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글로벌 롤모델

[MODU 63호] 대통령에서 인권 운동가로

[글로벌 롤모델] 대통령에서 인권 운동가로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글 김현홍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지미 카터는 미국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이자, 퇴임 후 더욱 사랑받는 대통령이다. 18년간의 정치 활동 기간에도,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눈앞의 이익이나 인기보다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당시에는 외교나 국익을 챙기는 데는 실패한 지도자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미 카터는 암 투병 중에도 자원봉사 활동을 했을 만큼 인권과 평화, 민주화 등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조지아주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지미 카터는 1924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농장 일을 하는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농사일을 배웠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해군이 된다. 해군으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지미 카터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귀향을 결심한다.

고향인 조지아주로 돌아온 후 지미 카터는 농사와 사업을 병행하며 지역사회를 운영하는 일에 참여한다. 특히 그는 교육위원회 일을 맡아 교육 분야에서 인종차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조지아주는 백인을 위해서만 통학 버스를 운영하고, 흑인은 백인 학교에서 쓰고 난 손때 묻은 교과서를 사용할 만큼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이었다.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는 추세였지만 조지아주는 여전히 인종에 따라 생활공간을 분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흑인을 위한 셔틀버스가 마련됐음에도 버스 앞쪽에 검은색으로 표시를 해야만 운행이 가능했으며, 인종 분리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교사가 될 수 없었다. 지미 카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종 간 통합을 위한 집회를 열기로 한다. 그는 신문광고와 라디오, 영화를 통해 집회를 홍보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이러한 지미 카터의 노력으로 백인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지아주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을 없애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미 카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계 진출을 결심한다.

 

글로벌롤모델 _3

미국·중국이 함께하는 행사에 참석한 덩샤오핑(왼쪽)과 지미 카터(오른쪽).

 

인기는 없었지만 옳았던 결정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계에 진출한 지미 카터는 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이후 그의 도덕성과 청렴함을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아 39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77년부터 1981까지 4년간 재임했다.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그는 평화 유지와 인권 강화를 위한 정책을 폈다. 특히 중동 평화,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 종식, 핵무기 감축, 중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파나마운하 분쟁 해결, 알래스카 환경보호 등의 안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인권 문제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이 정책들은 모두 합리적이고 윤리적이었지만, 지미 카터의 모든 정책이 인기 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파나마운하를 반환하는 결정은 가장 많은 반대에 부딪힌 사안이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한 뒤 그 일대를 미국 영토로 한다는 조약을 맺고 약 80년간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었다. 파나마는 약 50년간 이 운하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미국이 계속해서 파나마로부터 얻는 이익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는 이 문제를 연구한 끝에 파나마운하를 파나마에 영구적으로 반환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재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원의원이 재협상에 반대했고, 미국인의 34%만이 재협상에 찬성했다. 이에 지미 카터는 각 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200여 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그들을 설득했다. 상원의원에게 파나마를 방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파나마운하에서 일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상원의원들을 설득해 파나마운하를 영구 반환하는 협정을 통과시켰다.

 

성공적인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삶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해결한 문제도 많았지만, 이란에 있는 미국 인질 구출 작전에 실패하면서 유약한 정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미국 대통령 최초로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비록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지미 카터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인권 활동가로서 인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1982년, 지미 카터는 아내 로잘린 스미스 카터와 함께 ‘카터 센터’를 설립한다. 이 센터는 평화, 인권, 민주주의, 자유, 보건 증진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며 “가치 있는 목표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는 원칙 아래 지금까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인권 활동가로서 지미 카터가 했던 활동 중에는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일도 있다. 1994년 북한의 핵 문제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을 때, 지미 카터는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해 김일성을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했다. 이처럼 지미 카터는 평생에 걸쳐 세계 주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지미 카터는 인권과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