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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호] 영국에 등장한 새로운 우먼파워 “제76대 영국 총리로 취임한 테리사 메이”

영국에 등장한 새로운 우먼파워 “제76대 영국 총리로 취임한 테리사 메이”

 

지난 7월 13일, 영국에서 새 총리가 취임했다. 마거릿 대처를 이어 두 번째 여성 총리가 된 테리사 메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롤모델은 없다, 나는 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를 집중 탐구해보자.

글 지다나·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확고한 결단력을 가진 꼿꼿한 원칙주의자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새로운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후보에 오른 안드레아 레드섬 에너지 차관이 총리 경선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해,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후임으로 결정됐다. 레드섬은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강력한 총리가 바로 임명되는 게 국익”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치계에서 테리사 메이에 대한 평가는 레드섬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 동료들이 테리사 메이 총리를 말할 때 ‘어렵다, 차갑다, 꼿꼿하다, 확고하다’ 등의 단어를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테리사 메이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데다 사적인 대화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할 때도 원칙을 강조하며, 줄곧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여왔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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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알려진 아부 카타다를 요르단으로 추방한 일은 테리사 메이의 정치적 스타일이 잘 드러난 사례다. 아부 카타다는 영국의 악명 높은 이슬람 성직자였다. 2001년 9·11테러 이후 10여 년 동안 역대 내무장관들도 아부 카타다를 추방하려고 힘썼으나 하지 못한 일을 결국 테리사 메이가 해낸 것이다.

 

대처와는 또 다른 실용주의 개혁자

1956년 영국 남부의 이스본에서 태어난 테리사 메이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Bank of England)에서 일했다. 이후 금융 컨설턴트로 12년 동안 지내며 경제 감각을 익혔다. 그러다 1997년, 마흔한 살의 나이에 영국 의회 하원의원이 된다. 열두 살 때부터 품어온 정치인의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정치계에 발을 들인 테리사 메이는 보수당 의장을 거쳐 2010년에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인물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날 정도로 워낙 까다롭고 어려운 자리라고 알려진 내무장관직을 메이는 6년 동안 지켜오며 최장수 내무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내무장관으로 지내면서 경찰 예산을 감축하는 동시에 범죄 발생률을 줄였으며, 경찰조직 부패에도 강경하게 대응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테리사 메이는 법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대처와 자주 비교돼왔다. 하지만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대처와는 달리 메이는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와의 권리를 위해 기업을 견제하고 임금 차이를 개선하는 등 사회와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자유시장과 개인주의에 무게를 둔 대처와는 확연하게 다른 입장이다. 이 때문에 테리사 메이는 경선 기간 동안 “나는 테리사 메이”라고 말하며 대처와의 비교를 거부하기도 했다.

테리사 메이는 총리 취임식 때 “더 나은 영국을 만들겠다”면서 “노동자들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수의 특권 계급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 것”이라며 “우리는 브렉시트 역시 잘 해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영국 언론들은 강경한 보수주의자면서도 유연한 감각을 지닌 메이를 두고 ‘실용주의 개혁자’라고 부르고 있다. 원칙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자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은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될 신임 총리의 행보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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