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016년 5월호] 백조의 꿈, 1막을 열다

백조의 꿈, 1막을 열다

국립발레단 최연소 발레리나 이은서

 

국내 최고 발레단의 이례적인 발탁으로 주목받는 단원이 있다. 올해 스무 살, 최연소 단원이 된 발레리나 이은서다. 예고를 간 것도,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국립발레단에 당당히 입단한 이은서를 만났다.

글 강서진·사진 최성열

 

 

오로지 발레만을 위해 살다

지난달에 첫 공연을 마쳤죠? 처음 정식 무대에 오른 소감이 궁금해요.

국립발레단의 올해 첫 작품인 <라 바야데르>라는 공연에 참여했어 요. 고대 인도의 왕실을 배경으로 사랑과 배신, 죽음을 다룬 작품이죠. 저는 여러 단원과 춤을 추는 군무진 중 한 명이었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너무 떨렸어요. 안무를 혼자 틀리면 어쩌나 부담도 됐고요. 무대에 설 땐 활짝 웃으려고 엄청 신경 썼는데 긴장하니까 표정이 어색해지더라고요. 발레단 선배들과 함께 공연한 게 처음이 라 공연 준비하면서 많이 배웠고, 모든 과정이 재밌었어요.

국립발레단에 단번에 합격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까지도 어떻게 합격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최종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걸 보고도 안 믿었어요.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랑 이름이 같은 사람이 또 있나 보다 했죠.(웃음) 심사위원분들이 제 실력보다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에 많은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에이, 너무 겸손한 거 아니에요?

경험과 실력 모두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발레단 입단을 앞두고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워낙 경력이 탄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대부분 예중, 예고를 졸업하고 국내외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거나 다른 발레단에서 경험을 쌓은 분 이 많아요. 올해 저와 함께 입단한 동기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요. 그런데 저는 다른 단원들에 비해 발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 기가 늦고 정규 무용 교육 코스도 밟지 못했어요. 경험이 짧은 만큼 발레단에서 나이도 제일 어리고요.

그럼에도 발레단 정단원이 됐다는 것은 실력이 뛰어남을 인정받은 거잖아요.

글쎄요. 발레를 일찍 시작한 사람보다 근력이나 유연성, 체력 면에 서 기량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로지 훈련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순한 호기심으로 발레를 시작했는데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결심은 중2 때 했어요. 그때부터 삶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발레였죠. 예고를 가고 싶었지만 진학을 준비하기엔 시 간이 충분치 않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어요. 그래서 더 독하게 연 습했는지도 몰라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발레 학원으로 가서 새벽 3~4시까지 연습했어요. 주말에는 아예 밤을 새우기도 했고 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면 자꾸 잠이 오는 거예요. 당연히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죠. 몸이 힘들면 발레 연습에도 지장이 생기니까 결국 고2 때 자퇴했어요. 그 후로는 발레에만 집중했고, 꾸준히 하 다 보니 국내외 국제 무용 콩쿠르에서 상도 받게 되더라고요.

이번 은서 씨의 입단이 언론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어요. 최연소, 학벌 파괴 등 국립발레단 역사상 파격 발탁이라는 평가가 많았죠.

저도 기사를 접하면서 신기했어요. 내가 발레단에 합격한 게 이렇게 특별한 일인지 조금 놀라기도 했고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지 는 않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매순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입단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최연소 단원이라는 타이틀도 부담스러워요. 해외에서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데뷔하는 경우도 많은걸요. 나이가 어리더라도 가능성과 실력만 있다면 정단원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최연소라는 기록에도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학교생활을 마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조금 아쉽긴 하지만 자퇴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대학 가고 유 학 간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루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고 2 때까진 무용과 여대생을 꿈꾸기도 했죠. 그런데 국립발레단 입단 을 목표로 하면서 대학 진학도 바로 포기했어요. 꿈이 확실해지니까 다른 욕심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냥 내게 주어진 위치에서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발레단에 입단했으니 이제 더 열심히 해야죠. 앞으로 계획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대학이나 유학을 갈 생각이 없어요.

뚝심이 대단한 거 같아요.

고집이 좀 세요.(웃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포기가 잘 안 되고요. 그런데 한편으론 납득이 되는 부분은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좀 이 상하죠? 예전에 발레 학원 다닐 때도 선생님이 저의 부족한 부분이 나 실수를 지적하시면 금세 고쳤다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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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시키는 무기는 연습, 또 연습

얼마 전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어요. 몸은 괜찮나요?

네, 많이 좋아졌어요. 조금 어려운 동작을 반복해 연습했더니 골반 부위가 아프더라고요.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건 흔한 일이어서 크게 개의치는 않는데, 다치면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속상해요.

연습량이 상당한가 봐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발레단 선배들과 공연 리허설을 해요. 발레단 일정이 끝나면 혼자 남아서 밤 10시까지 연습을 더 하고요. 주말에도 거의 연습실로 출근하죠. 발레단 생활은 예전 발레 학원에서 혼자 연습할 때와는 달라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게 많더라고요. 군무는 손끝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여러 단원과 똑같이 맞춰야 해요. 저만 잘해서도 안 되고 못해서도 안 되죠. 옆 사람을 보면서 줄을 맞추는 것도 꽤 어려워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연습을 더 하려고 해요.

쉬는 날도 없이 매일 그렇게 연습하면 지치지 않나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을 텐데 그럴 땐 주로 뭐 해요?

음… 스트레스도 발레 연습을 하면서 풀어요.(웃음) 어려운 동작과 감정이 잘 표현되면 그 희열이 정말 최고거든요. 물론 쉴 때도 있죠. 주로 잠을 자거나 발레 동영상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냥 놀고 싶진 않나요?

요즘 제 친구들을 보면 여기저기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술도 마시고 하더라고요. 소개팅도 많이 하고요.(웃음) 저는 학창 시절에도 학교와 발레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느라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닌 기억이 없어요. 안 해봐서 그런지 지금도 놀고 싶단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친구들은 저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걱정하죠.(웃음) 발레를 제대로 하려면 놀 건 다 포기해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진짜 그렇게 살고 있네요.

자기 관리를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키가 크고 팔다리도 긴데 엄청 말랐네요.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인가 봐요?

지금은 키가 170cm이고 몸무게는 48kg 정도 되는데, 중1 때까지는 키도 작고 통통했어요. 한 번에 햄버거 세트를 두 개나 먹을 정도로 식탐도 많았죠. 발레를 하려면 몸이 말라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거예요. 발레리나를 꿈꾸기 시작한 중2 때가 돼서야 발레를 하기엔 너무 뚱뚱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식욕이 저절로 떨어지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살이 빠지면서 키가 훌쩍 크더라고요.

지금도 다이어트를 하나요?

끼니는 절대 거르지 않아요. 하루 세끼 규칙적인 식사를 하죠. 기름이 많은 돼지고기 말고는 육류도 좋아하고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어요. 몸이 너무 마르면 힘든 동작을 할 때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하거든요.

뭐든 척척 알아서 잘하는 것 같아요. 자기 일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도 있고요. 10년 후 어떤 발레리나가 될지 기대되는데요

저도 너무 궁금해요.(웃음) 앞으로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지금 제 자리에서 충실히 노력하고 실력을 쌓다 보면 언젠간 제게 꼭 맞는 역할과 배역을 만날 수 있겠죠. 제 무대를 본 관객들이 감동과 위로를 받고 행복해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MODU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어릴 때 꿈이 없는 아이였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죠. 만약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가끔 생각해봐요. 아마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고 관심도 없는 전공을 억지로 공부하고 있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빨리 찾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어요.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다가 그중에 조금이라도 끌리는 것이 있으면 도전해보세요. 그 일에 재미를 느낀다면 열정을 다해 노력하세요. 그러면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입고 당당히 제 몫을 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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