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MODU 64호] “사람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직업환경의학과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요?

 

이곳에 오는 분들은 주로 두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직업병으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물질에 노출된 경우죠. 중금속 중독이나 직업성 암, 직업성 폐질환, 천식 등의 질병이 발생했는데, 직업 환경에 노출된 물질과 자신의 질환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서 진단을 받으러 오세요. 그럴 때면 질병에 대한 예후나 치료 상담을 진행해요.두 번째로는 일상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때예요. 예를 들면 가습기 살균제나 도로변 분진(먼지 중에 흙, 모래, 암석, 금속, 식물 등 고형물이 파쇄되어 생긴 고형 미립자) 노출, 어린아이들의 납중독같은 경우죠. 질병의 진단을 위해 찾기도 하고, 위험 물질에 노출됐는데 질병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상담하러 오기도 해요.

 

외래 진료 외에 또 어떤 일을 하나요?

 

사업장에 직접 찾아가는 근로자 건강모니터링(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있어요. 사업장 환경을 진단한 뒤 어떤 물질에 노출돼 있는지 설명하고 예방 교육도 함께 진행하죠. 또 환경의학자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물질을 분석해 시·도청이나 교육청에 분석 결과 자료를 보내는 일을 해요. 예를 들어 분진의 경우, 분진으로 인한 피해와 사망률이 어느 정도인지, 그에 따른 대책은 무엇인지 분석 자료에 자세하게 적는 거죠.

 

환경에 의한 직업성 질병 가운데 폐질환 증상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어요. 왜 그런 건가요?

 

우리가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는 세 가지예요. 피부 노출, 섭취, 호흡을 통해서죠. 피부를 통해 노출되는 경우 일반 접촉성 피부염이 생기긴 하는데 극히 일부 질환이에요. 대개는 보호장비를 통해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망률이 매우 낮아요. 섭취, 즉 음식을 통해 질병에 노출되는 경우는 있어요. 그러나 사업장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일반 가정에서 먹은 음식을 통해 노출되는 경우가 많죠. 암이나 당뇨, 심혈관 질환은 먹는 것을 통해 발생하기도 해요. 그러나 이 부분은 일반 식품 관리 쪽에 해당돼요. 직업적 원인을 통해서 발생되는 건 상대적으로 적은데, 사업장에서 질병이 발생되는 주원인은 호흡을 통한 분진 피해나 화학물질 노출 피해가 가장 많아요. 즉, 호흡기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죠. 이곳에 오는 근로자 중에도 천식이나 폐섬유화(폐가 딱딱하게 굳는 질병) 때문에 방문하는 분들이 있어요. 역사적으로도 직업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 중 가장 고전적인 증상이 ‘진폐증’이에요. 히포크라테스가 분진에 의한 질병으로 진폐증을 기록한 증거가 있어요. 직업성 폐질환은 전체 질환 중에서도 여전히 비중이 높다고 볼 수 있어요.

 

국내에 산업재해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요?

 

아직도 중대 산재로 1년에 1500명 이상이 사망해요. 또 1년에 9만명 정도가 산업재해로 치료를 받고요.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250만명 있다고 하는데, 선천성 기형 부분은 10% 정도고 나머지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발생한 장애예요. 산업 현장에서 다친 분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고 사업장으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일상생활에서 환경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할까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예로 들면,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살균제 속에 특정 요소가 미세입자로 사람들에게 노출됐을 때 어떤 피해가 있는지 미리 확인을 했어야 해요. 독성 반응 후에 안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제품을 출시하면 안 되죠. 1994년에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판매를 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화학물질 안전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환경의학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일 중요한 부분이 사람에 대한 이해예요. 장애인을 봤을 때 그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죠. 생물학적인 약함이나 사회적 약함에 대한 공감 능력이 필요해요. 또 환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도 중요한데, 환자의 말이 증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의사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고 실질적인 도움도 줄 수 있어요. 임상의로 있으면 밤을 새우거나 그 외에 힘든 과정이 많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 약한 것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면 버티기 어려워요. 학습 능력은 뛰어나지만 임상에 오면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연구 분야가 더 어울릴 수 있어요. 의학 분야는 사람을 만나서 해결해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기쁜 마음이 들어야 일할 수 있습니다.

특집_임종한 환경의학자2

의학 외에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걸로는 환경의학을 연구하기가 어려운가요?

 

자연과학이나 기초 지식을 이용해서도 가능해요. 기초연구 결합이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접근하면 동물실험이나 셀(세포)을 이용해 연구해야 해서 사람을 직접적으로 조사하기가 어려워요. 직업환경의학은 임상적인 접근을 많이 해요. 왜냐하면 동물에게 독성 반응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사람에게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거든요. 사람에게서 반응을 확인하는 부분은 의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사람에 대한 반응 확인은 의학 분야에서만 할 수 있는 부분이죠. 또 자연과학 연구와 달리 환자를 만나기 때문에 사람에게 직접적으 로 도움도 줄 수도 있고요.

 

환경의학자의 역할 가운데 어떤 부분에 가장 주의를 기울이나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지식을 공유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의학 지식을 의사만 독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죠. 예를 들어 심폐 소생술을 알고 있으면 심근경색이 발병한 뒤에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요. 물론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도 있어야겠지만, 모든 사람이 심장 질환을 겪는 건 아니잖아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오기 전에 과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식습관을 바꿀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로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가장 인상에 남는 환자나 연구가 있나요?

 

1997년에 환경의학 박사를 취득했어요. 그전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지역사회에 있었죠. 환경의학을 공부하기 전에도 가정의학을하면서 환경과 관련된 질환을 함께 연구했어요. 가정의학 전문의로서 환경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시간까지 합치면 30여 년쯤 된 것 같아요. 지역사회에서 임상의로 있을 때 유독 환경으로 인한 질환이 많았어요. 병원이 있던 곳이 가난한 지역이었는데, 산재로 장애를 얻거나 노동력이 상실된 경우가 많았죠.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고엽제(인공합성 제초제, 베트남 전쟁 때 미국군이 밀림에 살포했다)로인한 질환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환경의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고엽제 피해 사실이 발견된 거네요.?

 

그때까지 국내에는 고엽제 관련 질환이 없었어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연령이 높고 노동력이 상실된 분이 많았는데, 보행장애와 피부질환이 특징이었어요. 한 동네에 유사한 질환이 많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지나가는 말로 외국에 다녀오셨냐고 물어봤는데, 갔다 온 곳은 월남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월남전 참전이 질환과 관련이 있는지 외국 논문을 찾아보다가 고엽제 피해 질환에 대해 발견했어요. 월남전 참전에 대한 명분을 악화시킬까 봐 정부가 10년간 언론통제를 한 사이에 월남전 질환과 관련된 외국 논문이 많이 발표됐거든요. 국내에 6만 명 정도의 고엽제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고엽제 후유증을 연구한 미국의 젠킨스 박사에게 연락해 고엽제 피해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국내에 소개 했어요. 그 뒤에 비로소 사회적으로 고엽제 피해에 의한 후유증을 인정받을 수 있었죠.

 

고엽제 피해도 그렇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 때도 사회적 발언을 적극적으로 한 걸로 알고 있어요. 화학물질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사회에 알리는 것도 환경의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외국의 사례를 보면 고엽제 피해를 당한 분들은 보상을 받았어요. 국가의 요청에 의해 참전했기 때문에 사회적 보상을 받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의사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그 사이에 발생한 산재가 많아요.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새로운 화학물질이나 공정이 도입되면서 발생한 결과죠. 산재로 인한 질병이 발생하면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돼요. 가난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거죠. 의사로서 개인이 건강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그래서 제대로 치료받고 산업 현장에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2017년에 주목해야 할 환경 이슈중 첫 번째가 대기오염이었어요. 환경의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보면 좋은 환경 이슈가 있을까요?

 

대기오염과 밀접한 부분이 에너지 문제예요. 지금의 화석연료는 고갈 상태이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관심을 가져야 해요. 핵발전소는 대안이 아닐 수 있어요. 왜냐하면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난 뒤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기술이 현재 과학기술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과학기술이 필요하죠. 에너지 전환은 미래가 달린 일이에요.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자연과학적인 접근과 인문사회적인 접근이 모두 필요하죠. 기후변화 문제도 있어요. 100년 동안 한국은 세계 평균 3배 이상의 급격한 기후변화를 보였어요. 기후변화는 우리 미래를 바꾸는 직접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꼭 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화학물질을 꼽고 싶어요. 일상 속에서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화학 물질이 사람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진단해야 해요. 의학,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대기오염, 기후변화, 화학물질 이 세 가지 요소에 관심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바람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환경오염과 관련된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환경의학자로서 사회적으로 환경오염 피해를 예방하고 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활발한 논의를 하고 있어요. 특히 화학물질은 일상에서 노출이 많은 데 비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화학물질 안전관리 시스템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어요. 지역사회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의료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싶고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과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의 기여가 동시에 필요해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로이끌어갈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과학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의사, 사람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의사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저 역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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