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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호] 나무처럼 살다가 꽃처럼 지다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

나무처럼 살다가 꽃처럼 지다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

지난 3월 5일,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온두라스의 한 마을에서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를 추모하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세계 유명 인사들이 SNS를 통해 카세레스의 죽음을 알렸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카세레스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집회가 열렸다. 카세레스가 누구이기에, 그의 죽음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걸까?

글 강서진·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자연과 인간의 생존을 지킨 굳은 의지

멕시코, 과테말라와 접경해 있는 온두라스는 광물과 산림, 하천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하지만 2009년부터 정부가 산업 개발사업을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국토의 30%를 광산 채굴 지역으로 선정했다. 광산 기업은 너도나도 토지를 차지했고, 지역 주민들은 힘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하천에 수백 개의 댐을 세우겠다며 나무를 무수히 베고 숲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개발 사업은 원주민의 협의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마을은 점차 해외 거대 기업이 장악했다.

환경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카세레스는 이러한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정부와 기업의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막고, 지역 원주민의 생존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특히 온두라스에서 최대 규모로 세워질 예정이던 수력댐 건설 사업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댐이 세워지면 원주민들은 식수와 농작물을 얻기 힘들고, 마을에 홍수가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카세레스는 원주민들과 함께 댐 건설 반대 캠페인을 10년간 펼친 끝에 이 사업을 진행한 중국 거대 기업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부와 기업의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시민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온두라스에서 국가의 최대 개발 사업을 중단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카세레스는 세계 환경단체로부터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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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환경을 더 사랑한 용기와 희생

카세레스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문제와 인권보호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전쟁 난민을 돌보며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카세레스는 대학생 때부터 원주민의 권리와 생존을 보호하는 ‘온두라스 원주민위원회(COPINH)’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환경보호 활동을 시작했다. 온두라스 원주민위원회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숲 개발 사업을 중단시키고 삼림 보호구역을 만들었다. 또한 수많은 개발 사업으로 살 곳을 잃은 원주민이 토지소유권을 돌려받도록 했다. 이러한 성과를 이루어낸 카세레스는 사회정의와 평화를 실현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샬롬’상과 인권운동가에게 주는 ‘프런트라인 디펜더’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랐다. 산업 개발을 지지하는 기업과 단체로부터 끊임없이 살해 협박을 받은 것이다. 브라질, 페루, 온두라스 등 산업 개발을 일삼는 중남미 국가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암살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지난 5년간 온두라스에서만 무려 101명의 환경운동가가 살해됐다. 카세레스와 함께 환경보호 활동에 참여한 동료들도 총을 맞거나 납치와 고문을 당하는 등 수차례 위협을 받았다. 카세레스는 자신이 유력한 암살 대상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두라스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썼다. 카세레스에게 테러 단체의 살해 위협은 계속됐고 지난 3월 3일, 카세레스는 괴한들의 총에 맞아 끝내 숨을 거뒀다.

돈과 이익을 얻기 위해 자연을 무참히 짓밟는 사람들이 환경보호가의 목숨까지 빼앗고 있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끝까지 환경의 소중함을 외쳤던 카세레스.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을 되새기며 자연과 인간의 생존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저는 살고 싶습니다.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소중한 환경이 파괴되는 현실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내려면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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