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세계

[2호] 옷으로 말하다, 의류학과

 

옷의 영향력을 믿는 김태희의 후배들,

서울대 의류학과

 

글 – 서울대 의류학과 08 김혜상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 의류학과에 재학중인 김혜상이라고 합니다. 김태희씨가 저희 학과 선배로 유명하죠. 의류학과 하면 막연히 옷과 관련된 곳이라는 추상적인 생각만 떠오를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 지는 아는 사람이 적죠. 제가 지금부터 자세하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옷이 가진 영향력을 믿어요.

신부의 하얀 드레스와 장례식장의 까만 정장은 각각 어떤 느낌을 주나요? 옷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합니다. 옷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매력은 저를 의류학과에 덜컥.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파파라치 사진을 보면서 패션 센스를 따지기도 하고, 직접 옷을 만드는 것에도 흥미가 있어요.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행위라고 생각하죠.

 

노란색 빨대에서 영감을?

먼저, 옷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볼게요. 옷의 시작은? 네, 바로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은 영감에서 비롯하죠. 영감은 형태뿐만이 아니라 소재, 감정, 의미, 느낌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텀블러에 노란색 빨대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투명한 느낌에 노란색 포인트를 줘보자’는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영감이 떠오르면 다양한 방식으로 디테일을 달리 주면서 여러 개의 디자인을 그려봅니다. 여러 디자인 중 맘에 드는 것이 생기면, 소재를 골르고 가봉(대충 만들어 보는 것)을 시작합니다. 수정을 거치며 가봉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게 나오면, 진짜 천으로 작업을 하는 거죠.

옷 만들기: 재단과 드레이핑

옷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재단과 드레이핑(draping)의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재단은 여러 조각들로 옷을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보통 셔츠나 바지, 정장 등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요, 2차원적으로 옷의 조각들을 그린 후 천을 바느질로 연결하여 하나의 옷을 완성시킵니다.드레이핑은 몸통만 있는 마네킹에 천을 휘감아 형태를 만들고, 여기에 디테일을 더해 가는 식으로 옷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볼륨감이 중요한 드레스나 원피스 같은 경우는 주로 드레이핑으로 만들어져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자: 성장에 제한을 두지 않는 무한한 커리큘럼

의류학과 커리큘럼의 특징 중 하나는, 엄청난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과와 달리 졸업에 요구되는 필수과목이 거의 없어,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만 들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옷을 만드는 것이 좋으면 4년간 실제로 옷을 만드는 수업만 들어도 되고, 반대로 옷은 좋아하지만 만드는 쪽에는 관심이 없다면, 이론수업으로 학점을 다 채워도 됩니다.

세부적으로는, 의류학과 수업은 크게 이론수업과 실습수업으로 나뉩니다. 이론수업에서는 옷과 디자인의 역사, 유명 디자이너들의 특징 등에 대해 배웁니다. 그리고 각 소재들의 특성이 무엇인지, 색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염색은 어떻게 하는지 등 실습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이 배워요. 눈에 띄는 이론 수업이 있다면, 바로 의류학과 경영학의 접목을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이 수업에서는 의류학의 이론을 좀 더 응용학문에 가까운 패션학과 연결시키고, 패션학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옷을 소비하는 패턴이나 시장에 대한 디자인의 영향력, 의류의 유통채널과 홍보방법 등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죠.

실습수업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소재와 제작 방식을 정하고, 필요한 재료도 동대문에서 직접 골라서 옷을 만듭니다. 즉 하나의 완전한 자기 작품이 나오는 것이죠. 실습수업은 특히나 수업마다 난이도 차이가 나니, 자신의 관심과 실력에 따라 수업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원하는 수업을 듣고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만든 다는 것이 의류학과의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의류학과만의 행사: 나만의 패션쇼

3학년 2학기 때에는 졸업 전시회를 합니다. 이 졸업 전시회는 학생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행사에요. 진로에 따라서 개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패션쇼가 될 수도 있거든요. 서울대학교의 경우, 패션쇼는 의류학과 수업의 한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로 한 팀이 되어 패션쇼를  준비합니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해내는 의미 있는 행사라, 교수님께서도 함께 의논해 주시고, 조언도 해주세요.

하나의 패션쇼를 열기 위해서는 의상 준비에서부터, 컨셉 잡기, 모델 선정, 스테이지 및 음향 구성 등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패션쇼는 보통 10월 정도에 열리지만 준비는 봄부터 시작됩니다.

매번 패션쇼마다 컨셉과 테마가 다른데, 제가 준비했던 패션쇼의 경우에는 고래(古來, 과거와 미래가 합쳐진다)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패션쇼를 준비하는 과정은 굉장히 고되고, 처음이다 보니 실수도, 갈등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요. 이전에는 옷에 대한 이론과 옷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면,   여기서는 실제 업계에서 요구되는 자질들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런웨이에서 옷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또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을 패션쇼 기획을 통해  배울 수 있죠.

 

졸업 후 진로는

옷을 만드는 것은 의류학과에서 배우는 것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의류 경영에 대해 더 공부하기도 하고, 옷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를 하기도 하고, 소재와 관련하여 화학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방면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먼저 의류학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처럼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사람들이 있고,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연구원이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형 백화점이나 제일모직 같은 의류업체나 유통업체에 입사하는 분들도 있는데, 여기서는 자신이 했던 공부에 따라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하고, 마케팅이나 전략 팀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후자의 경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연구하고, 매번 패션쇼를 분석해서 다음 해의 트렌드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종종 개인 쇼핑몰이나 자신의 이름을 단 샵을 내는 사업가분들도 계세요.

옷 좋아하니? 그럼 의류학과로 와!

제가 옷에 대한 흥미와 철학을 안고 의류학과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옷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의류학과를 고려해 봤으면 해요. 패션잡지를 많이 보거나, 직접 쇼핑하는 것을 즐긴다면 의류학과 수업들을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거에요. 혹시 패션 센스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정말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의류학과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류학과에서 패션 센스가 없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거든요! 이 때 패션 센스라는 것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해요.

의류학과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요소를 꼽아보자면, 바로 책임감입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제한된 시간 내에 완성도 높은 옷을 완성해야 하거든요. 보통 패션쇼를 하면 짧게는 2-3일, 길게는 1주일 동안 거의 잠도 못 자고 옷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멋지게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은 디자이너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저는 내가 능력과 노력의 산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류학과의 생활에 대해 만족합니다. 자신의 디자인 및 옷 제작 능력을 옷이라는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하고, 또 평가 받는 것은 끊임없는 자극이 되죠. 게다가 디자인은 특히 디테일한 부분이 많은 것을 결정하는 분야입니다. 같은 소재를 쓰고, 또 같은 형태로 옷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정말 사소한 부분들에 따라 옷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의 손길이 가지는 영향력이 더욱 크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 과정이 힘들지만 뿌듯하고, 완성된 옷에 대한 만족감 또한 몹시 높습니다. 내가 만든 옷이 사람들에 입혀진다는 것, 내가 제안한 디자인이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든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 아닐 까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입히고, 옷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친구들에게는 의류학과를 자신 있게 추천해 드립니다. 의류학과의 치명적인 매력,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으신가요?

 

필자 서울대 의류학과08 김혜상-옷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꿈꾸는 패셔니스타. 소탈한 웃음과 달리 옷으로 던지는 메세지는 세련되기 그지없다. 제일모직 인턴 경험있음. 여성 캐주얼/ 정장 생산을 위한 소재 고르기에 밤새기를 불사했다고. 오늘도 프로페셔널한 미래의 자신을 위해 뛰는 그녀는 다양한 경험을 축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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