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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고두리 홍보팀 팀장

글 이수진 ●사진 손홍주, 미스틱엔터테인먼트, 게티이미지뱅크

 

담당 업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모든 가수의 대외적인 홍보를 담당하고 있어요. 앨범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A&R과 비디오 팀이 콘텐츠를 만들고, 앨범을 만든 뒤부터는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홍보 팀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앨범에 관한 보도 자료를 만들거나 기사를 쓰고 언론 대응을 해요. 또 만들어진 콘텐츠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플랫폼 노출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도 담당해요. 소속 아티스트의 홍보뿐 아니라 ‘미스틱엔터테인먼트’라는 자체 브랜드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 그리고 사내 아티스트와 직원들에게 중요한 일정이나 이슈 등을 공지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연예기획사 홍보 팀만의 특징인데, 팬 들을 관리하는 홍보 팀 직원도 있어요.

 

업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완성된 콘텐츠를 가장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기사와 SNS 등을 통해 소속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잘 노출하는 것이 홍보 팀의 일이거든요. 콘텐츠를 공개할 때는 시기나 순서, 플랫폼 종류 등 종합적인 사안을 고려해서 대중에게 내보내고 있어요. 홍보 팀은 같은 팀뿐만 아니라 A&R 팀, 비디오 팀, 언론 관계자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종사자들과 다방면으로 소통하는 일이 많아요. 소통과 협력이 가장 많은 부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엔터테인먼트 회사 내에서 홍보 팀이 그나마 출퇴근 시간이 일정해요. 사무실에서 업무를 담당하기에 앞서 기사나 관련 SNS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출근하죠. 사건, 사고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요. 출근을 하면 전날의 업무를 확인하거나 정리해요.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기자들과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외근을 나갈 때도 있어요. 외근은 아티스트의 촬영 현장을 방문할 때가 많은데, 드라마 촬영의 경우 홍보 팀이 가서 스틸컷을 촬영하죠. 사무실에서 내근을 할 때는 주로 기사나 보도 자료, 앨범에 실리는 소개 글, 홍보와 관련된 텍스트 등을 작성해요.

 

업무를 담당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요?

 

1년 계획을 짠 뒤에 진행하려고 해도 중간에 갑자기 생기는 일정이나 이슈가 많은 편이에요. 특히 엔터테인먼트 홍보는 더 그렇죠. 그 일정에 맞게 일을 진행하다 보면 굉장히 촉박하게 업무가 돌아가요. 조금만 여유가 있다면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정신없이 일을 마무리한 것 같아서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어요. 또 사건, 사고는 갑자기 발생하는 예측 불허의 이슈이기 때문에 홍보 팀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응해야 할 때가 있어요. 제가 가장 잘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하는 업무인데 여전히 어려울 때가 있죠. 그럴 때면 하루의 긴장감을 풀어줄 수 있는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조절해요.

 

엔터테인먼트 직업군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군의 전망은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만 해도 초기에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만 했는데, 영상 사업부도 신설됐고 올해부터는 영화사업까지 하게 되었잖아요. 방송국 PD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YG 같은 경우 이미 Mnet의 한동철 PD를 비롯해 스타 PD를 영입했죠. 미스틱엔터테인먼트도 이번에 여운혁 PD와 함께하게 됐어요. 콘텐츠가 워낙 중요한 세상이므로 이 분야는 계속 확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연예인들도 개인 방송을 하는 1인 크리에이터의 시대예요. 시대가 변하면서 음반 홍보 방법도 달라지고 있어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도 유튜브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고 있어요. 엔터테인먼트 직업군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플랫폼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홍보 방법이나 콘텐츠 제작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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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민 비디오 감독

글 이수진 ●사진 손홍주, 미스틱엔터테인먼트, 게티이미지뱅크

소속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역할 미디어콘텐츠사업부 비디오팀 감독
특이 사항 단편영화 제작 경험

 

담당 업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연출과 제작, 음반 영상이나 콘텐츠 기획과 제작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월간 윤종신’ 전체 영상도 맡고 있죠. 내부 영상 제작 과정은 먼저 A&R 팀에서 앨범을 기획한 뒤 의뢰를 받아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어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그 전에는 단편영화를 제작했어요. 영상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인디밴드 라이브 공연 영상도 찍었고요. 그러다가 영상 프로덕션을 세워서 작업을 하게 됐는데, 우연히 윤종신 프로듀서의 라이브 영상을 찍은 것을 계기로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하게 됐어요.

 

업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노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예산에 맞게 질 좋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노래보다 영상이 돋보이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라 노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있어요.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는 곡을 쓴 프로듀서의 의견을 주로 반영해요. 핵심 이미지를 바탕으로 뼈를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죠. 함께 작업하는 분들과 의사소통할 때는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어요.

 

 

뮤직비디오가 완성되기까지의 일정은 어떤가요?

노래마다 제작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일정하지는 않아요. 신규 앨범을 내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경우 평균 3주 정도 걸려요. 사전제작이 약 1주 걸리는데 그때 미팅이나 기획, 구성 등을 논의해요. 2주째 촬영을 진행하고 3주째 편집을 하죠. 월간 윤종신의 경우는 곡에 따라 다른데, 곡을 빨리 작업하는 경우에는 영상을 오래 작업할 때도 있지만 보통 1주일 안에 영상 제작을마치는 편이에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나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가장 힘들어요.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편집이 잘 안 될 때는 그냥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아이디어가 없으면 일 자체를 할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크죠. 그럴 때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영상 아이디어를 얻어요. 특히 BPM(Beats per minute)이 비슷한 음악을 들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어요.

 

 

김형민 감독의 대표작품

➊ 장재인 싱글 ‘Love Me Do’
➋ 2015 월간 윤종신 6월호 ‘굿나잇 Good Night’
➌ 2015 월간 윤종신 3월호 ‘Memory’(with 장재인)
➍ 2014 월간 윤종신 & TEAM 89 12월호 ‘지친 하루’
➎ 에디킴 ‘너 사용법’
➏ 2014 월간 윤종신 & TEAM89 11월호 ‘행복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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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휘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1팀 팀장

글 이수진 ●사진 손홍주, 미스틱엔터테인먼트, 게티이미지뱅크

소속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역할 콘텐츠 비즈니스 사업본부 아티스트 1팀 팀장
특이 사항 A&R 업무 담당, 실용음악 작곡 전공

 

담당 업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A&R(Artists and Repertoire)’을 담당하고 있어요. A&R이란 음반 회사에서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레코드 기획과 제작, 곡목을 관리하는 역할이에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데, 미스틱엔터테인먼트는 신인 발굴 팀과 음반 제작 팀이 나뉘어 있어요. 저는 음반 제작 팀에 소속되어 앨범에 들어갈 곡과 가사를 수급하고 앨범의 콘셉트를 함께 상의하는 일을 해요. 또 담당 가수에게 알맞은 뮤직비디오나 앨범 표지 콘셉트와 디자인 등을 누군가와 할 것인지 정하고, 담당자와논의하는 일도 담당하죠. 즉, 앨범 제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진행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외에 소속 가수들의 개인 콘서트와 관련된 업무도 맡고 있어요.

 

업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앨범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의사소통이에요. 엔터테인먼트 산업군 안에서 앨범을 제작할 때는 변수가 많은 편이라 상황 대처 능력은 물론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중요해요. A&R 담당자는 아티스트나 작·편곡가, 작사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앨범 제작을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율해야 할 때가 많거든요. 업무의 절반 이상이 일정 관리와 의견 조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역할에 따라 의사소통 방식이 다를 것 같아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작곡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많은 편이에요. 외부 작곡가의 곡으로 앨범을 제작할 때는 작곡가와 함께 콘셉트에 대해 상의하면 되지만, 소속 아티스트와 앨범을 만들 때는 본인의 곡으로 기획까지 참여해요. 아티스트가 내세운 콘셉트가 회사의 방향과 잘 맞으면 좋지만, 다른 방향일 때도 많거든요. 그래서 의견을 조율하고 소통하는 일이 정말 중요해요.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는 아티스트의 의견을 많이 따르기도 하지만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아티스트가 원하는 것과 회사의 입장을 원활하게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입장을 충분히 들은 뒤에 설득할 건 하고 수렴할 의견은 받아들이고 있어요. 뮤직비디오 감독이나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등의 스태프들과 소통할 때는 설득보다는 설명하는 방식이 더 많아요. 프로듀서의 콘셉트가 잘 투영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거예요. 물론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때는 의견 조율을 통해 방향성을 찾아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티스트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편이에요. 주로 오전에는 일정 관리나 연락에 대한 응답을 해요. 문서 작업도 많이 하는데 예산, 기획안, 기한 등을 정리하는 거죠. 작사가에게 받은 가사를 발음이나 의미를 살펴보며 모니터링도 하고요. 오후에는 주로 외근을 나가요. 앨범 제작에 관계된 미팅이나 외부 녹음에 가거나 공연이 있을 때는 연습에 참여해서 모니터링을 하죠. 업무 시간이 일정한 편은 아니에요. 녹음이 주로 저녁이나 밤 시간에 잡히는 경우가 많고 콘서트 준비도 여러 사람의 일정을 맞추다 보니 대부분 밤에 연습을 하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미스틱엔터테인먼트는 업무 일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 조율이 가능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나요?

앨범 제작을 할 때 프로듀서나 아티스트가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부분도 있지만, A&R 업무 역시 더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해요.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가 있어요. 또 의견을 소통하고 조율하는 업무가 많은데 설득이 잘 안 되거나 제안이 어그러질 때 난감하죠. 근무 자체가 야근과 일정 변경이 많은 편이라 고정적으로 무언가 배운다거나 몰두하기 어렵다는 피로감도 있어요. 그럴 때면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나만의 행복을 찾아서 마음을 달래고 있어요. 사람과 계속 만나서 무언가를 생각해야 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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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게? 아니
Fun하게!

버진그룹 CEO 리처드 브랜슨

글 김현홍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버진그룹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3위에 오른 기업이다. 항공, 통신, 호텔 등 전 세계에 350여 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다국적 기업이 사람들의 큰 관심과 애정을 받는 이유는 바로 리처드 브랜슨의 경영 철학 때문이다. 버진그룹의 CEO 리처드 브랜슨의 경영 철학은 ‘즐거움’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비즈니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리처드 브랜슨은 즐거움과열정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열기구로 대서양을 횡단하고, 스튜어디스로 변장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경쟁사인 코카콜라의 전광판에 콜라 대포를 쏘기도 했다. 이런 괴짜 같은 행동으로 목숨을 잃을 뻔하고 다른 기업 CEO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즐거워할 수 있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면서 지금의 버진그룹을 만들었다.

난독증 환자가 잡지를 만들었다고?

 

리처드 브랜슨은 1950년 7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 덕분에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에 다녔지만 난독증으로 성적은 항상 하위권을 맴돌았다. 대신 그는 운동감각이 뛰어났다. 그러나 그마저도 부상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난독증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지만 여전히 수업을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15세에 학교를 그만둔다. 하지만 리처드 브랜슨은 실의에 빠져있기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택했다.

당시 리처드 브랜슨의 꿈은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을 위한 잡지 <스튜던트>를 창간했다. <스튜던트>는 학교에서 느낀 불합리한 일들을 고발하는 잡지로, 인기는 꽤 높았지만 많은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학생들이 비싼 돈을 주고 음반을 구입한다는 것을 었고, 우편으로 음반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17세 때 시작한 레코드 사업이 몇 년에 걸쳐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리처든 브랜슨은 20세 때 본격적으로 ‘버진레코드’를 설립했다. 당시 음반 제작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초보자였기 때문에 ‘최초’라는 의미의 ‘버진(Virgin)’을 붙였다. 버진 레코드는 당시 무명이던 영국의 음악가 마이크 올드 필드의 음반을 직접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그 후 롤링 스톤스, 필 콜린스, 재닛 잭슨 등 여러 음악가와 계약을 하면서 세계적인 음반사로 거듭났다.

실패를 마주하는 자세가 성공을 좌우한다

 

버진 레코드로 사업을 키워나가는 중, 리처드 브랜슨이 타려던 비행기가 결항해 승객들과 돈을 모아 전세기를 빌린 일이 있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전세기 대여비가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더 나은 항공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리처드브랜슨이 항공사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음반 회사인 버진 레코드가 어떻게 항공 사업을 하느냐며 주변 사람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는 사람들을 설득해 끝내 ‘버진 애틀랜틱’을 설립한다. 어렵게 마련한 비행기 한 대로 사업을 구상한 지 3개월 뒤, 드디어 첫 비행에 성공한다. 버진 애틀랜틱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위해 이코노미 클래스 최초로 전 좌석에 모니터를 설치했다. 또한 비즈니스 가격으로 고급 서비스를 선보이는 ‘어퍼 클래스(Upper Class)’ 좌석을 만들어 목욕, 미용, 마사지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그 결과,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진 버진 애틀랜틱이 영국 2위 항공사로 급성장했다. 리처드 브랜슨은 버진 애틀랜틱을 버팀목 삼아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음료, 금융, 의료, 웨딩, 항공, 출판 등의 분야로 진출했고, 현재 350여 개 이상의 회사를 가진 다국적기업 버진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매번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버진 애틀랜틱, 버진 웨딩 등은 사업 부진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처드 브랜슨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것이 훗날 다른 사업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브랜슨은 아무리 철저하게 조사하고 확실하게 검증한 아이디어라도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여기고, 이를 통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2016년 버진 갤럭틱이 만든 우주여행용 우주선 ‘VSS 유니티(VSS Unity)’가 모하비 사막에서 첫 번째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했다.

리처드 브랜슨이 상상하는 것은 현실이 된다

 

리처드 브랜슨은 지금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 그는 우주여행에 손을 뻗었다. 우주비행사만 우주에 갈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민간인의 우주여행을 위한 ‘버진 갤럭틱’을 설립한 것이다. 버진 갤럭틱은 1인당 25만 달러(약 2억 7000만원)에 우주여행을 할 수 있도록 계속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리처드 브랜슨은 일론 머스크의 하이퍼루프 사업에 투자했다. 하이퍼루프(Hyperloop)란 지하에 긴 관을 따라 시속 약 1200km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다. 이는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운행되기 때문에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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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츠타야 서점 CEO 마스다 무네아키

글 전정아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T-SITE 공식 홈페이지

 

일본의 최대 서점 ‘츠타야’는 전국에 1500곳이 넘는 매장과 일본 인구의 절반인 60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해 국민 브랜드로 불린다. 츠타야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창업 초기에는 서적과 음반, DVD 등을 대여하고 판매했지만 이후 각종 문구와 소품, 전자제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취급해 범위를 확장했다. 이제는 라이프스타일까지 제안하는 ‘문화 기획사’ 츠타야. 여기에는 고객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묵묵히 발로 뛴 츠타야의 지주회사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 CEO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력이 있었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기분으로,고객이 원하는 매장을 만들다

 

1983년 오사카 히라가타 역에서 첫 개장한 츠타야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관찰에서 시작됐다. 당시 히라가타 시에 음반 대여점이 없고,역 주변에도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서점이 없다는 점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은 것이다. 대여업 운영 노하우는 없었지만 고객의 요구 사항을 매장에 반영하면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렇게 서점과 음반 대여를 함께 하는 복합 매장 츠타야가 탄생했다.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근처 고교생과 쇼핑객이 몰려들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이후 타 지역에 매장을 확장했다. 마스다의 기획은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예를 들어 서점의 책을 카페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해 북 카페를 만들었다. 고객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로 사업 방향을 정한

뒤에는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관련된 제품을 인접한 곳에 진열했다. 요리책 진열대 주변에 요리 도구와 요리 프로그램 수강권을 진열하는 식이다. 고객을 대하는 마스다의 자세가 가장 잘 드러난 매장은 2011년 도쿄 다이칸야마에 개점한 복합 상업 공간 ‘티사이트(T-SITE)’다. 그는 60세 이상의 노인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일본 사회를 꿰뚫어보고, 노인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공간을 기획했다. 먼저 노년층의 아침이 일찍 시작된다는 사실에 착안해 서점과 카페 오픈 시간을 아침 7시로 정했다. 노인들은 자가용 대신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는 점을 생각해 택시 승강장도 만들었다. 이 외에도 뷰티와 반려동물에 관심이 많은 실버 세대 여성들을 위해 에스테틱 살롱과 동물병원을 건물에 입점시켰다. 서적도 건강과 종교, 철학, 여행 등 노년층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들로 구비해서 고객의 만족감을 높였다. 츠타야가 단순한 서점을 넘어 음식, 주거,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문화 기획사’로 불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는 고객의 입장에 서기 위해 같은 매장이라도 아침, 점심, 저녁에 둘러본다고 한다. 때로는 출근하는 회사원의 마음으로, 또 다른 때는 20대 여성의 마음으로 매장을 찾아 고객의 취향을 헤아렸다. 그들의 요구를 실현하면 고객은 스스로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자산, 절망은 희망의 거름

 

오사카 히라가타 역 앞에 위치한 츠타야 본점(위)과 티사이트 다이칸야마점(아래).

오사카 히라가타 역 앞에 위치한 츠타야 본점(위)과 티사이트 다이칸야마점(아래).

 

마스다 무네아키는 어릴 적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교통사고로 생긴 얼굴의 큰 흉터 때문에 초·중학교 시절 내내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거기다 부모님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도 기울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스다를 바라지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마스다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때부터 그는 연약한 자신을 바꾸기 위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레슬링부에 가입해 몸을 단련했다. 체력이 생기자 점점 자신감이 붙어 따돌림을 주도한 친구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이때 마스다는 ‘자기 의지로 주어진 환경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패션 회사에 들어간 뒤에는 그 의지를 발판으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건축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마스다는 회사를 그만둔 뒤 츠타야를 설립해 승승장구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손댄 모든 사업이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츠타야 2호점을 열었을 때는 1호점의 성공 방식에만 기대어 똑같은 전략을 사용했다가 실패만 맛보고 문을 닫았다. 미국의 다채널 위성방송을 도입한 ‘다이렉트 TV’ 사업에도 뛰어들었다가 끝내 철수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재산과 신용은 물론 사업 자신감까지 모두 잃었지만 마스다는 “모든 실패가 성공의 기반이 됐다”고 말한다. 무모한 도전으로 사원들의경험과 지식이 늘었고, 서툴러도 진지하게 임한 것이 회사의 재산이 됐다는 것이다. 능력 이상의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마스다 무네아키. 그는 오늘도 고객의 입장으로 거리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