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uthors Posts by modu

modu

896 POSTS 1 COMMENTS

0 47

석연휴로 인해 배송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추석연휴 기간인 9월 22일(토) ~ 26일(수)까지 배송업무가 일시중단 될 예정이오며,

추석 연휴기간이 끝나는 2018년 9월 27일부터 순차 발송될 예정이오니 독자님들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본사 제품은 9월 21일(금) 발송 작업 마감 후 순차적으로 배송 예정입니다.  택배 물량에 따라 10월 8일까지 배송이 진행 될수 있사오니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글 이수진 ● 사진 손홍주

 

키티버니포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어요. 먼저 디자이너로서 이곳에서 생산하는 모든 디자인을 최종 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대표로서 키티버니포니의 예산, 판매, 온라인 업데이트, 청소 등 운영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하죠.(웃음)

 

패브릭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키티버니포니는 2008년에 9종의 쿠션을 만들면서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학부에서는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죠. 사실 2008년만 해도 국내에서 디자이너가 직접 패브릭(직물)을 디자인하고 브랜드로 만들어서 생산·판매하는 일은 많지 않았어요. 패브릭디자인이나 텍스타일 디자인은 거의 작가들의 작품으로만 만날 수있었죠. 자수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께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린 뒤 저의 그래픽 디자인을 현대적인 자수로 표현해 쿠션을 만들었어요. 젊은 감각의 디자인 편집 숍에서 쿠션을 판매했는데 잡지에 소개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죠. 사실 텍스타일 디자인은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웃음) 그래서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을 쌓았어요. 섬유 전공자가 아니라고 말하면 주변에서 다들 놀라죠. 잘 몰랐고 선례도 없어서 처음부터 공부하면서 매우 열심히 일을 했어요.

 

기억에 남는 디자인이 있나요?

모든 디자인이 자산과 다름없기 때문에 소중하지만 2008년에 처음으로 생산했다가 중단한 뒤 다시 판매한 제품이 있어요. ‘델피노’라고 검은색과 하얀색 반원 패턴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이에요. 잊고 있다가 다시 보니 예쁜 거예요. 그래서 재생산에 들어갔죠. 지금도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지난 작업들을 들춰보곤 해요. 그때는 별로인 것 같았는데 다시 보면 괜찮아 보이는 디자인이 있거든요.

 

패브릭 디자인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모든 디자이너가 그렇겠지만 결과물이 나왔을 때예요.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있을 때 보람을 느끼죠. 사실 패브릭 제품은 패션이 아니다 보니 사계절 판매가 가능해야 돼요. 그래서 생산 예정인 해의 유행 색상을 참고하기는 하지만 다 반영하지는 않아요. 굳이 유행 색을 신경 쓰지 않고 작업을 해도시간이 쌓이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봐요. 브랜드 정체성이 확고하게 생긴 거죠. 그럴 때도 보람을 느껴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의 기준이 있나요?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판매를 하다가 다시 제작하지 않는 패턴들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디자인이 아닌 거죠. 키티버니포니가 추구하는 패턴 디자인은 제품을 생산하기에 유용하고 사계절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에요. 유행을 타지 않고 사계절 내내 봐도 무난한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역량 계발과 유지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육아와 일을 동시에 맡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체력 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또 예술, 디자인 관련된 서적은 빼놓지 않고 꾸준히 보고 있죠. 여행이나 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서울에서 새로 생긴 곳은 웬만하면 가보려고 해요. 젊은 층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할 과정은 무엇인가요?

텍스타일 디자인학과가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전공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디자인 작업을 하려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어도비(Adobe) 프로그램 같은 툴을다룰 수 있어야 하죠.

 

텍스타일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전 세계적으로 패브릭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오랜 역사를 가진 핀란드의 ‘마리메꼬’나 스웨덴의 ‘스벤손’, 일본의 ‘소우소우’ 등의 포트폴리오를 찾아보는 것도좋지만, 제가 추천하고 싶은 활동은 동대문시장이나 방산시장 같은 원단 시장을 직접 방문해보는 거예요.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어떤 원단이 판매되고 있는지 눈으로 보면서 직접 구매도 해보면 원단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어요. 현장에서 얻는 배움과 재미를 꼭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 텍스타일 디자이너 특집 전문은 <MODU> 9월 67호 지면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더블멘토링] 마음의 연금술사 심리상담가

글 이수진 ● 사진 백종헌

상담가를 꿈꾼다면 자기 성찰이 가장 중요해요

 

배강민(이하 강민) ─ 상담학과에서 각 학년별로 배우는 내용이 궁금해요.

조정연(이하 정연) ─ 상담학과 수업은 학년별로 조금씩 달라요. 1학년 때는 심리학 기초 과목들을 배워요. 상담학개론, 인간행동의 이해, 사회행동이론, 성격의 이해 등 포괄적인 내용을 공부하죠. 2학년부터 전공 필수와 전공 선택 과목으로 나뉘어요. 전공 필수로는 상담언어의 기초, 상담윤리, 상담이론과 실제, 인간특성발달 등이 있죠. 선택 과목으로는 집단상담, 가족발달이론, 상담통계 등을 배울 수 있어요. 2학년 때부터 상담이라는 학문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해요. 더불어 상담 실습도 시작하죠. 3학년이 되면 이상행동이해, 심리검사, 아동청소년상담, 상담연구방법론, 가족상담 등을 배울 수 있어요. 3학년 때는 가장 어려운 과목들을 배우고 거의 모든 과목에 팀 프로젝트가 있어요. 4학년 때는 상담과 법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이 실습으로 이뤄져요. 설문지를 돌려서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고요. 상담을 실시한 후 사례분석 보고서도 작성하죠. 실습이 많은 만큼 힘들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강민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무엇인가요?

정연 ─ 3학년 때 배운 ‘가족상담’이요. 이 과목을 수강하며 부모님과 감정적으로 밀착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고 나 자신의 ‘심리적 독립’에 대해 주목하게 됐어요. 그 뒤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죠. 이를 계기로 점차 부모님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돼서기억에 남아요. 이 수업을 통해 단순히 머릿속만 채우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강민 수업에서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나요?

정연 1학년 때 배우는 학과 기초 과목의 교재가 원서여서 공부할때 힘들었어요. 또 3학년 때 공부하는 ‘심리검사’ 과목도 외울 내용이 많아서 약간 버거웠죠. 그 외의 상담학과 과목들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볼 수 있는 지식을 배우기 때문에 어렵다기보다는 재밌었어요.

강민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정연 작년 3월부터 성남시 교육지원청의 ‘꿈샘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 멘토링은 학생 위기 종합지원 서비스인 ‘위클래스’에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활동이에요.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학생과 만났어요. 이 멘토링을 통해 ‘함께 있어주는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배웠죠. 또 성남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에서도 아웃리치 봉사활동을 통해 친구, 학업, 가족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만났고요. 그곳에서 상담을 원하는 학생과 기관을 연계해주고학교를 그만둔 학생에게는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어요. 이러한 상담 시연과 실습 경험을 통해 각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나에게 맞는 상담 기법이 무엇인지 한번 더 고민해볼 수 있었어요.

강민 ─ 심리상담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정연 먼저 내담자가 되는 경험을 추천해요. 상담을 받아봐야 상담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전국의 중학교와 대다수고등학교 안에 있는 위클래스 상담실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솔리언 또래상담자(학교·청소년 지원센터의 동아리) 경험도 해보세요.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 교사에게 위급한 상황에 대해 알리는 활동인데 심리상담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왜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며 답을 찾는 과정이 꼭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강민 심리상담사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김도연 멘토(이하 김 멘토) 수용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특히 내담자의 정서적 측면이나 그 밖의 여러 모습을 가치판단 하지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죠. 다른 말로 따뜻한 마음이라고 할까요. 상담자가 내담자를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때 내담자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상담실에 오는 사람은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존중과 수용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상담 내내 내담자에게 당신 그대로 충분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또 상담을 하다 보면 힘든 순간이 찾아와요. 그럴 때 상담사로서 사람들을 돕는다는 소명감을 갖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소명이 있는 상담사는 갈등을 겪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바르게 세울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자기 내면을 잘 돌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새로운 치료 기법이 나오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적용해요. 내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죠. 이처럼 건강한 상담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해요.

강민 상담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김 멘토 심리학을 전공한 분들은 비슷할 텐데 소명, 자기 동기, 가치를 갖고 이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다양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감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에요. 아직까지는 특별히 큰 어려움을 느낀적이 없어요. 환자가 보이는 특정한 모습이나 상담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는 내담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담자가 지닌 증상이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심리학자나 상담가는 심리와 관련된 증상과 장애 메커니즘을 전문적으로 배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이나 장애 앞에서 무너지거나 가치판단 하지 않고 심리적 문제 상황이 생기는 원리를 연구하면 상담을 하거나 치료할때 스스로 소진되는 측면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민 심리 치료의 목적이 내담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바꾸는 건가요?

김 멘토 상담의 궁극적 목표는 내담자의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울증은 정서가 우울한 거잖아요. 이건 부정적인 사고에서 온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우울이라는 정서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고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부정적인 사고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때 치료의 목표점은 인지예요. 만약 트라우마 때문에 심리적 손상이 있다면 이때는 정서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요. 이처럼 겪고 있는 증상이나 장애에 따라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를 적용해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어요. 인지나 정서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심리학자나 상담사라면 어느 부분을 먼저 고려하면 좋을지 생각해야죠. 상담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거예요. 결국에는 내담자 스스로 자신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죠.

강민 상담을 받는 사람에 대해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있어요.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심리 치료를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김 멘토 사회적인 공감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요. 그래서 최근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 대신 조현병을 쓰고 있어요. 용어를 다르 게 쓰는 것도 사회적 편견을 낮추기 위해서죠. 또 주변의 누군가 심리적으로 아플 때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는 것이 중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사회적 인식의 변화예요. 예전에 비해 요즘은 많이 변화 된 걸 느끼고 있어요. 부모님들도 아이의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범죄 피해자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국가적으로 심리지원 제도를 마련한다면 더욱 안전하게 도움을 받을 수있겠죠. 국가적으로 아동기 때부터 교육한다면 좀 더 근본적인 예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심리학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목소리를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도 심리학자의 역할 아닐까요.

 

 

※ “더블멘토링”전문은 <MODU> 9월 67호 지면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글 전정아 ● 사진 최성열, 정제희

어린 시절 환상을 좇아 꿈의 나라이란으로!

 

한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여자 이란어 통번역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의외로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그동안 인터뷰를 거절해왔다. ‘나를 왜 인터뷰하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읽는 사람,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의아했다. 무엇보다 딱히 나를 특이한 케이스라고 여긴 적도 없고. 그러다 모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진로 탐색을 주제로 한 강연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 강연을 한 뒤 내 후배들, 어린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연락을 받고서 생각이 달라졌다. 다들 외국과 외국어를 좋아하는 열정 넘치고 똑똑한 친구들인데 그 열정을 어디에 쏟을지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다 내 강연을 듣고 정해진 길, 그러니까 무역회사 입사나 외교관이 되는 것 이외의 진로가 보였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은 취지가 좋은 인터뷰나 대외 행사에는 조금씩 응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을 보고 중동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정제희는 중동 문화의 어떤 점에 마음을 뺏겼나?

아버지가 외항선을 타고 해외, 특히 중동을 자주 다니셨기 때문에 가져오는 기념품들이 남달랐다. 히잡부터 대추야자까지, 남들보다 중동 문화를 훨씬 빨리 접했다. 기념품 상자 뒷면의 아랍어를 보면서 막연하게 ‘중동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다. <알라딘>의 주인공인 ‘자스민 공주’도 중동에 대한 호감을 갖는 데에일조했다. 드레스를 입은 여느 디즈니 공주들과는 달리 자스민은 배꼽이 드러나는 상의에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다. 그 패션이 멋져 보였다.(웃음)

 

해외를 오가는 직업에 대한 선망은 어릴 때부터 가졌나?

다리 수술을 받은 경험이 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 4학년때 큰 수술을 치르고 치료와 요양을 목적으로 거의 1년을 꼬박 갇혀 지냈다. 학교도 못 가고 뛰어놀지도 못했다. 거기다 완치가 안 되는병이라 부모님의 걱정으로 인한 과잉보호까지. 나에게 좁은 병실, 좁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뿐이었다. 그때부터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것, 머나먼 해외에 대한 환상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중동 중에서도 이란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왜 이란어를 선택했나?

사람은 결국 자기 안에 있는 경험을 탐색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선택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터키어와 아랍어, 이란어사이에서 뭘 전공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깊이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나를 매혹시킨 <천일야화>의 배경인 페르시아·이란 지역이 가장 마음에 남더라. 우리나라에서 이란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한국외국어대학교밖에 없어서 한국외대 이란어학과를 선택했다.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했으니 정말 열심히 공부했겠다.

그렇지도 않았다. 막상 입학하니 나만큼 이란어 자체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랍어만 해도 수능시험 제2외국어 영역으로 있지 않나. 그런데 이란어는 나라의 위상 때문인지 특수어 중에서도 특수어다. 이란어학과 학생들은 미리부터 전과를 준비하거나 경영 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해 회사에 입사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마저 편입 생각이 들 만큼 침체된 학과 분위기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학점은 당연히 좋지 않았고, 많이 방황했다. 2년은 그냥 놀았다.(웃음)

 

그래도 10여 년 전이면 취업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졸업하는 해, 그러니까 2008, 2009년부터 취업난이 심해졌다. 그제야 마음이 조급해져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봤다. 학과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맨 뒷자리에서 강의를 듣던 학생이 교수님 바로 앞자리에서 공부하게 된 거다. 그리고 대기업 취업, 은행 입사, 아나운서 준비까지…. 이란어 전공자를 선발하는 해외 영업직에는 몇 군데나 지원했지만 전부 떨어졌다. 중동 지역 부서는 여성 지원자를 잘 뽑지않아서였다. 그래도 졸업 후 3개월간 직장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얼마 못 버티고 그만뒀다. 그리고 바로 이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고민하고 방황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나?

그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확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니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면 내 결정에 자꾸만 변명거리를 던져줬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아하는 것을 향해 내달렸다면 아주 지쳤을 테고. 무엇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7년 차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업계에서는 어린 나이에 속하는 편이다.

 

취업 시장에서 이란어 전공 여성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면 완전히 다른 분야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나, 그래도 여전히 이란이라는 나라가 좋은데.

 

그래서 실제로 가본 이란은 어땠나?

난 ‘진짜’ 이란어, ‘진짜’ 이란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란에 가보니 이란인들이 한국에서 배운 이란어와 너무 다른 말을 사용하는 거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언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언어의 기술을 익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난 언어의 기술을배우고 싶었고, 이란인 사이에 섞여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학연수를 마친 뒤 테헤란 대학교에서 석사학위 과정까지 밟았다. 그렇게 이란에서 총 5년을 지냈다. 테헤란대에서는 국제관계학과를 전공했다. 우리나라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와 비슷한 학문이다. 원래는 ‘이슬람 여성학(Islamic Feminism, 이슬람 문화에서 발달된 남녀의차이에 기반을 둔 여성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외국인 학생은 받지 않더라.

 

독기와 오기를 나만의 무기로

 

탁월한 이란어 실력뿐만 아니라 이란의 문화 자체를 이해한 통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이란의 문화는 막연히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

틀렸다.(웃음) 이란은 지역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중간 지점이다. 쉽게 말하면 하드웨어는 백인, 아리아인의 모습인데 소프트웨어, 즉 사고방식은 동양인에 가깝다. 우리나라 1980~90년대 사회 분위기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보수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사회에 무슬림 문화가 조금 섞인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란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노인 공경이나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습 말이다. 그리고 매일 더울 것 같지만 우리 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다.

 

이슬람 국가여서 굉장히 보수적이고 성차별이 심할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편견이다. 이란 사람들은 참 다정하다. 물론 동양인에 대한 신기함과 궁금함에서 오는 지나친 관심과 무차별적인 폭언, 성차별도 겪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이슬람 국가는 남녀의 지위가 다른 나라다. 여성을 보호 대상,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니까.

 

5년간 이란에서 살면서 실생활 이란어를 익혔을 텐데, 언어를 배우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나?

대학 과정에서 읽기는 어느 정도 익혔기 때문에 말하기와 듣기 실력을 높이는 데 가장 힘썼다. 이란어는 문어와 구어가 다르다. 존댓말도 따로 있다. 그래서 매일 5시간 이상 이란 방송과 읽을거리를 챙겨 봤다. 방송은 드라마와 뉴스를 반반씩, 읽을거리는 시사 잡지부터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난 현지인의 억양까지 배우고 싶어서 이란인 가족 집에서 3년간 홈스테이를 했다. 할머니부터 내 또래 손자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학교와 편도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집이었지만, 전 연령층의 이란어를 들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기숙사 생활이나 자취, 가끔 만나는 현지인 친구로는 절대로 원어민만큼 언어를 습득할 수 없다. 실력이 늘수록 보이고 들리는 게 달라지니 신나더라.

 

이렇게 들으면 순탄하게 타지 생활을 한 것 같다. 어려운 순간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일단 대기오염도 심하고 교통이 몹시 불편해서 어딜가든 두 시간은 걸린다. 영화, 쇼핑, 술 등 스트레스를 풀 만한 ‘엔터테인먼트’도 없었다. 놀 거리가 없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도 깊어지고, 성격도 내향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공부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시간이 그저 즐겁고 재밌었지만 나중에는 만나는 사람들마저 비슷해서 자연히 우울해지더라. 게다가 이란 정부와 대학의 텃세도 심했고.

 

정부와 대학의 텃세라니?

오랫동안 비자를 못 받았다.(웃음) 대학에도 학생으로 등록은 돼 있는데 학생증 발급을 안 해줬다. 어떤 수업에서는 교수가 “넌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니 나가라”고도 했다. 그렇게 학교와 싸우고, 신분을 증명해줄 학생증이 없으니 경찰과도 싸우고, 비자가 없으니 공항에서 싸우고. 정말 다툼의 연속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푸대접을 받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진짜 힘들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결국 전부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짐을 싸기도 했다.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홈스테이했던 집의 이란인 가족들의 힘이 컸다. 이란 아빠, 이란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벌써 1년 넘게 이란 가족들을 못 봤지만 지금도 거의 매일 통화한다.

 

※ ‘이란아토즈’ 정제희 CEO의 인터뷰 전문은 <MODU> 9월 67호 지면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글 김현홍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텐센트는 중국의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게임 전문 기업으로 올해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10대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에 마화텅이 설립한 텐센트는 메신저 업계의 후발 주자였다. 많은 사람이 이미 다른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텐센트는 설립 초기에 이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마화텅은 텐센트 설립 13년 만에 전 세계 9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만들고 세계적인 모바일 서비스, 게임 전문 기업으로 거듭났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텐센트는 업계에 뒤늦게 뛰어들었음에도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인터넷에서 미래를 본 마화텅

마화텅의 어린 시절 꿈은 천문학자였다. 하지만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천문학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택하는 현실을 보고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유명 무선호출업계 회사에 취직한다. 그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을 묵묵히 처리해내는 유능하고 성실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커지는 인터넷 시장을 보고 무선호출기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판단해 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한다.

마화텅은 1998년 11월, 엔지니어 네 명을 모아 ‘텐센트’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 이듬해 2월 ‘ICQ’를 그대로 모방한 ‘OICQ’라는 메신저를 출시한다. ICQ는 누구든 ICQ 번호만 있으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1세대 인터넷 메신저로, 당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마화텅이 OICQ를 출시할 당시 중국 내에는 이미 ICQ와 비슷한 메신저가 많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마화텅은 OICQ를 더 나은 메신저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메신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ICQ는 오프라인 상태인 친구와는 대화를 할 수 없고 컴퓨터를 바꾸면 이미 등록된 친구 목록이 사라진다는 단점을 발견한다. 마화텅은 이를 개선해 OICQ에 오프라인 상태인 친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능과 임의로 대화 상대를 정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다. 사람들은 ICQ보다 편리한 OICQ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OICQ는 3년 만에 9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다.

 

위기가 기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OICQ를 이용하는 것에 위기를 느낀 ICQ는 지적재산권 문제로 텐센트를 소송했다. 텐센트는 이 소송에서 패배해 도메인을 ICQ가 소속된 AOL에 이전해야 했다. 더는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마화텅은 OICQ의 상호명을 ‘QQ’로 바꾸기로 한다. 사용자들은 OICQ를 이미 QQ로 줄여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거의 눈치채지 못했고 QQ 사용자는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사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서버를 운영하는 비용도점점 증가했다. 텐센트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서버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마화텅은 텐센트를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 기업이 우후죽순 생기는 중이었으므로 마화텅이 생각한 것만큼 텐센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투자자를 찾기 어려웠다. 여러 투자자를 찾아다닌 끝에 벤처 캐피털 ‘IDG’의 투자를 받게 된 마화텅은 QQ로 어떻게 수익을 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아바타’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싸이월드의 아바타를 모방한 ‘QQ쇼’를 만든 것이다. 다만 싸이월드 아바타와는 달리 의류 브랜드와 협업해 실제 상품과 똑같이 디자인된 옷을 아바타에게 입힐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의류업체들이 앞다퉈 QQ쇼에 홍보를 제안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시대의 흐름을 꽉 잡아라

텐센트는 QQ를 통해 사용자 수를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이메일, 검색엔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그리고 2004년 마화텅은 ‘아워게임’, ‘킹소프트’ 등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에 뛰어든다.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QQ를 활용한다면 온라인게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텐센트 게임은 별도의 가입없이 QQ 아이디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Q머니’를 쓸 수 있어 편리했다. 결국 텐센트는 중국 내 게임 산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마화텅이 모방으로 성공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마화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뒤늦게 사업에 뛰어들더라도 기존의 것보다 더 나은 제품으로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기존의 것을 단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편의를 1순위에 둔 상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마화텅은 웹, 모바일,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0 190

 

가족, 친구, 성적, 진로… 친구들의 가슴 속 품은 고민을 ‘MODU’에게 말해줘. 사연을 보내준 친구들에게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선물을 줄게.

* 사연은 본지 ‘MODU 같이 고민해’ 코너에 실릴 수 있습니다. 본지에 실리는 걸 원치 않는다면 미리 명시해주세요. 익명은 보장됩니다.

 

응모 기간

9월 17일(월)까지

 

응모 방법

  1. 요즘 최대 고민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기
  2. 그 고민을 문자메시지(010-6633-1318) 또는 메일(contents@modumagazine.com)로 보내기

 

 

0 168

2018년 9월호 Vol. 67

Contents

 

08 이달의 키워드 뉴스

 

10 키워드로 보는 인물

전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

12 글로벌 롤모델

텐센트 CEO 마화텅

 

14 COVER STAR

고산(대전 서대전고 2)

 

18 만나고 싶었어요

이란아토즈 CEO 정제희

 

24 더블멘토링

심리상담사

 

 

SPECIAL 옷의 기본을 만들다

 

32 주목! 생생 인터뷰

텍스타일 디자이너

 

38 미래를 JOB아라

스마트 의류 연구원

 

44 숨은 직업 찾기

패션 컬러리스트

 

48 꿈꾸는 모두

섬유 관련 직업 정보

 

50 퀴즈로 보는 해양 직업

선박금융전문가

 

54 학셔너리

정치외교학과

 

58 요즘 뜨는 학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60 족집게 입시 특강

전형 선택이 합격을 좌우한다

64 e청소년과 이렇게!

10대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

 

66 e청소년과 이렇게!

전국 팔도 청소년활동 유람기

 

68 J기자가 간다

대딩이 아니어도 좋아! 대학로 데이트

 

70 MODU 같이 고민해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 이제 벗어나고 싶어!

 

72 마음이 자라는 책읽기

<편의점 가는 기분>

 

74 MODU의 문화

 

77 이달의 공모전

 

80 MODU스타그램

 

 

0 180

식물과 디자인이 만난 미래의 환경

삼육대학교 환경디자인원예학과

 

삼육대는 에코 학문을 실천하는 환경그린디자인학과와 전통적인 원예학과를 통합해 2018년 환경디자인원예학과를 탄생시켰다. 환경디자인원예학과는 기존의 환경그린디자인학과와 원예학과의 각 교과과정을 충실하게 배울 수 있는 동시에 그린 디자인과 원예의 융복합적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농업과 생명자원 분야에도 첨단 기술이 활용되는 시대에 맞게 교과과정도 새롭게 개편했다. 기존의 교과목은 물론 식물공장학, 원예치료, 환경특화디자인, 공공디자인, ICT와 컴퓨터디자인 수업 등을 통해 이론과 실기를 두루 갖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한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 되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환경디자인과 원예 분야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삼육대 환경디자인원예학과는 이러한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해 다가올 미래 환경에 필요한 전문가를 길러내고 있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현장 전문가 양성

삼육대 환경디자인원예학과는 이론과 실기, 현장실습 경험을 두루 겪은 현장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학교 안에 다양한 식물이 구비되어 있는 온실을 마련해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기와 현장실습 등을 진행한다. 환경디자인원예학과의 교과목을 이수하면 환경디자인부터 조경·화훼 장식, 시설원예, 유기농업 등 환경디자인 및 농업·원예 분야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에코 학문

커리큘럼은 원예학과 환경디자인 두 분야로 나뉜다. 환경디자인원예학과의 입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교과목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다. 두 분야의 전문 지식을 모두 원한다면 디자인과 원예 분야의 교과목을 제한 없이 수강하면 된다. 이를 위해 이전에 있었던 전공필수 과정을 없애고 두 분야를 두루 학습할 수 있도록 선택 전공과목을 늘렸다. 두 분야의 학문이 융합한 학과인 만큼 학생들에게 학습 선택권의 폭을 넓힌 것이다. 또한 환경 및 원예 분야의 교육을 위해 골프장 잔디 관리, 실험통계학, 작물보호학, 공간 디스플레이 디자인, 화훼 재료 및 형태학 등 다양한 과목을 신설했다.

 

환경디자인 및 농업 관련 분야로 진출

진로는 환경디자인과 원예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환경디자인 분야는 식물을 활용한 환경공공디자이너로서 기업이나 관련 부처에서 일할 수 있다. 또 조경회사나 건축회사의 그린조경디자이너, 조경설계사 또는 관리사, 플로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다. 원예 분야는 농업직 공무원으로 농림축산식품부의 산하기관에 취업할 수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농업기술원의 연구직으로 근무할 수 있으며, 시군구의 산업계나 농업기술센터, 농자재회사, 종묘회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또한 첨단 농업시설이나 식품회사, 공항과 항만의 검역소나 원예수목원, 농업생명과학고 교사로도 근무할 수 있다.

 

■ 미니 인터뷰 이나경 | 환경디자인원예학과 1

 

우리 학과, 이건 정말 좋아!

 

환경디자인원예학과는 원예학과와 환경그린디자인 학과가 결합된 학과로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원예와 환경디자인 두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저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학과였어요. 학교에 커다란 온실이 있어서 다양한 식물을 접할 수 있고 그곳에서 직접 실습을 진행하기도 하죠. 또 꽃을 다루는 수업이 많기 때문에 화훼 장식이라면 우리 학과가 최고일 거예요.

 

학과 생활을 잘하고 싶다면?

 

디자인 수업은 과제가 정말 많아요. 특히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아진다고 해요. 그러니 야간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조별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아요. 서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시너지 효과가 크거든요. 물론 직접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있지만 여러모로 정말 많이 배우는 시간이에요.

 

 

우리 학과 후배가 되고 싶다면 명심해!

 

고등학교 때 원예에 관심이 많아서 ‘야생화 조사’라는 활동을 했어요. 이런 활동은 우리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미술에 대한 부담은 많이 덜어도 될 것 같아요. 학과생 80명 중 미술을 배운 사람은 한두 명 정도랍니다. 교수님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미술과 관련된 실력을 요구하지는 않아요. 대신 식물이나 원예 분야를 한 번쯤 공부해보고 오는 게 좋아요.

 

 

0 283

1. 나만의 대학을 ‘PICK’

이번 박람회는 전국 4년제 대학 146개교가 참가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기 전, 알고 싶은 대학을 먼저 꼽고, 대학의 부스 위치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부스 배치도는 박람회장 입출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입시 정보 요강집부터 팸플릿까지, 입시 자료 모으기

박람회의 또 다른 묘미는 참가 대학의 입시 정보 요강집부터 입시 관련 기관이 준비한 다양한 자료집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수시모집 요강집과 대학 소개 팸플릿은 무조건 챙겨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자. 특히 <MODU>에는 수도권 4년제 대학 20곳의 수시 전형 정보와 입시 전문가의 합격 꿀팁 등이 가득하니 꼭 챙겨 가기.

 

3. 내게 꼭 맞는 1:1 상담하기

각 대학 부스에서는 입학 전형을 심사하는 입학사정관과 교수가 직접 상담을 진행한다. 수시전형 정보와 수험생의 성적을 분석해서 지원 가능한 학과와 합격 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자기소개서나 학교생활기록 부를 챙겨 가면 더 꼼꼼한 상담을 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좋다. 코엑스 3, 4층 ‘1:1 대입 상담관’에서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상담센터 소속 상담교사들이 사전 예약한 신청자들과 상담을 진행한다. 신청자가 오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접수하기도 한다. 순차적인 상담 진행을 위해 오전 9시 40분부터 번호표를 배부하니 사전 신청하지 않았다면 아침 일찍 달려가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3층은 60번, 4층은 40번까지 번호표 배부)

 

4. 박람회 특별관 즐기기

수시 박람회에서는 참가 대학 상담관 이외에도 다양한 특별관이 운영된다.

 

2019학년도 수시 대학입학정보 박람회

일시              7월 26일(목)부터 29일(일)까지

관람 장소    코엑스 1층 A홀

관람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 마감 오후 4시 30분)

관람료         1000원

홈페이지     http://adiga.kr

문의             02-6000-8130

 

★ MODU 수시특별호는  <2019학년도 수시 대학입학정보 박람회>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전정아 ● 사진 최성열, 게티이미지뱅크, 위키미디어커먼즈

 

19살에 철도청에 입사해서 25년 동안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베테랑 차량관리원으로 업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마 한국철도공사 모든 직원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 나올 텐데요. 우리가 항상 생각하는 건 ‘안전’입니다. 먼저 안전이 확보돼야 정시 운행이 가능하고, 그래야 최상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고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는 게 우리의 임무예요. 또 2만 5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고, 날카로운 장비가 많은 일터이니만큼 일하면서 작업자들의 안전 또한 철저하게 지키고있죠.

 

그런데 간혹 차량이 고장 나면 고장의 원인을 정비 소홀과 인력 부족으로 꼽던데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고장의 원인은 대부분 부품 불량이에요. 그래서 철도 업계에도 ‘TBO(Time Between Overhaul, 정밀검사 주기)’ 제도를 들여오고 있어요. TBO란 항공 용어인데요, 부품의 고장 시기를 예측해 점검과 교체 주기를 정해서 일률적으로 수리하고 교체하는 제도예요. 육안으로 볼 때나 사용하기에 문제는 없지만 주기적으로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해 안전성을 높이는 거죠. 새마을호, 무궁화호, 화물열차 등 일반 차량의 정비 품질 역시 KTX 같은고속차량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도입한 거랍니다. 철도 사고를 ‘0건’으로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 중이에요.

 

그럼 철도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픈 청소년들이라면 무엇을 공부해 두는 게 좋을까요?

 

미리 자격증 공부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철도와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견학, 직업 체험을 해보는 게 좋겠네요. 철도와 관련된 정보는 나중에 업무에서 유용한 배경지식이 될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도 못 따라간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철도가 좋아 철도청에 입사했고, 여전히 철도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즐거워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관사 자격증을 땄고, 지금도 철도차량기술사를 공부할 정도죠.(웃음) 철도나 열차,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철도 덕후’라고들 하죠? 이런 친구들이 코레일에서 ‘덕업일치(한 분야의 마니아가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경우를 이르는 말)’를 이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