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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지금은 누구나 문제라고 여기는 인종차별, 성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누군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던 때, 법 또한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 일쑤였던 시대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연방의 대법관으로서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반대하며,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 인물이다.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33년 뉴욕 브루클린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정한 부모님 아래 자란 그는 특히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분노에 휩쓸리지 마라’, ‘독립적인 사람이 돼라’고 가르쳤으며, 배움을 강조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책을 좋아하는 총명한 학생으로 자란 그는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학교에 진학해 법을 전공한다.
루스 베이더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견해나 사상이 다른 사람들은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이처럼 부당하게 탄압을 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했던 사람들이 바로 변호사였다. 이를 본 루스 베이더는 자신도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1956년, 로스쿨에 진학한다. 로스쿨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그는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구직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차별이 만연했던 당시 유대인, 여자, 엄마를 채용해줄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낮은 성적으로 졸업한 남학생은 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이 평생 해나갈 일을 깨닫는다. 바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에 맞서는 것이었다.

 

 

법으로 차별에 맞서다

루스 베이더가 변호사로 활동하던 때는 법에서부터 차별을 명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임신 여성을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다’, ‘남편은 아내 성폭행으로 기소될 수 없다’와 같은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이에 불합리함을 느낀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이때부터 성차별에 관한 사건을 맡기 시작한다. 그렇게 처음 맡은 사건이 1972년,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다. 이는 기혼 남자들이 받는 주택 수당을 여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하는 데 부당함을 느낀 프론티에로가 소송을 건 것이다. 루스는 이 사건에 자원했다. 승소할 경우, 이 판결이 성차별 법률 폐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패소.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 성차별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대법관을 설득시켜야 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구두 변론을 준비했고, 결국 승소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성차별을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불법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에 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루스 베이더는 계속해서 성차별에 관한 사건을 맡았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받는 차별을 다룬 사건을 맡아 성차별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와 자격을 누릴 권리를 빼앗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나는 반대한다”

20년간 변호사로서 차별을 철폐해온 루스 베이더를 눈여겨본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다. 사람들은 루스 베이더가 금방 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빌 클린턴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루스와 함께 새로운 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그를 미국 연방 대법원의 107대 대법관으로 지명한다.
그는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에 취임한 후에도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가장 먼저 맡은 사건은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다. 당시 버지니아군사대학교는 개교 이래 150년간 남자 생도만긴즈버그받았다. 남학생을 기준으로 한 신체 기준을 총족하며, 생도 과정을 이수할 능력이 있어도 단지 여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에 긴즈버그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여성의 동등한 기회를 제한하는 법률의 효력은 소멸할 것이며 여성의 뜻과 성취와 참여는 제한될 수 없고 여성도 능력에 근거해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보수 성향이 짙은 다수의 대법관이 임명되자,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는 상황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그는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낭독했다. 판결이 소수의 편이 아니더라도, 루스 베이더의 반대의견은 소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자 변화의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현직 미국 연방 대법관 아홉 명 중 최고령자인 루스 베이더는 역대 최고령 연방 대법관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췌장암을 판정받아 많은 이들이 걱정했지만, 이를 딛고 다시 대중 앞에 나섰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모든 이들이 ‘자유로운 너와 내가 되는’ 날까지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글 김현홍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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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와 제품을 이어주는 총감독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

더 새로운, 더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직업,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를 만났다.
글 강서진 ● 사진 손홍주, 미미박스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가치를 느껴”

㈜미미박스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 임지현

 

해외에서 K뷰티에 관심을 갖는 강점이 뭘까요?

한국 제품은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요. 사실 색조 화장품의 경우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양 국가가 컬러를 더 다양하게 개발해요. 흑인과 백인 등 인종이 다양해서 화이트나 퍼플 계열을 포함해 국내에서는 잘 개발하지 않는 컬러 제품도 만들거든요. 그럼에도 해외에서 한국 제품을 선호하는 건 믿을 수 있는 성분과 지속력, 발림성, 표현력 등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한국 여성이 선호하는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방식은 아시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요. 이렇게 국내 화장품 기술력이 성장한 배경에는 ODM 업체의 기술 개발이 큰 역할을 했어요. ODM은 화장품을 연구 개발하고 생산하는 전문 업체를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제품에 제조업자를 표기해야 하는 법이 생겨서 ODM 업체도 제품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게 됐어요. 그래서 제품 연구와 기술력을 키우는 데 더 힘쓰다 보니 코스맥스 같은 큰 ODM 업체는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죠.

 

K뷰티 전망은 어떨 거라고 예상하나요?

 

브랜드마다 고유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키워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K뷰티’ 타이틀로 국내 브랜드가 후광 효과를 얻었지만, 많은 브랜드가 해외로 진출하다 보니 고객들이 각 브랜드에대한 차이점을 인식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어떤 고객에게 어떤 브랜드를 보여줄 것인지 강력한 타기팅과 강점을 개발해야 합니다.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가 되는 방법은 다양할 것 같은데요, 보통 어떤 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화장품을 정말 좋아해야 일이 힘들 때도 잘 극복할 수 있어요. 경영학이나 마케팅, 화학공학을 전공하면 좀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고요.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유리해요. 특히 화장품 산업이 일찌감치 발전한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기회가 열린 나라의 언어를 잘하면 해외시장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저도 얼마 전까지 중국 상해에 있는 화장품 회사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새 브랜드를 개발하고, 소비자 반응을 파악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만드는 데 자신이 생겼어요.

 

해외 시장을 이해하는 데 또 중요한 점이 있다면 뭘까요?

 

환경에 대한 문제나 법령이 바뀌는 이슈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해요. 예를 들면 5㎜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인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자 6~7년 전에 마이크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이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됐어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들어간 스크럽 제품이 많았는데, 이 문제를 빨리 파악한 업체는 해당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천연 화장품 개발을 시작해 국내외 시장을 선점했죠. 최근에도 몇 가지 특정 플라스틱에 대한 금지 법령이 생기고 있는데, 이런 법들은 보통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해외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파악해 발 빠르게 대응하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할 수 있어요.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가 꼭 갖춰야 할 자질과 소양은 무엇일까요?

 

연구소, 광고, 영업, 물류 등 여러 관계 부서와 협력하는 일이 많아 사람과 소통을 잘하고 성격이 활발해야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자신의 의견을 설득하는 능력도 중요하고요. 계속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야 해서 더 나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창의력도 있어야죠. 또 제품 출시 주기가 3~6개월 정도로 빨라지고 있어서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는 민첩함을 갖춰야 하고요. 그래서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는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아주 중요해요.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이 지금 해볼 수 있는 건 뭘까요?

 

여러 화장품을 많이 접하는 게 중요한데, 요즘엔 화장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평가하는 블로거가 많아서 화장품 정보를 얻기 쉬운 편이에요. 다양한 브랜드 매장에 가서 제품을 테스트해보는 것도 좋고요. 또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이 사람은 어떤 화장품이 필요할까, 제품의 어떤 점을 개선해야 사람들이 더 좋아할까’를 많이 고민해봐야 해요.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는 사람들의 요구를 파악해서 지금껏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니까요. 저도 주말이면 공원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가서 계속 관찰해요. 요즘 사람들의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더 아름다워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를 끊임없이 생각하죠. 이런 습관을 가지면 더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을 상상해낼 수 있을 거예요.

 

더 새로운, 더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직업,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를 만났다.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지휘자

 

국내 화장품 업계는 꾸준한 기술 개발로 기존 제품을 세분화하고, 새로운 기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 과거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던 제품 생산이 중소기업으로까지 확대돼 수많은 화장품이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 유통 채널도 다양해져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들까지 우리나라 제품을 쉽게 비교 분석하며 구입할 수 있게 되는 등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업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과 트렌드에 적합한 제품을 출시해야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게 돼 새로운 시장 분석과 제품 개발 전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런 일을 총괄하는 사람이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로, 각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광고 · 홍보 전략 을 세운다.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는 국내외 화장품 시장을 조사하고, 트렌드에 맞는 제품 콘셉트 기획, 성분 처방, 디자인을 개발한 뒤, 광고 PR 계획과 제품 판매처를 발굴한다. 제품이 출시돼 판매되면 소비자 반응을 분석해 판매 지속 여부와 개선점을 결정한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조율하고 책임지는 게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의 역할이다.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의 주요 업무

 

상품 개발 현황 확인

목표한 시점에 맞춰 상품을 출시하는 게 가장 중요하므로 연구소, 제품 디자이너, 제조업체 등 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관계자들과 협의해 생산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광고 및 홍보 전략

광고팀과 함께 제품을 대외에 알리는 마케팅 전략을 짠다. 제품 홍보에 필요한 전체 예산 규모와 캠페인 기간을 정하고, 상품을 홍보할 모델을 선정한다. 또 SNS, TV, 오프라인 행사 등 광고 채널 및 매체를 결정한다.

 

판매 계획 설정

제품 판매를 담당하는 영업부서와 오프라인, 온라인 등의 여러 판매처에 판매 계획을 제시한다. 신제품 출시 일정과 홍보 방식, 목표 매출 등의 계획을 알리는데, 백화점, 로드숍, 온라인, 해외지사 등 각 판매처의 특징에 맞는 다양한 판매 전략을 전달해야 한다.

 

신제품 아이디어 개발

지난 판매 실적과 소비자 반응을 파악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요소를 다음 제품에 반영한다.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를 조사하고, 타깃소비자 취향에 적합한 제품 아이디어를 연구원에게 제시하면서 제품 개발 방향성을 논의한다.

 

글 강서진 ● 사진 손홍주, 미미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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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 시대, 떠오르는 직업
비디오그래퍼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영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 비디오그래퍼를 만나봤다.
글 김현홍 ● 사진 손홍주, 손익청
 

 

비디오그래퍼가 말하는 직업 이야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보세요”

손익청 비디오그래퍼

 
비디오그래퍼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는 사진을 전공했어요. 원래는 체육도 했었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밴드도 했었기 때문에 음악을 하고 싶기도 했는데, 그중에 고른 게 사진이에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 기계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비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자기의 감각이나 센스를 활용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고, 금방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사진을 전공하고,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다가 비디오그래퍼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포토그래퍼로 활동할 때 한 배우와 5년간 작업을 하던 중,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왔어요. 어떻게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지 전혀 모를 때였는데 덜컥 일을 맡았죠. 그래서 국가에서 하는 교육을 통해 영상 편집 기술을 익혔어요. 그리고 유튜브나 비메오(Vimeo: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로, 업로드하고 공유할 수 있음)에 있는 유명한 브랜드 영상을 보고, 그 영상을 한 프레임씩 보면서 어떤 효과를 줬는지 분석했죠. 그런 다음,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에서 사용하는 효과들을 영상 위에 입혀서 작업했어요. 그런데 그게 반응이 좋았어요.당시 영상은 캠코더로 찍은 것들을 잘라 붙이는 수준이었는데,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만든 영상이 신선했나 봐요. 그때부터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죠.
 
보통은 어떤 과정을 거쳐 비디오그래퍼가 되나요?
 
접근 방식이 다 달라요. 제 경우에는 사진을 오랫동안 찍다가 영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결과가 좋아서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일을 계속하게 된 거죠. 마음에 맞는 크루나 팀을 만나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문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요. 요즘은 자기의 영상을 만들어 비메오나 유튜브에 올려서 인정받는 것이 좋은 프로필이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비디오그래퍼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이 필요해요. 비디오그래퍼는 개인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비디오그래퍼의 감각이나 센스도 중요하지만 이 시스템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캐치해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민감하게 감지하고,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겠죠. 또 영상을 통해 표현할 수 이야기가 많아야 하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영상을 만드는 센스나 감각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 건가요?
 
보통 처음에는 남의 걸 많이 보면서 흉내를 내면서 시작해요. 그러다 비판적인 사고방식과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나는 저것과 다르게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자기만의 색깔과 표현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거죠. 그리고 구글링과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것을 접하고, 지금 가장 트렌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직업이겠네요.
 
남들이 쓰지 않는 장비를 꼭 써봐야 직성이 풀린다거나 요즘 유행하는 음악만을 좇기보다 앞으로 유행할 음악이 무엇인지 찾아다니는 사람, 유행하고 있는 브랜드의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옷을 입는 센스가 필요해요. 남들과 다른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것을 찾는 사람에게 맞는 직업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어야겠죠.
 
비디오그래퍼의 직업적 전망은 어떤가요?
 
이제는 모든 게 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대예요. 촬영과 편집이 가능하다면 어떤 영상이든 만들 수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지를 정한다면 짧은 영상이든 긴 영상이든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또, 촬영과 편집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디렉팅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이 분야에서 뮤직비디오, 영화 등 어떤 영상이든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거예요.
 
비디오그래퍼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요즘은 자기 PR 시대예요. 자기 작업을 하고 보여주기가 쉽고, SNS를 통해 모르는 사람한테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언제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좋은 작업을 하고, 이를 올리다 보면 누구든 궁금해서 찾아올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꼭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언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진출할 수 있는 곳이 더욱더 많아질 거예요.

 

 

 

※ <MODU>를 통해 ‘비디오그래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글 김현홍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텐센트는 중국의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게임 전문 기업으로 올해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10대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에 마화텅이 설립한 텐센트는 메신저 업계의 후발 주자였다. 많은 사람이 이미 다른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텐센트는 설립 초기에 이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마화텅은 텐센트 설립 13년 만에 전 세계 9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만들고 세계적인 모바일 서비스, 게임 전문 기업으로 거듭났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텐센트는 업계에 뒤늦게 뛰어들었음에도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인터넷에서 미래를 본 마화텅

마화텅의 어린 시절 꿈은 천문학자였다. 하지만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천문학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택하는 현실을 보고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유명 무선호출업계 회사에 취직한다. 그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을 묵묵히 처리해내는 유능하고 성실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커지는 인터넷 시장을 보고 무선호출기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판단해 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한다.

마화텅은 1998년 11월, 엔지니어 네 명을 모아 ‘텐센트’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 이듬해 2월 ‘ICQ’를 그대로 모방한 ‘OICQ’라는 메신저를 출시한다. ICQ는 누구든 ICQ 번호만 있으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1세대 인터넷 메신저로, 당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마화텅이 OICQ를 출시할 당시 중국 내에는 이미 ICQ와 비슷한 메신저가 많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마화텅은 OICQ를 더 나은 메신저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메신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ICQ는 오프라인 상태인 친구와는 대화를 할 수 없고 컴퓨터를 바꾸면 이미 등록된 친구 목록이 사라진다는 단점을 발견한다. 마화텅은 이를 개선해 OICQ에 오프라인 상태인 친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능과 임의로 대화 상대를 정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다. 사람들은 ICQ보다 편리한 OICQ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OICQ는 3년 만에 9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다.

 

위기가 기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OICQ를 이용하는 것에 위기를 느낀 ICQ는 지적재산권 문제로 텐센트를 소송했다. 텐센트는 이 소송에서 패배해 도메인을 ICQ가 소속된 AOL에 이전해야 했다. 더는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마화텅은 OICQ의 상호명을 ‘QQ’로 바꾸기로 한다. 사용자들은 OICQ를 이미 QQ로 줄여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거의 눈치채지 못했고 QQ 사용자는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사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서버를 운영하는 비용도점점 증가했다. 텐센트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서버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마화텅은 텐센트를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 기업이 우후죽순 생기는 중이었으므로 마화텅이 생각한 것만큼 텐센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투자자를 찾기 어려웠다. 여러 투자자를 찾아다닌 끝에 벤처 캐피털 ‘IDG’의 투자를 받게 된 마화텅은 QQ로 어떻게 수익을 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아바타’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싸이월드의 아바타를 모방한 ‘QQ쇼’를 만든 것이다. 다만 싸이월드 아바타와는 달리 의류 브랜드와 협업해 실제 상품과 똑같이 디자인된 옷을 아바타에게 입힐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의류업체들이 앞다퉈 QQ쇼에 홍보를 제안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시대의 흐름을 꽉 잡아라

텐센트는 QQ를 통해 사용자 수를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이메일, 검색엔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그리고 2004년 마화텅은 ‘아워게임’, ‘킹소프트’ 등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에 뛰어든다.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QQ를 활용한다면 온라인게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텐센트 게임은 별도의 가입없이 QQ 아이디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Q머니’를 쓸 수 있어 편리했다. 결국 텐센트는 중국 내 게임 산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마화텅이 모방으로 성공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마화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뒤늦게 사업에 뛰어들더라도 기존의 것보다 더 나은 제품으로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기존의 것을 단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편의를 1순위에 둔 상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마화텅은 웹, 모바일,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글로벌 롤모델] 대통령에서 인권 운동가로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글 김현홍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지미 카터는 미국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이자, 퇴임 후 더욱 사랑받는 대통령이다. 18년간의 정치 활동 기간에도,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눈앞의 이익이나 인기보다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당시에는 외교나 국익을 챙기는 데는 실패한 지도자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미 카터는 암 투병 중에도 자원봉사 활동을 했을 만큼 인권과 평화, 민주화 등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조지아주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지미 카터는 1924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농장 일을 하는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농사일을 배웠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해군이 된다. 해군으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지미 카터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귀향을 결심한다.

고향인 조지아주로 돌아온 후 지미 카터는 농사와 사업을 병행하며 지역사회를 운영하는 일에 참여한다. 특히 그는 교육위원회 일을 맡아 교육 분야에서 인종차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조지아주는 백인을 위해서만 통학 버스를 운영하고, 흑인은 백인 학교에서 쓰고 난 손때 묻은 교과서를 사용할 만큼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이었다.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는 추세였지만 조지아주는 여전히 인종에 따라 생활공간을 분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흑인을 위한 셔틀버스가 마련됐음에도 버스 앞쪽에 검은색으로 표시를 해야만 운행이 가능했으며, 인종 분리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교사가 될 수 없었다. 지미 카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종 간 통합을 위한 집회를 열기로 한다. 그는 신문광고와 라디오, 영화를 통해 집회를 홍보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이러한 지미 카터의 노력으로 백인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지아주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을 없애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미 카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계 진출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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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이 함께하는 행사에 참석한 덩샤오핑(왼쪽)과 지미 카터(오른쪽).

 

인기는 없었지만 옳았던 결정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계에 진출한 지미 카터는 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이후 그의 도덕성과 청렴함을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아 39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77년부터 1981까지 4년간 재임했다.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그는 평화 유지와 인권 강화를 위한 정책을 폈다. 특히 중동 평화,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 종식, 핵무기 감축, 중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파나마운하 분쟁 해결, 알래스카 환경보호 등의 안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인권 문제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이 정책들은 모두 합리적이고 윤리적이었지만, 지미 카터의 모든 정책이 인기 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파나마운하를 반환하는 결정은 가장 많은 반대에 부딪힌 사안이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한 뒤 그 일대를 미국 영토로 한다는 조약을 맺고 약 80년간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었다. 파나마는 약 50년간 이 운하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미국이 계속해서 파나마로부터 얻는 이익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는 이 문제를 연구한 끝에 파나마운하를 파나마에 영구적으로 반환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재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원의원이 재협상에 반대했고, 미국인의 34%만이 재협상에 찬성했다. 이에 지미 카터는 각 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200여 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그들을 설득했다. 상원의원에게 파나마를 방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파나마운하에서 일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상원의원들을 설득해 파나마운하를 영구 반환하는 협정을 통과시켰다.

 

성공적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삶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해결한 문제도 많았지만, 이란에 있는 미국 인질 구출 작전에 실패하면서 유약한 정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미국 대통령 최초로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비록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지미 카터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인권 활동가로서 인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1982년, 지미 카터는 아내 로잘린 스미스 카터와 함께 ‘카터 센터’를 설립한다. 이 센터는 평화, 인권, 민주주의, 자유, 보건 증진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며 “가치 있는 목표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는 원칙 아래 지금까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인권 활동가로서 지미 카터가 했던 활동 중에는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일도 있다. 1994년 북한의 핵 문제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을 때, 지미 카터는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해 김일성을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했다. 이처럼 지미 카터는 평생에 걸쳐 세계 주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지미 카터는 인권과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스포츠 속 직업 세계

일반적으로 스포츠와 관련된 직업이라고 하면 운동선수나 감독, 코치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나 전략을 짜고 선수단을 관리하는 감독 외에도 스포츠라는 영역에는 매우 다양한 직업이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부르는 스포츠의 세계, 그 속에서 선수만큼이나 치열하게 땀 흘리며 스포츠 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글 김우람·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스포츠 + 미디어

 

 

스포츠와 미디어는 공생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가 된 데는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반면 스포츠는 미디어 기업에 콘텐츠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스포츠와 미디어, 그 사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스포츠 해설위원

축구, 야구, 배구 등 각종 스포츠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 뒤, 방송을 통해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팀 과 선수들에 관해 설명하고 해설하는 일을 한다. 합리적인 분석과 논평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면 특정 스포츠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특별히 요구되 는 학력이나 자격은 없지만 기자, 에이전트, 운동 선수 등 스포츠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스포 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관련 학과 체육학과 등

핵심 능력 해당 스포츠 관련 전문 지식, 논리력, 분석력, 언어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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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프로그램 프로듀서

야구·축구·농구 등 각종 스포츠 중계와 올림픽 이나 월드컵 중계, 스포츠 뉴스 등 스포츠와 관련 된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고 스포츠 기자, 스포 츠 캐스터, 방송 스태프 등 관련 종사자의 활동을 조정하는 일을 한다. 아이템 선정, 기획, 화면 구 성, 광고, 영상 편집, 방송 편성 등 스포츠 방송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지시하기 때문에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중계는 대부분 생방송이기 때문에 위기 대 처 능력도 갖춰야 한다.

관련 학과 방송연출학과,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학과 등

핵심 능력 기획력, 창의력, 소통 능력, 통솔력, 위기 대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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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캐스터

스포츠 중계를 전문으로 하는 아나운서를 말한다. 시청자에게 경기 진행 상황을 정확하고 생동감 있 게 전달하고, 눈여겨봐야 할 관전 포인트를 짚어 주는 등 스포츠 중계를 이끌어간다. 또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장면이나 에피소드 등 시청자가 궁 금해할 만한 상황도 들려준다. 스포츠가 ‘각본 없 는 드라마’라면 스포츠 중계는 ‘대본 없는 방송’이 라고 할 수 있다. 경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서는 순발력과 풍부한 상식이 필요하다. 보통 특 정 종목의 전문 해설위원과 짝을 이뤄 일하는 경 우가 많다.

관련 학과 체육학과, 신문방송학과 등

핵심 능력 언어 능력, 순발력, 표현력, 풍부한 상식, 의사소통 능력

 

스포츠 마케터

스포츠 산업이 발달하면서 ‘스포츠’와 ‘돈’은 떼려 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기 업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 해 스포츠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 포츠 마케터는 기업이 스포츠를 통해 더욱 효과적 으로 마케팅할 수 있도록 스포츠와 관련된 각종 행사 지원, 선수 지원, 스포츠 용품 판매 등을 대 행하는 일을 한다. TV나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스포츠와 관련된 홍보를 하며 스포츠 팀명, 기업명, 상품명 등을 대중에게 널리 알릴 수 있도 록 기획하는 등 스포츠와 돈을 연결하고 그 가치 를 극대화하는 것이 스포츠 마케터의 역할이다.

관련 학과 스포츠경영학과, 스포츠마케팅학과, 스포츠산업학과, 사회체육학과, 경영학과 등

핵심 능력 협상 능력, 설득력, 창의력, 통계 지식, 어학 능력

자격 및 면허 스포츠경영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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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문기자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스포츠 에 대한 정보와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경기 현장을 찾아가서 정보를 수집 하고, 선수 및 감독 인터뷰를 하는 등 취재 내용 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가 있을 때는 해외로 출장 을 가기도 한다. 요즘은 기자가 해야 하는 기본적 인 일뿐만 아니라, 방송에 출연해 경기 내용을 분 석하거나 해설을 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한 종목 을 전문으로 하지만, 시즌이 있는 스포츠의 특성 상 복수의 종목을 담당하기도 한다.

관련 학과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학과 등 인문사회계열

핵심 능력 글쓰기 능력, 어학 능력, 분석 능력, 의사소통 능력,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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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캐스터의 전설  빈 스컬리

올해로 90세인 빈 스컬리(Vin Scully)는 미국의 유명한 야구 캐스터다.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전담 캐스 터로, 1950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무려 67년간 중계방송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홈런을 ‘She’라 는 여성 3인칭 대명사로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1988년 월드 시리즈에서 LA 다저스의 커크 깁슨이 역전 끝내기 대타 홈런을 때려내자 빈 스컬리가 “She is gone!”이라 고 외쳤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고 의 순간이자 최고의 표현으로 꼽힌다. 이렇듯 스포츠 캐 스터는 단순히 시청자에게 경기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까지 전하는 역할을 한다.

 

 

스포츠 + 과학

 

 

스포츠를 하나의 학문으로 보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현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직업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각종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정교한 사고와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포츠 관련 연구원이 되려면 꽤 오랜 시간의 숙련 기간과 대학원 이상의 정규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생체역학 연구원

생체역학이란 운동과 힘이 관계하고 있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찾기 위한 학문이다. 생체역학 연구원은 이런 학문과 지식을 바탕으로 스포츠 장비나 기구를 개발하기 위해 인체 운동과 스포츠 용구의 역학 관계를 연 구하는 일을 담당한다. 영상분석 시스템, 지면반 력 측정 시스템, 실시간 동작분석 시스템 등의 응 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체를 측정하고 분석하며, 이를 통에 얻은 자료는 인체의 기본 운동이나 스 포츠에서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

관련 학과 스포츠의학과, 스포츠과학과, 사회체육학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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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생리학 연구원

운동생리학 연구원은 인체가 운동 자극에 반응하 고 적응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운동과 신진대사, 운동과 호흡, 운동과 근육, 운동 과 피로, 운동과 환경 등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다. 호흡 가스 분석기, 심전도 검사기 등 운동부하 검 사 시스템을 이용해 측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스포 츠 상해 예방 및 재활, 영양 및 건강에 대해 연구 하고 경기력 향상을 위한 훈련 방법을 개발하기도 한다.

관련 학과 스포츠의학과, 스포츠과학과, 사회체육학과 등

 

 

스포츠 사회학 연구원

스포츠를 하나의 작은 사회적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스포츠에는 팀, 선수, 코치 등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와 규칙, 승패 등 다양한 요소가 있기 때 문이다. 스포츠 사회학 연구원은 스포츠를 ‘사회 현상의 축소판’으로 보고 스포츠와 사회학을 연관 지어 연구하는 직업이다. 스포츠의 사회적 기능이 나 사회와의 관련성, 스포츠와 미디어의 관계 등 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한다. 또 팀 내의 조직과 역 학, 일탈, 폭력 등도 연구한다.

관련 학과 사회체육학과, 사회학과, 체육학과 등

 

 

스포츠 영양사

스포츠에서 경기력은 유전적인 능력과 과학적인 훈련, 그리고 영양 관리에 좌우된다. 스포츠 영양 사는 운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영양학적 지식 을 접목해 운동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 는 사람을 말한다. 운동선수에게 균형 있는 음식 물을 공급하기 위해 식단을 계획하고, 조리 및 위 생 상태를 감독한다. 스포츠 팀의 급식 운영계획 을 세우고 선수들의 식단을 관리하며, 최근에는 도핑 검사에 해당하는 약물 등에 관한 내용도 다 룬다.

관련 학과 식품영양학과, 식품공학과, 체육학과 등

 

 

스포츠 + 커뮤니케이션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질과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주변에서 이들을 도와주는 ‘조력자’도 매우 중요하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동선수를 도와주고 관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스포츠 에이전트

계약상에서 공식적으로 선수 대신 업무를 맡는 대 리인을 말한다. 쉽게 말해 운동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연봉 협상, 이적 문제 등 선수의 계약권을 대행하는 업무를 한다. 의류나 운동용 품, 숙소, 연습 환경 등을 지원하고 스폰서십 계약 을 맺기도 한다. 한마디로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 니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스포츠 산업 규모가 크지 않고 에이전트가 필요한 선수가 제한적이어서 고용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해외로 진출하는 선수가 늘어나고 스포츠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포츠 에이전트의 수 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관련 학과 스포츠마케팅학과, 스포츠경영학과, 스포츠레저학과 등

핵심 능력 협상 능력, 소통 능력, 어학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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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스카우터

우수하거나 장래성 있는 운동선수를 물색해 발탁 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주로 고등학 교, 대학교 소속의 운동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에 참관해 기량이 뛰어나거나 성장 잠재력이 있는 선 수를 소개받거나 발굴한다. 선수를 선정한 후에는 감독과 학교 대표, 선수 본인 및 부모와 함께 계약 기간, 연봉, 계약금 등을 협의하고 계약을 체결한 다. 기존 프로 구단에 소속되어 있는 운동선수의 이적에 관한 업무도 한다. 특정 종목과 선수에 대 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해당 종목 선 수 출신이 많다.

관련 학과 체육학과 등

핵심 능력 협상 능력, 설득력, 해당 스포츠 관련 전문 지식, 데이터 분석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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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행정가

스포츠 종목의 연맹이나 협회, 위원회 등에 소속 되어 스포츠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국가대표부터 유소년 육성 시스템까지 해당 종목의 거의 모든 분야를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 해당 스포츠를 발전시키고 홍보하는 일은 물론 경기 분석, 기술 향상 등의 기술적인 업무, 대회의 계획과 운영, 진행 등에 대한 업무를 한다. 스포츠 행정가가 되려면 관련 종목에 대한 지식 외에도 경영, 마케팅, 역사, 법률 등 폭넓은 지식 이 필요하다.

관련 학과 경영학, 스포츠경영학과, 스포츠레저학과 등

핵심 능력 행정 능력, 소통 능력, 어학 능력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발로 뛰겠소

대한축구협회(KFA) 콘텐츠팀 설동철 사원

 

스포츠 행정가는 왜 필요한가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팬들은 TV 를 통해 축구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만 보지만 대회를 치 르기까지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대회 개최지 선정부 터 개·폐막식 준비, 대회 일정 짜기, 운송, 숙박 계획 등 스 포츠 행정가 없이는 훌륭한 스포츠 행사를 치르는 건 불가 능하죠. 월드컵이나 곧 개막할 올림픽, 프로스포츠 경기처 럼 대형 스포츠 행사뿐만 아니라 학교 체육대회, 시도 단위 체육대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와 성공적인 대회 개 최 사이에는 늘 스포츠 행정가가 존재합니다.

스포츠 행정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나 적성이 필 요한가요?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이해는 필수입니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축구의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에 는 209개 회원국이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 들과 소통하려면 외국어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 선수 와 팬이라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회나 행사를 기획 하고 준비하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죠. 학교 체육대회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까 한번 고민해보세요. 이런 경험을 통해 스포츠 행 정가가 적성에 맞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축구 행정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운동광이었어요. 축 구든 농구든 가리지 않고 스포츠라면 미쳤었죠. 그러다 대 학생이 되어 2002년 한일월드컵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기 회가 있었어요.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모 습을 보고 ‘아, 나도 이런 대형 이벤트 현장에서 좀 더 전문 적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스포츠 행정가가 되 기로 했습니다.

스포츠 행정가로서 어떤 때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팬과 선수, 기자단 등 스포츠 행사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참 여합니다. 이분들이 대회 기간 동안 큰 불만 없이 자신의 할 일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왔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사 실 스포츠 행정이라는 게 특별히 잘해서 칭찬받는 일이라 기보다는 실수 없이 했을 때 빛을 보는 일이거든요. 거기에 만약 한국 팀 또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거나 우승까지 하면 그 보람이 배가됩니다.

 

 

 

우리도 스포츠인이다!

 

응원단원

치어리더나 응원 단장 등 운동경기 중에 소속팀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관중의 흥과 응원을 유도하는 사람이다. 응원복을 입고 춤이나 동작을 취하고 구호를 외치며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켜 즐겁게 응 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소속팀의 선수 명단을 확인하고 구호나 안무 를 미리 암기해야 한다. 많은 사람 앞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적합하며, 무엇보다 안무를 따라 할 수 있는 감각 과 체력이 필요하다.

관련 학과 특별히 없음

핵심 능력 리더십, 사회성, 창의력,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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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경기 기록원

운동경기의 각종 상황을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일 을 한다. 경기 전 선수 명단을 받고 기록실에서 경 기를 지켜보며 심판의 판정, 선수의 개인 기록, 득 점 상황 및 시간 등을 기록한다. 또 기록 상황을 전광판에 표시하기 위해 경기장 전광판 조작원이 나 경기장 아나운서에게 알리거나 심판의 판정을 돕기 위해 자료를 제시하기도 한다. 야구, 축구, 농구, 육상 등 공식 기록을 담당한다.

관련 학과 스포츠기록분석학과 등

핵심 능력 책임감, 판단력, 집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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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기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 

한국야구위원회(KBO) 김제원 기록위원장

 

야구 기록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일반 팬을 대상으로 기록강습회를 실시해왔습니다. 2011년부터 는 전문기록원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록원 대 부분이 매년 초 열리는 기록강습회 출신이지만, 기록원을 매년 선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취업문은 꽤 좁은 편이 죠. 대한민국에서 한국 프로야구 공식 기록원은 딱 17명뿐 이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기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야구 기록을 각 팀에서 자체적으로 담당했습니 다. 그러다 보니 기록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 공식 기록원의 필요성을 느꼈죠. 따라서 기록을 할 때는 객관적 인 시각과 일관성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록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

야구를 잘 알고, 사랑하는 게 우선이지만 특별히 필요한 자 질은 없습니다. 다만 3~4시간 동안 공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면 안 되기 때문에 차분한 성격과 강한 집중력은 필요합 니다. 운동과 관련된 직업이지만 ‘기록’이라는 것은 역동성 보다 차분함이 요구되죠. 또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결단력도 중요합니다.

기록원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른 종목에도 공식 기록원이 있지만, 야구 기록원은 안타 나 실책 여부를 직접 ‘판정’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기록원의 판단은 곧 최종 결정이자 ‘야구의 역사’인 셈이죠. 야구의 역사를 스스로 기록한다는 점이 야구 기록원의 가 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