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016년 10월호] 답은 너 안에 있어 청춘 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장재열

답은 너 안에 있어

청춘 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장재열

시시콜콜 사소한 고민부터 아무에게도 말 못할 고민까지, 제각기 고민을 안은 대한민국 청춘들이 너도나도 고민을 털어놓는 ‘그녀’, 좀놀아본언니를 만났다.

글 전정아·사진 최성열

 

 

상담의 목표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것

필명을 언니, 그것도 좀 놀아본언니로 지은 이유가 있나?

우울증 치료의 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두 개의 아이디를 써서 한 아이디로 내 고민을 적고 또 다른 아이디로 그 고민에 대해 답을 적었다. 자신의 고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치료다. 그런데 어느 날 답을 적은 아이디로 고민 상담을 부탁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내가 미술대학을 나와 패션 회사에서 일한 사람이다 보니 ‘패션 피플’인 30대 여성으로 비춰졌는지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르더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 상담하는 것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일부러 정정하지는 않았다. 여성분들 입장에서는 오빠보다 언니가 고민을 털어놓기에 친근한 상대이기도 하고. 언니 앞에 붙은 ‘놀아본’이란 형용사는 유흥 문화를 즐겼던 과거가 있어서 붙인 것만은 아니다.(웃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보면 현세의 삶을 소풍에 비유해 한 인생을 ‘놀다 간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처럼 인생의 모든 경험이 소풍 온 이 세상에서 놀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좀놀아본언니’라는 이름이 탄생되었다.

개인 블로그에서 혼자 고민 상담을 하다 아예 청춘 상담소를 차렸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블로그가 점점 유명해지고 상담을 부탁하는 친구 수가 많아질수록 하나의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이 되더라. 내 말을 ‘교주님의 말씀’처럼 신봉하고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웃음) 나보다 조금 어린 또래 동생들에게 조언 몇 마디를 건네고자 시작한 일인데 그들이 아바타처럼 전적으로 내 말에 의존하는 것은 애초에 원하던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조언은 주되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게 할까, 하는 고민을 했고 그 답을 더 많은 ‘언니들’을 등장시켜 찾아냈다. 다양한 조언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조언을 선택하는 것도 자발적인 행동의 첫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상담을 받은 친구들 중 주관이 뚜렷하고 직업, 나이, 성격, 분야가 각기 다른 친구들을 불러 모아 상담소를 개설하자고 설득해 지금의 비영리단체 ‘좀놀아본언니들’이 탄생했다. 개설하고 난 뒤 3년여 동안 온·오프라인을 합하면 2만7000건이 조금 안 되는 고민을 상담해왔다. 주로 일주일에 2~3일 나눠서 상담하는데, 가장 많이 했을 때는 3박 4일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400여 건의 답변을 단 적도 있다. 평균적으로는 한 번에 30~40건의 상담에 답변한다.

다양한 배경과 경력을 가진 6명의 언니들인 만큼 상담 스타일도 가지각색일 것 같다.

청춘 상담소에는 나를 제외하고 총 6명의 언니가 있는데, 게시판을 보고 자기가 답변하고 싶은 고민을 골라 상담해주는 편이다. 상담학 박사이고 청소년 진로 관련 공공기관 연구원인 ‘미닝 언니’는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문제의 근본과 의미(meaning)를 짚어준다. ‘젤리 언니’는 에세이스트 겸 뮤직 큐레이터, 작곡가다. 다양한 직업을 모두 해내는 만큼 에너지도 많고 판단도 빠르다. 부드러운 어조로 단호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외유내강형 상담자다. ‘찔레 언니’는 기혼자로, 고민에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마음의 공허함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에 특화됐다. ‘용이 오빠’는 유일한 오빠다. 굉장히 남성적인 친구라 그런지 언니들 대부분이 감성적인 답변을 할 때 행동파다운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곤 한다. 언니들이 놓치기 쉬운 남자의 진짜 속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옆집 언니’는 열심히 대학 공부를 하고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해 상담가가 됐다. 문제를 보는 시각은 냉정하고 어조는 직설적이지만 직장 문제, 퇴사 문제에 통찰력이 깊다. 마지막으로 패션 브랜드 인사 팀장이었지만 사랑을 찾아 호주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클로이 언니’는 다른 언니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져 간과한 부분을 콕 짚어준다.

그렇다면 좀 놀아본 언니만의 상담 스타일은 어떤가?

나는 절대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 같은 말은 안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결정 장애, 선택 장애라는 단어가 생길 만큼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는 친구가 많은데, 이런 친구들에게 정답을 말해주듯 상담하면 인기를 얻긴 쉽다. 초반에는 멋모르고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찾아오고, 내 블로그를 ‘점집’처럼 드나드는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하며 이런 식으로 해답을 주는 것은 오히려 그 친구들의 자생력을 뺏는 일이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한 가지 패턴을 만들었다. 먼저 상담자의 고민 내용을 아주 세밀하게 읽는다. 그리고 고민 내용 중에서 ‘진심’이 담긴 문장을 찾아내 그 문장을 언급하며 실질적으로 ‘당신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행간의 진심을 읽어내는 게 상담의 포인트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 문제의 답을 안다. 다만 그 답을 선택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답을 실행하기 위해 먼저 해결돼야 할 몇 가지를 정확히 모를 뿐이다. 나는 고민과 해결 사이의 공백을 살짝 메워주기만 하고 판단은 스스로 하도록 독려한다. 또 어떤 선택을 하든 그렇게 큰 ‘위험’이나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알려준다. 그들이 선택한 결정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살짝 등을 밀어주는 거다.

10대부터 30대까지 상담을 신청하는데, 연령대나 성별에 따라 고민의 주제가 많이 다른가?

물론이다. 2014년 3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약 1년간 2만여 건의 고민을 통계 내어 분석한 빅 데이터가 있는데, 고민을 보낸 성비는 대략 남자가 20%, 여자가 80%였다. 남자의 고민 분야 1위는 취업이고, 여자의 고민 분야 1위는 연애였다. 고민을 보낸 연령대는 10대가 23%, 20대가 54.8%, 30대가 22.2%였다. 그중에서 10대의 고민 분야 1위는 연애(38.6%)이고 2위는 진로(22.6%)다. 20대 역시 고민 분야 1위는 연애(33.5%)이고 2위는 취업(23.4%)이다. 30대가 되면 조금 다른데 1위는 직장(22%), 2위는 연애(18.9%), 3위는 취업(18.1%) 순이었다. 1위와 2, 3위의 격차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다.

10대를 위한 고민 상담은 성인의 상담과는 방법이 다를 것 같다.

주로 고민을 보내는 연령대는 성인이지만 열두 살 초등학생 친구도 상담을 해올 만큼 10대의 상담 신청도 꽤 많은 편이다. 당연히 10대를 위한 고민 상담법은 다르다. 왜냐하면 10대는 고민이 있어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따 문제만 해도 대학에서의 아웃사이더와는 상황이 다르다. 대학의 아웃사이더는 수업이나 학과 활동을 선택해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지만 중·고등학생이 왕따를 당할 때는 1년 동안, 최악의 경우 3년 내내 왕따 이미지가 굳어지는 등 불가항력적 상황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상담소 외에 좀 더 일상 속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아 함께 고민하곤 한다. 또 어린 친구들은 ‘마지막 판단은 스스로 하렴’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답을 향해 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편이다.

3만 명에 가까운 사람을 상담하며 다양한 고민을 만났을 텐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면?

항상 말하는 친구가 있다. 소위 말해 히키코모리, 즉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이던 취업 준비생이었다. 이 친구는 명문대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남보다 취업이 늦어지자 자존감이 낮아지며 집 안에 숨어 지내게 됐다. 이 친구와는 100일간 소통했다. 100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만들어 일주일마다 상황을 공유해보자고 한 것이다. 그나마 자기는 낙서를 좋아하니 잠들기 전에 휴대전화 그림판 어플로 선을 긋는 걸 습관 삼아 해보겠다고 하더라. 처음엔 무질서한 선만 그리다가 점점 지겨웠는지 30일 즈음 지나자 해골,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3일 즈음, 이 친구는 처음으로 드로잉 클래스를 등록해 집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내게 알렸다. 사람이 많은 곳은 여전히 어려워서 수업이 끝나고 일대일 과외처럼 따로 수업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정말 큰 변화였다. 마침내 그 친구는 100일째에 하나의 풍경화를 완성했다. 사소하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며 삶의 불씨를 다시 붙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단순한 위로나 힐링을 넘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이 친구 사례를 겪고 난 뒤 책임감도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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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민을 말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큰 책임을 안고 고민 상담을 하는 만큼 스트레스도 많겠다. 좀놀아본언니의 고민은 누가 들어주나?

누구나! 나는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꼭 말한다. 나를 아는 사람은 전부 내 고민을 들어줄 의무가 있으니까. 나는 내게 찾아오는 모든 이의 고민을 들어주니까 내 고민 역시 모두가 들어줄 수 있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고민을 말하고 들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나부터 실천하는 거다. 다행히도 다들 잘 들어주더라.(웃음)

고민 상담을 하다 보면 개인의 고민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상담을 시작한 지 2년 차 됐을 무렵부터 ‘이건 개인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겠다’라는 것이 굉장히 와 닿았다. 주거 문제, 취업 문제, 심지어 연애 문제 안에서도 사회적 측면의 문제와 모순을 읽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 내게 사회적인 해결 방식을 제안할 내공은 없다. 다만 본인의 아픔이나 고민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는 걸 어린 친구들에게 충분히 인지시키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못난 것이 아니라면 ‘사회 어느 부분의 문제에서 내 고민이 비롯됐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일도 하고 있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는 국내 청소년 단체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인데, 그중 실무위원회는 실제적인 활동과 연간 계획을 검토하고 의견을 낸다. 나는 18세에서 25세, 즉 후기 청소년에 관심이 높다 보니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하거나 그들의 고민, 생각이 담긴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토크 콘서트, 유튜브와 아프리카 방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 상담자를 만나고 있다. 앞으로 좀놀아본언니들’, 그리고 장재열의 플랜이 궁금하다.

일단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친구와 깊게 소통하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담이 5대 5로 병행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을 목표로 오프라인 상담 공간 개설을 고민하고 있다. 딱딱한 상담 센터 같은 형식이 아니라 분식 포장마차처럼 캐주얼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일상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개인 장재열로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누구나 아는 고민 상담 전문 방송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무엇보다 나는 잘 살고 싶다. 의미 있게 잘 사는 것과 실제로 부와 명예를 창출해 잘사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 사회는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당연히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사회적, 공익적인 진로를 꿈꾸다가도 부모나 사회의 시선에 부딪혀 포기하곤 한다. 나는 그 편견을 깨고 싶다. 좋은 일을 해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은 거다. 톱 탤런트와 열애설도 나고 싶고!(웃음)

마지막으로 10대가 꼭 해봐야 할 행동이 있다면 추천해달라.

‘꼭 해봐야 할 것’이라는 것도 하나의 강제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에서 강하게 떠오르는 어떤 한 가지가 생기면 그때 그것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반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그 시기를 즐기는 것도 좋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면 그 나름대로 지치고 고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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