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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 66호] 발뮤다(BALMUDA) 창업자 테라오 겐

글 이수진 ● 사진 발뮤다(BALMUDA)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홍차와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특정한 상황에서 겪은 미각, 후각 등의 감각적 체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특히 기분 좋은 경험이라면 더욱 그렇다.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은 맛있는 빵 냄새, 창문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처럼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분 좋은 순간을 발뮤다의 가전제품에 담았다.

테라오 겐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17살 때 배낭여행을 하다 스페인에서 배고픔 끝에 갓 구운 빵을 먹은 적 있다. 그는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고 어른이 될 때까지 그 맛을 잊지 못했다. 사업가가 된 테라오 겐은 스페인에서 먹었던 빵 맛을 기억하며 발뮤다의 토스터를 만들었다.

 

사용할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가전제품

 

일본의 가전제품 회사인 발뮤다의 기본 철학은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가전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발뮤다가 지금까지 만든 제품은 노트북 거치대 ‘X-베이스’, LED 스탠드 ‘에어라인’, 난방 기기 ‘스마트히터’, 공기청정기 ‘에어엔진’, 가습기 ‘휴미디파이어’, 공기 순환기 ‘그린팬 서큐’, 선풍기 ‘그린팬’, 전기 주전자 ‘더 팟’, 토스터 ‘더 토스터’, 전기밥솥 ‘더 고항’까지 총 10개의 제품이다.

테라오 겐은 특정한 순간에 경험하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가전제품 기술에 구현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를 가전제품이라는 가시적 도구에 담은 것이다. 이를테면 발뮤다의 토스터는 여행지 스페인에서 맛본 빵의 맛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테라오 겐이 스페인에서 먹은 빵은 갓 만들어진, 속은 부드럽지만 겉은 바삭한 빵이었다. 발뮤다의 토스터는 그런 식감의 토스트를 위해 기존의 굽기 방식에 스팀 기능을 추가했다. 수분을 더해 속은 부드럽게 유지시키면서겉을 바삭하게 구워주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좋은 그린팬 역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순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그린팬은 이중나선 구조로 팬의 모양을 독특하게 만들어 창문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을 구현한 기술이다.

 

아이디어부터 제조까지 혼자 시작한 창업

발뮤다가 제일 먼저 만든제품인 노트북 거치대 ‘X-베이스’ .

 

테라오 겐은 발뮤다를 창업하기 전 뮤지션을 꿈꿨다. 고등학교 시절문과, 이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학교를 그만둔 그는 배낭여행을 떠나 1년간 지중해 부근을 방랑한다. 테라오 겐은 그때의 고생스러운 여행을 통해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돌아온 뒤 록 스타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결실을 얻지는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한 음악을 과감히 포기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작곡을 하기 위해 사용한 컴퓨터와 의자의 활용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곧, 도구는 자신의 일상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테라오 겐은 더 나은 도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스스로 제품을 개발하고 디자인하기 위해 전자상가를 열심히 다니며 전자 기기의 구조나 소재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뒤 생산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계 작동법, 알루미늄 및 스테인리스 스틸 가공과 조립 등의 작업을 익혔다. 현장에서 온몸으로 기기 제조를 익힌 뒤에는 CAD를 배웠고, 마침내 발뮤다의 첫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노트북 거치대를 만들었다. 판매를 위해 테라오 겐이 선택한 전략은 ‘니치(Niche)’였다. 니치란 틈새를 공략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테라오 겐은 애플의 매킨토시 노트북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주 구매층으로 잡았다. 테라오 겐은 매킨토시 사용자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만든 노트북 거치대를 홍보했다. 발뮤다의 첫 제품은 특정 소비층을 공략한 기발한 발상이었지만 곧 파산 위기에 처하고 만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를 맞은 사람들의 소비생활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기업 발뮤다의 첫 제품이 출시됐을 때 회사 직원은 테라오 겐을 포함해서 단 3명이었다. 당시 판매고는 4500만 엔, 적자는 1400만 엔, 빚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었다. 파산 위기를 느낀 테라오 겐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회사가 망하더라도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에 그린팬을 만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린팬은 사람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회사도 급성장하게 된다. 또한 특정 소비층의 인기를 얻는 대신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자국 내 작지만 강한 기업을 거론할 때 ‘모노즈쿠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가 합쳐진 말이지만,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발뮤다 역시 모노즈쿠리, 즉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직원 수가 70여 명으로 여전히 작은 회사지만 매체와 업계, 대중은 발뮤다를 주목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이 확고하다는 점에서 발뮤다는 성공한 기업이다. 그러나 테라오 겐은 아직은 발뮤다의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대중의 주목을 받은 지 5년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필요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기기의 뒷면과 부속품까지 완성도 높은 기능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발뮤다라면, 앞으로도 혼신의 힘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모노즈쿠리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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