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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 60호] 무소유를 실천하는 억만장자 DFS 설립자 찰스 F. 피니

[글로벌 롤모델]

무소유를 실천하는 억만장자 DFS 설립자 찰스 F. 피니

글 이수진 ●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연말이 되면 꼭 한 번쯤 듣게 되는 소식이 있다. 무기명 기부와 관련된 뉴스다. 미국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거액을 기부한 사람 때문에 한동안 언론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재산의 99%를 무기명으로기부한 그의 이름은 찰스 F. 피니. 세상에는 ‘척 피니’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전 세계 면세점 가운데 판매 수익 1위를 자랑하는 DFS(Duty Free Shoppers)의 설립자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롤모델로 꼽는 기부의 거장, 척 피니의 나눔 이야기를 들어보자.

 

타고난 사업가, 결국 돈만 아는 억만장자가 되다

 

척 피니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10대 때 크리스마스카드와 우산 등을 팔아 용돈을 마련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돈 버는 데 재능을 보였다. 코넬대 호텔경영학과 재학 시절에는 샌드위치 장사로 돈을 벌며 사업가의 자질을 일찌감치 선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한국전쟁에서 미국 공군으로 복무한 경험을 살려 미 군함에서 면세 술을 팔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억만장자가 된 시기는 40대인 1970

년대 초반부터다. 대학 친구들과 설립한 DFS의 매출 덕분이었다. 1988년에는 약 1조 5,000억 원(13억 달러)의 자산을 달성해 <포브스>가 발표한 부자 순위 23번째에 이름이 올랐다. 사실 척 피니는 미국의 대공황 시절인 1931년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과거를 보냈다.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인 부모님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돕는 사람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남을 돕되, 자랑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그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돕는 행위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경계시키는 한편 도움을 받는 이의 기분을 헤아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포브스>에서는 척 피니를 두고 ‘부유하고 냉철하며 단호한, 돈만 아는 억만장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1997년, 세상이 깜짝 놀랄 반전이 일어났다. 척 피니가 설립한 DFS의 일부 지분을 ‘루이뷔통 모에 에네시(LVMH)’사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회계 장부가 공개된 것이다. 회계 장부에는 척 피니가 그동안 기부해온 내역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돈만 아는 억만장자의 탈을 쓴 채, 자기 자산의 99%를 무기명으로 기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척 피니가 소유한 재산은 얼마 되지 않았다. 회계 장부가 공개되기 전, 척 피니는 이미 1984년에 ‘애틀랜틱 자선 재단’을 설립해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 단체들에 넘겨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의 선행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초기 기부 활동은 자신의 모교인 코넬대학교와 모국인 아일랜드에 집중되어 있었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인 척 피니에게 억만장자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한 코넬대에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과 아일랜드를 넘어 베트남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기부 시야가 확대되었다. 또 휴먼 라이츠 워치(HRW)와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등 인권단체에도 기부를 시작했다. 이 수많은 곳에 기부해온 척 피니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기부하는 곳에 기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을 요구했고, 이름이 밝혀지면 기부를 그만둘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긴 시간동안 그의 선행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척 피니가 기부를 위해 설립한 애틀랜틱 재단은 2020년까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다. 전 재산을 기부한 2020년 이후에는 재단의 모든 활동이 중단된다. 재단을 활용한 수익 사업을 일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척 피니, 코넬대 학장 프랭크 로데스,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 설립자 에드 월시. 척 피니는 첫 기부와 마지막 기부를 그의 모교인 코넬 대학교에 했다.

(왼쪽부터) 척 피니, 코넬대 학장 프랭크 로데스,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 설립자 에드 월시.
척 피니는 첫 기부와 마지막 기부를 그의 모교인 코넬 대학교에 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눔은 계속된다

척 피니가 1980년대부터 35년간 사회에 기부한 돈은 약 9조5,000억 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매일 1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죽기 전까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면 그만큼의 액수를 기부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척 피니의 소원은 비로소 작년 말에 이루어졌다. 마지막 재산인 약 80억 원을 모교인 코넬 대학교에 내놓은 것이다. 척 피니는 현재 아내와 재단 소유의 임대 아파트에서 지내며 어릴 때 부터 몸에 밴 검소한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약 1만 4,000원짜리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며, 이동할 때는 버스를 타고, 비행기도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성실함과 풍부한 아이디어,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그는 부가 한 사람에게 몰리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부의 축적을 통해 사교계 거물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건 은둔하며 가정적인 성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고. 척 피니는 재산의4분의 3을 기부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처럼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를 원했다. 그의 신념은 ‘살아 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었고 85세이던 지난해 말, 드디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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