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015년 5월호]아리랑 청년, 한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다

문현우 코리아 아유 레디(이하 코아유) 대표는 첫 만남부터 자신을 꾼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한글은 한 글자로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어요. ‘흥’, ‘정’ 같은 단어처럼 말이죠. 그중 사람을 잘 표현할 수있는 말이 무엇일까 찾다가 ‘꾼’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래서 문화기획자가 아닌 문화기획꾼이 됐고, 문화기획사가 아닌 문화기획패가 됐죠.”
꾼.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의 접미사. 혹은 어떤 일을 즐겨 하는 사람을 뜻하는 이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다. 한국문화에는 공유와 소통의 힘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며, ‘아리랑’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모두의 노래’라고 단단히 말하는 사람. 문현우는 꾼,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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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이 소년, 한국문화를 알리는 문화기획꾼이 되다]

문 대표는 자신에겐 아리랑을 지키고 알리고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 다짐은 아리랑 스쿨에서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 한국문화를 입문시키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한국문화를 잘 알진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조기 유학으로 간 말레이시아에서 아리랑의 소중함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어린 시절, 타국의 생활은 향수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다.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이 말레이시아로원정경기를 올 때, 외로울 때, 즐거울 때 어김없이 아리랑을 불렀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리랑은 문 대표에게 엄마이자, 친구이자, 삶 그자체가 됐다.
그런 문 대표에게 2011년 중국의 동북공정 기사는 그를 분기탱천하게 만들었다. 외로울 때마다 함께하던 아리랑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적으로도 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위기가 곧 기회라고 생각했다.“저에게는 동북공정이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직접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며, 아리랑을 지켜내야겠
다는 꿈이 생긴 거잖아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누군가가 되자는 마음이었다. 나만의 장을 만들어 아리랑을 지켜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세계 일주를 하며 아리랑을 알리고 싶었다. 때마침 의류업체(BIKE REPAIR SHOP)에서 ‘세상을 위한 리페어’라는 주제로 공모전을 주최했다. 문 대표는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아리랑 수호하기’라는 주제로 공모전에 참가해 2등을 차지했다.
상금은 행동을 옮기는 데 사용한다. 마침 2012년이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호치민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국문화 행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문 대표는 현지 호찌민 국립대학교에 연락해 한국문화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리랑 스쿨’이 시작됐다.그는 베트남에서 귀국 뒤 아리랑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 대표는 결심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닌 한국문화 외교사절단의 역할을 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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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슈퍼맨, 세상에 아리랑을 알리다]

문현우 대표에게는 특별한 물건이 있다. 바로 한복이다. 그의 한복 색상은 슈퍼맨 복장과 비슷하다. 평소 한복만 입느냐고 묻자, 기성복을 입지만 한복을 입으면 더 힘이 난다고 말한다.
“한복을 입으면 비로소 나 자신이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왜 똑같은 한복만 입느냐, 다른 것은없느냐고 묻는데 이 한복과 많은 추억을 남겼어요.”
슈퍼맨 한복과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많다. 한복을 입고 세계 일주를 하면서 아리랑을 알리겠다는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문 대표는 베트남을 다녀온 뒤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기획을 구체화했다. 아리랑 유랑단이라는 이름으로 단원을 모집했다. 판소리, 대금, 타악, 서예 등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재능 있는 학생들이 모였다. 여기에 문 대표만의 패기로 대학생 시절청년봉사단으로 인연을 맺은 식음료 기업(카페베네)에서 1억 원의 후원을 받았다.
그렇게 문 대표를 포함한 6명의 아리랑 유랑단은 2013년 3월 1일부터 6월 25일까지 117일 동안 15개국 29개 도시를 돌면서 아리랑을 비롯한 한국문화 알리기에 나섰다. 그들은 프랑스 파리에펠탑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했으며,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 내셔널갤러리 앞에서 한국무용 공연을 했다. 길거리 공연뿐 아니라 학교를 찾아가 한국문화를 알렸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동안 8통의 먹물을 사용했고, 20개의 벼루를 사용했다. 30개의 단소와 2200장의 한지를 사용했다.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알릴 때마다 그는 슈퍼맨 한복을 입고 있었다.
문 대표는 호주에서 슈퍼맨 한복을 입고 마라톤에 참가하며 한복의 편안함을 뽐냈다. 이집트에서 아리랑을 부를 땐 한복에게 감사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에선 한복이 패딩의 역할도 했다. 한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준것은 물론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 것이다. 그에게 한복은 히어로의 망토가 돼주었다. 그렇게 문 대표에게 슈퍼맨 한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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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던 언더도그]

‘대한민국 인재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다
문 대표가 처음부터 큰 꿈을 가지고 넓은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고시원의 작은 방, 그것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부모님의 이혼은 그에게 작은 공간만을 남겼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방황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학교가 끝난 뒤 헤매던 곳은 피시방, 게임방 등이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문제아로 낙인찍히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갑작스레 벽이 낯설게 보였다. 고시원의 벽을 부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벽을 뚫고 나가고 싶었다. 더 넓은 곳으로, 세계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스쳤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세계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자 승무원이라는 꿈을 꾸게 됐다. 좁은 공간을 탈출하고 싶은 작은 소망으로 방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학교 수업에 집중하게 됐고, 공부방을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갈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바지 공부를 시작한 그는 2006년, 경기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꿈은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아요. 사람이 꿈을 버리는 거죠. 결국 내가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꿈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한국문화 전파를 위한 고개가 아직 많이 남았어요. 더 많은 고개를 넘어야죠.”
그의 노력은 김연아, 손연재, 양학선 선수와 더불어 ‘2013 대한민국 인재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아리랑 스쿨도 한국관광공사에서 주최한 2014 창조관광사업 공모전 대상으로 수천만원의 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기도를 빛낸 자랑스러운 경기도민상 최종후보 10인에도 올랐다. 60~70대 후보들 중 청년은 문 대표뿐이었다.
문 대표는 아직도 많은 고개가 남았다고 말한다. 한국문화 전공자가 아니기에 배워야 할 것이무궁무진하다.
“전 한국문화 전공자가 아니지만, 여러 사람에게 한국문화를 공유하는 틀을 잡고 싶어요. 한국문화 전공자에게도 기회를 열어주고요. 기회가 닿는다면 한국문화기획꾼이 되고 싶은 청소년에게길을터주고싶습니다.”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을 인류 보편적 가치인 ‘행복’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의미로 생각하며,다시고개를넘는문현우대표의다짐에서문화강국론을주장한김구선생의말이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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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아리랑 스쿨]

문현우 대표와 아리랑 유랑단은 찾아가는 아리랑 스쿨을 진행한다. 2014년에는 경기도 수원의 숙지중학교, 수일여자중학교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각 반마다 가야금, 탈춤, 한국무용, 해금, 서예 등 다양한 한국문화 전공자가 1명씩 들어가 강연하고, 학생들과 한국문화에 대해 소통한다. 강연 시간은 하루에 약 2시간이지만, 학교와 상의해 1주일 내내 학생들과 함께 보낸적도 있다. ‘찾아가는 아리랑 스쿨’의 진행은 2015년 2학기에도 계속된다.
문의: 한국문화기획패 코아유 / www.koay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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