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호통판사 천종호
세상만사 온통 소년 생각뿐인 ‘호통 판사’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범행을 저지른 ‘일진’ 청소년을 앉혀두고 법정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혼을 내는 판사가 있다. ‘호통 판사’, ‘호통 대장’, ‘비행 청소년의 대부’ 등의 별명으로 더 유명한 천종호 판사다. 지난 6년 동안 만난 수천 명의 소년범에게 진심을 담아 호통치는 천종호 판사를 만났다.
글 지다나·사진 김정태
우리 아이들은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판사님 호통치는 장면이 아직도 떠돌고 있어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판사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사실 판사라는 직업은 대중에게 알려지면 좋을 게 없어요. 공평무사(公平無私)라고 공과 사를 구분해 모든 일을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이 처리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는 사형 제도를 반대하면서 법적으로는 사형선고를 내려야 할 때 얼마나 난감하겠어요. 이처럼 판사는 사회적인 이슈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하죠. 하지만 소년 재판을 맡고 난 뒤부터는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겠더라고요.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법원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결손가정 또는 빈곤층 가정의 아이들이에요. 이 아이들은 보호처분을 받고 풀려나도 돌아갈 집이 없어요. 돌아갈 집이 있다 하더라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해요. 저와 다섯 번이나 법원에서 만난 아이가 있을 정도예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게다가 소년원은 물론, 재비행 예방을 위해 마련된 시설 역시 굉장히 열악합니다. 상황은 이런데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사회에서 행해지는 ‘청소년 지원’에서 이 아이들은 쏙 빠져 있는 거예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거죠. 이 사실을 안 이후부터는 일단 나부터라도아이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 인터뷰 요청도, TV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계시는거군요.
맞아요. 처음엔 지방신문에 아이들의 사연을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책을 냈죠. 이후 tvN의 <리틀빅 히어로>, S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학교의 눈물>에 출연하게 된 겁니다. 최근에는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책도 냈고요. 책의 인세는 모두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판사님의 노력 덕분인지 조금씩 아이들의 실상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있어요.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시는지…. 정말 많은 분이 도움을 주고 있어요.
쌀을 보내주시는 할머니부터 양말을 보내시는 공장 사장님까지, 참 고마운 분들이죠. 부산에서는 식당 주인분들이 뜻을 모아 만든 ‘동심밥심’이라는 후원회까지 있어요. ‘아이들의 힘은 밥심에서 나온다’는 뜻의 이 모임은 보호 소년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죠. 한창 클나이의 아이들이라 식비가 만만치 않거든요. 이렇게 조금씩 작은 손길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저로선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할 일이 많아요. 6년이 지났는데도 소년법 관련 제도가 하나도 바뀌지않았으니까요. 앞으로도 온 국민의 관심을 받을 때까지 노력해야죠.
자나 깨나 소년 생각, 평생 ‘만사 소년’으로 살렵니다
법정에 선 아이들에게, 심지어 아이들 부모에게까지 호통을 치시잖아요. 첫 재판 때부터 호통을 쳤는지 궁금해요. 그들에게 벼락같이 호통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부터 호통이 절로 나오더라고요.(웃음) 엄숙하고 정숙해야 할 법정에서 큰 소리를 내는 걸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혼내야 한다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런 것 같아요.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는 아이들, 자기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들한테 진심으로 말을 건네는 거죠. 게다가 법정 판결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됩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제가 아이들한테 해줄 수있는 건 오금이 저리도록 엄하고 뇌리에 박히도록 강렬한 호통뿐이에요.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어른이 줄 수 있는 애정 어린 가르침인 셈이죠.
호통을 치는데도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많은 걸 보면 아이들에게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호통 치료’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웃음) 호통은 제가 법정에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응급조치라고 생각해요. 호통만 치는 게 아니라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말을 10번씩 외치게 하는 경우도 많아요.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도 두세 번 하다 보면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외치는 순간이 있어요. 그동안 쌓인 여러 감정이 폭발하는 거죠. 그래서 법정이 눈물바다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밖에도 아이나 부모가 처한 상황에 어울리는 편지나 시를 읽어주기도 해요. 짧은 시간 안에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고 싶은 나만의 방식이죠.
아이들 대하시는 게 법정 안과 밖이 많이 다르다면서요?
그래서 ‘두 얼굴의 사나이’로도 불리지요.(웃음) 재판이 끝나면 아이들한테 꼭 해주는 말이 있어요.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어려워 말고 언제든지 연락하라고요. 실제로 집에 가고 싶은데 차비가 없다고 전화한 아이가 있었어요. 지금 당장 택시 타고 오라고 했죠. 법정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적은 돈이지만 용돈부터 쥐여줘요. 돈이 없으면 바로 나쁜 짓을 하게 되거든요. 임신한 아이에게는 배냇저고리를, 도둑질한 아이에게는 돈을 넣은 지갑을 선물한 적도 있죠. 지금도 종종 아이들한테 고맙다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하고요.
‘호통 판사’부터 ‘두 얼굴의 사나이’까지 별명이 많아요. 별명 중 가장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요?
최근에 만난 스님이 ‘지장보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더군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과 같다고요. 제겐 과분한 별명이죠.
(웃음) 아이들 사이에서는 ‘천10호’로 통해요. 소년원에 있는 아이 하나가 배를 그렸는데, 배 이름이 ‘천10호’래요. ‘천10호’ 선장은 저고요.소년 보호처분은 1호부터 10호까지 있는데 10호가 가장 엄한 처분이거든요.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라 기억에 남죠.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자나 깨나 소년 생각만 한다는 뜻에서 붙인 ‘만사 소년’이에요.(웃음)
앞으로도 계속 ‘만사 소년’으로 살아가실 건가요?
물론이죠. 처음 판사가 됐을 때는 퇴직 후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소년 재판을 맡으면서 제 모든 게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이 준 기회 같아요. 한 아이의 일생이 제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것만큼 귀한 일도 없잖아요. 내가 떳떳하게 살아야 아이들한테도 떳떳하게 호통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떳떳하게 아이들에게 호통치는 만사 소년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방황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일반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이나 모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에요.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에 어둡고 힘든 길을 걷고 있죠.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어른들의 탓이 크니까요. 또 너무 힘든데 위로받을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저를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무엇이 됐든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천종호 판사의 노력 덕분에 창원에 이어 부산에도 청소년 회복센터가 세워졌다.
오늘도 천종호 판사는 단 한 명의 소년이라도 더 보듬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