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017년 1,2월 합본호] 별처럼 반짝이는 기적, 누구나 이룰 수 있어요 범죄심리사 심규보

별처럼 반짝이는 기적, 누구나 이룰 수 있어요 

범죄심리사 심규보

 

소년범에서 전과자로, 여기에 뇌질환까지…. 모두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다. 불운한 환경을 탓하며 세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을 도우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소년범 범죄심리사이자 청소년 복지단체 대표로 활동 중인 심규보 씨를 만나 새로운 희망을 들여다봤다.

글 강서진·사진 이동훈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멘토로 살다

범죄심리사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피해를 입은 사람을 상담하고 심리 상태를 판단한다. 특히 청소년이 경찰이나 검찰에서 범죄와 관련한 조사를 받는 동안 가정환경이나 학교생활, 전과 여부, 범죄 동기, 재범 가능성 등을 파악하고 법률 기관이 적절한 형량을 결정할 수 있도록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범죄심리사는 주로 소년범을 대상으로 심리 검사를 하기 때문에 ‘소년범 조사 참여 범죄심리사’라고도 한다. 범죄심리사는 지역 경찰서에 배정이 되는데, 나는 현재 대구 지역 9개 경찰서를 관할하고 있다.

소년범 조사 과정에 범죄심리사가 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인 범죄의 경우는 범죄심리사의 자문을 고려하지 않고 형사법에 따라 형량을 결정한다. 성인은 행동과 의사 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자기 의지로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환경 요인을 고려하기보단 범죄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판단한다. 그런데 청소년의 경우는 자아 정체성이 확실하게 자리 잡히지 않은 시기라서 심리 상태와 범행 동기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소년범 조사 과정에 범죄심리사가 참여하는 것이고, 판사는 소년범의 형량을 결정하기 전에 범죄심리사의 자문을 참고한다.

범죄심리사의 자문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니 책임감이 크겠다.

소년범들을 상담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대부분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형편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 소년원만 해도 90% 이상의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거나 부모가 폭력적인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범죄심리학 이론 중에 ‘결정 이론’이란 것이 있는데, 어떤 행동을 취하는 데는 주변 환경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처한 환경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소년범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죄심리사로서 그들을 대할 땐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야기에 공감은 하되 동감은 안 하려고 노력한다. 죄질이 매우 나쁜 소년범의 사연이 슬프다고 해서 일부러 형량을 낮출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사정은 딱하지만 하면 안 되는 일을 저질렀으니 어쩔 수 없다. 대신 판사가 소년범의 환경을 잘 헤아리도록 심리검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범죄심리사는 범죄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심리상담사와 비교했을 때 꽤 냉정한 편이다.

그래도 소년원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범죄심리사로 활동하는 것 외에 아이들과 교류하는 일이 많나 보다.

대구 소년원에서 나를 모르는 아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웃음) 일단 소년원에 강의를 자주 간다. 재판 후 보호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수용되는 청소년은 소년원을 나오기 전 2주 동안 사회복귀반을 거친다. 매달 그곳에서 소년원 아이들과 부모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애착을 갖고 면회를 자주 간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주기도 하고, 간식도 나르고 있다.(웃음)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재판장에 함께 가기도 한다. 이 외에도 매일 저녁 지역 경찰관들과 함께 야간 순찰에 나선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소년원 아이들이 보내준 편지에 일일이 손 글씨로 답장을 써서 보낸다. 종종 아이들에게 연락 오면 밥을 사주기도 하고.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몇 년째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웃음)

소년원 아이들에게 특별히 애착을 갖는 이유는 뭔가?

이유를 말하기 전에 먼저 소년원에 대한 선입견을 바로잡고 싶다. 소년원은 징역을 사는 곳이 아니다. 만약 중죄를 저질렀다면 청소년이라 해도 형사법에 따라 소년교도소에 수감된다. 소년원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고, 취약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수용해 정규교육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제는 소년원이라 하지 않고 중·고등학교나 직업전문학교라 한다. 당연히 소년원 수용 경력도 전과로 남지 않는다. 소년원 아이들의 대부분은 가정이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보호처분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관심을 갖고 보살펴준다면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소년원 아이들은 물론, 소년원에서 나온 아이들과도 꾸준히 교류하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다. 특히 부모가 곁에 없으면 끼니를 제대로 못 챙기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잘 챙겨주고 싶더라.

밥값이 만만치 않게 나갈 거 같다.(웃음)

한 달에 식비만 삼사백만 원 쓴 적도 있다.(웃음) 범죄심리사 수입이 넉넉지 않은 편인데 버는 족족 쓰기 때문에 모은 돈이 하나도 없다. 수입이 전혀 없는 것이다.(웃음)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후원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점점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니까 주변 사람들이 방송 출연을 권하더라. 처음엔 속된 말로 아이들 팔아 돈을 받는 거 같아서 찜찜하기도 했는데 방송 이후로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기업에서 점퍼와 건강식품을 보내주기도 하고, 얼마 전엔 유명 연예인이 김치를 후원해줬다.(웃음) 최근엔 후원금을 유치하는 콘서트도 열 수 있었고, 정부 기관에서 후원에 대한 연락이 오기도 한다. 방송 출연이 여전히 불편하지만 나만 감수하면 아이들이 도움 받을 수 있으니 이제는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알리려 한다.

그래서 ‘별을만드는사람들’이란 비영리단체도 설립한 것인가?

그렇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에 무척 공감하는데, 위기 청소년들을 바로 세우려면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응원이 있어야 한다. ‘별을만드는사람들’은 소년원 청소년은 물론, 학교 밖 청소년과 범죄에 노출된 피해 학생의 자립을 돕는 후원 단체다. 청소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고 학업과 생활비, 식사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 간질이라 불렸던 뇌전증을 앓는 청소년도 돕는다. 처음엔 교회의 작은 방에서 혼자 상담 활동을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 더 확장된 공간과 후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2015년에 정식으로 후원 단체를 세웠다.

돌고 돌아 마침내 꿈을 이루다

위기 청소년을 돕는 일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내가 바로 위기 청소년이었다.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뭐가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10대 때는 소년원에서 한 달 정도 생활한 적이 있고, 20대 때는 구치소에 수감됐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범죄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 시절에 가정불화를 겪고 성장 환경이 좋지 않았던 것, 무엇보다 그들을 온전히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살아온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그들의 유년 시절에 진심으로 위로하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했다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 생각한다. 청소년 시기가 미래를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때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어떤 일을 하든 위기 청소년들을 돕는 일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학창 시절이 불행했다고 생각하나?

나는 중3 때까지 사춘기를 모를 정도로 얌전하고 공부도 꽤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고1 무렵에 부모님이 오래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충격이 너무 컸기에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공부할 이유도 모르겠더라. 그 시기에 뇌전증이 처음 찾아왔다. 갑자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발작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수시로 발작을 일으켰고 친구들이 나를 피했다. 주변 환경이 갑자기 변한 데다 어느 누구도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프고 불행하다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서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학교를 자퇴하고 소위 문제아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쁜 짓을 일삼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장난감 가게에 있는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고 한 달간 소년원 보호조치를 받았다. 소년원을 나와서도 한동안 방황은 계속됐다.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25살 때 폭행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어떤 사람의 사연을 듣고 판사에게 제출하는 호소문인 탄원서를 써주게 됐다. 탄원서라는 걸 그때 처음 써봤는데 그 탄원서 덕분에 수감자의 형량이 낮아진 거다. 그 일이 구치소 안에서 소문이 나자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게 탄원서를 써달라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수감자들 중에는 학력이 낮고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는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주장하고 싶은 바를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수감자들의 탄원서를 작성해주기 시작했다. 탄원서를 쓰려면 범죄 사실이 적힌 공소장을 일일이 검토하고 수감자의 사연을 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고 너무 재밌더라.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고맙다고 하니 보람도 느꼈다. 게다가 구치소에서 다른 수감자들을 상담해주는 봉사원으로 특별 대우를 받게 됐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처음 자신감을 느꼈다. 10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면서 100명이 넘는 수감자를 상대하다 보니 변호사만큼 모든 범죄와 관련법을 다 파악하게 됐다.(웃음)

탄원서를 써준 일이 범죄심리사가 되는 계기가 됐나?

범죄 내용을 상담하고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 재밌긴 했지만 이런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건 몰랐다. 그래도 돈을 버는 것보단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치소에서 나와 수많은 장애인재활센터를 다니며 그 결심은 더욱 확실해졌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자기 삶에 만족해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껏 얼마나 쓸데없는 불평을 하고 살았는지 깊이 반성하게 되더라. 그래서 내가 가진 장점들을 살려 작게나마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했기에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힘들진 않았나?

오히려 재밌었다. 굉장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거니까. 일단 청소년 복지 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학과에 편입했고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상담 분야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울증이나 중독과 같은 정신 병리 분야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재활심리학과 석사과정을 밟았고 정신병원에서 3년간 수련하며 임상심리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임상심리전문가는 정신 질병과 증상에 대한 것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학 전공자 중 10% 정도만 임상심리를 다룰 만큼 공부가 쉽지 않은 편이다. 힘들게 수료 과정을 마치고 난 후엔 범죄심리사가 하는 일에 매력을 느껴 범죄심리사 1급 자격증을 땄다. 전과 때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볼 수 없는데, 그 한을 풀었다.(웃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검찰 일을 하고 싶었고 프로파일러에도 관심 있었다. 어쨌든 돌고 돌아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청소년기를 바르게 보냈더라면 진짜 원했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지난날을 후회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도우려 한다.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청소년을 바른길로 이끈다

아이들과 상담할 때 주로 어떤 조언을 해주는지 궁금하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상담할 때는 이 모든 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준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남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 말고 자기가 진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또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의 하나가 꿈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목표를 찾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면 공부가 재밌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가 위기 청소년이나 소년범을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나.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지 못할 거면 심한 비난과 질책도 삼갔으면 한다. 최소한 자기 의지로 노력해서 열심히 살 수 있는 기회와 용기는 마련해줘야 한다고 본다. 위기 청소년이나 소년범이 자립하지 못하면 범죄에 계속 노출되기 쉽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고, 나아가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게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제도의 문제점이나 필요한 지원책은 뭐라고 생각하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건강검진 사업, 꿈드림 검정고시 지원 사업, 여행 지원 사업 등 청소년 복지 사업은 이미 다양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제도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관련 기관들은 이용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하는데, 이런 사업들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청소년 복지 사업에 대한 정보와 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도록 통합 시스템으로 운영하거나 홍보가 잘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학교 밖 청소년과 소년원 아이들의 안정된 생활과 자립을 돕는 중앙 기관이 정비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달라.

나는 메모하는 데 강박증이 있을 정도로 매 순간 떠오르는 걸 적어놓는다. 아마 구치소에 있을 때 밖에 나와 하고 싶은 걸 적었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하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것을 일일이 적는 편이다. 그리고 사소한 것이라도 실행한 날엔 그 항목을 지우는데 그때 기분이 참 좋다. 무언가를 이뤘다는 뿌듯함이랄까.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소망도 꽤 구체적으로 적는다. 그러면 신기하게 이뤄지더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해외를 가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오랫동안 소원하던 스페인에 가서 레알 마드리드 축구를 관람한 것도 모자라 호날두 선수를 바로 눈앞에서 봤다.(웃음) 나처럼 스스로에게 한계를 정해두지 말고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10대라는 시기에 못할 게 뭐가 있겠나. 바라는 일이 잘 안 되더라도 목표의 근처까지 갔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내가 꿈을 이룬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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