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016년 3월호] 사이버 기록 삭제 전문가 디지털 장의사

사이버 기록 삭제 전문가 디지털장의사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기록이 남겨질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가 넘치는 사이버 세상에서 내가 쓴 글을 찾아내 지우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인터넷상의 나의 흔적을 삭제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지우개’를 든 사람이 있다. 바로 디지털장의사다.

글 전정아·사진 최성열, 위키미디어커먼즈

사이버 세계에 기록된 를 지우는 직업

“인터넷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과거는 디지털 피부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1998년 미국의 소셜 미디어 전문가 J. D. 래시카가 인터넷 잡지 <살롱>을 통해 한 말이다. 이처럼 인터넷에 한 번 기록된 정보는 누군가 지우지 않는 이상 평생 사이버 세상에 남아 있다. 디지털장의사는 자기가 인터넷에 남긴 기록을 지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탄생한 직업이다.

디지털장의사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 흔적인 ‘디지털 유산’을 정리한다. 고객이 미리 의뢰한 유언에 따라 SNS에 남은 게시물이나 댓글, 계정, 온라인 상거래 기록 등을 지우는 일을 하기 때문에 직업 이름에 ‘장의사’가 붙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디지털 유산은 왜 정리해야 할까? 디지털 유산은 고인의 카드번호와 공인인증서, 보안카드를 비롯해 실제 돈으로 거래되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과 사이버 머니 등도 포함한다. 이러한 금융거래 데이터는 사용자가 장기간 쓰지 않으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또한 현재는 광범위하게 공개된 온라인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잊힐 권리’가 주목받기 시작하며 자신이 작성한 디지털 기록을 삭제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디지털장의사는 사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기록을 지우는 업무도 맡게 됐다.

디지털장의사의 업무는 검색과 삭제

디지털장의사의 주 업무는 고객이 의뢰한 모든 디지털 정보를 검색해 삭제하는 것이다. 고객이 의뢰하면 상담을 통해 삭제하고 싶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그다음 전문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고객의 정보를 데이터화한다.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의 이메일이나 SNS 계정, 게시글 등을 검색해 하나씩 삭제한다. 타인이 올린 게시물 가운데 의뢰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있을 때도 해당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다.

9

잊힐 권리?

2012년 유럽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나온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인터넷상에 잠재적으로 나타나는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포함한 각종 자료의 삭제를 요구하며 해당 자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정보의 소유권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정보가 인터넷상에 노출되는 기간을 정해 삭제, 수정, 영구적 파기를 요청할 수 있다.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에 의해 유럽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논의 중에 있다.

댓글 하나 놓치지 않는 매의 눈과 비밀을 보장할 무거운 입은 필수!

디지털장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과나 공인 자격증은 없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이나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전공하거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시행하는 ‘인터넷정보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도움이 된다. 지난 1월에는 디지털장의사가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신규 직군으로 인정받아 앞으로 디지털장의사 자격 검정 시험 등 든든한 발판이 마련될 예정이다.

디지털장의사가 되고 싶다면 데이터를 검수해 의뢰받은 정보를 남김 없이 삭제할 수 있는 꼼꼼한 눈썰미와 의뢰인의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무거운 입을 가지는 게 좋다. 게시물 삭제에 필요한 위임장을 작성할 때 정당한 삭제 이유를 들어 사이트 관리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므로 글쓰기 능력도 필요하다. 해외 사이트 관계자와 연락하는 일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갖추면 더욱 좋다.

디지털장의사는 어떻게 정보를 지울까?

디지털장의사의 세세한 업무 절차가 궁금하다고? 아래 순서를 따라가며 디지털장의사가 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0

 

11

디지털장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페이스북을 사용하기 전,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싸이월드를 빛낸 미니홈피 TOP 10’에서 8위에 오를 정도로 당시 미니홈피 꾸미기에 열중했다.(웃음) 그런데 문득 ‘내가 죽으면 내 미니홈피는 어떻게 될까? 내 일촌들은 내가 죽은지도 모를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생각이 디지털장의사에 대해 고민한 첫 번째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뒤 지인의 부탁으로 정보를 삭제하는 일을 대신하게 됐는데, 정보를 삭제하고 난 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보람이 컸다. 또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대해 희열도 느꼈다. 몇 차례 이 일을 반복하며 노하우를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2013년에 정식으로 ‘디지털장의사’라는 홈페이지(디지털장의사.kr)를 개설했다.

디지털장의사라는 직업의 장점이 있다면?

초기 자본 없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실 일반인이 자신의 게시글이나 댓글을 하나하나 찾아 지우는 것은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지만, 노하우만 깨닫는다면 하루에 300개는 금방 처리할 수 있어서 시간 대비 효율도 높다. 특히 이 노하우는 디지털장의사에게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쉽게 공개할 수가 없다.(웃음) 또 이 일을 하다 보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상 털기’를 당해 피해를 본 안타까운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이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뿌듯할 때도 많다.

디지털장의사의 전망은?

SNS가 발달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이것이 악용돼 인신공격을 당하는 등 2차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 혹은 피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 디지털장의사에 대한 수요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해외의 경우는 라이프인슈어드, 데드스위치 등 다양한 디지털장의사 업체가 성행하고 있다. 그만큼 이 직업이 대중화된 것이다. 그에 비해 국내에는 아직 디지털장의사 업체가 10여 개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강국인 만큼 발전 가능성이 높고 전망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장의사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평소 SNS나 웹사이트를 눈여겨보거나 개인정보보호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포털 사이트의 서포터스를 경험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디지털장의사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디지털 공간에 올라간 정보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 남은 한 줄의 댓글,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는 사람도 많다. 이들을 돕고 싶다는 사명감 있는 친구들이 이 직업을 꿈꿨으면 좋겠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