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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호] 글자에 영혼을 불어넣는 캘리그라퍼

글자에 영혼을
불어넣는 예술가
캘리그래퍼

 

또박또박 반듯한 글씨는 향기 없는 꽃처럼 보기에는 좋지만 매력은 없다. 똑같은 단어인데도 유독 마음을 울리는 글씨가 있다. 잔잔하게 춤추거나 격하게 꿈틀대는 글씨를 그리는 캘리그래퍼의 작품이 그렇다. 캘리그래퍼를 꿈꾸는 최유정(서울 서일중 3) 학생이 우리나라 최고의 캘리그래퍼 강병인 멘토를 찾았다.

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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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글씨가 세상에 뿌려진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해!

MODU 친구들은 글씨 쓰는 거 좋아하니? 난 너~무 좋아해. 사실 난 내가 뭘 가장 좋아하는지 잘 몰라. 누가 “좋아하는 게 뭐니?”라고 물으면 이상하게 대답하기 곤란하더라.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고 좋아하는 노래, 영화, 음식도 없으니까. 좋아하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보니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지. 그런데 패션이나 메이크업에 관심이 있는 건 확실해. 하지만 요즘엔 글씨 쓰는 게 제일 좋아.

처음부터 캘리그래퍼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건 아니야. 우연히 남들이 쓴 멋진 글씨를 보고 나도 그렇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혼자서 글씨를 끼적였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거 있지. 그래서 제대로 배워야겠다 싶어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게 된 거야. 수업을 들은 지 1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재미있는 걸 보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 맞지?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손글씨에 대한 관심은 있었던 것 같아. 초등학교 때 방과 후 수업에서 배운 손글씨(POP)가 재미있어서 자격증도 따고 그랬거든. 근데 POP보다 캘리그래피가 표현하는 데 자유로워서 더 재미있어. 아직은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언젠가 내 손글씨가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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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 디자인을 더한 예술

최유정 멘티(이하 유정) ─ 선생님,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
강병인 멘토(이하 강 멘토) ─ 아, 캘리그래퍼를 꿈꾼다는 학생이군요. 나 역시 반갑습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니 기특하네요. 게다가 캘리그래퍼라니 더 기분이 좋고요.(웃음)
유정 ─ 선생님은 언제부터 캘리그래퍼를 꿈꾸셨어요?
강 멘토 ─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2년도부터였죠. 그땐 마흔이 다 돼가는 나이였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글씨 쓰는 걸 좋아하긴 했죠. 초등학교 때 서예 수업을 특히 좋아했어요.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 번 탔으니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을 봤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조선 최고의 서예가 김정희 선생은 잘 알지요?
유정 ─ 네, 학교에서 배웠어요.
강 멘토 ─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김정희 선생 같은 서예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영묵’이라는 호도 이때쯤 지었답니다. ‘영원히 묵을 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로….(웃음)
유정 ─ 우아, 멋진 뜻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서예가가 아닌 디자이너로 먼저 활동하셨더라고요.
강 멘토 ─ 맞아요. 그때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른이 되었으니 돈도 벌어야 했고…. 하지만 마음 한쪽엔 늘 서예가 남아 있었죠. 그러던 중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일본 간판이 눈에 띄더라고요. 똑같은 글씨가 하나도 없었어요. 다들 저 나름대로의 글씨로 그 가게의 특성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간판뿐만 아니라 술병이나 책, 과자 봉지 등에도 저마다 특색 있는 글씨가 쓰여 있었죠. 그때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서예와 내가 잘하는 디자인을 합쳐보자는 생각이 든 거예요.
유정 ─ 그게 바로 캘리그래피인 거네요?
강 멘토 ─ 그렇죠.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캘리그래피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때라 혼자서 연구도 많이 하고, 실험도 자주 했어요. 예술적 측면이 강한 서예와 상업적 측면이 강한 디자인을 합친다는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죠.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매달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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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캘리그래퍼는 나만의 글씨를 쓰는 것

유정 ─ 저는 막연하게 캘리그래퍼가 되고 싶지만, 막상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라요.
강 멘토 ─ 그럴 수 있죠.(웃음) 쉽게 설명하면 캘리그래퍼의 주 업무는 제품이나 광고에 쓰일 글씨를 쓰는 거예요. 예를 들어, W라는 기업이 ‘아침 해’라는 음료 이름의 캘리그래피를 의뢰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일단 ‘아침 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느낌에 대해 생각해봐요. 그리고 음료의 맛과 향 등 그 음료만이 가진 특징을 파악하죠. 또 음료를 주로 구입하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연령 등 주요 타깃층의 분석도 꼭 필요해요. 기업이 원하는 마케팅 전략과 디자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고요. ‘아침 해’ 세 글자에 이 모든 게 다 담겨 있어야 하는 거예요.
유정 ─ 헉, 그렇게 많은 분석을 해야 하는 줄은 몰랐어요. 그럼 작업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려요?
강 멘토 ─ 그건 의뢰 사항에 따라 각각 다르죠. 하지만 보통 일주일 정도인 것 같아요.
유정 ─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완성하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강 멘토 ─ 별말씀을.(웃음) 글씨를 여러 번 쓰면서 의뢰인이 원하는 콘셉트의 글씨를 완성하는 게 중요해요. 따라서 의뢰인 요청에 따라 수정을 해야 할 때도 많지요. 캘리그래퍼는 주로 의뢰를 받아 글씨를 쓰지만, 진정한 캘리그래퍼가 되려면 자신만의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글씨를 만드는 거죠.
유정 ─ 저는 아직 나만의 글씨를 못 찾은 것 같아 고민이에요.
강 멘토 ─ 그게 금방 되면 누구나 전문 캘리그래퍼가 되었겠지요.(웃음) 나도 계속 훈련하고 있어요. 아무리 나만의 글씨를 찾았다 해도 그 속에서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든요. 변화가 없는 글씨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답니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해요. 독창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 캘리그래퍼로서 가장 힘든 일이면서도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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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 생각과 느낌, 소리까지 담다

강 멘토 ─ 그럼 이제 유정 학생의 글씨 좀 한번 볼까요?
유정 ── 아, 제가 쓴 것 가져왔어요. 보여드릴게요.
강 멘토 ─ 이야~ 잘 쓰네! 그런데 잠깐, 지금 내가 소리 내는 대로 한번 써볼 수 있나요? “통통~.”
유정 ─ 으악, 너무 어려워요.
강 멘토 ─ 캘리그래퍼는 글자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야 해요. 사람이 수천, 수만 가지 표정을 짓듯이 글씨에도 희로애락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이 있거든요. 캘리그래퍼는 그걸 잘 표현해야 해요. 예를 들어, ‘들국화’라는 글자 하나를 쓸 때도 야생의 거친 이미지와 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동시에 보이도록 하는 거지요. 아까 말한 ‘통’도 마찬가지랍니다. 글씨의 모양뿐 아니라 크기, 길이, 굵기, 기울기, 간격 등에 따라 통통 가볍게 울리는 소리를 표현하는가 하면 통통 귀엽게 살찐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거예요.
유정 ─ 휴~ 저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요?
강 멘토 ─ 지금부터 연습해도 늦지 않았어요.(웃음) 옆으로 쭉 나열하는 영어와 달리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모아 쓰는 문자지요. 그래서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자음도 잘 보면 네모, 세모, 동그라미 안에서 파생된 것이라 디자인적으로 활용하기에 아주 좋죠. 이렇듯 캘리그래퍼라면 한글을 분석하는 자세도 필요하답니다. 특히 한글에 담긴 철학과 가치를 알면 글씨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보는 것도좋은 방법이겠죠?
유정 ─ 네! 그런데 선생님, 캘리그래퍼가 되려면 특별히 전공해야 하는 학과가 있나요?
강 멘토 ─ 특별히 그런 건 없어요. 다만 기본에 충실하고 싶다면 서예학과를, 미술적 감각을 키우고 싶다면 디자인 관련 학과를 추천하고 싶네요.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답니다. 아까 말했듯 작가의 정신, 감정, 경험이 담긴 나만의 글씨를 쓰는 사람이라면 캘리그래퍼 자질이 충분한 거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유정 ─ 그게 뭔데요, 선생님?
강 멘토 ─ 유정 학생은 글씨 쓰는 일을 진짜 좋아하나요?
유정 ─ 네! 정말정말 좋아요.
강 멘토 ─ 그럼 그걸로 충분해요.(웃음)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유정 학생은 충분히 좋은 캘리그래퍼가 될 거예요.
유정 ─ 선생님께서 응원을 해주시니 힘이 불끈 솟아나는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캘리그래퍼 강병인 멘토의 한마디]

“찬찬히 들여다보고 가만가만 느껴라”
캘리그래퍼가 되고 싶다면 관찰력을 키우는 게 좋아요. 나비 한 마리를 보더라도 유심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나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나는지 등 찬찬히 뜯어보는 거죠. 컵이 보이면 ‘저 컵은 왜 저렇게 생겼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경험이 글씨 쓰는 데 도움이 돼요. 우리 주변에 있는 물체나 생명에 모두 관심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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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다나·사진 오계옥, 강병인캘리그라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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