것이다. 보통 한 곡을 만들면 3~4분 정도 되는데, 그 시간 안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래서 랩을 더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명확한 발음으로. 평소에도 말이 빠른 편인데 전달력은 좋다는 평을 듣는다. 이제는 아나운서 지망생이나 발음 교정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도 한다.(웃음)

빠른 랩을 듣다 보면 가사가 궁금해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선입견일 수 있지만 힙합에는 욕설이나 선정적인 가사 등 거친 표현이 많은 편인데, 아웃사이더의 가사는 굉장히 서정적으로 느껴졌다. 랩은 자기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창구라서 창작자의 표현 방식에 따라 세고 공격적인 가사를 쓰는 것뿐이다. 요즘 래퍼들이 서로를 헐뜯는 ‘디스전’이 유행하기도 하는데, 나는 비난하거나 싸우는 걸 싫어해서 가사에도 그런 내용은 잘 담지 않는다. 음악으로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다. 내 가사는 문학성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래퍼들이 문법을 지키지 않고 가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난 그게 싫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맞다고 합리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기승전결이 있고 어휘 선택이 뛰어난, 한 편의 문학과 같은 가사를 쓰려고 노력한다.

원래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나?

어렸을 때는 문학작품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작가가 되고 싶어서 언론학과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1999 대한민국> 이라는 국내 최초의 힙합 앨범을 접하고 랩의 매력에 빠졌다. 사회에 대한 견해를 과감하게 밝힌 랩을 들으며, 랩이야말로 내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 래퍼가 됐다.

 최근 10대 래퍼들이 실력을 겨룬 <고등래퍼>라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어떻게 봤나?

10대의 젊은 에너지와 응어리진 감정들을 랩으로 표현해내는 데 감동받았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들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수준이 상당히 높고, 랩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었고. 더 많은 청소년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웃사이더는 청소년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있다. 아이들과 함께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남긴다.

쪽팔리면 어때! 좋으면 일단 해보는 거지

 

아웃사이더 SNS를 보니 중·고등학생들과 찍은 단체 사진이 많더라. 이번에 발매한 노래도 청소년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10대들에게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맞다. 나도 청소년 때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도 하고, 방황하는 시기를 겪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겪어보니 인생 선배로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 그래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토크 콘서트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12년부터 토크 콘서트를 시작했으니 벌써 7년째다. 지금은 1년에 200회 정도 강연을 한다.

가수 활동보다 강연으로 더 바쁘겠다. 토크 콘서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가수 활동을 하려는데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줘야 할지 모르겠더라. 힙합은 아무래도 젊은 세대에게 통하는 음악이니까 그 세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공연 무대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더 찾아다녔다. 우연한 기회에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됐는데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겠단 생각에 음악 활동을하는 틈틈이 강연을 나갔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내SNS에 학생들의 사연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고민이 담긴 사연들을 읽고 나니 돕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연을 선별해 학생들을 찾아갔다. 이런 활동이 계속되니까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고 학교를 넘어서 지역 기관, 기업, 재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학교를 찾아가는 일이 먼저다.

꽤 오랫동안 강연을 해오고 있는데, 힘들 때도 있지 않나.

왜 없겠나. 특히 청소년 강연이 다른 강연에 비해 에너지가 좀 더 많이 든다. 성인들은 대부분 강연에 잘 집중하는데, 청소년들은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자기가 관심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중2병’이란 말이 있듯이 청소년 시기는 반항심이 생길 때고 통제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내 말에 집중하라고 강요하면 반발심만 생긴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100명 중에 단 2명이라도 내 말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어디서든 관중이 신나도록 이 끌어야 하는 공연자의 사명감 같은 게 뼛속 깊이 있나 보다.(웃음)그래서 아이들이 강연에 재미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래서 <아파쇼>라는 토크 콘서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아파쇼>?

‘아픔을 겉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자’는 의미로, 나와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서로에게 터놓고 얘기하자는 뜻으로 <아파쇼>라고 이름 붙였다. 토크쇼에 음악 공연을 곁들여 진행하는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강연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한 사람의 말을 일반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적인 강연이 아니라, 강연자와 청중이 함께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 거다. <아파쇼> 반응이 꽤 좋아서 지금은 정기 강연도 하고 있다. 서울랜드에는 아웃사이더 정규 강연 프로그램도 생겨 거의 매일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데, 소풍이 많은 시즌에는 단체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더 바쁘다.(웃음) 아이들과 함께한 순간을 남기고 싶어 매번 기념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내 강연을 들은 아이들이 SNS에 댓글을 남기는데, 그 몇 줄의 글이 어떤 팬레터보다도 소중하고 감동적이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등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홍보대사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아웃사이더 프로필을 보니 만화나 동물 관련 홍보 활동도 하던데,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서 하는 일이다. 가수 활동 외에도 여러일을 하니까 바쁘긴 한데,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너무행복하다. 본업인 가수 일에만 매달려 살았다면 성과가 좋지 않았을 때 상실감이 더 컸을 거 같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다른 일에서 보람을 느끼면 그게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하나의 직업을 정하려고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여러 개 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직업이 있는데, 그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다양한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하다가 싫증나면 관두면 되고 그중에 가장 재밌고 잘하는 것을 선택해가면 된다. 이런 과정이 자기 일을 찾는 밑거름이될 것이다. 나는 가수를 직업으로 택했지만, 지금은 강연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이 분야에서 인정도 받고 있다. 이렇게 여러 일을 하며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다양한 홍보대사활동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말을 해주나?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고 한다. 너무 뻔한 얘긴가?(웃음) 다시 말하면 내가 남보다 부족하거나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한다. 내가 남들과 다르거나 뒤떨어 진다고 생각하면 결핍을 느끼고 외로워진다. 그런데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남들과 다른 점을 특별하다고 여길 수 있다. 나는 외모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키도 작다. 예전엔 발음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사랑했기에 늘 당당했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언제나 주변에있었다. 자신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내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차차 채워나가면 된다.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지금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일단 시작해라. ‘안 되면 어쩌지’란 걱정 때문에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통계적으로 인간은 인생의 3분의 2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3분의 1은 선택한 것을 행하는 시간으로 보낸다고 한다. 90년을 산다고 하면 60년을 고민하며 지내는 것이다. 하루에 고민 1개만 줄여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가다가 중지해도 간 만큼은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게 두려워 시작조차 안 하게 된다. 산을 처음 타보는 사람이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와도 일단 산을 타봤으니 다음에 오를 땐 전보다 높은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을 해봐야 그다음 단계까지갈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시작해라. 그리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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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의학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

 

글 이수진 ● 사진 손홍주


법의학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법의학은 의학이지만 법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합니다. 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근무하지만 상당수는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하는 동시에 실제 업무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법원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법의학 중점 병원을 개원하기도 합니다.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법적인 관점(legal mind)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의학자에게는 법을 기준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즉, 의학적 혹은 과학적 사실이 법적으로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법이나 법의학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염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인권’과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의학자로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사건 하나는 모두 특정인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법의학자가 제공한 의학적·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정리되는 순간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면 가장 어려움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법의학은 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사회제도로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느 나라든 제도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도의 한계로 업무를 진행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정보를 얻지 못할 때 판단의 활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많이 안타깝습니다.

법의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자질이 궁금합니다.

의대에 입학한 뒤 병리학 전문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 후 좀 더 세부적인 전공으로 법의학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길입니다. 의대 입학을 위한 일반적인 자질 외에 사람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또 일반적인 의학 영역보다 법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 등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역량 계발을 위해 다양한 법적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회가 안정되고 변화가 많을수록 법의학이나 법과학에 대한 요구는 증가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고 앞으로 상당 기간 그러하리라 예상합니다. 다만 법의학자가 하는 일은 공적인 영역에서 발생하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보상이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아닌 사회적으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법의학자에 도전해보세요.


법의학이란?
법의 영역에서 필요한 의학적 사실을 연구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학문 분야를 말한다. 세부 전공에 따라 법의병리학, 법의유전학, 법의독물학 등으로 나뉜다. 이 외에 최근에는 의료법학이나 배상의학, 법치의학 등과 연결되고 있으며 나아가 법과학 등으로 확장되는 경향이다. 업무는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다. 법의병리학은 부검이나 검안 등을 통해 사망과 관련한 의학적 사실을 밝힌다. 법의유전학은 유전자의 다양한 특성을 이용해 범인 식별이나 과학수사에 기여한다. 법의독물학은 특정 약물의 사용 여부와 사용 분량을 판별하는 업무 등을 맡는다.

검시제도?
전 세계적으로 검시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검시관 혹은 법의관이 주체가 되어 검시하는 ‘전담 검시제’와 행정 책임자가 검시를 전담하는 ‘겸임 검시제’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겸임 검시제로 검사가 검시권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버 윤리의식”

사이버포렌식 전문가 김대형, 이정남 인터뷰

글 전정아 ● 사진 손홍주

두 분 모두 1990년대 말부터 이쪽 일을 시작하셨네요?

김대형(이하 김) ─ 1990년대 말 우리나라에 IT 붐이 일었어요. 자연스레 해커도 많아졌죠.(웃음) 이전에는 국가 관련 정보보호기관에서 일했답니다.

이정남(이하 이) ─ 저는 본격적으로 사이버수사를 시작한 게 1995년부터고요. 경찰청 해커수사대 수사반장까지 맡았죠. 해커가 많아지니 해커를 잡을 경찰들이 필요해졌거든요. 사실 해커와 보안 전문가는 윤리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기관을 설립해 내가 검거한 어린 해커 친구들을 모아 윤리 교육을 했어요.(웃음) 그 친구들이 지금 우리나라 최고의 보안 전문가로 일하고 있답니다.

사이버포렌식을 의뢰하는 대표적인 범죄군이 있나요?

─ 사이버포렌식은 모든 범죄, 모든 사건에 적용할 수 있어있어요. 그런데 특히 사기 사건이 많죠. 금융사기 사건은 피해를 당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뢰하는 일이 많아요. 또 이혼소송과 관련해 배우자의 내연 관계를 증명해달라는 가사 사건도 적지 않고요. 기업이 영업 비밀 유출을 의심하는 직원을 조사해달라는 경우도 꽤 된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 한 교수의 이혼소송 중 부인이 실종됐어요. 후에 부인은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시신이 큰 가방 속에 들어 있었죠. 누가 봐도 살인이잖아요. 경찰은 남편을 의심했어요. 그런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거예요. 결국 디지털포렌식으로 카카오톡 데이터를 복구하며 조사한 결과 이런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마음 굳게 먹어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범죄의 물증이 될 수 있는 말이었죠. 결국 경찰은 남편의 내연녀를 밝혀냈고, 남편은 살해 혐의를 인정한 사건이었죠.

이 ─ 이 외에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굵직하고 민감한 사건을 맡은 적이 많지만 쉽사리 말할 수가 없어요. 아직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우리의 한마디가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현재 과학수사 분야의 핫이슈가 궁금해요.

─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안티 포렌식’이라는 게 있어요. 포렌식 방식으로 검사해도 자료가 남지 않도록 지우는 건데, 이렇게 기록이 너무 깔끔할 때는 또 그 자체가 혐의의 근거가 돼요. 증거 인멸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사이버포렌식을 공부한다면 알아두는 게 좋겠죠?

마지막으로 사이버포렌식 전문가를 꿈꾸는 청소년이라면 어떤 활동을 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 경찰서에서 봉사활동이라도 해보기를 바랍니다. 실제 경찰관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자문도 구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는 거예요.

─ 프로그래밍 기술, 특히 코딩은 꼭 배워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파이썬, 스크래치는 고등학생도 충분히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논리력도 키우고 우리 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글 이수진 ● 사진 오계옥

일반 과학과 법과학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일반 과학과 크게 구별되지 않지만 법과학은 매우 종합적인 학문입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죠. 일반 과학처럼 분석적인 면도 있지만 거기에 해석을 포함합니다. 과학적으로 증거를 분석하고 주관적 평가의 해석을 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사관의 통찰이 개입됩니다. 이를테면 이 지문이 저 사람의 지문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왜 이 지문이 그 사람의 것인지 평가와 증명을 해야 합니다. 현장에 이 지문이 있었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접근해야죠. 또 그 행동이 범죄의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즉, 범죄와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하죠. 법과학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그러한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야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 사람의 행동이 범죄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증명해야 하니까요.

법과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나요?

법과학 개론, 지문, 혈흔 형태 분석, 법 사진 등을 담당합니다. 이 중에서 법 사진은 일반 사진보다 빛을 더 많이 다룹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빛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죠. 특수한 환경에서 뭔가를 찾아내 기록하는 일이므로 자외선, 적외선 등을 활용합니다.

교수님의 전공이 궁금합니다.

석사는 과학수사학, 박사는 범죄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사관들의 관점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범죄를 다루는 사람들, 즉 수사관이나 법과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을 잘 받아들이고 훈련해서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법과학자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저는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 근무를 15년 정도 했습니다. 그 후에 법과학을 연구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학부 때부터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것을 권합니다. 법과학은 물리, 화학, 생물 등의 기초과학 능력이 매우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또 기초과학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으면 응용과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기초과학을 철저히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을 추천합니다. 물론 과학에 대한 지식만큼 현장 경험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범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법과학자나 분석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크게 관찰력과 끈기를 꼽고 싶습니다. 법과학자는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사물을 관찰하여 증거나 단서를 끌어내는 사람입니다. 감각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이 필수죠. 예를 들어, 지문을 떠야 하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물건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건이 지나온 역사에 대해 많은 정보가 들어와야 합니다. 어디에 있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등 하나의 사물을 통해 역사를 추론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능력이 관찰력입니다. 과학적 사고도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논리는 관찰을 통해 만들어지고 새로운 것은 그 논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찰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관찰력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사물을 쉽게 보지 않고 현상의 원리를 궁금해한다거나 그 안에서 특별하거나 규칙적인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지 검토해보세요.(웃음) 다음으로 끈기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달려 분석하는 자질을 뜻합니다. 이 과정은 정성과 몰입 등의 부수적인 자질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건에서 하나의 지문이 발견됐습니다. 이와 대조할 수 있는 지문이 100명 정도 나온다면, 끈기 있게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미제 사건이 지문으로 해결되는 이유는 컴퓨터가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문의 식별이 더 빨라졌기때문에 사람들이 앉아서 지문을 더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렇듯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끈기 있게 결과를 분석하는 자질이 중요합니다.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건 속에서 지문을 통해 신원을 밝혀냈을 때 뿌듯합니다.

4차 산업사회라고 하는데, 과학수사나 법과학 분야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나요?

법과학 교육 분야를 예로 들면, 현재 가상현실을 사용한 과학수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드론을 활용해 사람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현장을 수색하고 기록하는 것도 4차 산업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 사건 등을 포함하는 범죄 현장은 여전히 일일이 손과 발, 눈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상이나 무선 등의 기술이 발달할지라도 범죄는 매우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 일부 분야에서 4차 산업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은 4차 산업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법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과열되어 있는 범죄에 되도록 늦게 노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과학을 꾸준히 공부해 과학적 사고가 몸에 배길 바랍니다. 법과학자는 증거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작은 목표라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해보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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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정아 ●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 협조 MODU 서포터즈

종전 선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통일도 멀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전국 각지 14세부터 19세까지, MODU 독자에게 생생한 통일 찬반 의견을 들어보았다.

  • 분단된 상태더라도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두 나라를 합쳐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박규리)
  • 통일에 찬성하지만 내가 돈을 버는 동안에는 이뤄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도 있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우리나라가 많은 지원을 해야 하니까. (김도연)
  • 통일을 하기에는 많이 건너버린 강…. 현실적으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봐. 이제는 남한과 북한이 다른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박시연)
  • 여행과 철도를 좋아하는 나에게 통일은 더 멀리, 더 간편하게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기회를 줄 거야. (박태정)

 

#인도주의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찬성 입장이다. 한민족이라면 한 나라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와 함께 이산가족이 더는 분단의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북한 사람들의 자유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친구도 나왔다.
#미래의_경제_발전 북한의 우수한 군사력을 이용할 수 있고, 남한은 현재 국방비에 드는 막대한 예산을 다른 곳에 분배할 수 있다. 또 북한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면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더_쉬운_여행 여행을 즐기는 ‘욜로(YOLO)족’이 꼽은 이유다. 유라시아 철도를 타면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횡단할 수 있어서 유럽 여행이 간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안 하이웨이가 연결되면 자동차를 타고도 중국, 홍콩 등 여러 나라를 갈 수 있다.

 

#막대한_원조 낙후된 북한의 경제 상황을 살리기 위해 남한이 지불해야 할 천문학적인 기회비용을 걱정하는 의견이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 비용은 결국 남한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도 이로 인한 남한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조차 불투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단물_빠진_북한 북한은 핵실험을 위한 비용을 얻기 위해 이미 백두산의 절반, 광산 채굴권과 조업권을 중국, 대만 등 여러 나라에 판 상태다. 따라서 북한과 통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황폐한 영토와 굶주린 주민들뿐이라는 것이 반대 의견에서 엿보였다.
#심리적_거리감 자본국가와 공산국가에서 오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는 물론 언어와 문화, 화폐가치 등 너무 달라진 남북의 사회문화적 차이점에서 오는 거리감은 금세 메우기 힘들 것이다.

 

#블루오션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남한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발전 가능성이 많은 북한에서 돈을 벌겠다는 당찬 친구가 눈에 띄었다.
#앞길_걱정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치열하게 산다. 이런 독한 사람들과 경쟁할 때 유약한 자신이 버티고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의견도 있었다.
#징병제_폐지 통일로 징병제가 폐지된다면 좋아하는 아이돌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찬성이라는 열혈 팬도 출현!

 

  • 차근차근 준비해 모든 측면에서 합의점을 만들려면 통일은 아직 시기상조. 45년 떨어져 산 독일이 통일되고 혼란을 빚은 걸 생각해봐. 70년이 넘은 한반도라면 더하지 않을까? (이재민)
  •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나는 통일 적극 찬성! (이현준)
  • 통일이야말로 일장일단. 나도 내 입장을 정확히 모르겠어. (이윤서)
  • 통일하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면 옳다고 볼 수 없어. 꾸준한 원조를 통해 북한을 발전시킨 뒤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게 좋을 거야. (박민하)

[글로벌 롤모델] 따뜻한 독설가, 열정을 말하다

스타 셰프 고든 램지

 글 박성조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고든 램지,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타 요리사이자 레스토랑 경영인. 그러나 인터넷 인물사전의 분류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대중에게 고든 램지는 ‘열정’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스타 셰프이자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외식사업을 이끄는 탁월한 경영자. 다른 한편으로는 TV 프로그램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식당 주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반대로 기가 죽은 요리사 지망생에게는 따뜻하게 격려를 건네는 방송인. 10대 시절 무릎 부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이 남자는 음식을 매개로 소통하며 많은 이들에게 ‘열정의 맛’을 전해왔다.

 

배울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감수하는 열정가

 

고든 램지는 1987년 노스옥슨 기술대학에서 호텔 경영을 전공한 뒤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화려한 레스토랑 경영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주방의 가장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하루 17시간을 일해야 했다. 그렇게 주방 일을 하며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와 알베르루 등 유명 셰프들에게 기본기부터 배워나갔다. 런던에서 일을 하던 고든 램지는 ‘요리의 고향’에서 더 배우겠다는 목표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 하고, 프랑스에 아무 연고도 없는 상태였지만 배움에 대한 집착이 그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급여나 근무 여건 등은 고든 램지의 ‘배움의 여정’에 고려되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 당시를 돌아보며 “월급 인상을 요구하는 일은 꾀병을 부리며 하루 병가를 내달라고 전화하는 것만큼이나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고 쓰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영국 런던으로 돌아온 고든 램지는 영국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 피에르 코프만의 주방에서 일하며 더욱 성장한다. 이후 1993년에 그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지는 수석 셰프 자리를 제안받는다.

마침내 자신이 이끄는 주방 팀을 가지게 됐지만, 고든 램지가 마주한 현실은 ‘인기 없는 낡은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나 고든 램지는 ‘오베르진’이라는 이름의 이 레스토랑을 살려낸다. 훌륭하고 현대적인 유럽식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맛으로도 인정받으며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그 중심에 있던 수석 셰프 고든 램지가 유명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베르진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고든 램지라는 이름을 알린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레스토랑에서 훗날 자신의 글로벌 브랜드를 함께 세워갈 동료들을 얻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하루 17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며 일을 배워왔다는 수석 셰프의 경험에 주방 직원들은 유대감을 느꼈고, 이후 고든 램지가 자신의 비즈니스를 꾸릴 때 기꺼이 손을 잡는 관계로 남았다. 그의 열정이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다.

 

영국에서 세계로, 레스토랑에서 미디어로

 

글로벌 롤모델 _ 1

 

1998년 고든 램지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옛 스승인 피에르 코프만이 자신의 레스토랑을 옮기면서 매우 싼 가격에 그 자리에 가게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스승의 배려로 고든 램지 앳 호스피털 로드’가 시작됐고, 레스토랑은 이내 명소로 떠올랐다. 장인어른이 비즈니스를 이끌어주는 사이 셰프인 고든 램지는 음식과 레스토랑 관리에 집중해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다. 이후 그는 영국 곳곳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갔고 2001년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베르’를 열면서 해외로 진출했다. 2006년엔 미국 지점 ‘고든 램지 앳 런던’을 세우면서 뉴욕에도 깃발을 꽂았다.

고든 램지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셰프이자 외식 사업가로 성공한 이 시기 즈음이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가던 2004년 이후 <헬스 키친>, <키친 나이트메어>, <마스터 셰프> 등에 출연하며 외식업계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향력 있는 스타 셰프로 떠올랐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주방 경험과 훌륭한 셰프들에게 배운 탄탄한 기본기가 방송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방송에서 그는 어릴 때 좋지 못했던 가정환경을 비롯해 자신의 지난날을 종종 언급하기도 한다. 축구선수로서의 좌절, 고된 주방 생활, 무작정 요리를 배우기 위해 감행한 프랑스 생활 등이다. 고든 램지의 거침없는 욕설이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이해되는 것은 이와 같은 삶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Stop doubting yourself. Be bold(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 담대해지세요.).”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에서 시각장애인 도전자에게 따뜻하게 건넸던 말이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 곧 그가 삶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그 모습 때문에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 독설가 요리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