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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호] 시계 왕국의 황제 – 스와치시계 前CEO

손목시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시계 왕국의 황제 니컬러스 하이에크 (Nicolas Hayek)

휴대전화기는 모두 ‘시계’ 기능이 달려 있다. 사람들은 손목시계는 차지 않아도 휴대전화는 가지고 다닌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손목시계는 거의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시계를 차고 다닌다. 시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 시계는 넥타이나 벨트, 모자와 비슷한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되고 있다. 언제부터 시계는 패션 아이템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1970년대 니컬러스 하이에크가 만든 시계 브랜드 ‘스와치(Swatch)’를 그 시작으로 보고 있다. 하이에크는 스와치를 통해 당시 몰락하던 스위스 시계 산업을 부흥시켰다.

1970년대 스위스 시계 산업은 왜 몰락했을까?

시계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기계식 시계 시장을 독점했다. 기계식 시계는 매우 복잡하고 정밀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산업이다. 그래서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기계식 시계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스위스는 매년 9천만 개의 시계를 판매했고, 9만여 명의 사람들이 시계 산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중반 시계 산업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쿼츠(Quartz, 석영) 시계를 상용화한 것이다. 기존의 기계식 시계보다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쿼츠 시계는 스위스 시계 산업의 지위를 무너뜨렸다. 일본의 쿼츠 시계가 시계 시장을 점령하면서 스위스의 시계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전 세계 시계 산업의 43퍼센트를 차지한 스위스 시계의 비중이 15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스위스 시계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4만여 명으로 줄었다.

Nicolas Hayek

하이에크는 어떻게 스위스 시계를 살렸을까?

하이에크는 취리히에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을 설립해 네슬레, 지멘스 등 다국적기업의 경영 자문을 맡고 있었다. 70년대 중반 일본의 저가형 쿼츠 시계가 스위스의 기계식 시계를 누르고 시계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었다. 당시 오메가와 티쏘를 소유한 SSIH와 론진, 라도 등을 소유한ASUAG는 심각한 위기였다. 이런 스위스 최고 시계 제조업체의 몰락 위기에 하이에크가 구세주로 등장했다. 하이에크는 “우리는 스위스를 다시 시계 생산 1위 국가로 되돌릴 수 있다”고 TV에 나가 호소했지만, 세계는 그를 믿지 않았다. 하이에크는 두 회사를 매수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계(Second Watch)라는 의미를 지닌 스와치(Swatch)를 시장에 선보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시계 왕국 스위스는 부활했다.

스와치 부품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가지다

하이에크는 1983년 스와치를 만들며, 공격적인 경영으로 시계 시장을 공략했다. 우선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했다. 그는 스위스도 쿼츠 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기계식 시계로는 시장에서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기계식 시계 장인들은 반대했지만,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일본산 쿼츠 시계는 100여 개의 부품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부품 수를 반으로 줄이며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당시 일본산 쿼츠 시계가 75달러였는데,스위스에서 만든 스와치는 40달러의 더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선보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스위스 시계를 선택했다.그는 “별장은 가지면서 두 번째 시계(Second Watch)는 왜 가지지 않나요?”라고 광고 했다. 두 번째 시계로서 스와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고장난 시계를 고칠 바에는 새 시계를 하나 장만하세요”라며, 그는 시계를 부담 없는 액세서리로 만들었다.

잠깐상식!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

1970년대 전기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기계식 시계가 손목시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의 자리를위협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쿼츠 시계는부품이 적고 공정이 간편해 가격이 저렴하다. 그리고 정확하다. 기계식 시계는 하루에 -4~+6초의 오차가 생긴다. 하지만 쿼츠 시계는 ±1초의 오차로 매우 정밀하다. 일반적으로 쿼츠 시계는 한달에 15초의 오차가 발생한다. 즉 기계식 시계보다쿼츠 시계가 값싸고 성능이 더 좋다. 결국 이런 장점으로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를 밀어내고 시계산업의 주류로 발돋움했다.

하이에크, 시계에 패션을 입히다

그는 기존의 시계가 가지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기존의 시계는 시간을 보는 장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계는 액세서리의 역할을 했다. 그는 시계에 패션을 담았다. 기존의 시계들이 고정된 모델로 정체해 있는 동안, 매 시즌 신제품을 출시했다. 회사 이름도 스와치로 바꿨다. 매년 새로운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색상 라인도 다양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한 디자인과 색상에 3만여 개만 만들어 제품에 희소성을 부여했다. 피카소·백남준·키스 해링·비비안 웨스트우드·오노 요코 등 유명인들이 참여한 아트 컬렉션은 많은 사람의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시계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하이에크로 인해 시계는 모자나 넥타이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 정체성이 바뀌었다.

4<다양한 디자인의 스와치시계>

시계에 대한 열정으로 ‘시계 황제’가 되다

2010년 6월 28일 하이에크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은 외롭지 않았다. 생전에 그는 한 손에 4개씩, 총 8개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 마지막에도 그의 팔에는 8개의 시계가 함께했다. 그가 항상 8개의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이유는 그가 진심으로 시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누구나 처음 만나면 왜 그렇게 시계를 많이 차고 다니는지 묻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시계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그의 업적만큼 그에게는 비판도 많았다. 지독한 구두쇠부터 일중독 환자, 과대망상증 등 수많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항상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 확신이 자신의 성공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너는 위대하다”며 자기최면을 몇 번씩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한 자기 확신이 그를 스위스의 시계 황제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의 생전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대통령보다 하이에크의 영향력이 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만든 두 번째 시계라는 뜻의 스와치는 이제 스위스 시계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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