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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 9월호] 당신의 행복을 키워드립니다. ‘찾아오는 고민 상담소’ 임재영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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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행복을 키워드립니다‘찾아가는 고민 상담소’ 임재영 정신과 의사

오는 게 힘들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고민 있는 사람이 상담 전문의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상담 전문의가 고민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설정이 꽤 흥미롭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말 그대로 마음이 아픈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예전보다는 훨씬 보편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편견과 오해가 많다. 주변 시선 때문에, 또는 진료비가 부담스러워서 마음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드리고 싶어 무료 이동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마음의 병이 커질 대로 커진 분들이 찾아왔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때부터 막연하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온 것 같다.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내가 직접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가?

맞다. 내 직업은 정신과 의사다. 정신과 의사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담 받으러 온 분, 즉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 아픈 이유가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의 시스템이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한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마음 아픈 사람은 계속 생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까 이 사회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음 아픈 사람을 도와주면서 동시에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일이라면 병원을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있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자연스럽게 병원을 찾았으면 한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정신과 병원에 대한 시선이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병원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오는 게 어렵다면, 내가 찾아가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럼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나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은 18개월 전부터, 더 정확히 말하면 2016년 8월 31일이다.

 

, 날짜까지 기억하다니 너무나 정확하다.

그 날짜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내한테 동의를 받은날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만,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건 공동 책임이니까 부인의 동의를 받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을 것같다.

맞다. 동료, 친구, 가족들에게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미쳤네, 돌았네’ 같은….(웃음) 나를 잘 아는 가장 친한 친구들마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친구지만, 처자식이 딸린 지금 상황에서 병원을 나오는 건 아니”라면서. 그들을 설득시키는 게 나의 첫 관문이었다.

 

부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처음 한 말은 “일이 그렇게 힘들어?”였다. 날 걱정한 거지. 일이 싫은 건 아니었다. 일에 대한 보람은 늘 느끼면서 살았으니까. 무작정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뿐이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해야 할일을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계획을 틈틈이 아내에게 말했다. 싸움으로 커질 것 같으면 좀 뒤로 물러서면서…. 치고 빠지는 작전을 쓴 거지.(웃음) 그렇게 6개월 만에 아내의 허락이 떨어졌다.

 

부인이 그 계획에 동의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심이 통한 것 같다. 절박하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본 거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결혼하기 전 같이 본 영화인데, 여자 친구 앞에서 펑펑 울었다. 주인공 친구인 ‘파르한’이 부모님한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특히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파르한이 공학자가 되길 원했지만 파르한은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몇 년이 흐르고 결혼하고나서 <세 얼간이>를 또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애할 때처럼 똑같이 펑펑 울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 그때 아내도 느낀 것 같다. 그냥 말한 게 아니라 진짜였구나 하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허락해주는 것처럼 진지하게 해보라고 하더라. MODU 친구들도 <세 얼간이>는 꼭 봤으면 좋겠다.(웃음)

 

그럼 부인의 동의를 얻은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나?

SNS에 글을 올렸다. 병원 그만두고 거리로 나간다고. 마침내 하고싶은 일을 하게 되어서 너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글을 올렸다. 나도 나를 못 믿으니까.(웃음) 불특정 다수인 사람들에게 공개 발표를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빠르면 6개월 뒤에 그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글을 남겼는데, 말한 대로 일만나고 진행되었다. 댓글을 남겨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이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보다 페친들이 더 큰 응원을 보내준 것 같다.(웃음)

 

탑차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

처음부터 탑차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병원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여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카페나 스터디 룸에서 할까했는데 분위기는 자유로울지 몰라도 찾아간다는 느낌이 덜했다. 이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찾아가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푸드 트럭을 봤는데, 저거다 싶었다. 찾아간다는 의미도 딱이고 상담할 때 필요한 독립적인 공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

 

탑차를 샀을 때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새 차는 비싸니까 중고차로 알아봤다. 한 달 치 월급을 들여서 샀다. 구입한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2017년 2월 5일.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데, 꿈에 그리던 일이 갑자기 현실이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더라. 대신 다른걱정이 생겼다. ‘이 큰 차를 어디에 주차하지’ 하는. 실제로 주차 위반 딱지를 많이 끊었다.(웃음)

 

탑차 디자인도 직접 한 건가?

좀 우스꽝스러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면 성공이다.(웃음)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 좀 허술하게 꾸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상담한다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 얼굴이 나오는, 아니 전신이 다 나온 사진을 붙였다. 촬영할 때 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막상 차에 붙여놓으니 창피하고 민망하더라.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 얼굴이랑 이름이 다 나오니까 신호 위반도 못한다.(웃음) 그래도 몇 달 지나고 나니 어느새 익숙해지더라. 근데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걱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거다. 비로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안 왔다고?

아무래도 낯설어서 그랬을 거다. 낯설면 경계를 하기 마련이다. 한번 생각해봐라. 뭘 믿고 나한테 상담을 받겠나. 정신과 의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정말 정신과 의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겠지. 세상도 워낙 흉흉하고…. 나중에 들어보니 탑차를 타면 납치당하는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하는 분도 계셨다.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맞습니다

무제-6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었겠. 그래서 어떻게 했나?

일단 기다렸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아지는 게 없었다.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명함을 제작했다. 나를 믿어달라고, 정신과 의사 맞다고.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기에 전단지까지 만들었다.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가 뭐 하는 곳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담은 전단지였다. 전단지만으로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흰 가운까지 입었다.(웃음) 사당역 한가운데에서 흰 가운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담해드릴까요” 하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그랬다.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에 온 첫 내담자를 기억하나?

물론이다. 너무 고마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호기심만 갖고 지나치는 곳에 용기를 내어 찾아주신 거니까. 한편으로는 그만큼 마음이 이 아프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셨는데, 정말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상담하는 스타일이 어떤지 궁금하다.

특별한 게 없다. 그냥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다. 생각해보면 이야기를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다. 힘겹게 말을 꺼내면 “나도 그거 아는데”라거나 “나 아는 사람도 그랬는데”라면서 상대의 말을 끊는다. 단순히 듣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본능적으로 말을 끊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힘든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남들한테 손가락질받겠지’, ‘아무도 이해 못하겠지’ 하고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상담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그분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함께 고민하며 공유하는 거다. 그럼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이 오히려 고마워한다. 자신도 감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줘서 고맙다고.

 

병원에서 하는 상담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병원은 아무래도 진료 절차가 시스템화되어 있어서 내담자와 이야기 나눌 시간이 적다. 이곳에서는 20~40분 정도의 상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병원은 약을 처방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상담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만약 약을 처방할 상황이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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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나온 건가?

일단 어디에 소속된 게 아니어서 마음대로 하긴 했다. 보통 일주일에 3~4번 나갔고, 어느 날은 5시간을 기다리고 어느 날은 3시간만 하고 그랬다. 이렇게 두 달 정도 보내고 나니 너무 불안하더라.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초조했다. 3개월에 접어들 무렵, 운 좋게도 정신보건센터를 같이 다니는 동료들이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더라.

경기도 의왕시정신보건센터 분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더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동네 주민센터를 돌기로 한 것이다. 시범 사업으로 정해서 ‘매주 목요일 마음의 때를 씻자’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목요일엔 ‘마음 목욕탕’ 하는 어감도 좋아서 그렇게 붙였다. 차에 목욕탕 표시도 그려 넣고.(웃음) 이때부터 차차 사람들한테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방송국부터 신문,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고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동안 해온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부터 꾸뻬 의사까지 별칭이 다양하더라. 어떤게 가장 마음에 드나?

다 좋지만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가 진짜 마음에 든다.(웃음)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억지로 정신 줄을 꽉 잡고 사느라 그런 거다.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거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 마음의 여유를 갖고 정신 줄을 좀 느슨하게 잡을 필요가 있다. 평소 ‘똘끼’라는 말도 참 좋아한다. 스스로 ‘똘끼’가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사실 그렇지 않나. 정신과 전문의였던 사람이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병원을 그만두고 트럭을 몰고 거리에 나와 무료 상담을 해주겠다고 하니…. 흰 가운 입고 전단지 돌리는 것 보면 정상은 아닌 것 같다.(웃음)

 

스스로 붙인 별칭 행키도 있다.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거리감이 있다. 표정만 보고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고 경계심이 생기기도할 거다. 행키는 ‘행복 키우미’의 줄임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 행복을 키우는 데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하는 마음에 지었다. 초중고 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강아지 이름 같기도 하고, 만화 주인공 통키나 밍키랑도 비슷하고.

 

요즘 학생들이 과연 통키와 밍키를 알까?(웃음)

그런가? 그럼 젝키는 알지 않을까?(웃음) ‘행키’를 자음으로만 써도 반응이 좋다. ‘ㅎㅋ’ 하면 뭔가 웃음소리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행키 말고 요즘에는 스스로를 ‘사회 활동가’라고 한다. 사회를 바꾸는 활동가인 것이다. 정신과 의사에서 좀 더 범위를 넓힌 것뿐이다. 아까 말했듯 사회가 바뀌어야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바꿔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찾는 청소년들도 있었나?

물론이다. 대부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꿈이 없는 게 문제가 있는 건가요” 하는 질문도 받았다.

 

뭐라고 대답해줬나?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못 찾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뇌는 잘 속는 경향이 있어서 꿈이 없다고 말하다 보면 정말 꿈이 없는 줄 안다. 근데 꿈은 ‘있다, 없다’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속 찾아가는 거지. 꿈을 찾았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지 않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또 새로운 꿈을 찾기 마련이다.

 

그럼 청소년 시절에는 어떤 꿈을 찾고 있었나?

사실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공대를 가고 싶었다. 그것도 그 당시에 유명했던 ‘포항공대(현재 포스텍 대학)’를 콕 짚어서.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막연하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꿈으로는 공대생이 된 것도 모자라 노벨상 수상까지 상상했었다. 그런데 수능을 못 봐서 못 갔다. 수능 하나로 꿈이 다 무너진 것이다. 재수는 하기 싫어서 어디라도 가야 했다. 그렇게 택한 게 의대였다.

 

꼭 포항공대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학 공과대에 가지 그랬나.?

그 생각을 못했다. 그거 하나만 생각해왔으니까. 그렇게 의대에 입학하고 정말 힘들었다. 의학 공부가 적성이랑 정말 안 맞았다. 생물학도 싫었고…. 학과에서는 고3 수험생들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했다. 전국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지내는 게 숨 막혔다. 정신적인 방황이 시작된 거다.

 

그럼 전과를 하거나 다시 시험을 치러도 됐을텐데….

다 때려치울 생각을 왜 안 했겠나. 다만 용기가 없었다. 여태껏 해온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잘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학교 부적응자였다. 아웃사이더라고 하지.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친구들과 동떨어지고, 혼자 불안해하고…. 그러다 정신과 수업을 들었는데 여기에 답이 있겠구나 싶었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정신과 수업을 들으면서 나를 스스로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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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힘들 때도 있지만 상담할 때마다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상담하다 보면 내담자에게 “태어나서 이런 얘기 처음 해봅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늘 감동을 느낀다. 마음에 병이 생기는 이유는 자기 감정을 전부 토해놓지 않고 쌓아두며 살기 때문이다. 자기 속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뭐 누가 됐든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외로움을 견디고 견디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에게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게 스스로 보람을 느낀다.

 

마음이 아프다는 걸 어떻게 스스로 알 수 있을까?

먹고 자는 기본적인 행위가 자연스러운지, 아닌지를 따져보면 된다. 폭식을 하거나 먹고 나서 토한다거나 잠이 오지 않고 자주 깬다든가하는 식으로 생활이 불규칙해진다. 마음이 편치 못해서 일어나는 증상들이다. 집중이 안 되고 우울하고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마음.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 거다. 그런데 공부 때문에, 일 때문에, 또는 남들도 다 그렇겠지 하며 스스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병은 더 깊어진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준다는 건 틀린말이다. 되도록 빨리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특히 청소년이라면 청소년 전문 상담 선생님한테 도움을요청하는 게 좋다. 아니면 주변의 믿을 만한 어른들에게 털어놓으면 좋겠다.

 

행복 키우미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행복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지금 행복한 게 행복이지 내일 행복한 건 행복이 아니다. 내일 행복이 올지, 안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 그렇다. “대학 가면 좋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마라. 지금 행복해야 한다. 둘째 아들의 이름을 ‘나우’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행복은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너 정도면 행복한 거야”라고 말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이 아닌 거다. 내가 내 길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찾으면 된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는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과정’에 빗대면 대부분 설명이 된다. 꿈이든 행복이든 삶의 과정에 있는 거다.

 

지금은 또 어떤 꿈을 찾는 중인가?

계획을 세운 게 있다. 총 세 가지인데 먼저 책을 쓰는 거다. 당연히 정신과 상담과 관련된 내용으로. 딱 한 권만이라도 써보자는 심산으로 지금 쓰고 있다. 두 번째는 노래를 만드는 거다. 노래는 책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다.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공익을 주제로 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이 올까?

행복과 자살은 깊은 관련이 있다. 행복한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겠나.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꽤 높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먹고살기 힘든 곳이다. 사람들 마음의 고통을 줄이려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챙기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하나둘 모이면 세상은 바뀔 거라고 믿는다. 지금 당장, 한순간에 바뀌기는 힘들지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은 갖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더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글 MODU 지다나 ● 사진 최성열

modu@modu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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