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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가다

 

글 – 조강민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그러나 아직은 낯설기만 한 스페인 어가 기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옆에 않은 뚱뚱보 쩍벌남 아저씨는 저가 항공 타기를 고집한 나의 선택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 한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시작부터 사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르려는 순간 기장이 내뱉은 한 단어,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가 나의 귓전을 때리며 나의 마음을 다시금 설레게 만든다. “바르셀로나”. 그렇다. 나는 바르셀로나로 가고 있었다.

마드리드 교외의 IE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온 지 2개월. 동네 나들이 및 마드리드 구경이 더 이상 특별해지지 않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왔다. 그 때 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제의한 바르셀로나 여행. 수업 무단 결석을 감행해야 하는 여행 일정이었지만, 바르셀로나에 대한 끝없는 로망을 작렬 중이던 나에게 수업은 아무런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열심히 살지 뭐.” 무단결석에 대한 자기 변명이 완성되는 순간 내 손은 이미 비행기 표 예약 버튼을 클릭하고 있었다.

 

좌충우돌 입성기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친구들과 만남의 기쁨을 즐기는 것도 잠시. 우리는 곧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야 원래 동양인들은 부지런하잖아 너희들이 계획 짜 오는 거 아니었어?”,

“야 나는 급하게 따라 온 거잖아 너희들이 원래 바르셀로나 오자고 했으니깐 계획을 좀 짜와야 되는 거 아님?”

그렇다. 아무도 여행계획을 짜오지 않은 것이다. 당장 주변에 보이는 맥도날드에 들어가 작전회의를 시작한 우리들. 각자가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을 읊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하면 메시를 보러 가야지! 축구는 꼭 봐야 돼!”

“나는 가우디 건축물 보고 싶어”

“스페인 하면 자라(Zara) 아니니! 바르셀로나에서 쇼핑 한 번 갑시다!”

스포츠 매니아인 나와 쇼퍼홀릭, 거기에 고상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친구까지. 결국 우리는 바르셀로나 방문 일정 동안 자라(Zara)에서 쇼핑을 하고,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마지막으로 축구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 세가지만 하면 바르셀로나를 완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애써 서로를 위안한 채, 100% 유기농 무대책이었던 이번 여행은 시작되었다.

 

Zara를 찾다 가우디를 만나다

쇼핑 중독 말기 증상을 보이던 친구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던 떨리는 간절함 덕분에 우리는 첫 날 폭풍 쇼핑을 먼저 끝내고 나머지 일정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오늘의 목표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주요 쇼핑 골목을 전부 가보는 것! 빡빡한 예산 속에 얼추 2000원이 넘는 바르셀로나의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사치였기에 친구들과 나는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그야말로 종횡무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지도 상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도 한 두 시간씩 걸리기 일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서로의 저질체력을 비난하며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길거리 벤치에서 하염없이 아픈 다리를 주무르던 그 때, 일상적인 유럽식 건물 숲 사이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첨탑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저기 뾰족하게 솟은 건 뭐지? 되게 크다.”

“바보야 저거 사그라다 파밀리아 잖아.!”

“으응..? 사그라다 파밀리아?”

그렇다. 우리가 하염없이 걷는 동안 우리는 가우디 건물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게 된 것이다. 쇼핑에 대한 의지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난 상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첨탑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길 30분…

성당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가우디의 초현실적인 작품 성향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인데다 아직 건축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성당의 외관은 징그럽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죽기 전 일부만 완성하는 바람에 현재까지 미완성인 상태로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건축비용을 순수하게 성당의 입장수익 및 기부금으로만 충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성당이 언제 완성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고…

 

 

유적지 보수공사 현장 사무소처럼 보이는 성당 앞 매표소는 이 특이한 건물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인파들로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몸은 지쳐있었지만 성당이 발산하던 웅장한 에너지에 이미 압도되어 있던 우리는 한 명의 이견도 없이 긴 줄을 기다린 후 입장료를 지불하고 성당을 견학했다.

Barca의 힘, Camp Nou에서의 에피소드

쇼핑을 하고 가우디를 만난 후, 바르셀로나의 해변을 즐기던 우리는 바르셀로나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하이라이트로 축구를 선택했다. 마지막 날 저녁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 Camp Nou를 찾았다. 생각대로 축구장은 바깥에서부터 엄청난 수의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겨우 표를 구한 우리.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우와 사람 진짜 많다 +_+ 으악!!!”

“무슨 일이야???”

“지갑이 없어졌어!!”

그렇다.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푼수 끼가 다분했던 중국 친구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이미 늦었다. 가방은 열려 있었고 지갑과 여권은 우리가 모르는 바르셀로나의 뒷골목으로 향하고 있는 상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페루 친구가 능숙한 스페인어로 경찰을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결국 우리는 도난물 신고를 위해 팔자에도 없는 바르셀로나 경찰서를 관광하게 되었다. 삼십 분을 걸어 경찰서에 들어가니 이미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둘 셋씩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고, 우리는 바르셀로나 소매치기들의 프로페셔널한 기술력에 경악하며 이미 시작해버린 경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열의 도시 바르셀로나

축구 관람을 끝마친 우리는 지갑 도난으로 풀이 죽어버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피곤을 던져버리고 번화가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람블라스 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맛있는 음식과 정열적인 스페인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음식점들은 각종 해산물 요리로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고,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활보하며 그들만의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

“일상이 충실해야 여행, 일탈도 행복하다. 여행, 일탈이 충실해야 더 행복한 일상도 있다. 지금은 여행에 충실해야 할 때.”

나는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밤에 빠져들고 있었다.

[필자 조강민 님은 장신의 스포츠 매니아입니다. 스페인에서 자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빡센 삶에 다시 적응하는 중입니다.]

서울대학교 컬쳐플래닝 동아리

s.crewbar를 만나다!

 

편집/기자-임수정

대학교에는 중고등학교에서보다 더 다양한 동아리들이 있어요. 따라서 자신의 학과에 관계없이 관심 있는 분야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이 코너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좀 더 멋진 대학생활을 위해 이러한 동아리들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해보려고 해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멋진 파티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Culture Planning 동아리 s.crewbar(스크루바) 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s.crewbar 11기 회장 서울대 건축과 05학번 심규대라고 합니다.

s.crewbar라는 동아리는 어떤 곳인가요? 동아리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s.crewbar(한글 표기명: 스크루바)는 서울대학교의 새로운 파티/축제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했던 소수의 학부생들이 모여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직접 주최하는 대규모 파티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동참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수십명의 스텝들이 모이게 되었고 2006년 2월 10일 제1회 에스파티인 The S Party 2006이 성황리에 마무리됩니다. 이후 s.crewbar는 제1회 에스파티 기획을 위해 모였던 일회성의 프로젝트팀에서 서울대학교 동아리로 정착해 발전되어갔습니다. s.crewbar의 “S”는 Seoul National University의 “S”를 따온 것이며,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크루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crew”를 첨가하여 “s.crew”가 되었는데요, 무언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bar”라는 단어를 붙였고 “s.crewbar”라는 동아리 공식 명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Culture planning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말그대로 하나의 새로운 문화 창출을 위한 문화 기획입니다. 가령, 첨단 스마트폰의 등장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s.crewbar 1기 선배님들이 직접 기획한 한국 최초의 대학생 파티 제1회 The S Party는 대학생 파티문화라는 새로운 문화의 장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획기적인 대학 문화 행사는 새로운 대학생 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지게 되는겁니다. 즉, s.crewbar가 말하는 culture planning은 대학생들의 새로운 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지는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아리 회원들의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기획, 홍보 담당 등)

s.crewbar는 파티를 비롯한 각종 문화 행사를 기획, 홍보, 디자인하고 진행하는 동아리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행사 기획 단계부터, 장소 대관, 스폰서쉽, 디자인 작업, 프로모션, 예산 관리 등의 일련의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크루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하나의 또는 다수의 작업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가령, 디자인 작업에 관심이 있는 크루라면, 행사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과 장소 데코레이션 작업에 참여하게 되겠죠? 회계에 관심있는 크루라면 각종 행사에 필요한 예산을 관리하고 동아리에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관리하는 식이죠. 이렇게 모든 크루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열심히 일했을 때야 비로소 s.crewbar라는 한 조직이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crewbar의 활동들은 모든 크루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다같이 힘을 모아 대규모 문화 행사들을 완성해나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티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어떻게 쓰시나요?

지금까지 운영비를 제외한 각종 문화 행사들을 통해 번 수익금의 대부분을 “사랑의열매”와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해왔습니다. 작년 하반기 같은 경우 10기에서는 서울대학교 가을 축제에서 이벤트를 통해 학생들로부터 읽지 않는 도서들을 기부 받아 도서가 부족하거나 예산이 부족해 도서관을 설립할 수 없는 곳을 돕는 단체에 기부를 했습니다. 이번 2011년 2월에 있었던 연고대 동아리들과 연합으로 주최한 파티로 남은 수익금은 춘천에서 사랑의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하는데 사용하고 기부 받은 의류들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했습니다.

이 동아리에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나요?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갈 수 있나요?

통상 동아리들이 한 취미로 모인 단체(예를 들면 기타 동아리)라고 치자면 s.crewbar는 다방면의 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고 또한 그런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자신들의 끼와 창의력을 문화행사 기획이라는 과정을 통해 마음껏 펼쳐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매학기 s.crewbar를 찾고 있습니다.

 

s.crewbar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기존의 틀을 바꾸어 버리는 생각, 즉 창의성이 바탕이 된다면 culture planning의 장은 무궁무진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열정이 추가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죠. 지금까지 s.crewbar의 주된 문화행사였던 대학생 파티라는 틀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문화행사들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것이 s.crewbar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s.crewbar만 이 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실현에 옮긴다면 대학 그 어떤 동아리보다도 멋진 동아리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꿈과 열정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준비된 자들 뿐입니다.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희 동아리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저야말로 감사드리죠. MODU도, s.crewbar도 함께 번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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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표 공대 11학번 새내기

최정문 양을 만나다!

 

의상협찬-스타일리즘(stylism.com)

메이크업-양혜경

아직 앳된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MoDu의 첫 번째 모델, 최정문 양을 만나보았습니다. 화장기 하나 없이 촬영장에 나타난 그녀는 메이크업을 가볍게 받고 곧바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멋쩍어 하는 듯 했지만 이내 적응이 됐던지, 예쁜 미소와 포즈가 굉장히 자연스러웠습니다. 포토그래퍼님이 놀라실 정도로요! 결과로 나온 사진 한 컷 한 컷마다 최정문 양의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최정문 양과의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MoDu 창간 특집호의 모델로 발탁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공학계열 11학번 최정문입니다. 창간 특집호의 표지모델이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

아, 공대! 공대는 남자가 엄청 많지 않나요?

과마다 남녀 비율이 다르긴 한데, 대체로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 예전에 어느 TV CF를 보고 공대 ‘아름이’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ㅠㅠ

 

미팅이나 소개팅은 많이 하셨나요? 대학생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이잖아요..

정말 아쉽게도 한 번도 못해봤어요. 공대 여자들한테는 미팅이 잘 안들어오더라구요.. 남자애들은 미팅 엄청 많이 하던데.. 뭐,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겠죠?

하하 그럴거에요. 정문 양은 피부도 너무 좋으신 것 같은데, 혹시 특별한 관리 비법이 있나요?

사실 피부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데요, 톤이 하얀 편이라 실제보다 좀 더 좋아 보이는 것 같아요. 일명 ‘훼이크’라고 할 수 있죠. (웃음) 특별히 관리를 하는 것은 아니구요, 잘 씻고 기초화장품을 열심히 바르면 모두 피부 미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에요!

촬영을 해보니까 표정이나 포즈가 굉장히 자연스럽던데, 혹시 예전에 모델을 해본 적이 있으세요?

하하 정말요? 과찬의 말씀이세요. 고등학생 때 표지모델, 잡지모델을 간혹 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사진이 예쁘게 나온 건 모두 포토그래퍼님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죠! (웃음)

 

 

즐겨 입는 옷 스타일은 어떤가요?

옷 입는 센스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그냥 편하게 입고 다녀요. 입었을 때 불편하지 않고 활동하기가 편한 옷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사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지, 대학생이 되어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음.. 놀 땐 정말 빼지 않고 잘 놀고, 공부해야 할 때는 초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그런 대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동아리가 있나요?

‘몽환’이라는 서울대학교 마술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평소에 마술에 관심이 있던 터라 앞으로 분발해 열심히 배우고 활동할 계획입니다. 학교에 다양한 동아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것을 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뭐에요?

아직 구체적으로는 정하지 못했어요. 아직 신입생이니까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해보면서 차차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려구요.

마지막으로 MoDu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MoDu 독자 여러분! 저도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난 지 불과 몇 달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심정이실지 약간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한 상황인 것 같아도 늘 자신을 믿고 꾸준하게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늘 큰 꿈을 꾸는 사람이 되셨으면 해요. 저도 여러분이 꿈을 꼭 이루시기를 바랄게요. 항상 힘내시고 MoDu도 많이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표지 모델 촬영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정문 양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드림컨설턴트

꿈을 찾는 여행

 

“ 공부하기도 바쁜데 꿈을 찾는데 낭비할 시간이 어딨어?”

“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자 더 보겠어”

짜잔! 안녕하세요? 드림컨설턴트입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꿈 찾기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 왔어요. 꿈을 찾는 여행! 해본 적 있나요?  다소 막연하고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함께 떠나 보자구요!

꿈? 꿈? 꿈!

저희도 여러분과 같이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답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꿈,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죠. 왜냐구요? 저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은 우리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 지는 가르쳐 주지 않은 채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라고 말씀하시죠. 왜 해야 하는지를 납득을 하지 못하니 공부가 즐거울 수가 있나요. 그래서 저희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심한 끝내 내린 결론은 ‘공부는 수단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위한 수단? 그건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겉핥기 식으로 문제를 봐선 해결하기 힘들죠. 마음에 드는 이성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성이 여자라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꽃을 선물하고, 이성이 남자라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될까요? 애석하게도 그 여성분은 꽃에 알레르기가 있었고 그 남성분은 게임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본질적인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절대 마음을 얻을 수 없겠지요.

공부가 재미없다면, 아마도 공부를 해야 할 동기를 아직 찾지 못해서일 거에요. 그렇다면 공부를 하는 동기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꿈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공부라면? 이제 조금은 관심이 생기나요?

 

“한 사람이 가장 진실 되게 사는 방법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위의 문장처럼 살지 못하고 있어요. 물론 저도 그렇구요. 그러나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넬슨만델라, 테레사 수녀등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혹은 이전에 역사에서 이름을 남겼던 사람들은 좀 달랐어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었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삶의 모든 과정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었기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갔고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꿈을 찾는 데 들이는 시간이 많다 할지라도 그 시간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꿈을 찾게 되면 그것만 볼 수 있게 되거든요. 우리가 장애물이 보이는 이유는 목표물에서 시선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목표만 본다면 장애물 따윈 보이지도 않죠. 장담하건 데, 꿈을 찾게 되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드림컨설팅을 해주면서 모든 것의 최우선은 꿈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늦었다고, 이제는 공부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꿈을 찾은 다음에는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과 꿈을 찾는 여행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소개시켜 드릴 거에요.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꿈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꿈을 찾았을 때, 그 때의 기분은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을 거에요. 그럼 우리, 같이 힘내볼까요?

여행 1.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먼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써내려 가 보기로 해요. 자신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거든요. 이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후에 현재의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봅시다. 마지막으로는 미래의 나의 모습이 되길 희망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이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간이 많지 않을 거에요. 그런 만큼 생각을 해내기도 힘들죠.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드릴 조언은 “모든 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에게만 집중하라” 에요. 진지하게 자신을 대하는 순간 희망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꿈찾기 멘토링 프로그램 1

<자기소개 :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쓰기>

1. 과거 :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10줄 이상)
2. 현재 :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싫어하는 일(or 못하는 일)은? (각각 5개 이상)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싫어하는 일

 

 

 

 

 

 

   
3. 미래 : 나의 20년 후의 모습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10줄 이상)※ 참고 Keyword – 학력, 직업, 자격면허, 외국어 능력, 사회활동(동아리, 학회, 봉사활동), 해외여행·연수, 특별한 경험, 이상형, 결혼 및 가정, 인간상

먼저 여행을 떠난 친구의 이야기

K군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집안에서의 반대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명확하지 않아 많이 힘들어 했죠.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만 학자집안에서 용납하지 않으셨고 또 연기자가 되는 것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K군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친구의 생각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었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이 친구도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처럼 꿈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방황한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연기’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이것은 K군의 ‘과거’에 관한 질문이었어요. 그러나 대답은 “그냥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 연기를 하는 자기 자신이 생각나서 희열을 느낄 뿐 ‘과거’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렇다면 ‘현재’의 모습을 파악해보기 위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하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막상 적으려면 잘 생각나지 않죠. 그래서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지, 어떤 일을 할 때 제일 싫은 지와 같이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본 후 K군은 “저는 사람이 없는 곳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아요. 그렇지만 잘하는 것은 수학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막연하죠? 아마 전에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야 꿈을 찾을 수 있어요. K군은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막상 생각해보라면 생각하기 힘든 것!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죠.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K군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역시 명확하게 표현해 내지 못했어요. 당연한 결과였죠.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데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더 어려웠을 거에요. 이럴 때 제가 권하는 방법은 “가치 찾기” 입니다. 가치 찾기는 스스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 세가지를 꼽아보는 작업입니다. K군에게 저는 가치를 명확하게 설정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군에게 중요한 가치는 행복이었어요. 그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해서 지금도 막연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구요.

 

마무리하며

첫 번째 여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날들, 생각하는 것들,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술부터 배부를 순 없어요. 만약 처음부터 쉽게 꿈을 찾을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은 꿈을 이미 찾았겠죠?

마무리를 하면서 K군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해보긴 해봤지만 진지하게 임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제 이야기를 같이 해보고 저 자신에게 집중을 했던 시간을 가지고 나니 저의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찾을 수 있다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즐겁게 느껴질 것 같아요. 그 시작이 되는 만남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꿈을 찾는 여행은 정말 즐겁습니다. 앞으로 K군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릴 거에요. 여러분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K군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낄 테니까요. 삶에 의욕이 나지 않고 지금의 생활이 즐겁지 않은 당신!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꿈’ 을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드림컨설턴트는 자신의 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주체적으로 꿈을 설계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꿈을 찾기보다는 경쟁, 성적, 공부에 매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꿈이 아닐까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다양한 멘토 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학생은 저희 홈페이지로 찾아오세요. http://www.dreamconsultant.net/ 

스포츠서울 기자, 장강훈 

 

편집/기자-고보경, 김민석, 임수정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죠. 지난 시즌에는 구장을 찾은 관중의 수만 600만을 웃돌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직도 야구에 대해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아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경기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는 스포츠서울의 장강훈 기자님을 만나봤습니다.

<자기소개 및 업무소개>

안녕하세요. 먼저 MODU의 독자 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예, 저는 스포츠서울에서 야구담당을 맡고 있는 장강훈입니다. 처음 기자가 된 것은 2003년이구요, 스포츠서울에는 2008년 2월에 와서 야구에 대해 본격적으로 기사를 쓰게 됐어요. 그 전에는 야구담당을 목표로 교육부 출입기자로 3년 있었구요, 다음에는 2년 반 정도 농림부, 식품안전의약청, 보건복지부 출입을 했었죠. 스포츠마케팅 관련해서도 1년 반 정도 했구요. 그러다가 스포츠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야구담당 기자가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기본적으로는 신문에 야구기사를 게재하는 일을 해요. 직접 경기 보고, 감독이나 코치, 선수들하고 얘기를 해서 야구관중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대신 물어보고, 전달해 드리는 거죠. 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씩 쓰고. 선수단과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잖아요. 그 창구 역할을 저희가 한다고 생각해요. 또 선수단이나 코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밖에서 보는 모습이 다를 수 있잖아요. 저희는 그 부분을 다루면서 간극을 좁혀주는 일을 하는 거죠.

<진로 선택 및 준비 과정>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제가 음악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밴드도 하고, 대학교 때도 홍대 같은 데에서 노래도 했었고. 그래서 어렸을 때는 라디오PD가 되고 싶었어요. 밤에 공부도 안하고 맨날 라디오만 듣고 그랬거든요. MBC FM의 24시간 프로그램을 다 알았고, CM까지 다 외우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교복 안에, 팔 쪽으로 이어폰을 빼서 계속 라디오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연히 기자가 라디오PD보다는 더 비전이 있다는 조언을 들어서, 지원을 해봤다가 운 좋게 붙었어요.

, 정말 우연히네요. 그럼 특별히 야구 담당 기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신 건요?

2003년 3월 10일에 첫 출근을 했어요. 그 때부터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는 게 뭘까’하는 고민을 시작했죠. 사람들한테 뭔가 좀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거,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을 해보니까 야구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야구부였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인야구부 하고 있거든요. 뭐, 어떻게 보면 넓은 의미에서는 다 선후배들이니까 더 애정이 가고, 뭔가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 싶죠. 특히나 야구 싫어하시는 분들, 또 야구 모르시는 분들이 제 기사보고 ‘아, 야구에 이런 매력이 있구나. 야구장가서 한 번 봐야겠다’ 하셨으면 좋겠어요.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음. 사실 기자가 되고 나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아까 얼핏 눈치 채셨겠지만, 초등학교 3년, 중학교 3년 동안 수업을 한 시간 이상 들은 적이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 (머리에) 들어있는 게 없겠죠? 그래도 뭐 어떻게 수능 점수가 잘 나와서 대학 갈 수 있을 정도는 됐어요. 근데 그렇게 가 봐야 할 수 있는 게 없겠다 싶어서 그냥 전문대를 가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공부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편입해서 졸업 하고 군대 갔다가, 말년휴가 나와서 언론사에 아무 생각 없이 원서를 냈는데 덜컥 된 거예요. 그때는 학력 위조 스캔들 터지고 그래서 이력서에 출신 학교를 안 쓰게 했었거든요. 뭐 그래도 아마 행정착오였을 거야 (웃음). 어쨌든 그렇게 덜컥 기자가 됐는데, 동기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학교 출신인데다가,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무지 잘한 아이들인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정말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대화가 안 되니까. (웃음) 그래서 그때부터 책도 되게 많이 읽었고, 고등학교 전 과목 교과서를 한 서너 번 읽었어요. 이해가 안 되도 그냥 읽었어요. 그때 배운 게 교과서에 뭐가 있는 지만 알면 사회 나와서 뭘 해도 사람들이랑 대화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야구 같은 경우로, 이론들을 많이 공부하고 가능하면 자주 야구장에 와서 경기를 봤어요. 선수들이랑 코치들하고 얘기도 많이 했고. 이런 것들이 지금 저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디 가서도 다른 사람들한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거죠.

, 정말 노력파세요.

뭐 일단은 남들보다 좀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글쓰기 같은 거는요? 그것도 노력하면 느는 건가요?

그렇죠. 쓰면서 늘죠. 이게, 글쓰기의 3원칙이 있어요. 이것도 문학 교과서엔가 나와요. 다독. 다작. 다상념. 3다라고 하거든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면 느는 거에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 더해서 조중동의 1면 기사랑 각 면의 톱기사들을 원고지에다가 그대로 따라 썼어요. 칼럼이나 신문수필도 매일 읽고 거기에 대한 감상도 쓰고. 이렇게 6개월 정도를 하니까 글의 오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제가 구성을 다시 해서 기사를 써 봤어요. 그렇게 한 1년 하니까, 주변에서 기사 좋아졌다고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구요.

 

<야구, 그리고 기자 장강훈>

아무래도 야구장에도 자주 오시고, 관련한 글도 많이 쓰시고 하니까 선수들하고도 친하시겠어요?

그렇죠. 원래는 ‘불가근불가원’이라고 취재원들하고는 가깝지도 멀지도 말라는 게 취재 원칙이거든요. 근데 저는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밥 먹고 사는데, 가까워질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대신에 그들이 뭔가 청탁을 해왔을 때,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면 내가 거절할 수 있어야죠.

안 그래도 채태인 선수랑도 사진 찍으셨더라구요.

2009년 시즌 때 찍었죠. 제가 채태인 선수랑 닮았대요. 2011년 개막전 때 태인이가 만루홈런 치니까 문자가 한 백 통 이상 왔어요. 네 동생이 만루홈런 쳤다면서 (웃음). 저야 뭐 좋죠. 유명한 사람 닮았으니까.

기자 생활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2008년에 문학 경기장에서 기아랑 SK랑 경기를 했는데, 그 때 제가 SK 담당이었어요. 그 때 윤길현이라는 투수가 최경환 선수한테 좀 안 좋은 행동을 해서 난리가 났었죠. 제가 그 날 현장에서 있었는데, 경기 흐름이라든지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봤을 때 저는 길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전의 상황을 보면 경기 양상이 그럴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내가 투수래도 그렇게 했을 거다’하고 기사를 썼죠. 경기는 선후배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끝나고 가서 사과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선배라는 이유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선수는 마운드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날 제 기사 때문에 회사가 마비가 됐고, 제 회사 메일 용량이 다 차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고 다음 날 잠실에서 SK랑 두산 게임이 있었는데, 기아 팬들이 출입문 앞에서 스포츠서울 장강훈 데리고 오라고 막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나가서 대표랑 얘기를 했죠. 결국에는 그 분이 수긍을 하고 갔어요.

그러고 그 다음에 윤석민 선수가 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게임 끝나고 팬들이 선수를 때려서 이 친구가 그 다음날 경기에 못나왔어요. 그래서 또 썼지 (웃음). ‘그건 아니다, 안에서 유니폼 입은 애들끼리 말하고 풀었으면 그걸로 된 거다. 팬들한테도 모자 벗고 인사를 했으면, 그걸로 끝난 거다. 그런데 왜 팬들이 선수들을 때리고 욕하고 그러냐. 그거는 구단이나 야구를 사랑하는 행동이 아니다.’ 근데…

그날 또..?

그날 또 난리가 났어요. 아마 네이버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맨 위에 뜰 거에요. 장강훈 뭐 하는 사람이냐고. (웃음)

하하. 그래도 장강훈 기자님의 기사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렇겠죠? 근데 사람들이 저보고 절대 평범하지는 않대요 (웃음). 아까도 얘기했지만, 다수의 기자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가서 엘리트 코스 밟아서 온 사람들이에요. 이 분들은, 물론 안 그러신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야구를 머리로 이해를 해요. 근데 제 생각에는 야구라는 게임 자체가 모순덩어리에요. 논리로 설명이 될 것 같으면 드라마일 수 없죠.

야구시즌이 아닐 때는 뭐하세요?

농구를 하죠. 저는 농구도 담당을 하거든요. 근데 농구 같은 경우에는 그 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기사 쓴 거 보면 너무 잘 쓴 거에요. 그럼 쉬는 날에도 농구를 보러 가요. 그 때 감독이나 코치들 잡아서 설명해달라고, 물어보고 그래요. 내가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있어야 글로 최대 80%까지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사람들이 기자들보고 얇고 넓게 안다고 그러는데, 저희 같은 전문지 기자들은 담당 종목은 누구와도 대화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야 여기 종사하는 분들도 저희 말을 신뢰할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하는데도 신문 보고 ‘에이 찌라시같이 썼네’ 그러면 정말 자존심 상해요. 그런 말 안 들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웃음)

 

<언론사 문화, 그리고 신고식>

기자실에서는 직급에 자를 안 붙인다고 들었어요. 부장님이 아니라 부장, 이런 식으로. 왜 그러는 건가요?

음. 예를 들어 정치부 기자가 대통령을 만났어요. 근데 막 주눅들어서 한 마디도 못하고, 대통령이 얘기하는 것만 굽신굽신 듣고 있으면 그건 취재가 아니잖아요? 반대로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를 만났어요. 괜히 무시할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노숙자들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뭐 힘든 것 없으세요?’ 이렇게 접근을 해야 되는 거에요. 옛날에 어떤 유명한 선배가, ‘기자는 대통령보다 낮지 않고, 구두닦이보다 높지 않다’라고 명언을 남긴 게 있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저희 정체성이죠. 누구하고도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으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이런 걸 조직에서부터 트레이닝을 해야 밖에 나가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호칭으로나마 그런 걸 연습하는 거예요.

, 독특하네요. 실제로 그런 게 도움이 되나요?

네. 물론 윗사람에게 존대를 하긴 하지만, 호칭이라는 게 의외로 영향을 많이 미치거든요. 이 것 말고도, 처음 기자실에 들어오면 부장이 미션을 줘요. 아침 8시쯤에 어디 경찰서 가서 서장 자리에 앉아서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담배 피면서 서장 올 때까지 있으라고. 가서 그러고 있으면 서장이 들어오잖아요? 그때 ‘죄송합니다. 사실은 부장이 시키셔서~’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서장이 막 욕하고 그러면 같이 하고 그래요. 그럼 비서들이 와서 말리고 (웃음). 이런 것들도 기자들 트레이닝 과정 중 하나에요.

독특한 신고식이네요.

그렇죠. 조직폭력배들하고도 취재할 때에도, 겁내고 그러면 취재가 안 되니까요. 그 때 이런 깡이 있어야죠. 그리고 예전에는 사람을 잠도 안 재우고 극한으로 몰기도 했어요.

요즘은 그런 게 좀 없어진 건가요?

요즘은 그렇게 시키면 아이들이 회사를 그만둬버리니까요. 사실 이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에요. 사실 사회인이라는 건 프로페셔널이니까. 프로가 누군가에게 뒤진다는 건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루하루 되게 절박하게 최선을 다해야죠.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해서 3년 동안은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되게 매너리즘에 빠져서 일도 하기 싫어지고 게을러져요. 그럼 도태되겠죠.

<미래 계획>

기자님의 10년 후의 모습은 어떠실 것 같으세요?

10년 후에도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조금 더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야구해설을 할 수도 있고, 책을 꾸준히 내서 지면에 다 못다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 수도 있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야구장 근처에서 동네 아저씨로 있지 않을까 해요.

<끝으로>

기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거는요, 제 기준으로 보면 저는 야구를 좋아하니까 일단은 공짜로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거? 전국에 있는 야구장에 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요. (웃음). 그리고 선수들, 코치, 팬, 야구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 그건 정말 최고죠.

나쁜 거는 음.. 집에 잘 못 가는 거? 사생활이 없어져요. 친구들 못 본지가 벌써 4년째니까.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나서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게임 끝나고 마감하고 집에 가면 11시 반, 12시거든요.

어떤 성격의 사람이 스포츠기자라는 직업과 맞을 것 같으세요?

일단은 사람을 좋아해야 돼요. 사람 만나는 게 좋고, 서로 알아가는 데에서 재미를 느끼면 기자가 될 기본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포츠를 좋아해야겠죠.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그 내면을 보는 게 더 좋은 사람, 또 전반적인 흐름까지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일단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해요. 꼭 고전이나 명작소설일 필요는 없고, 만화책도 괜찮아요. 뭐든 읽으면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공부 잘하라는 소리는 저는 안하고 싶어요. 교과서에 뭐가 있는 지만 알면 나중에 그거 응용할 수 있거든요. 그것 보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뭔지, 또 자기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성적은 그냥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했는지는 판단하는 사회적인 기준일 뿐이지,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부 잘한다고 그 사람이 꼭 사회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부광득 변호사님

 

편집/기자 – 고보경

판사, 검사,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로스쿨 도입 이전까지는 법대 역시 다수의 학생들이 꿈꾸는 최고의 학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법조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추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죠. XXXX는 이런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법무법인 지인에서 기업자문변호사로 계시는 부광득 변호사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자기소개 및 업무소개

안녕하세요. 먼저 MODU의 독자 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명함을 건네주신 후) 보시다시피 지금 하는 일은 변호사에요. 저는 고려대 법대 97학번이고, 사법시험은 2004년도에 붙었어요. 2005-2006년은 연수원에 있었고, 2007~2009년 3년 동안은 법무관을 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법무법인 지안)에는 작년에 입사해서, 실제적으로 일한 기간은 만 1년 정도가 됐죠. 변호사가 하는 일이 다양한데, 저는 기업 자문과 관련된 송무와 금융 쪽 일을 하고 있어요. 기업 자문 같은 경우, 공정거래나 M&A, 노동 문제 등을 주로 다루고 있구요.

법무법인 지안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20명 정도 되요. 한국변호사분들도 계시고, 외국변호사분들도 계시고, 세무사, 회계사분들도 계시고. 특히 저희는 기업자문 일을 많이 해서, 회계나 세법에 대해 다른 전문가 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현재 외국계기업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있잖아요. 영문계약서 검토할 부분도 많고, 미국법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외국 분들도 많이 있어요.

지금 하고 계신 기업 자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변호사에 대해 생각하면 법정에 나가고 피고를 변호하는 일들이 먼저 떠오르실 수 있어요. 물론 그게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건 맞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인 기업자문 같은 것들은 법정에 나갈 일은 거의 없어요. 기업 담당자 분하고 연락 주고 받으면서 계약서 같은 거 검토하고, 또 의견서 같은 거 보내주고, 그런 업무가 주가 되는 거죠. 이에 관련해서 소송이 생기면 그 때는 법원에 나가기도 하구요.

기업자문이라는 일을 하기 위해서 특별히 필요한 경력이 있나요?

변호사분들 중에 회계사자격증이 있는 분들도 있고, 기업에서 근무하다 오신 분들도 있어요. 확실히 그런 경력이 있으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죠.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크게 제약을 받지는 않아요.

법조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고지식하다거나 공부만 했을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기존에 법조인들 상이 그렇잖아요. 법대를 나와서 고시공부를 하고, 연수원에 가고… 법대생들의이미지도 고리타분하고, 고시촌의 이미지도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어요. 법대뿐만 아니라, 다른 과, 공대나 경영대 출신도 있고. 저희 회사만 해도 오히려 법대 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요. 저희는 기업 자문이라든가 금융 쪽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대표님이 두 분이신데, 한 분은 경영학과, 다른 한 분은 물리학과에요. 정치학과도 있고, 경제학과도 있고, 다양한 분들이 많아요. 예전에 사람들을 잘 안 뽑을 때는 법대출신의 단일화된 통로를 통해서 법조인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진로 선택 및 준비 과정

현재 직업이신 변호사를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뭐 대부분 고등학교 때 대학 과를 선택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고등학생 때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기자도 되게 좋아 보였고. 글을 잘 쓰지는 못하는데, 사람 만나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처음에 법조인을 생각하게 된 것은 좀 단순해 보일 수 있는데, 왠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 비춰지는 검사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리고 검사가 마음만 먹으면 되게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럼 처음에는 변호사보다는 검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던 거네요?

네. 근데 경험을 해보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법무관도 했었고, 연수원 때도 실무실습을 할 기회가 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조직에 들어가서 경험을 해보고 나니까, 저랑 적성에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검사가 되면 일반적으로는 형사사건을 주로 하게 되거든요. 쉽게 말해서 범죄자를 잡아서 수사를 하고, 법원에 넘겨서 형벌을 가하는 일만 쭉 하게 되는 거에요. 물론 그 자체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저는 막상 또 경험을 해보고 나니까 좀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검사가 되면 제약을 받지 않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까 한계가 있기도 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됐고, 지금 변호사를 하고 있는 거죠.

대학에서 법조인이 되시기까지 준비과정이 있잖아요? 법대 공부도 그렇고 사법고시도 그렇고. 그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들은 없었나요?

기본적으로 고시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었죠. 저 같은 경우는 학교를 졸업하고 신림동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었는데, 일단 신림동 생활 자체가 되게 답답해요. 그리고 저는 2차 시험을 세 번 봤거든요. 시험에 떨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죠. 그 때는 군대도 아직 안 갔었으니까, 만약 시험 떨어지고 군대 가고 그러면 장래가 좀 막막해지겠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런 불확실성이나 불안감 때문에 힘들었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도 그렇지만 시험 자체도 굉장히 고되다고 들었어요.

네, 2차 같은 경우는 4일 동안 봐요. 그런데 사실 연수원시험이 더 빡세요. 연수원에 가면 2학기 끝나고랑 4학기 끝나고 각각 시험을 보거든요. 또 등수를 매겨야 하니까. 근데 그 시험이 정말 힘들어요.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하루 종일 앉아서 쓰는 거거든요. 한 7~8시간을 연이어 보는데도 시간이 모자라요. 기자님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연수원에서 시험 보다가 사람 죽고 막 그랬어요.

예???

시험을 2주정도 보거든요? 하루 걸러 보고 그래요. 밥도 시험 보면서 먹어요, 막 김밥 먹고. 그거 시간 아까워서 안 먹기도 하고 그래요. 이렇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제가 연수원 들어가기 전에 임산부 한 분이 돌아가셨었어요. 그만큼 시험이 가혹해요. 비합리적인 부분도 많은데, 기존 법조인들이 생각이 좀 막혀있는 부분도 있어서, 같이 고생을 해야 법조인으로 끼워주겠다, 그런 거 있잖아요.

연수원 후에는 보통 어떤 일을 하시나요?

검사 같은 경우는 뽑는 사람의 수가 매년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서 연수원 등수가 높은 분들은 법원에 많이 가고, 그 다음에 있는 친구들이 검찰에 가고. 최상위권에 있는 친구들 중에는 대형로펌에 가는 친구도 있었고. 그 외에는 다른 중소형 로펌에 취업하거나, 혼자 개업하거나, 사내변호사 (in-house lawyer) 등으로 갔죠.

 

프로 보노(Pro Bono), 재능 기부

프로보노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프로보노가 뭔가요?

쉽게 얘기하면 재능기부에요.

프로보노 일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고등학교 친구의 소개를 받고 시작하게 된 건데, 아름다운 가게라고 혹시 아시죠? 친구가 거기서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해주고 있었는데, 마침 법률자문 건이 있었던 거에요. 근데 그 친구가 아는 법조인이 저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한테 한 번 나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가봤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았거든요.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았고. 저는 법대를 나와서 고시공부하고 그런 정형화된 코스를 밟았다 보니까, 경영컨설턴트 하시는 분들을 처음 본거에요. 생각하는 것도 법조인들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이런 분들과 만나서 회의하고 그런 게 되게 재미있었고, 또 보람도 있었어요. 지금도 아름다운 가게 분들이랑 계속 연락도 하고, 정식으로 법무부에 위촉도 받아서 활동하고 그러고 있거든요. 되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해서, 3년 정도 쭉 하고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적 기업들 자문을 해드리고 있죠.

변호사 일을 하시면서 프로보노 같은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사실 그게 좀 문제인데요, 전 주말에 주로 하죠. 또는 퇴근 이후에. 메일 같은 것도 많이 쓰고.

되게 바쁘시겠네요.

재미있으니까, 뭐 괜찮아요. 프로보노는 매주 회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만나서 회의를 하는 건 한 달에 1~2번 정도?

로스쿨 이야기

요즘 로스쿨제도가 이슈가 많이 되고 있잖아요. 로스쿨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은 과도기라 제 의견을 말하기가 좀 조심스러워요. 그런데 로스쿨제도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것은 맞아요. 최근에는 검찰선발 때문에도 이슈가 되고 있구요. 기존의 연수생 같은 경우에는, 사법연수원 성적과 본인 지망에 따라 검찰에서 선발을 했었는데, 로스쿨생들 같은 경우에는 로스쿨 원장들 추천을 받아서 뽑겠다고 법무부에서 발표를 한 상태거든요. 로스쿨은 입학 때부터 국가가 관여하는 게 아니라 사립이나 공립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뽑는 거고, 또 그 중에서 로스쿨 원장이 학생을 추천한다는 게, 연수원생들이 봤을 때는 좀 불공평하다는 거죠. 근데 아직은 로스쿨 1기생이 졸업을 안 했거든요. 사실 지금 제도가 완비가 안된 상태에서 제도가 도입이 되고 운영을 하려다 보니까 여러 가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로스쿨생들이 입학을 위해 학점관리도 열심히 하셨을 거고, 로스쿨 수업도 만만치 않겠죠. 또 결국에는 연수원이 없어지고 로스쿨제도가 안착이 될 테니까, 로스쿨생들 입장이 좀 더 배려가 될 수밖에 없긴 한데. 현재는 연수원생들이 남아있으니까 반발이 있는 거죠. 그래도 말씀 드렸다시피 아직은 과도기라서 뭐라고 확실히 단정짓기는 어려워요.

그럼 로스쿨생들이 검사가 되더라도, 기존에 계신 분들과 잘 어울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겠죠. 현재 연수원생들 사이에서는 기수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나이가 어려도 기수가 높으면 선배 대접을 받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로스쿨 출신은 학교도 다 다르고, 기수 개념도 없으니까 이런 문화에 어울리기가 어렵겠죠. 로스쿨생은 자기가 나이가 많은데, 연수원생들은 나이가 적어도 선배니까 대접을 받으려고 할 수 있죠. 이런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요. 근데 뭐 어쩔 수 없이 로스쿨로 갈수밖에 없는거니까, 변화가 생기겠죠.

변호사일 하시면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점은, 일단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후에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저처럼 프로보노 활동 같은 것도 할 수 있는거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또 판사나 검사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잖아요. 개인적 역량으로 사회에 그만큼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이 또 없는 것 같거든요. 힘든 점 같은 경우는, 글쎄요. 다른 직종에 계신 분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업무가 과중한 것은 맞아요. 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기도 한데, 그런 건 어느 직종에나 있는 거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별한 단점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미래 계획

부광득 변호사님의 10년 후 모습은 어떨까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갈 생각이신지 궁금해요.

일단은 10년 정도는 변호사 업무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동안 깨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요. 그 이후에는, 제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게 되고 클라이언트 기반을 갖추게 되면.. 저는 프로보노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사실, 사회적 기업은 영세하고 발전단계에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조금만 도움을 드려도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이런 활동을 짬짬히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여유를 가지고 더 많이 활동을 했으면 해요.

조언

어떤 성격이나 성향의 사람이 변호사라는 직종에 맞을까요?

음.. 일단은 모든 직업이 그럴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니까,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언변에 능한 분이면 좋겠죠. 글도 잘 쓰고. 변호사 일이 기본적으로 상호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거니까, 좀 얘기를 많이 들어보고 정리할 수 있는 분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을 최대한 즐기시되, 장래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게 하세요. 법조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대학생이 되신 후에는 천천히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 학점관리라든지, 영어공부도 그렇고. 또 판검사에 뜻이 있는 분이면, 직업윤리나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진로고민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사실 가장 좋은 건 현업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건데, 그게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잖아요. 근데 그게 안되면, 책을 읽는 것도 좋겠죠. XXX같은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도 좋고.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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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사태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

 

글-유승은

예시기사)

한국 4대 정유회사(GS칼텍스, S-oil, SK이노베이션, 그리고 현대오일뱅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국제 유가가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정정불안 등의 요인으로 최근 급격히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유가가 올해 예상했던 배럴당85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넘어 100달러를 상회하자 경제정책 기조의 재점검에 들어갔다. 당초 잡았던 ‘성장과 물가 두 마리 토끼잡기’에서 ‘물가안정’으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가가격 상승으로 인하여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서민경제 및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사태의 개요

위 기사는 최근 중동사태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자 주변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결과 튀니지와 이집트는 알리 대통령과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났고, 다른 나라에서도 내전이나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죠. 솔직히 처음에 전문가들은 이러한 민주화 움직임이 금세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중동국가들은 경제적으로는 오일머니(석유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가 있어 가난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기반이 약하거든요. 즉, 빈곤으로 인해 국민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약하고 이를 주도할 계층이 없다고 본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장기 독재정권의 부패와 경제적 어려움(고물가, 고실업 등)에 화가 난 국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사태는 그야말로 일파만파! 가 되었습니다.

 

원유가격을 판단하는 기준

원유라고 해서 다 같은 석유가 아니죠. 석유는 오래 전 동물이 죽어서 쌓인 시체가 지하 깊숙한 곳에서 화학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죠. 따라서 지역에 따라 다른 성분을 지닌 석유가 채굴됩니다. 크게 미국산 WTI유, 북해산 브랜트유 그리고 중동산 두바이유가 3대 원유로써 원유시세의 지표가 되고 있어요. 품질은 브렌트유가 가장 좋고 그 다음이 두바이유 입니다. 품질이 좋다는 것은 유황성분이 적어서 정제가 쉽고, 별도의 탈황비용(유황을 제거하기 위한 비용)이 적게 든다는 거예요. 당연히 품질이 좋은 원유가 가격도 높겠죠.

WTI유는 West Texas Intermediate라는 미국기업의 약자로 미국 텍사스주와 뉴멕시코주에서 생산되고 있어요. 유황성분이 0.24%로 매우 낮은 저유황 경질유이죠. 경질유는 품질이 좋은 석유를 가리킵니다. 참고로 WTI를 서부텍사스중질유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텍사스 중부지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품질과는 관련이 없답니다.) WTI는 뉴욕상품거래소(NYMEX) 선물시장에서 주로 거래되고, 수출되지 않으며 미국 내부에서 전부 소비(수출되지 않아요!)됨에도 불구하고 거래량이 세계 원유 시장의 1/4이나 되고, 가격이 투명하게 결정되기 때문에 국제 석유의 현물가격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활용되고 있어요.

브렌트유는 영국 북해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어 북해산 브렌트유라고 불려요. 대서양 연안국가들이 거래하는 원유시세에 중요한 기준이 되죠. 런던 국제원유거래소(IPE:International Petroleum Exchange)에서 주로 거래되고, 국제원유 선물거래의 약 3분의 2는 브렌트유 가격을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두바이유는 중동의 아랍에메리트연합(UAE)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주로 도쿄시장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지역에서 거래되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석유가격은 대체로 두바이유에 의해 결정됩니다. 위 기사에서도 두바이유 기준으로 원유가격이 상승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네요.

 

리비아사태가 석유가격의 상승을 가져오는 이유 : 공급부족? 수요증가?

다시 기사를 볼까요? 우선 처음에 주유소들이 일제히 석유가격을 올렸다는 문장이 나오네요. 중동 사태의 발생이 석유가격을 올린 거에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중동의 국가들이 세계적으로 주요 석유 산유국이기 때문이에요. 그 중 최근 문제가 된 리비아는 석유매장량이 약 400억 배럴, 1일 석유생산량이 160만 배럴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중 7위나 됩니다.

그런데 리비아 사태로 나라가 불안해지자 석유공급량이 줄어 버린거죠. 글로벌 정유업체들도 리비아를 떠나고 있어요. 그렇다면 원유가격의 상승은 리비아 사태로 인해 석유 공급의 감소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까요? 이것은 또 어려운 이야기에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리비아의 사태로 인해 줄어든 석유생산량은 글로벌 석유생산량의 1%에 불과하다고 해요.

이는 1차 오일쇼크 때 7.5%가 감소한 것에 비해서는 매우 적죠. 아무리 리비아가 많이 생산량을 줄인 다 해도, 기존에 리비아 가 전세계 석유생산량에서 차지한 비중이 고작 2%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따라서 반정부 시위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로 상승한(15% 정도)것은 단지 공급감소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오바’라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실제로 각국 정부는 현재 1973년에는 없었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부족한 석유를 추가적으로 생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어요. 즉, 공급측 충격은 크지 않다는 반론이 가능한 거죠.

그렇다면 석유가격의 상승을 가져오는 수요 측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불확실성’ 입니다. 지금 세계는 민주화 시위가 리비아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산유국에게 확산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만약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다면 오일쇼크가 가능하죠.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세게 최대 석유 수출국이거든요.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비축유를 미리미리 구입할 요인이 되죠. 따라서 석유수요가 증가하여 석유가격 상승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한편, 리비아 사태와는 별도로 최근 석유가격의 상승을 이끈 수요 측 요인이 있죠. 그것은 바로 신흥성장국가(특히 중국)의 빠른 석유소비증가입니다. 석유는 거의 모든 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이죠. 따라서 경제성장과 오일소비 증가는 비례합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막대한 석유를 소비함으로써 오일가격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2010년 중국의 전년대비 석유소비 증가율은 10.5%로 추산되었으며, 세계소비증가에 따른 중국 기여율은 35.7%로 추산된 바 있습니다. (출처: 최근 물가불안의 원인과 대응책, 삼성경제연구소, 정진영. 2011. 1. 21) 한편 국제유가가격의 상승이 예측된다면 투기적 자본에 의한 석유 매매 늘어나고 이것은 또다시 석유가격을 상승시킬 것입니다.

 

유가상승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석유는 난방, 조리에 필요한 연료입니다. 또 플라스틱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죠. 자동차나 배를 움직일 때에도 필요한 동력원이기도 해요. 이와 같이 원유(crude oil)은 대부분의 산업에 폭넓게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슬프게도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체 상품 수입액의 25%정도가 석유수입에 사용될 정도이니 유가의 변동은 다른 어떤 재화가격의 변동보다 영향력이 대단할 수 밖에 없죠. 우선 석유가격이 상승하면, 제품의 생산비가 상승합니다. 이는 산업의 경쟁력을 낮추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죠. 또 제품의 운송비(교통비)가 증가하여 추가적인 물가상승의 요인이 있어요. 최근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10% 오를 경우 소비자 물가가 0.2%p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있죠.(2011년 3월 기준) 이러한 물가상승은 돈이 많은 부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서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돼요.

오일쇼크란? 오일가격이 갑자기 크게 올라 세계 각국에 경제적인 타격을 준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오일 쇼크는 2차에 걸쳐 일어났어요. (1차는 1973년, 2차는 1979년) 자세한 내용은 보충강의를 참고해 주세요.

비축유란? 석유공급이 중단되는 등의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모아둔 석유를 가리킵니다. 미국은 전략비축유(SPR : Strategy Petroleum Reserve)라고 하여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석유를 저장해 뒀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석유공사에서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과 적절한 가격의 유지를 위해서 비축유를 구입하고 있죠.

<보충학습>

오일쇼크의 역사

역사적으로 2번의 오일쇼크는 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가져요. 따라서 각각에 대해 알아두는 것은 게계역사와 경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상식이 되었죠. 우리도 알아볼까요?

1차 오일쇼크

제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이스라엘과 시리아, 이집트간의 제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발생했어요.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였는데, 아랍권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중단을 요구하며 석유생산량의 25% 감산을 결정하였죠. 그 배경에는 아랍과 서방 선진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중동의 산유국은 비록 자신의 영토에 석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유의 국제 판매가에 대한 결정권은 서방국의 석유회사, 즉 오일메이저(oil major)에게 있었죠. 이에 아랍 국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 Countries)를 조직(1960년)하고 원유가격 인상 및 공급물량 감소를 결의한 거에요. ‘74년 1월의 국제유가는 10.11달러로 전달의 4.3달러보다 2.5배 급상승하였습니다.

2차 오일쇼크

아랍의 산유국이 미국 등 서방국의 영향력을 견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란 정권은 친미적인 성향으로 오일 메이저에게 우호적이었어요. 그러던 이란에 민족주의 혁명이 발발하여 친미 정권이 축출되고 석유 수출은 중단되었습니다. 국제 원유가가 급등은 당연한 결과였죠. 이로 인해 배럴당 10 달러를 조금 넘어섰던 원유가격은 불과 6년 사이에 20달러를 넘게 되었고, 현물시장에서는 배럴당 40달러로 거래되게 됩니다.

[더 생각해볼 문제]

1. 석유가격이 상승하면 이익이 보는 산업과 손해를 보는 산업은 각각 무엇이 있을까요?

2. 석유가격이 하락하면 석유수입국에게 미칠 긍정적/부정적 영향은 각각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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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은 과연 대안인가

 

글 – 권호현

 3월 11일 금요일, 일본에 제법 큰 지진이 났다. 쓰나미도 왔다. 13일에 귀국할 예정이었던 친구와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전날 밤에 “건강히 잘 있다고, 일본 여자애들 하나도 안 예쁘다”고 통화 했었는데, 지진 직후 전화가 안 됐다. 정신없이 인터넷에서 기사를 뒤지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로 수십만이 목숨을 잃었을 때,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안타까움을 넘어 진짜 걱정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다음 날,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한탄하기에도 급했던 그 때, 인간이 만든 재해가 동일본을 덮쳤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일본 원전 폭발로 방사능 물질 한반도 유입, 대피하라?

“오늘비가온다니절대맞지말고일직귀가바람일본원자력3호기또폭발주위바람” 

3월 15일에 아버지께 받은 문자입니다. 문자를 잘 쓰지 않으시는 제 아버지가 이런 문자를 보내신 것을 보면, 그날 적잖은 소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부는 17일, “15일 4시경,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에 도착한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한 죄로 한 남자를 체포했습니다. 여러분이 지리시간 혹은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듯 한반도와 일본 부근은 편서풍(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동쪽의 공기가 서쪽으로 오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우리보다 서쪽에 있는 중국, 몽골의 공기는 동쪽, 즉 한국 쪽으로 쉽게 넘어올 수 있지요. 매년 봄이 되면, 중국에서 황사가 날아온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유언비어를 유포한 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유언비어의 속성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유언비어는 그만큼 무섭기에 생겨나고 또 누구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퍼집니다. 방사능물질이 한반도에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대비하여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과 대처방안을 정부가 적극 홍보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소동이었겠지요.

한편 일본에 지진이 난 그 시점, 이명박 대통령은 UAE(아랍에미리트)에 있었습니다. UAE에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는 계약을 마무리 짓고 있었지요. 반면 일본 정부는 원전 사고 지점 반경 3KM, 10KM, 20KM 바깥으로 주민들을 대피시키라며 그 범위를 시시각각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선 안전검사 후 재가동하기로 했던 원자력 발전소 3곳을 완전폐기하기로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원자력발전소를 짓고자 한 UAE 사람들은 바보인가요? 그 곳은 지진은 안 나는 곳이니 괜찮다고 생각한 걸 가요? 참, UAE는 석유가 나는 나라 아니었던가요? 왜 석유로 화력발전을 하지 않고 원자력 발전을 하려 하는 걸까요? 그 이유들을 차차 살펴보겠습니다.

 

원자력에너지의 매력?

일상 생활에는 전기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전기를 만들려면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구에는 이미 화석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세계 각국이 지금 수준으로 화석연료를 쓴다면, 석탄은 약 240년, 석유, 천연가스는 각 약 40년 정도 후에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력통계의 2008년 기준 자료를 보면 1단위의 전기를 생산하는데 원자력은 약 39원, 석유는 약 117원, 천연가스는 약 128원이 듭니다. 원자력을 이용한 전기생산은 화석연료를 이용한 전기생산보다 3배 가량 저렴하다는 겁니다.

세계 각국이 원자력 의존도를 높이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미국, 중국, EU, 일본을 비롯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나라들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했기 때문인데요. 이는 그 동안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지구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인정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각국이 노력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정부도 그 동안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 추이로 예측한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에서 30%를 감축하기로 결정하고 “저 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높이는 겁니다. 화력발전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원자력 발전의 그것보다 40~100배 가량 많기 때문에 화력발전을 줄이고 원자력발전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죠.

정리하자면, 원자력 발전은 “비싼, 그리고 그 양이 점차 고갈되어 더 비싸질 화석연료를 최대한 덜 쓸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움직임과 그 이유

세계 곳곳에서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979년, 미국 드리마일(Three mile) 섬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미국의 지역 사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원자력에너지 반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에너지연합(ICE)이라는 조직으로 발전되어, 자국 내 원자력발전소 건설뿐 아니라, 타국에의 수출을 저지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 에너지연합(ICE) 1980년 워싱턴의자발적 결사체들이 에너지연합(ICE)이라는 조직을 세워, 다국적 원자력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필리핀에 원자로를 수출하려는 것을 저지헀다. 그들은 강도 7-8의 지진이 원자로 파이트의 파열을 가져와 원자로의 핵심장치들이 파괴됨으로써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필리핀 주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필리핀 정부에서도 자체조사에 나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연기시켰고, 웨스팅하우스도 법원에 제소했지만 패소 당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의 인접국인 독일에서도 오래 전부터 활발한 원자력 발전소 폐기운동이 있어왔습니다. 그 성과로 1998년 9월 총선에서 집권당인 사민당은 장기적인 “원자력발전 포기”를 채택했습니다. 물론 이후 집권당이 바뀌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본 원전사고 직후인 지난 3월 14일, 장기 계획을 앞당겨 노후한 7개의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원자력에너지의 수많은 매력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글의 도입부에 언급한 것과 같은 유언비어가 순식간에 퍼질 만큼 원자력발전의 부작용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1986년, 당시 구 소련 소속이던 지금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지방에서 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구 소련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기 급급했기에 4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과학자들은 피폭으로 암에 걸린 이들까지 포함하면 사망자가 최대 6만에 달한다고 말합니다. 

서방 선진국에서도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드리마일(three mile) 섬에서 원자로의 50%가 녹아 내리는 사고로 지역 주민 10만여 명이 대피했습니다.  인접지역인 펜실베니아, 매릴랜드, 뉴욕에서 유아 사망률이 각각 16%, 41%, 16% 증가한 것은 이 사고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도와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트라카스탱 지역의 원전도 안전하지는 않았습니다.  75KG에 달하는 우라늄 농축액이 강과 지하수를 오염시켜 100여명이 방사능에 노출됐고, 이 사고로 와인업자들은 “트라카스탱”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가져온 재앙은 과학기술로 모든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재검토 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왔습니다. 

“이중 삼중 콘크리트 건물로 그 어떤 사고에도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소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지층에 건설하며, 지진의 영향력이 적은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되고, 진도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가 되어 있다.”

“방사성 폐기물은 콘크리트와 함께 철제 드럼 속에 밀봉-압축되어 또 다시 콘크리트 덩어리에 의해 2중, 3중으로 보호되며, 지하 깊숙한 곳에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어 보관한다.”

위는 <한국수력원자력>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 안전대책입니다.  정말 철통 같아 보이는 위 대책들은 반대로 원자력 에너지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과학기술로 대부분의 위험을 예측하고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기술이 미래를 모두 정확하게 예측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계절의 변화, 예상치 못한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과학과 예측을 넘어서왔습니다.  천재지변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이 2차로 불러올 인간이 만든 재앙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동차 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느냐”로 대변되곤 하지요. 하지만 자동차사고와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자동차 사고에 비해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그 수가 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는 소수의 개인에게, 그리고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어납니다.  반면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적게는 그 지역 주민들 모두, 많게는 주변국들 모두에게 통제할 수 없는 피해를 줍니다. 

한국 못지않게 좁은 지역에 1억이 넘는 인구가 밀집해 살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이곳은 안전을 제일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건물은 건축허가도 나지 않습니다. 정부관계자들은 그 동안 “과학기술에 기초한 2중 3중의 안전대책이 있으므로 원자력 발전소는 절대 안전하다” 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사례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은 그 크기를 예측할 수가 없으며, 이를 과학기술로 통제하겠다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는 또 하나의 경고이겠죠. 

 

원자력 발전을 거쳐 진짜 대안에너지 개발을 향해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30개국에서 436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 입니다.  원자력 발전은 전 세계 전기생산량의 약 15%를 차지하며, OECD국가 전기생산량의 24%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0년이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되는 전기의 비중이 전체 전기 생산량의 56%에 이를 거라고 합니다.  또한 현재 고리, 월성을 비롯한 원자로 21기를 가동하여, 국내 전력의 31.5%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전 세계의 전력수요는 끊임없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한국의 전기수요 역시 지난 1월 역대 전기수요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자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비싸고 매장량에 한계가 있는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할 수 없고, 온실가스 감축이 국제사회의 목표가 된 지금, 원자력 발전은 단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더 많이 지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는 한국의 전력수요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함과 동시에, 전 세계적 전력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거기에 우리의 원자력 기술을 판매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건 이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객관적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기에, 원자력 기술에 대한 수요 역시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장기적인 목표는 신재생에너지가 되어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각 국가별로 신재생에너지의 정의와 범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용하거나 햇빛, 물, 지열, 강수, 생물유기체 등을 포함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태양열(광), 바이오, 풍력, 수력, 연료전지, 지열, 해양, 수소에너지, 폐기물 등이 포함되지요.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우라늄, 플루토늄 역시 한정된 자원입니다.  또한 상술했던 것과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요.  신재생에너지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합니다.  태양열, 풍력, 조력 등은 고갈될 염려 없이 지속적인 이용이 가능하며, 환경오염 물질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려왔습니다.  한국과 경제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 터키, 멕시코의 2009년 기준 전체 전력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각각 23.7%, 19.6%, 13.7% 인 반면, 한국은 1.1%만을 신재생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1.1%조차 2000년도에 비해 줄어든 수치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OECD국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00

2009

헝가리

0.8

8.4

한국

1.4

1.1

폴란드

1.9

5.8

벨기에

2.2

7.0

영국

2.8

7.2

체코

3.4

5.6

네덜란드

4.7

11.1

아일랜드

5.0

14.8

독일

7.2

17.2

그리스

8.1

12.6

호주

8.4

7.1

미국

8.6

10.4

일본

10.1

9.7

프랑스

13.3

13.3

슬로바키아

15.1

19.1

스페인

16.4

25.1

덴마크

17.0

29.5

이탈리아

19.0

23.7

멕시코

20.1

13.7

터키

25.0

19.6

포르투갈

30.3

37.7

핀란드

33.7

30.5

스웨덴

57.4

59.6

스위스

58.4

57.2

캐나다

60.6

60.8

뉴질랜드

71.5

71.6

오스트리아

72.9

72.2

노르웨이

99.7

96.6

아이슬란드

99.9

100.0

IEA 2010 Edition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자료와는 달리 통계청은, 2009년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5%로 평가합니다. 또한, 그 수치가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료를 자세히 보면, 실제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0.6%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라 보기 어려운 10MW 이상 대규모 수력발전을 03년도부터 신재생에너지 범주에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도시쓰레기, 산업 폐기물을 소각하여 얻는 에너지 역시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대안에너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원자력에너지는 단기적으로 거쳐가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자료는 한국이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2030년까지 원자력에너지 의존도를 59%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은 정부가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나가며

발명 100년이 채 안 되어 인류는 전기 없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끝없이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당장 값이 싸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에도 일조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언뜻 대안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3.11 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세계인들에게 체르노빌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원자력 발전은 결코 우리의 궁극적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202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56%까지 늘리려는 정부의 계획은 좀 더 장기적인 대안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당장은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포기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야 합니다.  그 시작이 진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투자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에너지 소비와 생산을 증가시키려는 끝없는 경쟁을 넘어,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에너지 생산을 감소시키는 우리 개개인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단지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절약하자는 뜻에서 전기와 상품소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공존을 위해 우리의 욕심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참, 글의 제일 처음에 언급한 제 친구는 지진 직후 2일만에 연락이 되어 무사히 귀국했답니다.

[더 생각해볼 문제]

1.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비중이 높은 나라를 찾아봅시다.

2. 우리는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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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언론 사이의 약속, 엠바고

글 – 임수정

올해 1월경에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원들을 구출하는 국방부의 제1차 구출 작전이 (일명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작전 수행 도중 일부 언론에게 보도되어 사회가 시끄러웠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언론사와 정부 간 갈등은 계속되고 있고요. 그 논란의 중심에는 정부에서 작전내용의 보도를 잠시 미뤄줄 것을 요청한 ‘엠바고(Embargo)’가 있습니다.

사건소개

다들 이와 관련된 뉴스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들어는 봤을 것 같네요. 이 글은 이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정부와 언론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엠바고(Embargo)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삼호주얼리호는 지난 1월 15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었어요. 납치를 해서 해당 국가에 인질의 몸값을 요구하는 게 소말리아 해적의 잘 알려진 수법이죠.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번 피랍사건에 대해 몸값을 주는 대신에 강경하게 군사적으로 대처하기로 하고 구출 작전에 돌입했어요. 1차 구출 작전은 1월 18일에 이루어졌는데, 이 작전에 최영함이 파견되었어요. 이 구출 과정에서 해적 여러 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되기도 했죠. 그런데 해적들이 항복을 하는 척하는 속임수를 쓰는 바람에 1차 구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게 됐어요. 그 후 국방부에선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라고 불리는 2차 작전을 개시했고 1월 21일 최영함과 대한민국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해군특수전여단)가 투입되었어요. 결국 해적들을 제압하고 삼호주얼리호에 탑승하고 있던 21명의 선원 전원이 구출되었어요. 대한민국 해군의 사망자는 없었고, 8명의 해적을 사살했으며 5명은 생포하는 성과를 얻었어요. 다만 안타깝게도 석해균 선장이 복부에 심각한 관통상을 입었지요.

 

좀더 깊이 알아볼까요? 실제로 정부는 기자들에게 1차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최종 구출 작전이 끝날 때까지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는 ‘엠바고’를 요청했었어요.

엠바고란?

-언론에서 ‘어떤 뉴스기사를 일정시간까지 그 보도를 유보하는 것’을 말해요. 즉, 정부기관 등의 정보제공자가 어떤 뉴스나 보도자료를 언론기관이나 기자에게 일정시간 이후에 공개하도록 요청할 경우, 그 뉴스의 보도를 미루는 것이죠. 하지만 정부가 엠바고를 요청한다고 해도 언론사가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하는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일종의 신사협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러한 논쟁 속에서 엠바고를 요청한 정부의 입장과 엠바고를 파기한 신문사들의 입장을 들어볼까요? 정부는 언론사에게 왜 1차 구출 작전에 대한 보도를 미뤄달라고 요청했을까요? 엠바고 요청에는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아요.

(1) 보충취재용 엠바고

- 사건이 전문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미리 취재원으로부터 발표내용 등에 대한 보충취재가 필요할 때 요청하는 엠바고에요.

⑵ 조건부 엠바고

- 뉴스가치가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으나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에 쓰는 엠바고에요.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기사화 한다는 조건으로 보도자료를 미리 제공받는 것이지요.

⑶ 공공이익을 위한 엠바고

- 국가 안전과 국익과 직결되거나 인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사건이 진행 중일 경우에 요청되는 엠바고에요.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특정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 시한부 보도중지의 경우를 뜻하지요.

⑷ 관례적 엠바고

- 외교관례를 존중하여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협정 또는 회담개최에 관한 기사를 공식발표가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도중지하는 것이에요.

 <출처: 네이버 용어사전>

이런 네 가지 이유 중 국가가 이번 사건에 엠바고를 요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3)번입니다. 정부는 ‘피랍 선원 안전’을 이유로 들어 언론사들에게 엠바고를 요청했어요. 아무래도 작전이 보도되면 해적들 귀에 들어가 그들을 자극할 수 있고, 그것이 피랍된 선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엠바고를 파기한 언론사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산일보>, <미디어오늘>, <아시아투데이> 등 3개 신문사에서 군사 작전 실패에 관련된 기사를 정부의 요청 기일 이전에 보도했어요. 정확히 <부산일보>는 20일 1차 구출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보도했어요.

보도 후에 논란이 일자 <부산일보>에서는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아 엠바고 요청을 듣지 못했던 것이라 밝히고 관련 기사를 내렸지요. 하지만 <미디어오늘>와 <아시아투데이>는 이미 사안이 알려진 만큼 사안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며 1차 구출 작전 실패에 관한 기사를 연일 보도했어요.

즉 한 번 보도된 사안은 엠바고가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정확한 사실 보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작전 실패의 보도가 해적들이 청취할 확률이 지극히 낮으며 따라서 선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보도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에요.

정부와 언론 모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관련 사실이 보도됨으로써 납치된 선원 또는 구출 작전을 펴는 군에서 생길 피해는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신문사 자의적으로 피해의 가능성을 낮다고 판단하고, 보도를 감행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될 수 없을 거에요. 

하지만 모든 경우에 언론사들이 정부의 엠바고 요청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에요. 정부의 엠바고 요청 목적을 잘 따져보고 그 이유가 합당한 것이라면, 그 때 받아들이면 되겠지요. 다만 ‘국익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라는 표현을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여기서 ‘국익’이란 개념을 자칫하면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할 우려가 있으니까요. 국가의 경제적 성장을 위해 보도가 제한되는 것은 ‘제4부’로서 정부를 감시하는 언론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죠. 국민과 공동체 등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조치일 때, 엠바고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엠바고의 명암

우리나라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정부의 언론탄압이 심했었죠. 정권에 대한 비판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엠바고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이 1960년대 군사 정권이었다는 점도 그러한 맥락에서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탄압의 인상을 최소화하고 교묘히 언론을 조정하려는 방식으로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엠바고를 도입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따라서 정부가 언론에 요구하는 엠바고가 너무 많았고 그 과정도 권위주의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어요. 취재를 봉쇄하는 수단으로 오용되거나 남발되어 왔죠.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정부에 의한 보도자제나 보도금지 조치에 예민해요. 정부는 언론 길들이기를 위한 수단이 아닌 명백하게 국민 또는 나라를 위한 것에 엠바고를 요청해야 하며, 이러한 요청의 이유가 정당하다면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언론인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생각해 볼거리]

1. 해적은 진압되고 선원은 구출됐지만, 그것으로 끝난 문제가 아니에요. 해적들은 한국에 대한 보복을 하기로 공표를 했으니까요. 지속적으로 소말리아 해적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2. 엠바고 요청을 무시한 언론사에 정부는 강력한 제재를 가했어요. <부산일보>에는 출입정지 1개월을 내렸고, 나머지 두 신문사에게는 출입기자 등록을 취소하는 다소 무거운 징계를 내렸어요. 정부의 이러한 제재가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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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대체 그게 뭔데?

글-서결

요즘은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라고 합니다. 상당히 거창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지요. 대체 소셜 네트워크가 뭐지? 사실 이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의미입니다.

소셜 네트워크 의미 및 배경

2010년 11월 개봉한 <소셜 네트워크>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나요? 괴짜 천재 ‘마크 주커버그’라는 사람이, 현재 전세계 최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즉 ‘소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서비스에요), 페이스북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에요.

‘소셜 네트워크’. 단어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시나요? ‘소셜’ 은 사회라는 뜻이죠? 쉽게 말해서 네트워크 (인터넷, 웹) 를 통해서 형성된 사회관계를 말해요. 어때요, 참 쉽죠? 사실 우리대부분은 벌써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2천만 가입자의 위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빼고 다 쓰는, ‘싸이월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요. 인터넷으로 일촌(이게 바로 사회적 관계에요)을 맺죠? 그리고 사진 올리고, 다이어리 쓰고, 파도타면서 남이 올린 사진을 보고, 내 홈피에 스크랩하기도 하죠. (정보의 생산-재생산) .. 소셜 네트워크, 생각보다 별 거 없다니까요?

그런데 왜 제가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을까요? 대체 소셜 네트워크를  새삼스레 전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부르게 된걸까요? 싸이월드 쓴지도 오래되었고, 이젠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데 뭐가 더 있다고?

어떻게 보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SNS – Social Networking Service) 가 생긴 지는 거의 인터넷이 생기기 시작한 때와 별 다를 바가 없지요. 우리는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썼었고, 프리챌이나 다음,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싸이월드만 해도 1999년 시작되었다고 하니,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하지만 최근 소셜네트워크 붐이 일기 시작한 건 스마트폰을 통한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의 급격한 성장과 연관이 있어요.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상화됨에 따라,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SNS에 접속하여 관계를 맺고,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트위터, 미투데이, 싸이월드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등 수많은 모바일 SNS가 등장했죠. 내 친구들이 모두 다 쓰는데, 안 쓸 수 없잖아요?  심지어 요즘의 SNS들은, ‘친구 추천’ 기능을 통하여 어떤 친구가 소셜 네트워크에 있는지도 알아서 찾아주고 있어요. 이렇게 SNS들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어가고 있어요.

 

소셜네트워크의 특징

소셜 네트워크가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SNS 라는 기술로 인해 ‘인간관계 자체가 재정의’ 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살다 보면, 우리는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만 만나게 되요. 같은 유치원, 학교, 직장, 지역.. 이러한 생활 반경을 벗어나는 사람과는 애초부터 만날 수도, 따라서 이야기할 일도 없었어요.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 간단히 검색만 하면, 우리는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지요. 심지어는 TV에서 볼 수 있는 연예인들과도 친구가 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헐리우드 스타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워듣기도 하고, 대기업 회장님과 수다를 떨기도 하는 등 소셜 네트워크라는 인간관계를 통하여 인간관계의 접점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늘어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에 따라서 수많은 새로운 의사소통들이 생겨나게 되었죠. 그래요, 우리는, 이제 전세계의 그 누구에게든 말을 걸 수 있게 된 셈이에요.

두 번째로 이야기할 소셜 네트워크의 기능은 바로 ‘정보의 재생산 및 확산’ 이라는 측면이에요. 간단한 예로, 작년 여름의 홍수를 기억하나요? 갑작스레 서울/경기 지방을 강타한 비에 도로가 잠기고, 수많은 가구가 침수되는 등 큰 피해를 겪었죠. 이러한 순간적인 재난 상황에 가장 빠른 소식을 보도했던 것은, 공중파 뉴스도, 인터넷 포털도 아닌 바로 트위터였어요. 비가 쏟아지는 그 시점에도 사람들은 트위터에 트윗(140자의 짦은 글)과 사진을 올림으로써 불과 몇 분, 몇 초 전의 생생한 상황을 보도했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던 다른 또 수많은 사람들은 그 트윗을 퍼가서 다시 올렸죠 (‘이러한 행위를 트위터에서는 RT 혹은 리트윗 이라고 해요). 수많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트윗과 리트윗은 기자들의 보도력을 훨씬 뛰어넘었고, 심지어는 공중파 뉴스에서까지 사용자들의 트윗을 인용하여 보도를 할 정도였어요.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란 바로 이러한 데서 나오는 거에요.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해줄게요.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세계를 거쳐 수천만명, 때로는 수억명이 있어요. 이러한 수많은 사용자들이 촘촘히 관계를 맺고 있죠. 사람들은 때때로의 생각이나, 좋은 자료, 사진 등 무언가를 SNS 를 통해 올려요. 그리고 핵심은, 1)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올린 글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2) 이러한 글들 중 쉽게 말해 ‘퍼가기’ 된 글들은 관계를 맺고 있는 또 다른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되요. 3) 그렇게, 내가 쓴 의미있는 글 하나가 수천번 리트윗되고, 그것이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거죠.

 

소셜 네트워크와 프라이버시

세 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아직 생각해볼 것이 많은 조금 미묘한 문제에요. 바로 ‘프라이버시’에 관한 부분이죠.

1)

어느날 ‘페이스북’에 가입하기로 해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정하고, 이름을 쓰고 생년월일을 기입하죠. 그리고는 내가 어떤 학교에 다니는 지 써요. 어떤 게임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좋아하고 .. 이런저런 프로필을 작성해요. 그리고는 나를 페이스북에 추천해준 친구와, 이미 페이스북을 쓴다고 했던 몇 명의 친구를 추가하고는 졸려서 잠을 청하기로 해요.

2)

다음날 일어나서 페이스북을 확인하면 깜짝 놀라게 되어요. ‘People may you know..’ 부분에 다른 친구들이 있어요. 즉 나와 친구인 친구와 친구인, 겹치는 친구들을 내게 추천해준 거에요.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도 있고, 정말 친했는데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친구를 늘려가니 점점 더 많은 친구 추천을 볼 수 있어요.

3)

어느덧 수백명의 친구를 만들게 되었고, 그들의 매일매일 일상이 뉴스처럼 실시간으로 전달되요.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의 하루하루를 올리면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 수가 올라가는 재미에 매일매일의 일상을 기록해요.

자, 위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가정해 봅시다. 당신이 만약 이러한 ‘페이스북’ 의 사장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도 이러한 장면이 등장하죠) 만약 옛 애인의 삶을 알고 싶다면, 그녀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1) 그녀의 기본적인 신상정보 : (그녀가 프로필에 기입한) 이메일, 이름, 다니는 학교, 사는 곳 (정확한 주소는 아닐지라도), 생년월일, 직장

2) 그녀의 인맥 : 그녀가 어떤 사람들과 친구관계인지, 나와 겹치는 친구는 몇 명이나 되는지

3) 그녀의 하루하루 일상 :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곳에 갔었는지, 평소 생각들, 기분 상태, 그녀의 사진, 주로 이야기 나누는 상대, ……

이제는 그 누구의 일상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는 거에요. ‘박재범 사태’를 기억하죠? 그는 수 년 전 가졌던 어린 생각 때문에, 수많은 대중들의 질타를 받고 자신의 꿈을 (일단) 접어야만 했어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쓴 글들은, 결국 어떻게 보면 자발적으로 공개한 사생활 들이에요. ‘소셜’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위해서는 우리는 ‘사생활’ 라는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마무리하며 

좋건 싫건간에, 이미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는 코앞까지 와있고,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요. 84년생, 28살의 젊은 억만장자 기업가 마크 주커버그가 설립한 페이스북은, 8년만에 전세계 6억 5천만명이 쓰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이제 4백만명 가량이 쓰고 있으며,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사용자수가 증가하고 있죠.

앞으로 수많은 일들이 ‘소셜’의 영향력을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에요. 지식의 공유, 구매 행위, 게임, 커뮤니케이션… 심지어, 증강현실, 위치기반서비스 등 수많은 신기술들이 개발될 때, 이러한 기술들이 다루는 정보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밀접하게 연결될 거에요.

May be social network with you. ‘소셜 네트워크가 당신과 함께하길’ 아니, 이미 함께 하고 있을거에요.

[더 생각해 볼 거리]

1. 이 기사를 읽은 분들에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인스타그램’ 이라는 회사가 있어요. 사진을 찍어서, 예쁘게 보정해주는 아이폰 안의 프로그램(어플리케이션, 줄여서 ‘앱’)이에요. 사진 보정 앱은 그 전에도 많았지만, 인스타그램은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볼 수 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릴 수 있도록 했어요. 사람들은 사진을 보정하자마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릴 수 있어서 좋았고, 출시 단 6개월만에 전세계 200만 사용자를 확보했다고 해요. 이런 앱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달이래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70억원’의 투자를 받았어요. 앱 만드는데 1달, 출시하고 6달, 7개월만에 70억원 벌었네요?

여러분의 수많은 활동 중, ‘소셜 네트워크’와 붙인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요? 인스타그램의 사례는 ‘사진 찍기’ 였죠. 상상해보고, 과연 이렇게 만들어진 내 서비스를 친구들도 사용할 지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주변의 수십명의 친구가 쓸 만하다고 한다면, 아마 몇 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SNS가 될지도 몰라요.

2.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면, 조금 더 나아가서, ‘증강현실’ 과 ‘위치기반서비스’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재미있을 거에요. 과연 이런 기술들이 소셜 네트워크와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 지 상상해보세요.

마지막으로 이미 있는 몇가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대해서 소개할게요!

소셜 네트워크 + 잡담 및 일상 =  (twitter, facebook)

소셜 네트워크 + 사진 찍기 = (instagram)

소셜 네트워크 + 게임 =  (소셜 게임)

소셜 네트워크 + 내 위치 =  (foursquare, 싸이플래그 등)

*그리고 이러한 소셜 네트워크의 가장 큰 영향력은, 이러한 수많은 소셜 플랫폼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거에요! (instagram 으로 사진찍어서, 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갈 수 있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