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MODU 10월호] 바다처럼 넓게 보고 파도처럼 도전하라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만나고 싶었어요]

바다처럼 넓게 보고 파도처럼 도전하라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글 이수진 ● 사진 이강훈

 시속 9km로 세계일주를 하는 바다달팽이

 

201410월부터 20155월까지 약 7개월간 요트로 무기항, 무원조, 무동력 세계일주를 했다. 요트로 세계일주가 정말 가능한가?

 

요트는 엔진 없이 바람 등의 자연 에너지로만 움직일 수 있다. 어느 정도 요트를 다루는 기술이 있다면 태풍 속에서도 견딜 수 있다. 요트는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좌초되지만 않으면 탈것 중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해도, 그러니까 바다 지도에 좌초 위험이 있는 지역이 표시돼 있는데 이곳만 잘 피해가면 된다. 그리고 요트는 바다위에 떠 있을 땐 이동 수단이 되지만 정박하는 순간 집으로 변한다. 단순한 레저 스포츠 개념으로 이해하기에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기항, 무원조, 무동력 요트 세계일주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내가 떠난 항해는 여행이 아니라 모험이다. 혼자서 하는 레이스인동시에 모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레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정해진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말 그대로 무기항, 육지에 정착하지 않고바다에 떠 있을 것. 무원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을 것. 무동력,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를 할 것. 요트는 인간이 만든 탈것 중에가장 느리다. 세계일주한 요트 이름은 ‘아라파니’인데 바다달팽이라는 뜻이다. 이 요트의 평균 속도가 시속 9km 정도다. 자전거보다 느린 속도로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7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항해를 할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나?

 

1998년에 세계적으로 바다에 대한 ‘통항의 자유 협정’이 체결됐다. 각 나라의 경계선에서 12해리 이상, 즉 20km 이상 멀어진 곳을 ‘공해(公海)’라고 부르는데, 통항의 자유 협정으로 공해에서는 누구나 항해를 할 수 있다.

 

무기항, 무원조, 무동력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례로 전 세계적으로는 여섯 번째, 국내에서는 최초라고 들었다. 처음부터 성공을 확신하고 떠났나?

 

확신이 있었다. 물론 1%의 불행은 염두에 두었다. 나의 의지나 능력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으니까. 갑자기 벼락이 치거나 태풍에 휘말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예측 불가한 1%의 불행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확신이 있었다. 배를 수리한다거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자연은 무섭지 않다.

 

자연은 사람과 달리 말이나 행동으로 소통이 어려운 대상인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나?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서 소통이 더 잘될 수 있는 것 같다. 말은 늘 정확하게 전달이 안 된다. 두 사람만 거쳐도 의미가 온전하게 전달되기가 어렵다. 그런데 느낌이나 마음은 거의 정확하게 전달된다.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상대를 보면 상대방은 나쁜 짓의 내용은 몰라도 내 의도가 무엇인지는 100% 알아차린다. 마음이나 직관이 말보다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늘 예시를 준다. 그럴 때면 느낌이 온다.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는지 하나만 소개해달라.

 

엄청난 폭풍, 태풍이 오기 전에 소리가 먼저 온다. 바다가 ‘우-웅’ 운다. 그리고 청정 지역 바다에서 수평선 위에 약간 노란색의 띠가 생길 때가 있다. 해무랑은 조금 다르다. 그때 찬 바람이 휭 지나갈 때가 있는데, 바로 조금 뒤에 엄청난 돌풍이 온다. 이런 느낌은 금방알 수 있다.

 

혼자서 무섭지는 않았나?

 

늘 긴장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람이 워낙 세니까 배는 잘 달렸다. 파도가 높고 세서 가끔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배가 미끄러지며 내려가면 짜릿하기도 했다. 남극해는 예측하기 어려운 바다다. 상식적이지 않은 바다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게 참 긴장되고 두렵다. 보통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돛을 펼쳐서 항해를 한다. 그런데 남극해는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도 돛을 펼칠 수 없었다. 언제 큰 바람이 올지 예측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돛을 펼쳤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면 돛대가 부러지거나 돛이 찢어질 수 있다. 그러면 항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런 선택이 어려웠다.

 

항해 덕분에 감각이 매우 발달했을 것 같다.

 

혼자 항해를 하는 사람은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내 오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해진다. 나는 잠이 굉장히 많고 한번 잠들면 깊이 자는 사람인데 항해하면서는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났다. 깊이 잤는데도 그랬다. 몸에 있는 센서가 발달한 거다.

 

요트 위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할 일이 많다. 항해는 매일 했다. 항해에 필요한 요트 조정은 필요한 때에 하고. 무엇보다 밥 먹는 시간이 무척 중요했다.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제한된 식재료로 무엇을 해 먹을지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맛있는 걸 해 먹으면 좋겠지만 재료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메뉴 고민을 많이 했다. 싱싱한 채소나 육류를 먹을 수 없고 통조림 종류를 먹어야 했는데 그 재료들로 어떤 걸 만들어야 하나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 외에는 감시 활동을 하거나 항해일지 기록이나 사색을 했다.

 

7개월의 항해 기간 동안 인상에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을 말해달라.

 

평소에 흔히 보지 못하던 바다를 봤을 때 인상적이었다. 남극해를 항해할 때인데 되게 험하기도 했고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칙칙한 바다였다. 주변에 회전하고 있는 저기압 때문에 하늘은 늘 구름으로 덮여 있다. 그 당시 일기를 보면 왕짜증이라고 쓰여 있다.(웃음) 한달에 3일 정도 해가 뜨는데 그마저도 짧은 시간 동안 떠 있다. 그 외에는 계속 폭풍과 높은 파도가 이는 거다. 이게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런 기간이 얼마나 됐나?

 

7개월 중에 2개월 이상이니 전체 항해 중 3분의 1 정도를 남극해에 있었다. 그때는 사진도 안 찍었다. 예쁘고 아름다워야 사진을 찍고 싶을 텐데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해가 갑자기 떠서 파란 하늘이 잠깐 보이기에 선실 밖으로 뛰어나가 녹슨 기구들을 햇볕에 쬐었다. 그런데 2, 3시간 만에 다시 날이 흐려졌다. 그때 어떤 깨달음이 왔다. ‘아, 그렇지. 이 바다는 원래 그런 바다인데 내가 바다의 본모습을 거절하고 자꾸 다른 모습을 원했구나’ 한 거다.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하늘을 보려면 여기말고 적도에 갔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있는 그대로를 봐주면 아름다운데 자꾸 다른 바다를 원하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그때 우울하고 칙칙한 바다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 뒤로는 남극해가 사랑스러워졌고 그때부터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잿빛 하늘, 밋밋한 하늘을 찍었다. 한 달 이상 항해를 하고 나서야 남극해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모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

 

7개월가량을 홀로 요트 위에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나?

 

크게 사람에 대한 생각과 자연에 대한 생각으로 나뉜다.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지금까지 나를 스쳐 지난 모든 사람이 떠올랐다. 그런데 다 좋은 점만 생각나더라.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낮에는 지구가 보이지만 밤이 되면 수많은 별, 우주가 보인다. 내가 이 우주 어디쯤 있는 걸까, 그 위치에 대해 생각하면서 끝없이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주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해지면서 모험이 또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과연 우주의 끝이 있을까? 이 생각의 끝에 가면 ‘나는 이 별에 왜 왔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한 건가?

 

그렇다. 내가 이 별에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알고 있는 건 모두가 죽어간다는 거다. 조금 있으면 지구라는 별을 떠나야 한다는 것. 그러다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나름대로 결론 내린 건, 행복감을 많이 느끼며 살고 싶다는 거였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험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➊ 하루 일과의 시작은 콧수염 다듬기로. ➋ 배 위에서는 싱싱한 채소를 먹기가 어려워 직접 새싹을 재배해 먹었다. ➌ 남극해를 항해하는 동안 많은 새들이 요트를 따라왔다. 그중에 가장 오래도록 따라온 새는 앨버트로스 ‘이리와’. ➍ 남극해 주변은 늘 거친 파도가 함께한다.

➊ 하루 일과의 시작은 콧수염 다듬기로.
➋ 배 위에서는 싱싱한 채소를 먹기가 어려워 직접 새싹을 재배해 먹었다.
➌ 남극해를 항해하는 동안 많은 새들이 요트를 따라왔다.
그중에 가장 오래도록 따라온 새는 앨버트로스 ‘이리와’.
➍ 남극해 주변은 늘 거친 파도가 함께한다.

➎ 남극해에서 만난 거대한 유빙. 이 모습을 보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➏ 날마다 썼던 항해일지. ➐ 인도양에서 갓 잡아 구운 오늘의 양식. ➑ 배 위에서는 막대기를 그어 날짜를 기록했다.

➎ 남극해에서 만난 거대한 유빙. 이 모습을 보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➏ 날마다 썼던 항해일지.
➐ 인도양에서 갓 잡아 구운 오늘의 양식.
➑ 배 위에서는 막대기를 그어 날짜를 기록했다.

 

모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언제 알았나?

 

약간 위험을 무릅쓰고 극복해나갈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그때 가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한다. 마흔 살에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그동안 경제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했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인데 나는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모험은 달랐다.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굉장히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이 길을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다고 생각하면 바로 실행해야 하지 않나? 내몸이 원하는 것,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일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모험가로 살고 있고 ‘해양모험가’라는 직업도 만들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다.

 

마흔에 그렇다는 걸 깨닫고 쉰이 넘어 세계일주를 떠났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안락한 기반을 꾸리고 싶어 하는데 선장님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 과감히 모험을 떠났다. 그것도 예측 불가능한 곳으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원하지 않을 거다. 나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 즐거운 것 같다. 앞을 모르기 때문에 더 궁금하고 재미있고 가보고 싶다. 사람들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지금 쌓고 있는 기반이 정말 안정적일까 내가 모험을 떠나는 것과 사람들이 안정을 취하는 건 크게 보면 둘다 모험이라고 본다.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인간 생활에 영원한 안정이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수가 가는 길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착각일 수 있다. 요즘은 쉰 살이면 대부분 직장을 그만둔다. 그때까지 모아둔 돈은 병원비로 쓰거나 자녀들 출가할 때 지출한다. 은퇴하고 카페를 많이 한다는데 이들 중 95% 이상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런데 항해는 성공할 확률이 90% 이상이다.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길이 다르게 보면 계속 불안정한 생활일 수 있다. 인생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방법만 다를 뿐이지 모든 인간은 전부 모험하고 있는 거다.

 

청소년 시절이 궁금하다.

 

장난스럽고 호기심이 많았다. 처음 가는 장소를 좋아해 주말이 되면 배낭을 메고 들로 산으로 떠났다. 가서 아무 데나 텐트 치고 밥을 해먹으면서 밤을 지새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보이스카우트를 한 영향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이 다녔다. 부모님은 내가 늦게 들어와도 안심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셨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정시키면서

하는 행동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정의감도 있어서 친구들을 돕는 것도 좋아했다.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용기라는 실행 키를 잡아라

만나고 2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됐던 꽃제비다큐멘터리를 촬영한 걸로 안다. 항해 전에는 다큐멘터리 PD로 세계 곳곳의 삶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면서 세상의 별별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을 텐데, 사람과 세상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다큐멘터리 PD가 된 건 사회에서의 생존과 연관이 있다. 미술대학을 졸업했는데 미술로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신 비주얼과 관련된 일은 하고 싶었다. 어떤 일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방송이 떠올랐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방송사에 취업했다. 다큐멘터리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찍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밑바탕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지만. 물론 중간에 회의감이들 때도 있었다. 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좀 더 사람들을 지켜본다. 가만히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다. 거짓말, 잘못된 행동, 이런 것들을 납득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런 과정들이 재미있었다. 특히 40대 후반에서 50살 무렵에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 있었고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됐다. 이런 마음이 프로그램 속에 묻어 나온다. 나이 든 사람들의 시선으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직업 선택도 그렇고, 자기 욕구를 잘 알고 그에 맞게 선택하는 것 같다.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아차릴 수 있었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진솔하게 행동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조건과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극적인 사고를 하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좇아가다 보면 진정한 자기 욕구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여행은 견문을 넓히는 데 아주 좋다.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는 이들과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가치관의 폭이 남다르다.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기회를 얻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과감하게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장님은 용기가 많은 사람 같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데 그 호기심을 채우려는 욕구도 많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 여행도 다니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지도를 보면 흥분된다. 지형을 열심히 살피며 실제로 보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릴 적에 사회과 부도를 받으면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봤다. 지도에 가고 싶다고 표시해둔 부분을 실제 가기 시작하면서 용기가 꾸준히 생긴 것 같다. 용기는 실행 키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도 용기를 내 행동하지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결혼해달라는 말을 해야 하고,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있다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한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용기라는 실행 키다. 끊임없이 용기를 내 도전하고 실행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회과 부도에서 본 곳 중에 여전히 가고 싶은 곳이 남아 있는지?

 

못 가본 곳이 많다. 남극해는 다녀왔으니 북극해 알래스카 쪽에 가고 싶다. 동해를 지나 일본, 러시아, 캐나다, 미국 쪽으로 돌아오는 항해 코스가 있다. 그 코스를 조만간 하고 싶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 몇 년이 걸릴 거다. 그 전에는 바르셀로나 월드 레이스와 프랑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

 

김승진 선장에게 바다는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은 바다에 약하다. 바다에 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7개월간 ‘대양 항해’를 하면서 41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요트에 타고 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전부 자신만의 바다를 발견했다. 멀미를 하던 이들도 2, 3일 후면 멀미를 그치고 바다를 즐기기 시작한다. 예술가는 영감을 찾고 젊은 친구들은 직업을 찾는다. 나이 드신 분들은 남은 인생 여정의 새로운 친구를 찾기도 한다. 너무 행복해서 우는 사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은 해양 대국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이런 식의 ‘물 문화’ 운동이다. 국내에 있을 때면 바다와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강연과 요트 체험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중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내려오는데 이 친구들이 뛰어오면서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하더라. 그때 이 친구들이 나와 친구가 되었다고 느끼는구나 싶어 행복감을 느꼈다. 강의가 많아서 피곤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 중 몇 명은 바다를 사랑하게 되니 이만하면 성공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MODU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소년 시절은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나이 같다. 나의 청소년 시절도 그랬던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이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해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목표를 갖기보다는 많은 것에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여러분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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