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ags Posts tagged with "롤모델"

롤모델

0 473


6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한 바로 그곳! 국내 최대 규모의 직업 테마 전시 체험관 한국잡월드가 내년10살을 맞는다. 지난 9년간 어린이와 청소년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직업 세계를 탐구한 한국잡월드에서 내 꿈도 찾아볼까?


FOR 5살부터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체험관
보상으로 받는 한국잡월드만의 화폐 ‘조이’로 기념품 숍에서 물건도 살 수 있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만든 직업 마을에서 놀이로 체험하는 직업 테마 놀이 공간이다. 4시간 동안 원하는 체험실을 찾아다니며 직업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소방서, 택배 회사 등 어린이들이 주변에서 자주 만날수 있는 공간이라 흥미를 끈다. 특히 한 개의 체험이 끝날 때마다 받는 카드 수료증을 모두 모아 퍼즐을 완성하면 선물도 받을 수 있다.

관람료
평일_어린이 1만6000원, 보호자 8000
주말_어린이 1만8000원, 보호자 9000


FOR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체험관

어린이체험관과는 달리 청소년체험관은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사전에 예약하고 1시간 동안 역할연기를 통해 직업체험을 즐기는 시스템이다. 경호회사, 과학수사센터와 같은 공공서비스, 인터넷쇼핑몰과 증권회사 등 경영금융, 게임개발회사, 녹음 스튜디오 등 문화예술, 고성능차디자인센터와 우주센터를 경험해볼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직업들을 체험할 공간을 마련했다.

관람료
평일_청소년 8000원(당일 체험 추가 시 5000원)


FOR 내 흥미와 재능이 궁금한 친구들
진로설계관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잘할까? 청소년체험관에 들르기전, 내가 가진 흥미와 재능부터 알아보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진로설계관에 먼저 가보자. 직업 상담을 받을수 있는 진로설계관에서는 기존의 지필형 검사 대신 놀이형 검사를 통해 미션을 수행하며 결과에 따라 나에게 꼭 맞는 직업도 추천해준다. 추천받은 직업으로 체험관에서 체험해보면 몰입도도 UP!
관람료
청소년 3000원(청소년체험관 이용 시 무료)


FOR 직업 세계를 한눈에 둘러보고 싶은 친구들
직업세계관
과거, 현재, 미래를 이끄는 국내외 여러 인물을 만나 꿈을 향한 도전 의지와 태도를 배우고, 너만의 롤모델도 정해봐!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미래에는 어떤 첨단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까? 1000여 개의 직업을 영상과 시뮬레이션 체험으로 배워 변화하는 세상과 스마트 치료실, 3D·4D 프린팅과 인공지능 로봇, 스마트 시티, 증강현실 등 미래 기술을 알아보자.
관람료
어린이·청소년 3000원, 보호자 4000원(체험관 이용 시 무료)


FOR 기술 마스터가 되고 싶은 친구들
숙련기술체험관

숙련기술체험관은 지난해 개관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된 숙련기술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을 융합한 기술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첨단기술, 기초기술, 전통기술 세 가지 주제로 다양한 기술을 체험해보자. 철골 구조물의 원리를 이용해 가상의 섬을 연결하는 교량을 만들어보는 ‘환상의 섬’, 냉동 공조 설계 기술을 이용해 방탈출 게임을 즐기는 ‘시크릿 퍼즐’, 표면처리 기술로 금과 은을 도금하는 ‘연금술학교’ 등이 있다.
관람료
청소년 5000

INFORMATION
장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수서로 501
운영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휴관일 매주 일요일(숙련기술체험관 매주 일,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연휴
관람료 체험관별 상이
문의 www.koreajobworld.or.kr1644-1333

전정아 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
글 전정아 ● 사진 한국잡월드

지금은 누구나 문제라고 여기는 인종차별, 성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누군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던 때, 법 또한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 일쑤였던 시대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연방의 대법관으로서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반대하며,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 인물이다.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33년 뉴욕 브루클린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정한 부모님 아래 자란 그는 특히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분노에 휩쓸리지 마라’, ‘독립적인 사람이 돼라’고 가르쳤으며, 배움을 강조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책을 좋아하는 총명한 학생으로 자란 그는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학교에 진학해 법을 전공한다.
루스 베이더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견해나 사상이 다른 사람들은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이처럼 부당하게 탄압을 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했던 사람들이 바로 변호사였다. 이를 본 루스 베이더는 자신도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1956년, 로스쿨에 진학한다. 로스쿨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그는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구직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차별이 만연했던 당시 유대인, 여자, 엄마를 채용해줄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낮은 성적으로 졸업한 남학생은 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이 평생 해나갈 일을 깨닫는다. 바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에 맞서는 것이었다.

 

 

법으로 차별에 맞서다

루스 베이더가 변호사로 활동하던 때는 법에서부터 차별을 명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임신 여성을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다’, ‘남편은 아내 성폭행으로 기소될 수 없다’와 같은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이에 불합리함을 느낀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이때부터 성차별에 관한 사건을 맡기 시작한다. 그렇게 처음 맡은 사건이 1972년,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다. 이는 기혼 남자들이 받는 주택 수당을 여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하는 데 부당함을 느낀 프론티에로가 소송을 건 것이다. 루스는 이 사건에 자원했다. 승소할 경우, 이 판결이 성차별 법률 폐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패소.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 성차별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대법관을 설득시켜야 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구두 변론을 준비했고, 결국 승소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성차별을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불법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에 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루스 베이더는 계속해서 성차별에 관한 사건을 맡았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받는 차별을 다룬 사건을 맡아 성차별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와 자격을 누릴 권리를 빼앗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나는 반대한다”

20년간 변호사로서 차별을 철폐해온 루스 베이더를 눈여겨본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다. 사람들은 루스 베이더가 금방 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빌 클린턴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루스와 함께 새로운 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그를 미국 연방 대법원의 107대 대법관으로 지명한다.
그는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에 취임한 후에도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가장 먼저 맡은 사건은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다. 당시 버지니아군사대학교는 개교 이래 150년간 남자 생도만긴즈버그받았다. 남학생을 기준으로 한 신체 기준을 총족하며, 생도 과정을 이수할 능력이 있어도 단지 여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에 긴즈버그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여성의 동등한 기회를 제한하는 법률의 효력은 소멸할 것이며 여성의 뜻과 성취와 참여는 제한될 수 없고 여성도 능력에 근거해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보수 성향이 짙은 다수의 대법관이 임명되자,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는 상황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그는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낭독했다. 판결이 소수의 편이 아니더라도, 루스 베이더의 반대의견은 소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자 변화의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현직 미국 연방 대법관 아홉 명 중 최고령자인 루스 베이더는 역대 최고령 연방 대법관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췌장암을 판정받아 많은 이들이 걱정했지만, 이를 딛고 다시 대중 앞에 나섰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모든 이들이 ‘자유로운 너와 내가 되는’ 날까지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글 김현홍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MODU 정기구독 신청(계좌이체) MODU 정기구독 신청(카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목할 만한 유망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드론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조종과 비행이 가능한 드론은 처음에 군사용 무인항공기로 활용되다 현재는 택배, 공중촬
영 등 다양한 산업에 널리 쓰이며 대중화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이 드론을 취미로 즐기게 되면서 드론 시장이 급성장했는데, 이런성과를 이끈 기업이 중국의 DJI다. DJI는 뛰어난 기술력을 선보이
며 중국을 넘어 세계 최대 드론 업체로 성장했고, 현재 업계 1위로 꼽히고 있다. ‘드론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DJI는 어떻게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글 강서진 ● 사진 REX, 위키미디어커먼즈

 

세계 1위 드론 기업으로 성장

 

DJI는 2018년 4조 8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DJI는 세계 드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한 미국 ‘애플’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JI가 세계인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건 창업자이자 CEO인 왕타오가 ‘품질 제일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DJI 전체 직원 중 약 30%가 드론 기술 연구원으로, 왕타오는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DJI가 세계 1위 기업이 되는 데 신호탄이 된 제품은 2012년 출시한 ‘팬텀’이다. 팬텀은 비행 중 발생하는 진동을 흡수하는 ‘짐벌(gimbal)’ 장치를 달아 바람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기체가 흔들리지 않으며, 카메라를 장착하고 5km를 비행할 수 있다. 당시의 제품들은 바람이 불면 드론이 심하게되자 큰 인기를 끌었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장치를 갖춘 완제품을 개발한 것도 특징이다. 과거에는 드론의 본체와 영상 촬영 장치, 비행 제어 장치 등 주변기기나 프로그램을 일일이 조립해야 하는 DIY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왕타오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드론의 필요성을 파악하고, 고화질 카메라와 영상 송출 장치 등 항공 촬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드론을 내놓았다. 또 스마트폰 앱으로 드론을 제어하거나 20km 이상의 장거리를 비행하는 제품, 작고 가벼운 접이식 드론 등 대중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했다. 이 밖에도 10kg 이상의 무거운 물체를 실어 나르는 농업용 드론과 전문 영상 장비 등 다양한 산업용제품을 출시하며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제품의 품질 외에 저렴한 가격과 발 빠른 신제품 출시 전략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인이다. DJI는 수백 개에 이르는 특허 기술로 5~6개월마다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신제품을 선보인다. 보통 2~3년마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드론 업체들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정책이어서 DJI 제품이 드론 시장을 선점할 수밖에 없다. 또 본사와 공장이 인접해 부품이나 제품 운송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제조 원가를 낮추고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우수한 품질, 세련된 디자인, 저렴한 가격을 모두 갖춘 DJI 제품은 전체 생산량의 80%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드론’만 생각한 열정이 성공의 밑거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왕타오의 자산을 약 3조 5000억 원으로 추산하며 최연소 억만장자로 꼽았다. 올해 39세인 왕타오가 일찍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좋아하는 일을 뚝심 있게 해왔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모형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던 왕타오는 원격조종 헬기를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미국 MIT와 스탠퍼드 대학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사범대는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했다.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공대에 다시 도전한 왕타오는 홍콩과학기술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원격조종 비행 시스템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학점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무선 헬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빛났고, 그런 재능을 높이 평가한 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비행 시스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된 왕타오는 홍콩 로봇 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우승 상금으로 DJI를 창업했다. 왕타오는 책상과 침대만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생활하며 드론 개발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소형 헬기에 연결하는 영상 장치를 개발하다 2008년에 4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카메라를 장착한 ‘팬텀’을 개발하고 창업 6년 만에 사업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직접 소형 헬기를 다루며 느꼈던 단점을 개선하고자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하려 노력했고, 팬텀은 그 목표가 그대로 실현된 제품이었다. 기존 드론과는 달리 교육
과 훈련을 받지 않아도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 대중의 눈길을끈 것이다.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DJI가 전 세계에 진출하고, 1만 2000여 명의 직원을 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건 소비자 입장에서생각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철칙 때문이다.

 

글 이수진 ● 사진 발뮤다(BALMUDA)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홍차와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특정한 상황에서 겪은 미각, 후각 등의 감각적 체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특히 기분 좋은 경험이라면 더욱 그렇다.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은 맛있는 빵 냄새, 창문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처럼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분 좋은 순간을 발뮤다의 가전제품에 담았다.

테라오 겐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17살 때 배낭여행을 하다 스페인에서 배고픔 끝에 갓 구운 빵을 먹은 적 있다. 그는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고 어른이 될 때까지 그 맛을 잊지 못했다. 사업가가 된 테라오 겐은 스페인에서 먹었던 빵 맛을 기억하며 발뮤다의 토스터를 만들었다.

 

사용할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가전제품

 

일본의 가전제품 회사인 발뮤다의 기본 철학은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가전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발뮤다가 지금까지 만든 제품은 노트북 거치대 ‘X-베이스’, LED 스탠드 ‘에어라인’, 난방 기기 ‘스마트히터’, 공기청정기 ‘에어엔진’, 가습기 ‘휴미디파이어’, 공기 순환기 ‘그린팬 서큐’, 선풍기 ‘그린팬’, 전기 주전자 ‘더 팟’, 토스터 ‘더 토스터’, 전기밥솥 ‘더 고항’까지 총 10개의 제품이다.

테라오 겐은 특정한 순간에 경험하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가전제품 기술에 구현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를 가전제품이라는 가시적 도구에 담은 것이다. 이를테면 발뮤다의 토스터는 여행지 스페인에서 맛본 빵의 맛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테라오 겐이 스페인에서 먹은 빵은 갓 만들어진, 속은 부드럽지만 겉은 바삭한 빵이었다. 발뮤다의 토스터는 그런 식감의 토스트를 위해 기존의 굽기 방식에 스팀 기능을 추가했다. 수분을 더해 속은 부드럽게 유지시키면서겉을 바삭하게 구워주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좋은 그린팬 역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순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그린팬은 이중나선 구조로 팬의 모양을 독특하게 만들어 창문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을 구현한 기술이다.

 

아이디어부터 제조까지 혼자 시작한 창업

발뮤다가 제일 먼저 만든제품인 노트북 거치대 ‘X-베이스’ .

 

테라오 겐은 발뮤다를 창업하기 전 뮤지션을 꿈꿨다. 고등학교 시절문과, 이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학교를 그만둔 그는 배낭여행을 떠나 1년간 지중해 부근을 방랑한다. 테라오 겐은 그때의 고생스러운 여행을 통해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돌아온 뒤 록 스타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결실을 얻지는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한 음악을 과감히 포기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작곡을 하기 위해 사용한 컴퓨터와 의자의 활용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곧, 도구는 자신의 일상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테라오 겐은 더 나은 도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스스로 제품을 개발하고 디자인하기 위해 전자상가를 열심히 다니며 전자 기기의 구조나 소재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뒤 생산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계 작동법, 알루미늄 및 스테인리스 스틸 가공과 조립 등의 작업을 익혔다. 현장에서 온몸으로 기기 제조를 익힌 뒤에는 CAD를 배웠고, 마침내 발뮤다의 첫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노트북 거치대를 만들었다. 판매를 위해 테라오 겐이 선택한 전략은 ‘니치(Niche)’였다. 니치란 틈새를 공략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테라오 겐은 애플의 매킨토시 노트북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주 구매층으로 잡았다. 테라오 겐은 매킨토시 사용자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만든 노트북 거치대를 홍보했다. 발뮤다의 첫 제품은 특정 소비층을 공략한 기발한 발상이었지만 곧 파산 위기에 처하고 만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를 맞은 사람들의 소비생활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기업 발뮤다의 첫 제품이 출시됐을 때 회사 직원은 테라오 겐을 포함해서 단 3명이었다. 당시 판매고는 4500만 엔, 적자는 1400만 엔, 빚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었다. 파산 위기를 느낀 테라오 겐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회사가 망하더라도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에 그린팬을 만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린팬은 사람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회사도 급성장하게 된다. 또한 특정 소비층의 인기를 얻는 대신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자국 내 작지만 강한 기업을 거론할 때 ‘모노즈쿠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가 합쳐진 말이지만,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발뮤다 역시 모노즈쿠리, 즉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직원 수가 70여 명으로 여전히 작은 회사지만 매체와 업계, 대중은 발뮤다를 주목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이 확고하다는 점에서 발뮤다는 성공한 기업이다. 그러나 테라오 겐은 아직은 발뮤다의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대중의 주목을 받은 지 5년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필요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기기의 뒷면과 부속품까지 완성도 높은 기능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발뮤다라면, 앞으로도 혼신의 힘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모노즈쿠리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