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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 창간 5주년 기념호가 발행되었습니다.

 

2016년 6월호 Vol.45

 contents

06MODU가 MODU에게

0810대들의 10대 뉴스

12MODU에게 온 편지

16COVER STAR

장재혁(서울 대원고 3) & 이혜나(부산 예문여자고 3) & 허재원(서울 경희여고 3) & 안나현(서울 염광여자메디텍고 2) & 박건희(대구 정동고 1)

24창간 5주년 기념 이벤트

SPECIAL Dreaming of the future with ROBOT

28미래 직업 예보

로봇의 역습, 나의 일자리는?

32주목! 생생 인터뷰

로봇공학자

38꿈꾸는 모두

로봇과 함께하는 미래

45MODU의 채널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

46글로벌 롤모델

테슬라 모터스 CEO 일론 머스크

48더블 멘토링

조물조물 꿈을 빚는 예술인, 조각가

56이 대학 어때

스마트하게 대학 가자! 경희사이버대학교

60학셔너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vs 동국대학교 다르마 칼리지

64요즘 뜨는 학과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66모두의 공부법

6월 모의고사 그 후, 입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70편의점 습격사건

제가 한번 먹어봤습니다.

73경청기가 간다

경기도는 지금

74도서관에서 진로 찾기

바야흐로 로봇 시대

76영화관에서 자아 찾기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77개봉작 20자평

78MODU의 문화

80강기자의 건강 클리닉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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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휘황찬란함을 더하라

퍼레이드 조형물 제작 감독

 

퍼레이드에서 군무를 추는 연기자들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것이 있으니, 바로 거대한 퍼레이드 카다. 알록달록한 자태에 반짝반짝 조명으로 장식한 대형 조형물은 과연 누가 만드는 것일까? 퍼레이드 카부터 이벤트 장식물까지, 테마파크의 감칠맛을 더하는 퍼레이드 조형물 제작 감독에 대해 알아보자.

글 지다나·사진 이동훈, 테이너

 

 

 

머릿속 환상을 눈앞의 현실로 구현하는 일

퍼레이드 조형물 제작 감독은 말 그대로 퍼레이드에 필요한 조형물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다. 엔진으로 움직이는 퍼레이드 카부터 사람의 힘으로 작동하는 플로트(Float), 무대에 쓰이는 각종 도구, 테마파크의 조형물 등 그 영역은 굉장히 넓다.

퍼레이드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 초안은 전문 디자이너가 하지만, 이 스케치를 실제 조형물로 만드는 것은 제작 감독의 몫이다. 조형물이 어느 곳에, 어떻게 쓰일지에 따라 크기와 재료, 구동 방식 등을 결정한다. 조형물의 사용 기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디자인, 조각, 도색, 조립, 기계장치 등 여러 분야의 이해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퍼레이드 조형물은 어떻게 완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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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감각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

조형물 제작 감독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직접 디자인 작업을 하지 않아도 형태와 색에 대한 눈썰미가 있어야 감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완성된 조형물이 정해진 공간에 세워져 있거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공간 감각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구동장치를 만들기 위한 전기, 기계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원만한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해야 한다. 또한 최종적으로 제품을 검토하고 관리하므로 결단력과 책임감, 리더십이 필요 하다. 조형물 제작 감독이 되기 위한 교육이나 면허, 자격증은 없지만 조소과나 공예과 같은 미술 계통 전공이나 재료공학과, 기계공학과 등을 전공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경력을 쌓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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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장점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성취감이 굉장히 높다는 거예요.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것이 눈앞에 형체를 드러낸다고 생각해보세 요. 게다가 내가 만든 작품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정말 잘 만들었다고 평가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단점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에요. 이 기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곳은 없어요. 오로지 현장에서만 경력 을 쌓을 수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찬 때는 언제였나요?

매년 여수에서 거북선 축제가 열려요. 몇 년 전, 퍼레이드에 쓰일 판옥선을 만든 적이 있는데 마침 여수세계박람회 때문에 우리나라를 방문 한 외국인 고위 관리자들이 축제를 즐기러 왔죠. 그분들이 판옥선을 보며 자기들도 올라타보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한 게 기억에 남네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사실 변수가 많거든요. 아무리 치수대로 정확하게 만들어도 실제로는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완성해나가는 게 진짜 재미있어요.

이 직업을 갖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자질이 있다면요?

총감독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을 하거나 전기 작업을 하지 않지만, 그 것을 관리하고 감독하려면 어느 수준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또 여러 사람과 일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좋고, 리더십이 있으면 좋겠죠. 아무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작업이니 창의력까지 갖췄다면 정말 훌륭하고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 이 일은 경험을 쌓을수록 실력이 늘기 때문에 꾸준히 일할 수 있는 끈기만 가지면 돼요.

직업의 전망은 어떤가요?

단순한 이벤트 장식품을 제작하는 곳은 많지만, 퍼레이드 카부터 무 대 제작까지 소화하는 곳은 별로 없어요. 게다가 이를 전반적으로 관 리,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 국내보다 중국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지역 축제가 늘어나면서 수요는 꾸준히 있는 편이에요. 놀이공원이나 체험관 등에 있는 조형물을 보면 서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고 호기심을 가져본 친구들이라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친구라면 경력이 없더 라도 얼마든지 즐겁게 가르쳐주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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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딩에게 교복이 있다면, 대딩에게는 과잠이 있다. 학교, 학과에 대한 소속감 수치를 100% 올려주는 것은 물론, 활동하기에도 편하고 보온성도 뛰어난 아이템이니 어찌 아니 입을쏘냐. 수도권 대학 10곳의 톡톡 튀는 개성이 담긴 과잠만 모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다면 대학도 콕 짚어보길.

글 지다나·사진 손홍주·제품 협찬 타운어스
대학별 ‘과잠’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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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동글동글 귀여운 서체가 눈에 띄는 카이스트의 과잠. 더 눈에 띄는 건 학교 휘장(UI)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오일러의 공식이 있다는 거다.

서울대학교
골드와 버건디 컬러의 컬래버레이션이 ‘내가 바로 서울대생이다’라는 포스를 뿜어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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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멋을 아는 ‘패피’라면 꼭 한 벌쯤 갖고 있는 헤링본 스타일. 서강대는 댄디한 느낌을 살린 헤링본 스타일을 과잠바에 접목했다.

고려대학교 & 연세대학교
숙명의 라이벌은 과잠에서도 계속된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학교의 상징색에 맞춰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무장했다. 고려대 호랑이와 연세대 독수리 패치도 빠뜨리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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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 명지대학교
가장 많은 대학생이 선택하는, 무난한 디자인. 경희대는 톤온톤 컬러를 매칭해 시크함을 살리고, 명지대는 블랙과 화이트 컬러로 발랄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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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핑크 마니아들이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질 스타일! 여대에서는 핑크 컬러 과잠바가 유행이다. 성신여대 불어불문학과는 파리 에펠탑을 넣는 센스도 발휘했다.

한국교원대학교
성신여대에 핑크 컬러 과잠바가 있다면, 한국교원대에는 스카이블루 컬러 과잠바가 있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계열의 과잠바도 대학생들에게 인기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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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미래 모바일 세상

이동통신, 무선 인터넷 등 빠르게 발전하는 모바일 기술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모바일 시스템이 대중화되고 관련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보다 새로운 기술 개발이 요구되고 있는 지금, 이를 전문으로 배우는 학과가 등장했다. 바로 단국대학교 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이다.

국제적 모바일 엔지니어 양성띠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스마트자동차 등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하고 손끝 하나로 세상을 누비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러한 스마트 기기를 비롯해 통신, 음성, 영상, 애플리케이션 등 차세대 모바일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 양성소가 단국대 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이다.
단국대 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은 공과대학이 아닌 국제학부로 구분된다. 국제적 감각과 경영 마인드를 두루 갖춘 엔지니어를 양성하고자 관련 커리큘럼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며 해외 대학과의 학점 교류, 교환학생 및 해외 유학생 유치 등 국제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해외 명문대학에서 성공을 거둔 커리큘럼과 실험 장비를 일부 도입해 시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학생들의 실무 능력 향상을 위한 최고 수준의 실험실습 장비와 개인별 태블릿PC 제공, 프로젝트 실습수업 등도 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의 강점이다. 또한 학부 내 국제경영학전공을 복수전공, 부전공할 수 있어 기획 및 마케팅 분야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관련 소양까지 기를 수 있다.

다양한 모바일 산업 분야로 진출띠지

단국대 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은 한국 IBM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체결해 매 학기 학생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수료한 학생은 한국 IBM에 입사할 수 있다. 또 대학원 진학이나 해외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대학원 졸업 후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다.
모바일 기술 분야는 IT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응용 분야로 떠오르고 있어 전망이 매우 밝다. 졸업 후에는 모바일 통신 분야의 기업, 산업체, 연구소 등에서 적성에 따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하게 되며 특허 기술, IT 마케팅, 기술 영업 등의 분야로도 진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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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 신원용 교수와 학생들

 

선배에게 직접 듣는 미니인터뷰

이예진│모바일시스템공학전공 4띠지

 

우리 학과, 이건 정말 좋아!
타 학과보다 학생 정원이 적기 때문에 동기뿐 아니라 선후배, 교수님과의 교류가 굉장히 활발해요. 그래서 학과 활동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요. 3학년 때 홍콩시립대학 교환학생으로 선발된 것도 그 덕분인 것 같아요. 여름방학 때 한 달간 홍콩에서 다양한 외국 학생들과 교류하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 알찬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학과 생활을 잘하고 싶다면?
우리 학과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영어와 프로그래밍에 자신 없는 학생들을 위한 소규모 학회가 있거든요. 두 학회 모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을 거예요. 수업을 통해 영어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는 영어 원문 교재를 보는 것도 익숙해졌고 그만큼 영어 실력도 많이 향상됐답니다.

우리 학과 후배가 되고 싶다면 명심해!
컴퓨터를 좋아하고, 프로그래밍 경험이 있거나 영어를 잘한다면 전공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미리 프로그래밍 언어나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프로그래밍의 ‘P’자도 몰랐으니까요. 시작점은 중요하지 않지만 두 가지 자질은 꼭 갖춰야 해요. 낯선 것과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하며, 스스로 찾아서 공부해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와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자질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만 명심한다면 정말 매력적인 학문을 접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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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변화、지구를 살리다

환경을 위해선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우리나라를 넘어 범지구적으로 환경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환경과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대표님의 꿈은 어릴 때부터 환경 전문가였나요?

아뇨, 원래 제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어릴 때 엄마가 편찮으셨거든요. 의사가 돼서 엄마를 다 났게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의사놀이를 가장 좋아했어요.

▶ 그럼 의학을 진로로 결정한 건가요?

저는 체육과학부를 전공했어요. 어느 날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제게 아버지 후배 분이 “너는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부러진 걸 붙이고 수술하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아프기 전에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고싶다”고 말했어요. 그분이 “의대보단 건강에 대한 의학, 운동생리학 등을 다루는 스포츠의학(Sports Medicine)을 전공하는 것이 너에겐 더 적합할 것 같다”고 추천해주셨죠. 그렇게 체육과학부를 가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가고 보니 제가 비위가 많이 약하더라고요.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해부학 수업이 있거든요. 혼자 난리가 난 거죠. 징그러운 것을 만지지도 못하더라고요. 의료를 하기엔 제 성향과 맞지 않았던 거죠. 그때 힘들어서 한참 방황했어요. 의학이 안 맞으니까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요.

▶ 언제부터 환경에 대해 남다른 시선을 갖게 됐나요?

삼촌이 환경연구소에 계셨어요. 어릴 때부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죠. 생활이었어요. 라면을 먹을 때도 수프를 반만 넣고 국물이 거의 없는 상태로 먹었어요. 삼촌이 라면 국물 한 그릇을 먹지 않고 버리면, 정화되는 데 욕조 36개 분량의 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라면 국물 한 그릇의 몇 백만 배의 물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다 보니 환경을 생각하는 자세가 조금은 특별했던 것 같아요.

▶ 원하던 꿈을 이루신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의 건강을 살리는 일이었어요. 아픈 몸을 수술하거나 찢어진 걸 꿰매는 의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거든요. 그런 삶이 유지되도록 하고 싶고요. 지금보니 전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네요. 어릴 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진정한 꿈을 찾은 거예요. 환경이라는 게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 그렇다면 언제부터 환경 분야에서 일을 시작 했나요?

환경 관련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서울시 시의원을 하게 되면서였어요. 서울시 상임의원회는 여러 분야가 있어요.
저는 그중에서 환경 분야를 맡았죠. 4년 내내 환경 파트에서만 일한 첫 번째 의원이었어요. 그러다가 UN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면서 깨달았죠. 환경을 지키는 일은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요.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을 해야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환경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취득했어요. 전문성을 가지고 에코맘 코리아를 설립한 거죠. 에코맘의 맘은 마음이에요. 벌써 만 6년이 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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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 대표와 환경교육에 앞장서는 학부모 멘티들>                                 <에코맘 장터>

 

▶ 대표님이 설립한 에코맘코리아는 어떤 기업인가요?

에코맘코리아는 교육을 위해서 만들었어요. 환경을 개선하려면 철학이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죠. 교육센터 외에 재작년에 설립한 환경건강연구소도 있어요. 환경이라는 것이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 문제, 아토피등 건강과 연결되는 점이 굉장히 많아요. 에코맘코리아는 그런 것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교육하고 알리는 역할을 해요. 일반적인 환경과 건강과 연결되는 환경, 분야에 관여하고 있죠.

▶ 환경을 위한다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이를 지키는 데 어려움도 있고요.

환경을 위하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동시에 다 하려고 하면 족쇄라고 생각되죠. 내가 잘할 수 있는 한 가지만 열심히 해도 돼요. 뇌 과학자들은 한 가지만 열심히 하면 이와 유사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고 말해요. 종이 컵 대신 머그잔을 사용하는 사람은 전등이 켜져 있으면 끄러 다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어요.
2000여 명의 직원이 다니는 회사에서 강연을 한 적 있어요. ‘개인 컵을 쓰자’는 강연을 몇 번 했죠. 근본적인 마인드를 바꾸기 위해서 여러 차례 강의했어요. 그러자 6개월 뒤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어요. 그 회사 식당에서 잔반이 전혀 나오지 않게 된 거예요. 전 잔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회사에서 알아보니 개인 컵을 쓰면서 시작된 현상이었어요. 더 나아가 종이컵 사용 대신 사기로 직접 컵을 만들었더라고요. 보통 고객이 방문하면 종이컵에 차를 타 주잖아요.
제가 강의할 때 “환경을 위해 열 개, 스무 개의 규칙을 꼭 지키세요” 했다면 하기 싫었을 수도 있어요. 한 가지는부담이 되질 않잖아요.

▶ “한 사람의 변화가 지구의 변화를 일으킨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햐며 어떤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라 생각해요. 상대는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식물이나 곤충일 수도 있어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바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도 우리는 이를 잘 몰라요. 공기나 물이 나빠진다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보이진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 해요. 현재 내가 편한 것, 쉬운 것에 익숙해졌으니까요. 우리 인간에겐 기본적으로 행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지속가능한 행복을 꿈꾸죠.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자녀도, 손주도 행복하길 바라죠. 지속가능한 행복을요. 그만큼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일이에요.

▶ 청소년 시기의 생태교육을 강조하는데,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나요?

감성이 풍부한 청소년 때 충분히 공감하면 행동이 바뀔 수가 있어요. 옛날에 삼촌이 제 화장실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화장실에 변기 세정제가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깜짝 놀라시면서 “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이걸 쓰면 어떡하냐. 세정제는 독약과 같다. 강으로 독약이 흘러들면 어떻게 되느냐”고 말씀하셨죠. 강은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는 자
정 능력을 가졌어요. 자정 능력을 가진 강 속에는 엄청난 미생물들이 있어서 나쁜 걸 다 먹어요. 깨끗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세정제와 같은 화학물질은 미생물을 모두 죽여버려요. 그럼 자정 능력을 맡아줄 존재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결국 물이 썩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걸 안 순간 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죠. 모르니까 쓰는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 생태에 관한 교육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강에 대한 배려, 자연에 미치는 영향 등을 깨닫는 힘을 길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생태교육을 강조해요

▶ 얼마 전 케냐에 다녀오신 뒤, 생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그 이유가 있을까요?

공기나 물은 다 연결돼 있잖아요. 기후변화회의를 왜 UN과 함께 하는 줄 아세요? 국가가 나눠져 있다 해도 공기까지 나눌 순 없잖아요. 더 큰 문제는 제일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이 가장 먼저 나쁜 영향을 받는 거예요. 예를 들면 엄청난 홍수가 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사람은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의 자동차·에어컨 사용량은 적지만 말예요. 또 투발루(Tuvalu)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있어요. 개인 자동차의 소유가 드문 나라에서 말이죠. 다른 나라 때문에 해수면 상승으로 피해를 입고 있어요. 모두 연결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함께 공존
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나비효과처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우리는 곤충이나 식물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음식 하나 만들 수가 없잖아요.

▶ 모든 생물의 생존 가능성이 연결돼 있다는 건가요?

그래요. 그렇게 모두 다 연결돼 있는 관계를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고리를 끊으면 어떻게 될까요? 공존이 어려워져요. 바나나처럼 말예요. 계속해서 접붙여서 제일 좋은 종자 하나만을 남겨둔 거잖아요. 그 종자가 병에 걸리면 바나나는 사라지겠죠. 생물은 원래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 중요한데, 인간의 이기심으로 이 특성을 잃고 있어요. 한 번에 다 잃을 수도 있는 거예요. 지금 미국에서 큰 태풍이 와서 동네가 마비되고, 주민의 70% 이재민이 되는 기상이변이 속출하는데 그 이유가 기후변화잖아요. 기후변화의 이유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이거든요. 연결돼 있어요. 20년 뒤에 미국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어요. 나의 행동으로 인해서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나는 일들인 데, 우리는 나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모두가 연결돼 있기에 우리는 모든 생물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한 일은 다시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요.

▶ 인간의 이기심이 공존을 어렵게 하네요.

동물만 해도 마찬가지예요. 작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밀어 넣어 키우잖아요. 더럽고 불편한 공간에서 먹이만을 위해 자라는 동물은 건강하지 못해요. ‘적은 돈으로, 많이!’를 외치는 인간 때문이죠. 그런 동물을 먹는 사람의 몸은 건강할까요? 이러한 편리한 것들이 지금 당장은 나를 배불릴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환경은 정책이 굉장히 중요해요. 쓰레기 종량제라는 정책 때문에 쓰레기가 확 줄어들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개인의 행동을 법으로 강제할 순 없어요. 제재할 수 있는 기업과 달리 개인의 행동을 법으로 강제하질 못해요. 내가 내 돈 내고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려요. 그런데 환경은 모두가 동참하지 않으면 바뀌질 못해요. 0.001%의 환경운동가만이 못 바꿔요. 모두가 함께해야 해요.

SAMSUNG CSC

<글로벌 에코리더 발대식>

에코맘코리아는 어떤 단체인가?
(사)에코맘코리아(대표 하지원)는 2009년, ‘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비전을 가지고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건강한 지구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설립한 단체다. 전국에 4만5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정에서부터 에코 라이프를 강조하는 교육 중심 환경단체다. 에코맘코리아에서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째는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교육 사업으로, 청소년 대상의 ‘글로벌 에코리더’프로그램, 대학생 대상의 ‘글로벌 에코리더 에코멘토’ 프로그램, 유아와 초등 저학년 대상의 ‘친환경 소비 교육’ , 그리고 교사 대상의 환경교사 직무연수 교육 및 에코맘 교육이다.
둘째, 실생활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365 에코라이프 캠페인’을 진행한다. 현재까지 40여 개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 캠페인으로 ‘뽀로로 365 에코라이프’ , 환경보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두다다쿵>이 있다.
마지막은 환경건강사업이다. 생활 환경 컨설턴트를 두고 사회취약계층 실내환경 진단 및 개선,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교사 대상의 어린이 활동 공간 환경안전관리 관계자 교육, 유치부·초등부 어린이 대상의 환경성 질환 NO! 환경건강교실, 어린이용품 환경유해인자 노출 실태 교육 및 홍보를 한다. 매년 2000곳 이상의 독거노인 집을 방문해 환경유해인자 관련 컨설팅을 하며, 대학병원과 연계해 소년 소녀 가장을 포함한 차상위계층 아이들에게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있다.

 

가장 낮은 곳을 먼저 생각하다

“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인이신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규칙을 깨고 오직 교리에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이다. 바오로 6세의 선종 35년 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이 탄생했다. 기존에 사용된 적이 없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913년 즉위한 121대 교황 란도 이후 1100년 만이다. 교황은 교황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밝혔다. 콘클라베에서 유권자의 3분의 2에 이르는 득표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아 있던 브라질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고 입맞춤하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했다.
우리는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266대 교황이다.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남반구·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시리아 출신인 90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국가 출신 교황이다. 교황이 되기 전 그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였다.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 노동자 마리오 호세 베르골리오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 사이에서 1936년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예수회에 입회해 32세에 신부가 됐다. 그가 사제가 된 계기는 12세 때 아말리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부가 되기 전에는 유흥업소의 사설 경비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으로 폐를 절제해 50년 넘게 한쪽 폐로 살고 있다.

Italy Vatican Pope

약한 자를 돕고, 강한 자에게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교황이 되기 전 베르골리오는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에서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당시 침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인권 탄압은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반대 인사들의 숙청은 당연한 시절이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당시 결승 경기가 치러진 경기장 바로 옆 건물에서 정권반대인사를 고문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베르골리오는 군부의 살인 부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자신의 여권을 줘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는 “(군부에) 믿음을 심어줘 누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을 썼다”고 말했다. 2014년 교황 즉위 1주년을 앞두고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뒤로는 반정부 인사들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해외 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최소 20~30명에서 최대 100명까지의 반정부 인사들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이 독재 국가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봤을 때 그의 행동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일개 시골 성당의 주임신부가 일국의 독재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었다.

 

교회의 사회 참여를 지지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편이라고 소문이 났다. 추기경 시절에도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했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눠줬다.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동할때는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서 재료를 사서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한 사회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그 사회가 가장 궁핍하고 가난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알 수 있다”라며 교회의 사회 참여를 적극 지지했다. 그는 또 미혼모의 자녀에게 세례하기를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 사용을 지지했다. 교황의 전기 작가는 “교황은 해방신학자는 아니지만 IMF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2008년세계 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아르헨티나 빈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가 교황명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 삼은 것을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청빈을 강조하고 사회정의 실현에 관심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South Korea Pope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다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한 지 25년 만에 성사된 교황의 방한으로 브라질, 이스라엘 다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 번째 순방이었다. 교황은 순방 다음 날인 8월 15일 광복절에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시 도보 순례 중이던 유가족도 대전을 방문했다. 일부 시복식이 열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 때문에 행사 진행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가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시복식을 할 수 없다”,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겠다”고 밝혀 정부의 강제 퇴거 입장에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교황은 또 “아직 구조되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에게 직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절대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를 통해 보냈다. 이 편지에는 실종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기재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정치도 신선할 수 있다?
캐머런 영국 총리 블루칼라 내각

지난 5월 7일 영국 총선의 당선자는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다. 그는 2010년 총리에 당선된 인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과반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제56대 영국의회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캐머런 총리의 선출로 출범한 새 내각에 대해서는 신선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바로 절반 가까운 장관이 ‘서민 중의 서민’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만 거론해도 내각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패트릭 매클로플린 교통부 장관은 전직 광부였으며, 프리티 파텔 고용부 장관은 우간다 이디 아민 전 대통령의 폭정을 피해 영국으로 도피해온 이민자 집안의 딸이다. 애나 소브리 소기업부담당 장관 역시 링컨션 주에 있는 허름한 주차장 집 딸이다. 지역사회·정부 장관인 그렉 클라크의 아버지는 우유 배달원이었으며, 사지드 자비드 기업혁신기술부 장관의 아버지는 파키스탄의 버스 운전사였다.
이 밖에 리즈 트러스 환경 장관, 마크 하퍼 원내총무, 저스틴 그리닝 국제개발 장관, 필립 해먼드 외교 장관 등도 모두 공립학교 출신이다. 2010년 캐머런 총리의 첫 번째 연립정부 내각의 공립학교 출신 비율은 21%였지만, 현 내각에는 43%에 달한다. 공립학교 출신이 두 배 이상 많아졌다.
이에 반해 캐머런은 귀족 중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는 국왕 윌리엄 4세의 직계 후손이며,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친척뻘이다. 당연히 영국에서 최상류층 자제들이 거치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5년 전 타계한 부친의 선천적 장애는 그의 가정사에 큰 어둠이었다. 주식중개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다리가 무릎 아래부터 기형적으로 짧고, 발가락도 한쪽은 세 개, 다른 쪽은 네 개뿐인 장애인이었다. 그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고, 한쪽 눈도 실명했다. 정성으로 돌봤던 캐머런의 맏아들 ‘뷰티풀 보이’(애칭)도 6년 전 조기성 간질뇌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늘 말한다.
“블레어 총리(노동당 출신으로 1997~2005년 영국 총리 직을 맡았다)에게 교육, 교육, 교육이라는 세 단어가 있다면 나에겐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의 국민건강보험)라는 세 글자가 있다.”
캐머런 총리는 첫 내각 회의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정당”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현 내각을 ‘블루칼라 보수’라고 지칭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은 열심히 일하는 납세자들의 편에 있는 내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정당이라고 하겠다. 좋은 삶, 성취감을 느끼는 삶,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삶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현실에 가까운 접근을 할 것이다.”
알아두기 / 블루칼라(blue-collar)란?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화이트칼라(정신노동자)에 대비되는 말이다.
알아두기 / 영국 의원내각제
영국은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가 구성되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한 정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그 정당은 정부 구성권을 얻는다. 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게 되면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된다. 절대다수당이 없는 의회라는 뜻이다. 헝 의회가 되면 소수당 정부로 이때는 다른 정당과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지난 2010년 총선에서도 제1당인 보수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자유민주당과 연립했다.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또 하나의 참사
예비군 총기 난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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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정황
지난 5월 13일 오전 10시 46분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52향토보병사단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범인을 포함한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동원훈련 2박 3일 중 2일 차 영점사격훈련 도중 발생했다. 가해자 최 모 씨는 10발의 탄이 장전된 K-2 소총으로 사격 훈련 중 갑자기 뒤를 돌아 동료들을 향해 난사했다. 최 씨는 훈련 중 뒤에 부사수로 서 있던 예비군의 머리에 1발을 조준 사격한 후, 다른 사로의 예비군들을 향해 6발을 난사했다. 이 과정에서 4명의 예비군이 총에 맞았다. 당시 총소리와 장교의 “도망쳐라”라는 외침에 주변 예비군은 다 도망갔지만 A씨 한 명은 도망가지 못했다. A씨에 총부리를 겨눈 최 씨는 곧 자신의 이마에 총구를 대고 아홉 번째 총탄을 쏘며 자살했다. 군의 확인 결과 한 발은 탄창에 남아 있다고 했다.

정신이상자의 소행?
범인 최 모 씨는 전방에서 복무하다 2013년 전역했다. 현역 시절에도 중증의 우울증으로 관심병사로 분류됐다고 한다. B급 관심병사로 GOP에도 투입됐으나, 부적합자로 판정돼 20일만 근무했다고 한다. 최 모 씨의 이웃에 따르면 입대 전에는 정신이 괜찮았는데, 군대를 다녀와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이웃 주민 김 모 씨(65)는 “가끔 웃옷을 다 벗고 집 앞을 돌아다니고 소리도 빽빽 질렀다”며 “걸어 다니는 것만 봐도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휴대전화에 대고 화를 냈다”며 “그런 일(총기 난사)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조사 도중 가해자 최 모 씨의 유서가 발견됐다. “내일이 사격이다. 다 죽여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다”라고 언급해 사전 계획 범죄임이 밝혀졌다.
우리 사회의 병폐, 안전불감증
최 모 씨의 정신 이상도 문제지만, 사고의 발생 원인 중 하나로 허술한 사격 훈련 관리도 지적된다. 해당 예비군 훈련장은 20개의 사로가 있다. 사고 당시 20개 사로를 모두 사용했다. 원칙상 사격 통제 요원은 한 사로에 한 명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20개의 사로를 단 6명의 기간병이 통제하고 있었다. 또 사격 시 예비군 총기는 안전장치를 통해 바닥에 결속하고, 총구를 돌릴 수 없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통제병을 일대일로 배치하고, 총기 결속만 제대로 이뤄져도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한편 국방부에서는 예비군 사격에 대한 총기 관련 규정이 없다고 해 논란이다. 즉 총기 관리 규정은 부대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다. 위험한 총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관련 안전사고 매뉴얼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은 국방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째 안전불감증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로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안전불감증이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웹툰 시대다.
어느새 우리나라 만화는 모두 웹툰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가벼운 4컷의 개그만화에서 시작한 웹툰은 이제 과거 단행본 시절의 거장들까지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만화의 왕국 일본에서 인정받은 양경일부터, 허영만·이현세와 함께 시대를 아우르던 장태산까지 지금 대한민국은 웹툰 르네상스기다. 이러한 웹툰의 전성기에 많은 신진 작가들이 프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 도전한다. 고일권도 그런 만화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만화 <칼부림>이 소개된 지금은 뛰어난 작화와 고증으로 많은 사극 마니아들에게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MODU는 웹툰 작가 고일권을 만나 그의 일상과 웹툰 작가가 되는 법, 그리고 그의 만화 <칼부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칼부림 자료01

● 웹툰 작가의 일상은 마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고일권 작가의 <칼부림>은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됐다. 많은 독자는 웹툰을 ‘업데이트 전날 자정 전까지 올리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실제 원고의 마감은 업데이트 전날 오후 4시다. 늦더라도 오 후 6시까지는 마감해야 한다. 담당자들도 퇴근하기 때문이다. 목요 웹툰 <칼부림>의 마감은 그래서 수요일 오후 4다.

● 고일권 작가는 자신의 원고 마감을 스스로 마감 전 토요일로 잡았다. 자신의 일주일 스케줄을 ‘월-일’의 기본 루틴으로 짰다. 오전에 작업을 시작해 저녁에는 작업을 끝낸다. 일반 직장인들과 최대한 비슷한 스케줄이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낮보다는 밤에 집중이 더 잘됐다. 안 될 때는 며칠 동안 잘 안 그려지다가, 잘되는 날에는 그림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밤에 시작해서 아침에 자는 경우도 많았다. 밤낮이 뒤바뀐 삶은 건강과 사회적 관계에 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지금의 ‘일주일-주간
생활’이라는 깔끔한 루틴을 만들었다.

● 그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에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마감하고, 일요일 하루는 쉬는 날로 정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스토리와 콘티 작업을 한다. 다음 주 작품의 분량을 계산해서 스토리를 잡는다. 골격을 잡았으면,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창작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매주 회당 80컷에 달하는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직접 종이에 펜으로 그리고, 그림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웬만한 웹툰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종이에 펜으로 그리기 때문에 태블릿으로 작업할 때처럼 수정이 쉽지도 않다. 한 컷을 망치면 한 페이지를 다시 작업해야 한다. 그림을 다 그렸다고 끝이 아니다. 펜으로 종이에 그리기 때문에 작품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스캐닝이다. 스캐너로 스캔한 작품은 다시 PC를 통해 수정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수정이 끝나면 담당자에게 원고 파일을 넘긴다. 고 작가는 이 과정을 어시스턴트 없이 혼자서 다 해낸다. 그림의 질까지 생각하면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렇게 정성을 쏟다보면 자신이 정한 마감인 토요일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특히 개인적인 사정이나 집안일 등의 행사가 있으면 100% 그렇게 된다. 일요일은 당연히 못 쉬고, 다음 주까지 스케줄이 미뤄진다. 수요일 거의 다 되어서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 작가는 2013년 12월 5일부터 2015년 3월 11일까지 40화와 41화 사이의 특별편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연재를 쉰 적이 없었다. <칼부림> 1부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여러 합병증이 찾아왔다. 터널증후군과 변비라는 슬픈 직업병이 생겼다. 체력도 떨어 졌다. 연재를 쉬는 지금은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을 회복시키고 있다. 고 작가는 2부 연재 시작을 올해 7월 중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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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가 되기 위한 꿈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 고일권 작가의 꿈은 처음부터 만화가였다. 어렸을 때 만화가 너무 좋아서 만화를 봤고, 그게 꿈이 됐다. 어렸을 때는 무작정 그림을 그렸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렸다. 대학도 만화 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은 현실과 달랐다. 진짜 만화를 배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한 학기도 안 다니고 그만뒀다. 그리고 입시학원에서 일했다. 아이들에게 만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며, 만화에 대한 생각도 더욱 깊어졌다. 그러다 군대에 갔다. 그는 군대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만났다. <칼의 노래>를 읽으며, 한국사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왜
란 이후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왜란(1592~1598)과 호란(1657) 당시의 이야기는 많은데, 그 사이의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서를 찾아봤다. 광해군(1608~1623)의 이야기는 많은 매체로 다뤄졌다. 하지만 그 뒤의 인조반정(1623년)과 이괄의 난(1624)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많이 없었다. 조선 역사상 외세가 아닌 반란군이
한양을 점거한 유일무이한 난인데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적었다.
● 그는 직접 이괄의 난을 다뤄보기로 했다. 학원 일을 하면서 함께 준비했다. 2012년 앞부분 원고를 일부 완성했다. 고민이 많았다. 고민 중에 여자친구의 권유로 2013년 6월 4일 네이버 웹툰 도전 만화에 올렸다. 그리고 학원 일을 병행하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네이버 측에서 정식 연재를 요청했다. 그는 결정했다. 학원 일은 이제 그만두고 자신의 꿈에 전념하기로. 2013년 12월 5일 <칼부림>이 네이버에서 정식 연재가 시작됐다. 고일권 작가는 2015년 3월 11일까지 약 460일을 자신의 꿈을 되새기며 달렸다. 지금은 <칼부림> 2부를 위해 잠시 쉬고 있다.
●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멀리 돌아 온 것 같지만, 앞으로도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래요.” 고일권 작가는 자신의 꿈을 직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라

>>> 고일권 작가의 만화를 보면 이두호 화백의 그림을 많이 닮았다고 느껴진다.
이두호 화백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만화가다. 그 외에도 권가야, 박흥용, 백성민 화백과도 그림체가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굳이 그분들을 따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표현하다 보니까, 그분들과 비슷한 그림체가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영광이다.
>>> 위의 화백들 말고도 롤모델로 생각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미국의 프랭크 프라제타(1928~2010)나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토피(1932 ~ 2012)와 같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존경한다.
프랭크 프라제타는 특유의 힘 있고 강한 그림체가 무척 마음에 들고,세르지오 토피의 독특한 화면 구성과 색채는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
>>> 집에서는 웹툰 작가라는 직업을 반대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께서 내 그림을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손에서 펜을 놓지 않고,
입시학원 강사로 만화를 가르치니 결국은 포기하셨다. 부모님께서 내가 잘 안 될 것이라며 ‘얘는 그냥 우리가 안고 가자’라는 생각으로 포기했다고 말씀하신다.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뒤에는 부모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에는 주변에 자랑도 하신다. 확실히 지금의 웹툰 작가는 과거의 만화가보다 위상이 높아진 것 같다.
>>> 솔직히 만화가라고 하면, 많이들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렇게들 많이 생각했다. 극히 일부 만화가를 제외하고는 다들 수입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웹툰이 발달하면서 만화가의 생활이 많이 안정적이 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 회사원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돈을 생각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더라도, 언젠가는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살면서 좋은 일에 도전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행각한다.
>>> 만화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끊임없이 도전해라. 실패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애니메이션과에 들어갔으나 1년 다니고 그만뒀다. 통학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입시학원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틈틈이 만화를 그렸다. 아쉬운 것은 ‘도전만화’에 좀 더 빨리 응시를 했다면, 더 빨리 꿈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내 만화가 읽힌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독자들의 피드백 하나하나가 너무 고마웠다.
>>> 마지막으로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은가?
존경받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고일권의 만화는 믿고 볼 수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할 것이다.

고일권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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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영역] 장유영 선생님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재학 중

현) 이강학원 국어 강사

현) 우리학원 국어 강사

전) JJ학원, 일등학원, 대치 메가플러스, 청솔학원, 베이스캠프 학원 출강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훈련!”

1.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앞으로 남은 한 달이 수험생활 대장정의 결말이 될 것이다. 해피엔딩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실력발휘! 수능의 첫걸음 국어영역,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다.바이오리듬으로 ‘호랑이 굴’ 같은 수능에서의 긴장감을 정복해보자.

 

2. 아침 8:40~10:00는 국어영역의 시간

우리의 뇌는 시간에 민감하다. 늦은 밤까지 공부했다면, 이른 오전엔 졸음이 밀려온다. 이때 차가운 물 한 잔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모의고사를 풀거나 국어 오답노트를 정리한다면 우리의 뇌는 이 시간을 ‘국어 공부하는 시간’으로 인식한다. 오답정리를 할 땐 지금까지 풀었던 문제 가운데 중복되는 유형을 모아 오답의 이유를 확실히 공부하자.

 

 

[영어영역] 킹콩 선생님

한국외국어대학교영어과졸업

대치/분당교육특구오프라인1위

현) 스카이에듀영어영역대표강사

현) 대치/서초명인학원대표마감강사

 

“실전이 답이다!”

1. 반복되는 평가원 문제의 패턴을 파악하라

수능영어는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풀어야 한다. 문제를 느긋하게 풀어온 학생들이 수능에서 실수하는 이유는 평소 ‘전략적 시간분배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유형별로 문제 풀이 패턴을 익혀 빨리 풀 수 있는 문제는 빨리 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고난도 영역은 정확하게 푸는 연습을 통해 시간 분배 능력을 높이자.

2. 어디서부터 읽어야 하는지를 익혀야

문제를 받자마자 해석부터 하지 말고, 문제 유형을 보자. 그리고 지문이 양강구조인지 단순서술인지 파악한 후, 읽어야 하는 부분만 읽고 논리적으로 답을 유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풀이 연습이 중요하다. 주중에 모의고사 3~5세트를 시간에 맞춰 풀어보고, 주말에 유형별로 정리하자. 이 시기 단어와 문법을 기초부터 공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수학영역] 김지석 선생님

서울대학교수학교육과졸업, 영문과부전공

현)스카이에듀수학영역강사

전)공신닷컴강의(명탐정로드, 대박타점)

전) Lehi High School 수학교사인턴

전)구현고등학교, 경희여자고등학교수학강의

 

“수능 한 달 전 공부법”

1. 기초공부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지금부터 기초하면 늦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은 것 같다. 기초를 공부하자니 뒤처지는 것 같고, 지금 밀려나면 못 따라잡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풀이를 시작하고, 기본개념은 모르는 게 나올 때마다 공부하자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이 방법이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린다.

2. 밑 빠진 독에 물 붓지 않기 위해서

수능까지 기초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 그것만 공부해도 괜찮다. 대박을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라는 게 아니다. 기초가 있어야 대박도 터질 수 있다. 기초가 없다면 어려운 걸 아무리 공부해도 쪽박을 면할 수 없다. 그리고 기본개념은 한 번 정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풀면서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게 실력 상승의 패턴이다.

 

 

[사회탐구영역] 문성욱 선생님

고려대학교일반사회석사수료

현) 문선생의한큐사탐대표

전) 메가스터디서초,강남오프라인출강

전) 한맥학원사탐대표강사

전) 프리머스아카데미

 

“어떤 것을 공부할지 정하고 시작하자”

1. 지금 뭘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막상 책을 펼쳐도 개념을 공부할지, 문제를 풀어야 할지, 오답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것을 공부할지 확실하게 정하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4~5등급 이하의 학생은 ‘수능특강’이나 ‘수능완성’을 통해 짧게라도 개념을 익혀야 한다. 2~3등급 학생은 기출문제를 풀고 오답을 정리해, 자주 틀리는 유형을 정복해야 한다. 1등급 학생은 오답을 정리하면서 어려웠던 심화 개념까지 학습해야 만점을 놓치지 않는다.

2. 남은 시간을 알차게

수능 한 달을 앞두고는 복습이 중요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모든 과목은 ‘하고 싶을 때’나 ‘해야 할 것 같을 때’ 공부하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매일 1시간씩, 최소 30분씩은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유지해온 문제에 대한 감각을 끌고 갈 수 있다.

 

[과학탐구영역] 최정윤 선생님

▣서울대학교생명교육과졸업

▣Mensa 정회원

▣대치동이강학원최단기마감강사

▣MTN 머니튜데이매거진S 출연

▣종로학원최상위클래스수강생만족도2년연속1위

 

“소의 걸음으로 만 리를 간다”

1. 출제자의 머리 꼭대기에 서기

방향 파악이 중요하다. 이제는 개념을 몰라 틀리는 경우는 드문 시기다. 반면 출제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답을 내릴 때가 많다. 과학탐구의 경우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2. 아낌없는 채찍질을 자신에게

찍어서 맞힌 문제는 틀렸다고 간주해야 한다. 수능에서 가장 발목을 잡는 게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고 있던 점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시간은 없다는 각오로 공부에 임해야 한다. 탐구 과목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게 최선이다. 수능에서 실력은 뚝심에서 비롯된다. 만 리를 걸어갈 수 있었던 소처럼, 포기하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 등급이라도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