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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아프리카 15,000Km-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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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

아프리카 15,000Km-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9

케이프 맥클레어베이_민재

말라위하면 호수다. 말라위 호수는 세계에서 8번째로 큰 호수로 그 면적이 약 3만 제곱킬로미터정도이다. 남한의 30%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어종이 살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두번째로 깊다. 그리고 단언컨데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호수이다.
그렇게 도착한 케이프 맥클레어 베이는 정말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 위에는 뭉게구름이 넘실대고 있었고, 햇볕에 반짝이는 모래사장에는 파도가 잔잔하게 치고 있었다. 전문가의 손길로 뚝딱 텐트를 치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몸을 감싸는 물이 부드러웠고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었으면 좋겠다.

케이프 맥클리어 아이들_윤성
“할로! 할로할로할로! 할로!”

롯지에서 50미터쯤 걷자 바로 현지인 마을이 나타났다. 물에서 헤엄치는 아이들, 그 옆에서 설거지와 빨래를 하는 아낙들,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향해서 카메라를 들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할로할로할로!’하는 인사에 ‘할로!’라고 답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른들은 친절했고 아이들은 예뻤다. 왜 말라위를 ‘아프리카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초록색 대야 속에 돌 즈음 되어 보이는 아기가 앉아있었다. 나도 어릴 적에는 빨간색 다라이 안에서 목욕을 했었는데,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의 모습이 정겨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의 사진을 찍었다. 터질듯한 볼살, 커다란 눈망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근처에 있던 엄마가 다가와 아이 옆에 앉았다. 다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동생을 업고있는 큰딸아이를 불렀다. 의도치않게 아름다운 가족사진이 완성되었다.
‘폴라로이드!’
가족사진은 당사자가 가져야 진짜 가족사진이 된다.
민재는 가족들을 한 곳에 모았다. 폴라로이드에서 지잉- 하고 사진이 튀어나왔다. 사진을 받아든 아이들은 빳빳한 플라스틱 종이에 새겨진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고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 엄마도 사진을 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원봉사하는 마음이 이런 것인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민재의 폴라로이드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은 내 카메라의 뷰파인더 속에서보다 훨씬 더 빛이 났다.

아프리카1
경계에 대해서_민재
하루가 지나자 호숫가의 경계가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과 현지인을 나누는 경계. 정확히는 가진자와 없는자를 나누는 경계.
호숫가는 매우 넓었다. 상대적으로 아름다운 곳에는 대부분 숙박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옆에는 현지인들의 마을이 있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는 선은 없었으나 숙박시설에 고용된 관리인들이 때로는 엄격하게 관광객과 현지인을 분리했다.
여행을 하며 깨달은 것 중 한가지는 여행자의 천국은 있을지언정, 모두의 천국은 없다는 것. 케이프 맥클레어베이가 마음에 들었던 만큼, 여행자로써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지인 마을_민재
“원! 투! 찰칵!”
윤성에게 이끌려 찾은 현지인 마을. 폴라로이드를 들이대며 웃으라고 이야기하는 데, 표정이 밝지 않다. 관광객들의 피사체가 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닐테다. 어떤 이는 돈을 요구했다.‘지이잉’하며 나온 사진을 내밀었다.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에 둘러 쌓였다. 돈을 요구하던 아주머니에게 농담으로 돈을 달라고 했더니 부끄러워하며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필름이 순식간에 동났다. 사탕도 풍선도. 돌아오는 길, 윤성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애들 완전 귀엽지?”
“응. 풍선이랑 사탕 가져오길 진짜 잘했네.
아, 조금 더 사올걸 그랬어. 내일 또 가자. 또.”
즐거웠다. 현지인 마을을 찾아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풍선을 불어주고, 사탕을 나누어 먹는 것. 아프리카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볼만한 순간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우리는 금새 다른 곳으로 가버릴 테고 그들은 여기에 남을 테니까. 아이들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풍선, 사탕을 조금 더 원할 것이고 그들의 눈은 좀 더 롯지 쪽으로 향하겠지. 그들이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개소리다. 좋은 것을 갖고, 먹고,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경제력 앞에서 현지인들이 의연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바보다. 아이들에게 건낸 사진과 사탕, 풍선들이 목마른 사람에게 건낸 소금물이 아니라면 좋겠다. 사진을 받아든 아이들의 환한 얼굴만큼 롯지와 마을 사이의 경계가 서글펐다.

파이로스, 블랙키야 그리고 모세_윤성
“윤! 꼬마들이 너 찾는데?”
스캇이 가리키는 곳에 가보니 세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대뜸 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다. ‘내 이름은 윤 이야.’라고 하자 ‘유니 유니’ 하며 나를 불렀다. 유니가 아니라 윤 이라고 해도 그 때뿐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파이로스, 블랙키야, 모세. 어두워서 녀석들의 검은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명 한명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다. 뭐라도 대접해주고 싶은 마음에 길에서 사온 망고를 몇 개 가져왔다. 녀석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더니 제 얼굴만한 망고를 그 자리에서 이빨로 물어 뜯었다.
그 날 이후로 민재와 나는 매일 아이들이 있는 마을을 찾았다. 물놀이를 하고 사탕을 나눠 먹고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유니- 유니-’ 하면서 달려와 내 손을 잡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모세야, 모세야_윤성
“블랙키야, 모세는 어디 갔어?”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는데, 모세가 보이질 않았다. 모세는 눈에 띌 정도로 소극적인 녀석이다. 사탕을 달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축구공이 오면 피하는 녀석이다. 지난 밤, 호숫가에서 마을 청년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모세는 아빠가 없어. 엄마랑 둘이 사는데,
너무 가난해서 그럴 거야.”
다음 날 민재와 함께 차로 삼십분 거리에 있는 시장에 갔다. 어린 아이 옷 하나를 골랐다.
“애들 주려고?”
“모세 주게.”

모세는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늘 같은 차림이었다. 때를 지우려다 옷이 삭아 버릴 듯, 때와 섬유가 하나가 된 누더기였다. 카메라를 들이대었을 때, 모세는 주춤거리며 옷을 벗어 버렸었다. 더러운 옷 때문에 아이의 마음마저 삭아버리면 안될텐데. 내가 산 것은 나일론 재질의 티셔츠와 반바지였다. 면으로 사고 싶었지만 금방 또 누더기가 되어버릴 것 같아 나일론으로 골랐다. 모세가 오랫동안 입고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_민재
윤성은 자주 모세 이야기를 했다. 마을을 방문하면 윤성은 모세 부터 챙겼다. 아이들이 몰려들면 어느샌가 뒤 쪽에 있던 모세, 마을을 찾을 때마다 윤성은 모세를 먼저 찾았고 방문이 늘어날수록 모세의 몸동작이 조금씩 커졌다.
맥클레어 베이를 떠나기 전 날, 윤성은 모세에게 줄 새 윗도리와 바지를 샀다. 해질녘, 마을을 찾아 모세를 만났다. 옷을 주자 그 자리에서 갈아입었다. 이내 표정과 몸동작이 밝아졌다. 마지막 사탕을 나누어 먹을 때, 당당하게 요구하던 모세의 모습이 기억난다.
롯지로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과연 우리가 다녀간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윤성이 옳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모세는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회복했으니까.
‘케이프 맥클레어’ 전까지 나는 좋은 여행자라면 흔적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빈곤한 곳을 여행할 때에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윤성이 사탕을 나누어 주려 했을 때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윤성을 만난 모세가 축구를 함께 즐기고 당당하게 단 것을 요구하는 여느 개구쟁이 꼬마로 변하는 것을 보며 생각을 바꾸었다.

아프리카3

모세야, 자신감을 가져_윤성
케이프 맥클리어를 떠나는 것을 알고 모세가 마중 나왔다. 모세는 내가 선물해준 옷을 입고 있었다. 역시 옷이 날개다. 이제 모세는 까불거리는 여느 철부지 아이처럼 보였다. 할 수 있는 만큼 이 아이에게 더 많이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모세와 포옹을 하고 돌아서는데 아이들이 두세 명씩 짝지어 나에게 왔다. 파이로스와 블랙키야를 비롯해서 함께 뛰어 놀았던 아이들이었다. 그 중 몇몇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에게 편지를 주었다. 곱게 접힌 편지지에서 나를 향한 녀석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유니, 잘가. 날 잊으면 안돼. 알았지?”
떠나는 차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지렁이 글자로 철자와 문법마저 다 틀리게 적힌 편지의 내용을 어렵게 해독했는데, 대체로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교과서 살 돈이 없으니 50달러를 보내주세요.’
이것이 현실이구나.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올게. 그 땐 더 재미있게 놀자. 너희들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그때까지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좋은 형 ‘유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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