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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요리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대학생 김보윤, 이도화 멘토가 알려주는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

 

대학생 멘토 이도화(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 4 / 왼쪽) 대학새 멘토 대학생 멘토김보윤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 4/ 오른쪽)


 

조리와 디자인, 기획과 마케팅까지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임수미 멘티(이하 수미)─ 안녕하세요, 푸드 스타일리스트에게 필요한 지식을 집중해서 쌓을 수 있는 학과를 고민 중이었는데, 딱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 선배님들을 만나 다행이에요.
 
김보윤(이하 보윤)─ 나도 수험생 때 똑같은 고민을 했어요. 어디로 가야 하나 인터넷을 폭풍 검색하다 보니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이 실습수업도 많고 유일하게 현장실습 기회까지 주는 학교라서 믿고 선택했죠.
 
이도화(이하 도화)─ 우리 학교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은 조리, 디자인, 기획·마케팅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한식과 양식, 일식, 제과제빵, 식음료 등 조리 기초부터 응용까지 배우고, 디자인 분야에서는 푸드 스타일링, 테이블 코디네이트, 식공간 디자인 등 음식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지식을 쌓죠. 또 메뉴 개발과 전시 기획, 창업과 경영까지 현장에서 필요한 기획·마케팅도 배우고요.
 
수미─ 정말 다양한 걸 배우네요. 외식경영학과 쪽으로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곳에서 전부 배울 수 있어서 좋겠어요. 선배들은 어떤 수업이 제일 기억에 남았나요?
 
보윤─ 음, 힘들었던 과제가 기억에 남는데요.(웃음) 팀 과제 중에 레스토랑 메뉴 디자인을 하는 창업 관련 수업이 있었어요. 직접 레스토랑을 차려보는 시뮬레이션이었는데, 10명의 동기와 의견을 나눠 조율하고, 기획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죠. 어렵기는 했지만 애정을 쏟았던 만큼 결과물은 성공적이었어요. 그리고 좀 더 성장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죠.
 
도화─ 외부 실습 수업으로 현장 경험을 쌓은 것도 기억에 남아요. 지난 겨울방학에는 두 달간 푸드 스타일리스트 메이 선생님 밑에서 일해봤어요. 일본 가정식 요리, 차 문화 수업은 직접 체험해보니 이론과는 참 다르더라고요.
 
보윤─ 맞아요. 쿠킹 클래스나 케이터링 같은 교내 행사, 방송, 광고 촬영 같은 실습에 참가하면 색다른 경험과 공부가 된답니다.
 
수미─ 역시 실습이 중요하군요. 곧 4학년인데 선배들은 어디에 취업하고 싶으세요?
 
보윤─ e커머스 식품 회사가 목표예요. 푸드 분야는 취업처가 아주 다양해요. 푸드 스튜디오 취업이나 호텔, 대기업 취업에는 기업과 연계한 교내 인턴십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좋고, 음식 관련 강사가 되고 싶다면 교내에서 강의 경력을 쌓을 수도 있고요.
 
수미─ 지금은 막연하게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꿈만 갖고 있었는데 더 공부하면서 진로를 좁혀봐도 되겠네요.
 
도화─ 맞아요. 수미는 아직 어리니까!(웃음) 어떤 분야든 기초가 탄탄한 게 중요하니 자격증도 취득해놓고요. 수미는 조리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자격증은 문제없겠네요.
 
보윤─ 그리고 풍경이나 음식 등 사진을 많이 찍으면서 사진의 구도를 보는 시각도 넓혀보는 거예요.
 
대학생 멘토 김보윤의 포토폴리오
 

좌) 울산축산농협 ‘햇토우랑’ 브랜드 광고 영상 촬영. 소고기 8가지 부위를 마블링과 결이 살아 있게 담아냈다.
우) ‘하와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홈파티’를 주제로 식공간을 연출했다.

 

대학생 멘토 이도화의 포토폴리오

좌) 블루베리와 라임, 자몽 등 각종 과일 에이드를 촬영했다.
우) 국립중앙박물관, 샤넬, 티파니앤코, 아모레퍼시픽, 디뮤지엄 등 다양한 전시행사의 케이터링(Catering, 출장 연회)을 담당했다.

 

직업인 김보선 멘토가 알려주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직업인 멘토 김보선 (푸드 스타일리스트)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 모든 작업물에 책임감을 가져야

 

수미─ 멘토님이 생각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란 어떤 직업인가요?
 
김보선 멘토(이하 김 멘토)─ 주인공이 되는 음식의 특징을 살려 매력을 극대화하는 사람이죠. 예를 들어 물냉면은 시원한 국물이 생명이죠? 이럴 땐 놋그릇에 냉면과 살얼음을 담아 차갑게 김이 서린 느낌을 표현해요. 그리고 요리가 가장 맛있어 보일 수 있도록 어울리는 그릇과 매트, 소품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거예요.
 
수미─ 클라이언트는 보통 어떤 곳인가요?
 
김 멘토─ 매거진 에디터부터 식품 관련 업체, 에어 프라이어나 오븐 등 각종 가전기기 업체와 쇼핑몰, 홈쇼핑까지 음식이 주가 되는 업계가 모두 클라이언트랍니다.
 
보윤─ 시즌에 따라 비슷한 요리를 작업하게 되잖아요. 여름에는 과일이나 면 요리,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파티 음식처럼요. 매번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작업하는 게 힘들 것 같아요.
 
김 멘토─ 경력에 따라 요령이 생기니까요. 비슷한 요리를 찍어도 샐러드를 다른 구성으로 얹거나 접시를 새로운 걸 활용하면서 조정하고 있어요.
 
도화─ 매년 바뀌는 트렌드를 읽고, 거기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게 제일 힘들고 어렵더라고요. 멘토님은 푸드 스타일링의 아이디어나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김 멘토─ 외국 자료를 많이 접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아이디어가 돼요. 나무 둥치에 떨어진 열매의 컬러감을 보면서 ‘풀이나 돌 사이에 식재료가 놓이면 예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식이죠. 영화 속 음식 연출법, 책 속에 묘사된 요리를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여름에는 깔끔한 맛을 낸 디저트가 끌리는 법. 우유와 크림, 바닐라를 넣어 부드럽고 풍부한 맛을 낸 판나코타에도 과일 식초나 레몬즙을 넣으면 무더운 여름에 먹어도 부담이 없다. 사진 출처 신세계스타일


 
보윤─ 지금까지 결과물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어떤 것인가요?
 
김 멘토─ <하퍼스 바자>에서 요리를 예술적으로 찍는 아트 화보를 촬영한 적이 있어요. 그 화보가 좋은 평가를 얻어서 러시아판 <하퍼스 바자>에도 올랐었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마음에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만족도와는 다르게 제가 좋아하는 메뉴, 고기 요리나 떡볶이를 촬영할 때는 참 신나고요.(웃음)
 
도화─ 일을 할 때 가장 난감한 경우는요?
 
김 멘토─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너무 두루뭉술할 때가 힘들어요. 길잡이도 없이 ‘차분한 톤으로요’, ‘그냥 맛있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참 난처하죠.
 
도화─ 실습을 많이 해봤는데, 야근은 일상이더라고요.(웃음) 업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것도 힘든 점 같아요.
 
김 멘토─ 맞아요. 그래서 촬영 하루 전에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미리 장을 보고, 오이, 당근 등 갈변되지 않는 식재료를 씻거나 썰어둬요. 촬영하는 날에는 온전히 조리와 세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요.
 
도화─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때 이 일을 그만두지 않았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김 멘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함?(웃음) 난 일어일문학과 전공이었다가 요리에 관심이 생겨 업계에 뛰어들었어요. 내 결과물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가족과 주변 사람의 응원과 이해도 도움이 됐고요.
 
수미─ 일어일문학을 전공하셨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었나요?
 
김 멘토─ 학생 때 이 직업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때는 정말 생소한 직업이어서 푸드 스타일링을 교육하는 학교나 학원도 없었죠. 그래서 1호 푸드 스타일리스트 선생님 스튜디오에 들어가 어시스턴트로 이 일을 시작했어요.
 
보윤─ 어시스턴트라는 첫 단추는 어떻게 꿰셨나요?
 
김 멘토─ 난 ‘호텔신라 서비스교육센터’라는 곳에서 요리를 배우고,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1년간 주방 경력을 쌓았어요. 늘 주위 사람들에게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다녔죠. 그러다 보니 누군가 소개를 해주셨고요. 일단 주방에서 일했다는 것 자체가 체력과 칼질이 보증된 사람이다 보니 어시스턴트로 일할 수 있었죠. 그렇게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업계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선생님보다 촬영 단가를 낮춰서 작은 일을 맡아 시작했어요. 사실 클라이언트나 매거진 에디터가 신인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찾을 때는 포트폴리오보다 어떤 팀, 어느 선생님 밑에서 일했는지를 먼저 봐요. 그러다 보니 소개받아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도화─ 역시 자기 PR이 중요하군요.
 
김 멘토─ 요즘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자기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많으니 자기가 푸드 스타일링을 전공하고, 또 일하고 있다는 걸 많이 티 내도록 하세요!(웃음)
 
수미─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역시 조리를 잘해야겠죠?
 
김 멘토─ 그럼요! 요리의 성질과 특징을 알아야 업무에 도움이 되거든요. 특히 어시스턴트를 뽑을 때는 자격증 유무를 확인하기 때문에 요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두는 게 좋죠. 또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연출이나 비주얼도 하지만 독자들이 따라 해 먹을 수 있게 레시피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수미─ 이 직업은 어떤 사람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김 멘토─ 일단 끈기 있는 사람이요. 업계에서 입지를 쌓기까지가 굉장히 더뎌요. 어시스턴트 기간에는 요리보다 청소와 설거지에 더 시간을 보내고요. 월급도 박봉이라 서럽고 어려운 시기거든요. 게다가 만약 100만 원을 벌면 소품을 사느라 150만 원, 200만 원을 쓰는 직업이에요.
 
수미─ 헉, 그릇이나 소품은 매번 촬영 콘셉트에 따라 구매하는 건가요?
 
김 멘토─ 초기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그릇이며 소품이 어느 정도 모여서 ‘없는’ 것을 사는 것으로 바뀌었죠.(웃음)
 
도화─ 요리는 언제나 트렌드가 바뀌잖아요. 현직자가 돼도 요리 공부는 쉬지 못하겠어요.
 
김 멘토─ 맞아요. 요즘은 매크로바이오틱(식품을 있는 그대로 섭취해 제철 음식을 뿌리부터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식습관), 비건 음식이나 원색 배경에 그림자가 똑 떨어지게 요리를 놔두는 스타일링이 유행이지만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죠.
 
도화─ 그럼 어떤 걸 배우고 있으신가요?
 
김 멘토─ 외국 채소, 특히 향신료를 배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잘 활용하지 않는 것을 공부해야 해요. 외국 식재료는 국내로 들어오면서 맛이 변하고 향이 달라지기도 해서 현지에서 직접 먹어보기도 하죠.
 
수미─ 여행 가면 현지 음식을 정말 많이 먹어보고 오시겠어요.(웃음)
 
김 멘토─ 우리는 먹는 게 공부하는 거니까요. 소화제까지 챙겨갈 정도예요.(웃음) 해외여행을 가면 시장을 구경하면서 생선이나 과일을 먹어보고, 특히 1일 쿠킹 클래스를 꼭 신청해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영어로 가르쳐주고, 현지 레시피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터키나 태국으로 여행을 간다면 한번 들어보길 추천해요.
 
보윤─ 당장 여행을 가고 싶어지는데요.(웃음) 그러고 보니 멘토님이 패션 화보 속 푸드 스타일링에 참여한 걸 봤어요. 연예인과 함께 촬영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김 멘토─ 촬영장 분위기는 연예인이 만드는 편이죠. 음식이나 요리에관심이 있어 촬영용 요리를 직접 먹는 연예인도 있지만, 먹다 보면 메이크업도 지워지고 이에 끼기도 하니 먹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간혹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 촬영하면 무척 재밌죠.
 

방송인 이영자, 김숙, 홍진경, 최화정과 함께한 패션 화보. 이영자 앞에 놓인 한방 통닭은 큼직한 토종닭을 구해 수삼이며 대추, 찹쌀을 넣어 직접 준비했다. 맛을 아는 그가 촬영용이 아니라 진짜 먹을 수도 있으니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진 출처 코스모폴리탄


 
수미─ 그러고 보면 기술이 발달하면서 로봇이 레시피에 맞춰 요리를 해주는 시대가 온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에도 타격이 있지 않을까 걱정돼요.
 
김 멘토─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하지만 푸드 스타일링은 정해진 레시피에만 맞춰 요리하지 않아요. 계속해서 재료나 플레이팅에 변화를 줘 응용하는 직업이고, 또 감정적이고 예술적인 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죠. 아마 기술의 변화에 큰 영향은 없을 거예요.
 
도화─ 푸드 스타일리스트도 예술가라서 그렇겠군요. 멘토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인가요?
 
김 멘토─ 음식 관련 콘텐츠는 끝이 없죠. 현업에서 조금 물러나더라도 요식업계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할 수 있어요.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는 내 이름이 걸리는 작업물을 만들어요. “우아, 이거 누가 한 거야?”와 “야, 이거 누가 만든 거냐?”는 전혀 다르잖아요.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합니다. 세 친구 모두 곧 업계에서 만나길 바라요.
 

 
글 전정아 ●사진 손홍주, 김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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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롤모델] 따뜻한 독설가, 열정을 말하다

스타 셰프 고든 램지

 글 박성조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고든 램지,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타 요리사이자 레스토랑 경영인. 그러나 인터넷 인물사전의 분류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대중에게 고든 램지는 ‘열정’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스타 셰프이자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글로벌 외식사업을 이끄는 탁월한 경영자. 다른 한편으로는 TV 프로그램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식당 주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반대로 기가 죽은 요리사 지망생에게는 따뜻하게 격려를 건네는 방송인. 10대 시절 무릎 부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이 남자는 음식을 매개로 소통하며 많은 이들에게 ‘열정의 맛’을 전해왔다.

 

배울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감수하는 열정가

 

고든 램지는 1987년 노스옥슨 기술대학에서 호텔 경영을 전공한 뒤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화려한 레스토랑 경영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주방의 가장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하루 17시간을 일해야 했다. 그렇게 주방 일을 하며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와 알베르루 등 유명 셰프들에게 기본기부터 배워나갔다. 런던에서 일을 하던 고든 램지는 ‘요리의 고향’에서 더 배우겠다는 목표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 하고, 프랑스에 아무 연고도 없는 상태였지만 배움에 대한 집착이 그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급여나 근무 여건 등은 고든 램지의 ‘배움의 여정’에 고려되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 당시를 돌아보며 “월급 인상을 요구하는 일은 꾀병을 부리며 하루 병가를 내달라고 전화하는 것만큼이나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고 쓰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영국 런던으로 돌아온 고든 램지는 영국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 피에르 코프만의 주방에서 일하며 더욱 성장한다. 이후 1993년에 그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지는 수석 셰프 자리를 제안받는다.

마침내 자신이 이끄는 주방 팀을 가지게 됐지만, 고든 램지가 마주한 현실은 ‘인기 없는 낡은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나 고든 램지는 ‘오베르진’이라는 이름의 이 레스토랑을 살려낸다. 훌륭하고 현대적인 유럽식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맛으로도 인정받으며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그 중심에 있던 수석 셰프 고든 램지가 유명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베르진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고든 램지라는 이름을 알린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레스토랑에서 훗날 자신의 글로벌 브랜드를 함께 세워갈 동료들을 얻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하루 17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며 일을 배워왔다는 수석 셰프의 경험에 주방 직원들은 유대감을 느꼈고, 이후 고든 램지가 자신의 비즈니스를 꾸릴 때 기꺼이 손을 잡는 관계로 남았다. 그의 열정이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다.

 

영국에서 세계로, 레스토랑에서 미디어로

 

글로벌 롤모델 _ 1

 

1998년 고든 램지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옛 스승인 피에르 코프만이 자신의 레스토랑을 옮기면서 매우 싼 가격에 그 자리에 가게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스승의 배려로 고든 램지 앳 호스피털 로드’가 시작됐고, 레스토랑은 이내 명소로 떠올랐다. 장인어른이 비즈니스를 이끌어주는 사이 셰프인 고든 램지는 음식과 레스토랑 관리에 집중해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다. 이후 그는 영국 곳곳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갔고 2001년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베르’를 열면서 해외로 진출했다. 2006년엔 미국 지점 ‘고든 램지 앳 런던’을 세우면서 뉴욕에도 깃발을 꽂았다.

고든 램지가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셰프이자 외식 사업가로 성공한 이 시기 즈음이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늘려나가던 2004년 이후 <헬스 키친>, <키친 나이트메어>, <마스터 셰프> 등에 출연하며 외식업계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향력 있는 스타 셰프로 떠올랐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주방 경험과 훌륭한 셰프들에게 배운 탄탄한 기본기가 방송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방송에서 그는 어릴 때 좋지 못했던 가정환경을 비롯해 자신의 지난날을 종종 언급하기도 한다. 축구선수로서의 좌절, 고된 주방 생활, 무작정 요리를 배우기 위해 감행한 프랑스 생활 등이다. 고든 램지의 거침없는 욕설이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이해되는 것은 이와 같은 삶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Stop doubting yourself. Be bold(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 담대해지세요.).”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에서 시각장애인 도전자에게 따뜻하게 건넸던 말이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 곧 그가 삶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그 모습 때문에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 독설가 요리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맛있는 인생

오세득 셰프

 

‘셰프(chef)가 대세’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스타 셰프들 가운데 ‘아재 개그’라는 유쾌함으로 주목받는 오세득 셰프. 그가 요리하는 인생의 맛은 무엇일까?

글 이정호·사진 백종헌

함께 맛보고 즐기는 곳이라면 주방이 아니어도 좋아

셰프테이너라는 말이 생길 만큼 셰프들의 방송 진출이 활발하다. 오세득 셰프도 그 중심에 있는데, 너무 바빠서 쉬지도 못하는 건 아닌지.

바쁘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나 역시 방송에서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방송할 기회가 온 걸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방송은 오히려 나에게 쉼, 휴식을 준다. 요리에 관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 재충전한다는 기분이다.

방송을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졌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 방송인이나 연예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셰프라는 본업에 따라 충실히 요리하는 것뿐이라고 여긴다. 레스토랑에서 얼굴을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할 땐 아직도 쑥스럽긴 하다.(웃음) 뭔가 자유롭지 못한 면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말과 행동을 늘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방송의 영향력 덕에 요리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때보다 높아져서 기분이 좋다.

이렇게까지 요리 방송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세상은 경쟁과 순위에 집착한다. 요리 방송도 대결하고 등수를 매기고 승부욕을 자극하는 구도지만, 절대 기준이 없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내가 보기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낮게 평가되고, 애매할 것 같은 요리가 일등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등이든 아니든 함께 맛보고 즐기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래서 요리사는 부담 없고, 먹는 사람은 행복하고, 시청자도 그 즐거움을 공유하게 되어 인기를 끄는 게 아닐까? 셰프가 알려주는 팁을 바로 집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소소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방송 덕분에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이 많아졌을 것 같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 “예약하려고 하는데 그날 셰프 있어요”라는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셰프를 예약하려는 건지 음식을 예약하려는 건지 헷갈린다.(웃음) 오세득이라는 셰프가 보고 싶어서 레스토랑에 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내가 모든 요리를 다 하지는 않는다. 아주 미세한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없어도 음식의 맛은 늘 일정하다. 중요한 건 식당이 내놓은 음식이고 서비스니까 셰프에 대한 관심보다 식당에 대한 신뢰를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시간이 특별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내가 주방에 있고 없고를 떠나 자신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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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꿈의 레시피를 밟다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방송에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던데, 어릴 때 왠지 개구쟁이였을 것 같다.

맞다. 사고뭉치로 유명했다.(웃음) 야구 하다가 아파트 유리창 깨먹고, 구슬 놀이 하다가 너무 세게 튕겨서 유리창 깨고…. 넘어지고 다쳐서 꿰매기 일쑤였다. 동네에 꼭 한 명은 있는 그런 말썽쟁이였다. 사고를 치면 잽싸게 도망가기 바빴는데 얼마 못 가 어머니에게 잡히곤 했다. 어머니가 육상 선수에 배구 선수까지 지낸 분이라 나보다 훨씬 발이 빨랐다.(웃음)

누구 못지않은 개구쟁이였다니 요리사가 된 지금 모습이 낯설어 보인다. 요리사란 직업을 처음 접한 적은 언제였나?

고등학생 때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미군방송(AFKN)에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 프로에 나이 많은 중국인 요리사가 나왔는데, 빠른 손놀림으로 15초 만에 후다닥 닭 손질을 마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뭐지’ 호기심이 생겨 계속 보다 보니 그 요리사가 방청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주 쉽게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거였다. 마치 토크쇼처럼 진행하는 걸 보면서 ‘어, 요리가 재미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요리사란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셰프가 되기 전 실습생 시절이 힘들고 고되지는 않았나?

주방의 막내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창고에 있는 식재료를 정리하고, 구입한 식재료를 받으러 가고, 선배들이 요리할 재료를 썰고 다듬고 설거지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뭐든지 선배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좋았고,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낼 자신감이 있었다. 막내니 까 창피한 것도 없고 뭐든 즐거웠다.

남다른 각오로 유학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라고 하던데.

아침 8시에 수업이 시작해서 6시 30분쯤 일어나 후다닥 씻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40분쯤 걸려 학교에 도착하면 곧바로 요리 복장을 갖추고 오후 1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난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는 호텔 레스토랑의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했 다. 배운 걸 실전에 활용해보고 싶고, 현지 레스토랑의 분위기도 알 고 싶어서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 그런데 잘 수가 없었다. 다음 수업을 위해 예습, 복습을 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네 시간만 자고 공부했으니 그때처럼 치열하게 살 았던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다면 일류 대 학에 갔을 거다.(웃음)

요리사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힘이 되어준 멘토가 있다면 누구인가?

실습생 시절에 만난 김후남 셰프님이 내 요리사 인생의 스승이다. 늘 본받고 싶은 그분 덕에 셰프로서의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수 있 지 않았나 싶다. 스승님은 여러 나라의 식재료를 다채롭게 활용해 맛을 냈는데, 종종 “양식만으로는, 한식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고 말씀하셨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많이 알고 받아들이는 것, 곧 다 양성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그 말씀을 되새기며 다양한 퓨 전 요리를 개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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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셰프의 재료가 된다

요리사로서 느끼는 요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함께 맛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한 다’는 것이 요리의 매력이다. 음악도 그렇지만 여럿이 평가하고 공 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요리다. 음식의 맛을 손님이 정확히 알아맞 히면 요리사와 손님은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소통한다. 또 하나의 요리가 만들어지려면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부, 식재료를 납 품하는 판매자, 만든 요리를 소비하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레스토랑도 셰프의 능력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함께하는 직원들과 늘 대화하고 토론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한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는 요리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요리를 식탁 위의 예술이라고 극찬하기도 하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요리에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에 감동이 있는 것처럼 훌륭한 요리를 먹고 나서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요리사에 대한 고마움뿐 아니라 몸도 감동하는 걸 느낀다. 좋은 음식만큼 좋은 약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또 요리에는 다른 예술 분야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글지글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내겐 음악처럼 들린다. ‘치익-’ 소리가 날 때 ‘이쯤에서 뒤집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거다. 음악의 클라이맥스를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할까.

가장 아끼는 요리 도구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칼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셰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리사에게는 전용 칼이 있다. 자기 손에 익숙한 칼. 그렇다고 한 가지만 쓰는 건 아니고 여러 종류의 칼을 때에 따라 골라 쓴다. 어떤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셰프에게 칼은 야구 선수의 전용 배트, 탁구 선수의 전용 라켓과도 같다. 출장 요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커다란 가방에 나만의 전용 칼들을 넣어서 가지고 다닌다.

일을 하면서 가장 자긍심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요리가 참 재밌는 점은, 요리에 세대 차가 없다는 거다. 주방에서는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서서 일한다. 음식 앞에서는 자기 생각과 의견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세대 간의 격차가 좁혀지는 것 같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마찰을 일으키기 쉬운데, 요리 세계에서는 젊은 세대가 선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요리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이가 들면 나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싶다. 소통하며 함께 발전하는 것, 그것이 요리사라는 직업에서 얻는 보람이 아닐까

일 때문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푸나?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하고 내버려둔다. 못하는 것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 법이니까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인정한다. 외국의 어느 유명한 셰프는 자기가 운영하던 식당이 ‘미슐랭’에서 별 세 개를 받다가 두 개로 강등할 거란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거다. 별 개수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머리를 식히면서 쉬고 싶을 때는 여행하거나 식재료를 사러 다니며 기분 전환을 한다.

다른 매체의 인터뷰나 방송에서 오세득 셰프의 레스토랑 경영 철학이 관심을 끌었다. <MODU> 독자들에게도 소개해주면 좋겠다.

아, 그거!(웃음) 나의 경영 철학은 딱 하나다. ‘주방 때문에 홀 직원이 욕먹게 하지 말자.’ 제대로 만들지 못한 음식이 나가면 셰프가 아니라 홀에서 일하는 직원이 욕을 먹는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요리사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홀 직원이 창피하지 않을 음식을 만들자.” 손님과 직원은 다 존중받아야 한다. 잘못된 요리로 직원이 폭언을 듣고 상처 입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셰프로서, 레스토랑 운영자로서 지녀야 할 목표다.

셰프로서 손님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역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란 말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이 있다. “이번 음식은 좀 과했던 것 같아요. 이건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는 뼈 있는 말이다. “셰프님 음식이 최고예요”라든가 “이런 음식 난생처음 먹어봐요” 같은 극찬보다 냉정한 평가를 해줄 때 ‘더 노력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하게 된다. 그런 손님들이 다시 레스토랑에 찾아주면 뿌듯함을 느낀다.

셰프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한때는 셰프를 ‘스나이퍼’라고 생각했다. 손님의 입맛을 한 번에 사로잡는 저격수. 손님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불만 사항이 들어오고, 그러면 식당이 쑥대밭이 되고 만다. 요즘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셰프는 스펀지다.’ 셰프는 뭐든지 다 흡수해야 한다. 원치 않는 얼룩이어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요리를 대할 때, 나이가 들어도 정체되지 않는 창의적인 셰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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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 치는 요리사

요리를 가르칠 때 강조하는 말은 무엇인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늘 이렇게 말한다. “배워서 남 주자. 배운 게 없으면 남에게 줄 게 없다. 배워서 남에게 줘야 내가 편하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처럼 나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한다. 나와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열정으로 달려가는 친구들과 함께 요리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되새기는 좌우명이 있나?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 뜻을 풀이하면 ‘천지자연의 도리를 만물에게 나눠주는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리를 올바르게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이다. 이 말뜻에 따라 내가 배운 요리를 계속 남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운명 같은 거라고 할까.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듣고 싶다.

세상을 좀 더 맛있게 변화시키는 ‘소금 치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두 가지 일을 계획하고 있다. 노인복지 사업과 재소자 교화다. 노인복지 사업은 할머니들이 집밥을 만들고 할아버지들이 식사 시간에 맞춰 배송하는 식의 사업이다. 일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을 도와주고 싶다. 재소자 교화의 경우, 요리가 그들의 교화뿐 아니라 출소 후 사회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올해 말에는 요리 학원을 열 계획이다.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요리 레시피 책을 내보자는 제안도 많이 받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식재료로 무궁무진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셰프가 되고 싶은가?

지금과 같이 좋은 상태라면 다시 셰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황이 좋지 않다면 당연히 다른 공부를 해서 다른 직업을 찾을지도 모르고.(웃음) 만약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외국어를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싶다. 외국 음식과 문화도 미리 경험하고 싶고. 요리 면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양식보다 한식을 먼저 배우고 싶다. 한식이 양식보다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음식을 먼저 알아야 다른 나라의 음식을 우리 입맛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꼭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리사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두 가지를 물어본다. ‘어떻게 살려고 하나’ ‘요리 일을 얼마나 할 생각인가’ 요즘 셰프들 사이의 걱정은 방송 때문에 요리사가 너무 갑자기 떠버렸다는 거다. 요리사들이 열심히 해서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젠가 쿡방의 인기가 시들해지면 요리사에 대한 관심도 떨어질 테니까.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양식 분야가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많은 청소년이 요리계로 뛰어든다. 그래서 정말 이 악물고 해볼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정말 잘할 수 있다면, 어떤 힘든 상황이든 포기하지 말고 자신만의 전공 분야를 개척하며 연구하고 몰입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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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득 셰프가 들려주는 셰프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MODU> 매거진과 가나출판사가 함께 만든 단행본 <리얼 셰프>를 확인하세요. 셰프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언을 멘토 오세득 셰프가 콕콕 짚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