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글로벌 롤모델

[2015년 5월호] 지식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다 – 크리스엔더슨

 

빌 클린턴, 빌 게이츠, 제인 구달… 온라인에 접속하면 누구나 세계적으로 위대한 인물을 만날 수 있다. 국적·인종·재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알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현실이 됐다. 바로 TED 덕분이다. TED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로 미국의 비영리 재단이다. TED 하나로 온라인 세상에서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은 하나의 문화가 됐다. TED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다양한 영감을 받는다. TED는 국경 없는 선생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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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콘퍼런스, 지식산업의 시작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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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는 1984년 리처드 솔 워먼(Richard Saul Wurman)과 해리 마크스(Harry Marks)가 설립해 청중 800여 명을 상대로 매년 한 차례씩 열린 콘퍼런스 개념의 행사였다. 첫 번째 TED 콘퍼런스인TED1은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Monterey)에서 열렸다. 대부분 IT 전문가들과 방송국 전문가들이 모였다. 참가비는 1500달러였다. 참가 심사는 까다로웠지만 참가자는 날로 늘었다. 단순한 콘퍼런스가 아닌 거물급 인사들의 아이디어 교환, 사업 계약 등 사교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만남의 장이었던 TED에 혁신이 찾아온 것은 2001년이다. ‘가치 있는 아이디어의 확산(IdeasWorth Spreading)’이라는 새로운 모토를 가슴에 달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 그때다.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과 함께 말이다. 그는 TED의 CEO이지만 자신을 ‘큐레이터’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하나의 큰 ‘아이디어 기계’예요. 기계 입구에 아이디어를 떨어뜨리면, 전 세계로 배급되는 거죠. 어떤 아이디어냐가 중요한데, 여기서 큐레이션(Curation)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매년 TED 콘퍼런스의 주제를 정하고 연사를 모은다. 또 직접 무대에 올라 콘퍼런스를 진행한다. 개막과 폐막을 선언하며, 각 연사를 소개한다. 질문을 던지고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TED 콘퍼런스를 책임지는 총감독이자, 진행자인 것이다.TED의 창립자 워먼은 앤더슨으로 인한 TED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내가 즐겁기 위해 좋은 사람들을 불렀다. 그런데 크리스는 청중의 즐거움을 위해 좋은 사람들을 부른다. 나는 개인적인 디너파티였고, 그는 유엔(UN)이다!”

[크리스 앤더슨, TED로 인생의 모멘텀(Momentum)을 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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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앤더슨은 남다른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경험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1957년 파키스탄 오지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의료 선교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3살 때까지는 히말라야의 산속에 자리한 미국계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다양한 인종,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기 때문일까. 앤더슨은 자신을 항상 ‘글로벌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그에게 TED를 글로벌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전공을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바꿔 졸업한 뒤 출판 사업에 뛰어든 앤더슨은 목표를 더 크게 두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28세에 잡지를 창간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1990년대 말엔 130여 종의 잡지를 발행하는 ‘퓨처 퍼블리싱’을 창립했다. 이어 ‘이매진 미디어’란 미디어를 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미국 사회는 혼란의시기였다. 미디어 업계는 거품이 걷히며 붕괴되고 있었고, 9011 테러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앤더슨의 기업도 피해갈 수 없었다. 6개월간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고,회사의 자산 가치는 18개월 동안 매일 100만 달러씩 추락했다. 남들은 그를 실패자로 불렀다.
앤더슨은 한동안 회의감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큰 전환점이 생긴다. TED 콘퍼런스에 참석하면서 말이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TED 콘퍼런스에 참석한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중앤더슨의 마음을 움직인 이가 있었다. 에이미 멀린스(Aimee Mullins)였다. 1996 애틀랜타 패럴림픽에서 육상 신기록을 세운 주인공이다. 종아리뼈 없이 두 발이 안쪽으로 돌아간 채 태어난 그녀는 1살 때부터 의족을 찼다. 그녀는 TED콘퍼런스 무대에서 바지를 걷고 의족을 떼어 보여주었다. 앤더슨은 그 시간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한다.“멀린스는 역경이나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잠재력을 끌어냈을 뿐이라고요.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고 뭐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이런 순간이 TED에서는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앤더슨은 깨달았다. TED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자신의 잡지사를 CNN과 타임 등에 매각했다. 그리고 2001년, TED를 14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비영리단체로 바꿨고, 스스로 월급을 받지 않았다. 

[천재 한 명의 아이디어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더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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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콘퍼런스는 특정 산업 인사들이 모여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TED 콘퍼런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TED는 IT 분야의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었다. 현재 우리가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TED 토크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지금처럼 대중에게 공유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앤더슨은 다르게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떨까?’앤더슨은 지식을 광범위하게 보았다. 지식은 서로 연결돼 있는 것이며, 천재 한 명의 아이디어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Collective Wisdom)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앤더슨은 결심한다. TED 콘퍼런스의 강연들을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하기로 말이다. 앤더슨의 결정은 TED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뿐만 아니라세계 지식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2006년, 그렇게 TED 토크가 탄생했다. 당시 1년에 한 번, 5일간 열리는 TED 콘퍼런스의 1인당 참가비는 4400달러였다. 당연히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과연 녹화된 강연 따위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손가락질을 했다. 사람들은 미친 생각이라며 앤더슨을 더욱 비웃었다. 그러나 기대 이상의 뜨거운 반
응이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TED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TED 토크는 첫해에만 15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온라인 공개로 TED 콘퍼런스가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금세 잠잠해졌다. 오히려 TED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음 해인 2007년 TED 콘퍼런스의 참가 신청은 일주일 만에 매진됐다. 참가비를 6000달러로 인상했는데도 말이다.앤더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8년 TED의 라이선스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것이 TEDx다. TED 콘퍼런스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는 TEDx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TED와 비슷한 포맷으로 독자적인 콘퍼런스를 열 수 있게 됐다.이런 무대를 통해 기존의 특별한 사람만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은 완전히 깨졌다. 관객석에 머물러 있던 대중을 무대 위로 올렸기 때문이다. 대학, 기업, 정부기관을 포함해 다양한 기관이 145개국 1700여 개 도시에서 6000번 이상의 TEDx 행사를 개최했다. 한국도 삼성전자와 서울 명동 등에서 행사가 열렸다.앤더슨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TED에 속해 있는 지식들을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했다. 2009년에는 ‘열린 번역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번역 사업을 시작했다. 전 세계 자원봉사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수많은 TED 토크가 9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TED를 알릴 수 있도록 큰 기여를 했다. 올해 2015년 TED 콘퍼런스의 입장료는 7500달러(약800만 원)로 더욱 상승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다.
앤더슨의 이런 파격적인 실험은 세계 지식산업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 TED는 혁신적인 소통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 “국가,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영감을 받고 싶어 한다. 또한 사람들은 배우고, 연결하고, 나누고 싶어 한다”고 주장한 앤더슨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TED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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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1주년을 맞이한 TED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본 영상은 혁신적 사고 전문가로 알려진 켄 로빈슨 경(Sir Ken Robinson)의 강의다. 그의 강연‘학교는 어떻게 창의력을 죽이는가’는 2015년 4월 10일 현재 3237만 명 이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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