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이달의 진로

바르고 재미있는 교과서를 만듭니다. 교과서 편집자 조은정

바르고 재미있는 교과서를 만듭니다.

동아출판 영어 교과서 편집자 조은정

글 전정아 ● 사진 김담비, 동아출판

교과서 편집의 기본은 기준을 엄격히 지키는 것

 

교과서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크게 두 종류예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국정교과서와 교육부 장관의 검정 또는 인정을 받은 검인정교과서가 있죠. 국정교과서가 없을때 사용하는 교과서가 검정 교과서예요. 민간 저작자 또는 민간 출판사가 제작한 교과서는 ‘편찬상의 유의점’에 따라 적합성 여부를 심사하고 합격해야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어요. 교과서 편집자라고 하면 보통 교육부에서 고시하는 교육과정을 준수하면서 교과용 도서의 편찬 기준, 검정 또는 인정 심사 기준에 적합한 교과용 도서를 개발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 외에도 선생님들이 보는 지도서와 교사용 전자저작물도 함께 개발하고요.

 

검정 교과서의 심사 기준이 궁금해요.

제가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담당하고 있으니 영어 과목으로 설명할게요. 교육부가 2015년도에 고시한 교육과정을 따라 심사 영역은 총 네 가지로 나뉘어요. 교육과정과 내용의 선정 및 조직, 내용의 정확성 및 공정성, 교수·학습 방법 및 평가인데, 각 영역마다 또 항목을 나눠 총 20개 항목으로 채점을 하죠. 본문에 사용되는 영단어의 개수부터 특정 지역이나 국가 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내용은 없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살펴본답니다.

 

교과서에 사용되는 어휘 개수를 제한한다고요?

일반적인 학생들의 평균적인 영어 사용 능력과 인지 수준을 고려해서 교과서를 제작하기 때문에 각 학년군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개수가 달라요. 수준이 높아 너무 어려운 어휘 또는 문장이 나오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 마련이죠. 자신감이 없으면 결국 학습 의욕과 흥미도 잃게 돼요. 어휘의 수준과 개수를 제한하는 거예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공하는 기본 어휘 목록에는 3000개의 어휘가 있는데, 그중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500개의 낱말을 사용할 수 있어요. 중학교 교과서는 초등학교 사용 어휘에서 750개의 낱말을 추가해 총 1250개의 단어 내에서 본문을 꾸려야 해요. 고등학교는 550개의 단어를 더 사용해 총 1800개의 단어를 쓸 수 있죠. 어휘의 개수와 수준만 제한하는 게 아니라 문법도 중학교 권장 수준이 있고, 교과서 쪽수도 학년마다 다르게 규정해요. 이런 엄격한 심사 기준에 못 미치면 그동안 준비한 책을 폐기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 일정과 기준을 지키는 것이 업무의 최우선입니다.

 

한 자 한 자 꼼꼼히 살펴봐야겠어요. 심사가 끝나면 그제야 한시름 놓는 건가요?

그렇지도 않아요. 검정 교과서를 학교에서 사용할지 말지는 학교 선생님들이 살펴본 뒤 선택해요. 따라서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선생님들에게 외면받으면 채택률이 현저하게 낮아지죠. 교과서를 사용하는 선생님들의 주목을 끌 만한 구성과 학습 방법을 연구하는 건 물37론이고, 선생님과 학생들에게서 수업 분위기를 피드백받아 다음 개정판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요. 예를 들어 읽기 영역 본문을 3쪽으로 구성했지만 중학교 1학년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길다는 반응이 많으면 2쪽으로 줄이는 식으로요.

 

교육 이슈부터 현장의 요구까지 놓치지 않아야

 

교육 이슈가 교과서 내용에 변화를 주기도 하나요?

 

그럼요. 요즘 교육계의 화두는 역시 진로 탐색이에요. 원래는 한 학기만 진행하던 자유학기제를 올해부터는 아예 자유학년제로 실시하는 학교도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는 시기를 늘린 거예요. 그래서 영어 교과서지만 진로와 관련된 단원을 구성했어요. 아이들이 관심 있을 만한 직업인 취재 기자의 하루 일과를 본문으로 넣고 취재 수첩을 작성해보는 활동을 배치했죠. 또 과목 간의 융합도 대세라 요리를 하면 물질 상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내용도 담았어요. 영어를 공부하면서 과학 원리도 깨칠 수 있게 돕는 거죠. 교육계 이슈 외에도 다문화 가정이 많이 생기는 현실을 반영해서 우리나라 남해에 있는 독일마을을 본문에 등장시켜 다문화 코드를 넣기도 해요.

 

동아출판의 교과서가 영어 교과서 부문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비결이 궁금해요.

새로운 시도로 선생님들을 설득하려고 애쓴 결과가 아닐까요?(웃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수업 시간, 교과서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활용해서 수업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먼저 단원을 시작하는 타이틀 페이지에는 시원하게 일러스트를 펼쳐서 주목도를 높였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놀면서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미로 찾기나 보드게임을 문제로 내고, 교과서 뒤에 스티커를 부록처럼 붙였죠. 또 직접 잘라서 큐브나 소책자를 만들 수 있는 활동 보조 자료도 풍부하게 삽입했고요. 다른 교과서에서 많이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라 현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아요.

 

교과서 구성과 편집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교과서가 너무 ‘교과서적’이면 보는 재미가 없겠죠? 그렇다고 오로지 흥미 위주의 트렌드만 좇는 내용을 쓸 수도 없어요. 교과서 한권이 발행되면 다음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길면 5년 동안 사용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교과서 편집자에게는 책의 전체, 즉 구성과 내용,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이 꼭 필요하답니다. 저는 책, 신문, 뉴스, 텔레비전, 영화 등 가리지 않고 많이 보면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계속 찾고 있어요. 앞서 말한 남해 독일마을에 대한 아이디어는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고 얻었어요. 본문과 관련된 영상이 있으면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도 높일 수 있거든요. 오 헨리 단편소설처럼 짧지만 결말에 반전이 있어 재미있는 고전문학 작품을 본문에 넣기도 하고요.

 

교과서의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

 

교과서 편집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궁금해요.

해당 교과목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 학문을 전공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보통 영어 교과서 편집자는 영어영문학과를, 수학 교과서 편집자는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한 식이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어문 규정에 대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해요. 교정을 수없이 보면서 오탈자를 잡아내는 눈썰미와 꼼꼼함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교과서 한 권을 개발하는 데에는 보통 2년이 걸려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긴 기간 동안 공동 작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서로 예민해져서 소통이 잘 안 되기도 하죠. 이럴 때 분위기를 전환해 다시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도록 사람들을 다독이는 것도 교과서 편집자의 역할이에요.

 

교과서 편집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는 어떤 활동을 추천하세요?

교과서 편집에는 다른 학습지보다 좀 더 퀄리티 높은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디자인, 일러스트 전시회 또는 북 페어에 자주 들러 안목을 기르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워낙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하더라고요. 출판 및 편집 동아리에 가입해서 출판 과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으면 실무에 도움이 될 거예요. 가볼 만한 곳으로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교과서정보관을 추천할게요.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행된 국내 교과서부터 이스라엘, 핀란드 등 총 19개국의 교과서를 볼 수 있는 교과서 박물관 같은 곳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의 교과서를 찾아보면서 학습 수준의 변천사와 다양한 디자인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외국 교과서를 많이 보는 게 도움이 되나요?

당연하죠. 저도 미국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과서를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국정교과서나 검정 교과서 제도가 없어요. 출판사가 자유롭게 발행하는 교과서를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채택해 사용해요. 그래서인지 개성적인 교과서가 정말 많죠. 한 권을 개발하는 기간도 길어서 구성이 파격적이고 일러스트를 훨씬 다양하게 사용하거든요.

 

마지막으로 교과서 편집자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학습서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교과서 편집을 ‘편집의 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편집자라면 대부분 한 번쯤 해보고 싶어 하는 분야거든요. 교과서 편집 경험이 있으면 출판업계에서 편집자로 인정받기도 하고요. 교과서는 같은 내용을 담아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학습 효과가 크게 달라져요. 평소에 교과서나 참고서를 볼 때 자신이 저자나 편집자라면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공부하는 데 더 효율적일지 고민하면서 내가 만들 미래의 교과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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