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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이달의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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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1주년을 맞아 추모숲 조성을 위해 방한한 오드리 헵번가족이 2015년 4월 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추모의 뜻으로 행사 당일 노란 넥타이와 머플러, 리본 배지 등을 착용했다. 오른쪽 끝이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 가운데 노란 목도리가 손녀 엠마 헵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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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 은행나무 심은 오드리 헵번 가족

세계적인 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인 션 헵번이 2015년 4월 8일 한국을 찾았다. 전남 진도에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션 헵번은 굶주림과 병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아프리카를 찾아 봉사를 마다 않던 어머니 오드리 헵번의 뜻을 이어‘오드리헵번 어린이재단’을 설립하고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을 위해 내한한 뒤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한국에서 탐욕을 부리는 기업과 낡은 교육 체제가 바뀌지 않았다”며 “이런모습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한국을 방문한 션 헵번과 그의 가족은 4월 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노란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 배지도 함께 달았다. 세월호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션 헵번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그의 딸 엠마 헵번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크게 와닿지 않고 혼란스러웠지만 직접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이 아팠다”며 “또래 친구들이 이 사고를 잘 모르고 있어 충격 받았는데 앞으로 (상처받은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회혁신기업 트리플래닛(대표 김형수)과 함께한 ‘세월호 기억의 숲’ 사업은 전남 진도 팽목항 부근에 은행나무 숲으로 조성된다. 트리플래닛은 4월10일 첫 기념식수를 시작으로 헵번 가족이 기부한 5000만원으로 5월까지 30그루를 먼저 심을 예정이다. 이후 크라우드펀딩(www.treepla.net에서 진행)을 통해 모금된 금액만큼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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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만약 네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을, 네가 더 나이가 들면 두 번째 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들을돕기 위한 것이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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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학생 325명, 일반인 151명이 탑승한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침몰이 시작된 오전 8시 58분부터 선미가 완전히 바다에 가라앉은 오전 11시 20분까지 2시간 22분 동안 대한민국 해상구난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됐다. 이 사고로 295명의 승객이 사망했고 172명이 구조됐다. 나머지 9명의 행방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단원고 학생들이었다. 325명이 탑승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 가운데 246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4명의 학생들은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한 학생들은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선원들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른 순박한 아이들이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인양과 보상 문제 그리고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요구를 놓고 심각한 갈등 상황으로 치달았다.
“우리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도 2014년 4월16일이 현재진행형이에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대로 4월16일. 모든 게 다 멈춰버렸어요.”
실종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가 외치는 진실규명 요구는 2015년 4월 현재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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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리콴유 사망의 두 가지 시선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2015년 3월 23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독재에 준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계를 싱가포르에 심어놓았다는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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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리콴유는 1923년 태어나 1954년 인민행동당(People Action Party, 이하 PAP)을 창당하고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1959년 주민선거에서 PAP는 싱가포르 자치의회 의석 43석 중 41석을 차지했다. 당수인 리콴유는 자동으로 싱가포르 자치정부 수반에 올랐다.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이웃 대국인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시켜 활로를 모색하려 했다. 공업으로 성공하기에는 자원·인구·내수가 턱없이 부족한 싱가포르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리콴유의 명성을 믿고 싱가포르를 연방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중국계가 압도적인 싱가포르 공산주의 운동은 말레이시아에 위협으로 다가갔다. 결국 1965년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축출했다. 결국 그해 리콴유는 눈물을 흘리며 싱가포르 ‘분리독립’을 선언한다.

독립 후 리콴유는 생존을 위해 군대를 육성하고 인재 양성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스라엘 장교단을 불러 군대를 강화시켰다.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권위주의적인 싱가포르 국정운영 방식은 그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통제질서와 벌금제도, 태형은 싱가포르를 특징하는 단어가 됐다. 그는 1991년 명목상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30년 이상 싱가포르를 통치했다. 퇴임 후에도 선임장관의 지위로 사실상 싱가포르 정부를 좌지우지했다. 후임 고촉통 총리 퇴임후, 아들 리센룽을 총리에 앉히는 부자 세습도 화제가 됐다. 고촉통이 선임 장관지위를 물려받고 자신은 내각 고문으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다 2011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2015년 3월 18일 폐렴으로 위독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사흘 뒤인 3월 23일 사망했다.

리콴유가 남긴 것- 아시아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가 넘는다. 일본(약 3만8000 달러)과 대한민국(약 2만9000 달러)을 능가한다. 리콴유가 마실 물조차 없던 가난한 어촌마을 싱가포르를 오늘과 같은 강소국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을 위해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적용했다. 영어 공교육 강화와 국경 없는 연구개발비 지원으로 외국 기업이 투자하기환경을 만들었다. 그는 중계무역을 통해 세계 물동량 5위라는 실적을 만들었다. 또 그는 공무원의 청렴결백함을 강조했다. 공무원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줘 청렴하게 살 수 있도록 했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일벌백계해 싱가포르 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그는 우상화를 철저히 배격했다. 그가 남긴 유일한유언이 “나 살던 집을 헐어버려라”였다. 그는 생전에도 싱가포르의 화폐나 우표에 그의 얼굴이 등장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리콴유가 남긴 것- ‘태형’과 독재정치

리콴유가 보여준 경제성장이라는 빛에는 그늘이 같이 존재한다. 강력한 법치주의의 상징인 ‘태형’은 싱가포르의 전근대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싱가포르 정치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그의 독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또한 현재 싱가포르 국영기업과 관변단체의 수장 또는 정부 요직들 상당수를 리콴유 일가와 그 측근들이 차지하고 있다. 뇌물수수를 강력히 배척하고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싱가포르 공무원들이라고 알려졌지만 정작 리콴유 일가는 정부 요직을 세습하고 있는 모순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의 빈부 격차도 큰 사회적 문제다. 언론통제도 심각하다. 정부가 무료로 보급하는 인터넷망은 항상 감시된다. 리콴유 일가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심각한 불이익을당한다. 정부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대부분 패소하고 엄청난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언론자유 지수는 세계 150위권으로 이라크나 러시아와 동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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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비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

1. 지난 4월 1일, 경상남도는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경남도의 초·중·고교는 일제히 학교급식 유상전환 안내와 함께 4월분의 급식비 내역이 담긴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도시락 싸기 운동, 급식비 납부 거부와 함께 학교 앞에 솥단지를 내걸고 직접 밥을 챙기는 진풍경도 연출됐다.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의 재정 상태상 선별적 무상급식이 옳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다. 밥 먹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 상급식에 지원했던 예산을 ‘서민 자녀 교육지원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미국 골프여행 사실이 폭로되자, 무상급식 중단 철회를 요구한 학부모를 ‘종북세력’으로 지칭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남도의 예산 운영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4년간 세입은 늘어났는데 사회복지 예산은 축소됐다는 것이 그것이다. 2. 서울 충암고등학교 김모 교감도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점심 급식을 위해 줄서 있는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급식비 미납자를 한 명씩 체크했다는 것이 다. 그는 급식비 미납 학생들에게 “내일부터 학교에 오지 마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전체 애들이 피해를 본다. 밥 먹지 마라” 등의 말을 했다는 것. 욕설이 섞 인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세상이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다. 함께 줄을 서 있던 학생들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두 사태를 두고 여론이 분분하다. 이를 시작으로 ‘전면적 무상급식’ 이슈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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