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29호] 악마의 변기와 못난 세 자매,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8

0 1162

  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악마의 변기와 못난 세 자매,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8

죽고 죽이는 소리_윤성

“크르르릉!!”

다들 밥 먹다 말고 눈을 마주쳤다.

“방금 소리 들었어?”

“뭐지? 빨리 먹고 들어가자.”

동물 소리인 건 분명한데 그냥 울음소리가 아니다. 마치 죽거나, 죽일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사냥꾼의 소리와 초식 동물이 죽기 전에 내는 비명, 어릴 적 ‘동물의 왕국’에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하지만 텔레비전으로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여긴 동물원이 아니다. 매년 희생자가 발생하는 리얼 야생이란 말이다.

허겁지겁 밥을 다 먹어갈 때쯤이었다. “크르르르릉!” 소리가 정말 가까이서 들렸다.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빨리, 그리고 찍소리도 나지 않게 음식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을 캐노피 속에 넣은 뒤 텐트로 몸을 숨겼다. 이런 어설픈 천 조각 한 장이 내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루프탑 텐트를 사왔어야 했다.

죽고 죽이는 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천 마리의 코끼리와 천 마리의 버팔로_민재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안개 낀 쵸베는 간밤의 사냥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우리는 잠비아로 가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는데, 십여 분이 지나지 않아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펼쳐진 드넓은 평야에는 코끼리와 버팔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과장을 보태면 천 마리의 코끼리와 천 마리의 버팔로 정도. 카메라를 들고 차 문을 살짝 열었다. 쵸베 평야의 끝자락에 두발을 딛자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코끼리와 버팔로의 근육과 힘찬 몸짓은 일종의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 차에 타 문을 닫고 나서야 “후아”하는 감탄사를 뱉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동물을 보고 왔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면 다 있잖아?”라고 농담 섞인 대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직접 만나는 동물은 특별하다. 야생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수가 엄청 많다는 점 때문이다.

코끼리를 예로 들어보자. 동물원이나 인도에서 본 코끼리는 그렇게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에 아프리카의 코끼리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소리를 질러대고 앞발을 들어 위협한다. 가끔은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그 거대함 앞에서 이성적인 생각은 사라진다. 그저 놀라움과 감탄이 남는다. 아프리카의 동물은 모두 야생이다. 심지어 사슴마저도.

또 기린을 만났다고 쳐보자. 숨을 죽이고 기린을 바라보면 그 뒤로 열 마리도 넘는 기린이 나타난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또 다른 기린이 나를 보고 있다.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동물을 보는 게 아니라, 동물들 사이에서 동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쵸베 평야에서 코끼리와 버팔로 떼를 만났을 때도 수백 개의 긴장된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온 신경이 그들의 긴장에 동요된다. 당신이 만약 “동물은 동물원에서도 볼 수 있잖아”라고 한다면, “그게 참 달라”라고 대답하겠다.

초베의-코끼리

졸리보이즈 백패커스_민재

“졸리보이즈?”, “졸리보이즈!”

국경을 넘기 전부터 우리의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다. 잠비아의 수도 리빙스톤에 있는 졸리보이즈 백패커스. 여행자들에게 극찬을 받는 곳이다. 우리는 신나게 내달렸다. 어둠이 깊어질 무렵, 스캇은 거대한 철문 옆에 써있는 졸리보이즈 백패커스 팻말에 헤드라이트를 비출 수 있었다. 톰이 ‘쾅쾅’ 하고 두들기자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여기가 졸리보이즈야? 무슨 폐차장 느낌인데?”, “음, 위치상으로는 여기가 맞아.”

철문 안쪽에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어둡고 적막이 흐르던 리빙스톤 시내와는 달리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졸리보이즈 내부는 환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맥주를 마시거나 당구를 치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마음이 탁하고 놓이는 순간이었다. 일종의 안전가옥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환하게 웃는 직원들에게 반가움을 표하며 체크인을 했다. 뚝딱뚝딱 텐트를 치고 샤워를 마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똑같은 텐트지만,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에 설치하는 것과 야생동물이 돌아다니는 곳에 설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사파리 할 때에는 정말 긴장 속에서 잠들었구나.

“영화 볼만한 거 있어?”

오늘만큼은 한국에서처럼 편하게 뒹굴거리고 싶었다. 윤성의 외장하드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찾아 재생했다. 영화가 마칠 무렵엔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높은 담장이 주는 안전함과 한국 영화 때문이었을까? 자취방에서 느끼던 편안함을 안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초베국립공원-캠핑장

빅토리아 폭포 _윤성

졸리보이즈 백패커스에서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니 땅에서 솟아오른 수백 미터 구름 기둥이 보였다. 거대한 폭포가 만들어낸 수증기였다. 평지에서 폭포의 존재감은 구름 기둥과 거대한 굉음으로 드러났다.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갑자기 습도가 높아진다. 숲이 끝날 즈음에는 짙은 구름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약하게 바람이 한 번 훑고 지났다. 구름이 스윽 걷히자 눈앞에 거대한 물줄기가 나타났다. 좌우 폭이 1.7km, 위아래는 108m.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폭포는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기에 충분한 크기다.

물줄기는 굉음을 내며 땅속으로 꺼지고 있었다. 땅의 이쪽과 저쪽을 갈라놓은 것은 천 길 낭떠러지였는데 무지개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이곳을 ‘모시 오아 툰야’라고 불렀다.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는 뜻이다. 시적인 작명 솜씨가 기가 막힌다. 영국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빅토리아라보다 낭만적이고 좋다. 땅이 갈라진 틈에서는 구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환상적인 이 순간, 골짜기 사이 잠베지강에서 냐미냐미가 승천한대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냐미냐미란 뱀의 몸통에 생선 머리를 한 잠베지강의 토착신이다.)

오랜만에 사진을 많이 찍었다. 민재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그 앞에서 방방 뛰면서 춤을 췄다. 바위에 올라 빙글빙글 돌다보니 기분이 좋았다. 내일이면 저 대단한 폭포 아래에서 고무배를 탈 것이다.

 

빅폴 래프팅_민재

어렸을 적 동강에서 래프팅을 해봤기 때문인지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 넷과 유럽 남자들 넷으로 이루어진 팀은 강력했다. 다른 보트에서는 물에 빠지는 사람이 종종 나왔지만 우리 팀은 상대적으로 균형감각과 힘이 좋다보니 잠베지강 초반부의 급류들은 손쉽게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큰 소리로 파이팅을 이끌어내려는 코뿔소같이 생긴 강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분위기가 느슨해져 갔다. 윤성이는 노를 젓는 둥 마는 둥하며, 휴대용 캠코더로 경치를 촬영했고 스캇과 톰은 아직도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꼭 필요할 때만 노를 저었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래프팅 프로그램이 시시해질 위기였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으아악, 뭐야!”

보트가 날아가는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배가 뒤집어져 있었다. 우리는 코뿔소의 지시에 따라 모두 한 쪽에 매달렸다. 코뿔소는 뒤집어진 배 위로 올라가 힘껏 줄을 당겨 배를 원상복구했다. 다시 배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깔깔깔 웃는데, 윤성이 없다.

“스캇! 윤성이 못 봤어?”

“글쎄? 떠내려간 것 같은데?”

윤성이 사라지긴 했지만 구명조끼도 입었고, 코뿔소가 나름대로 방책도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코뿔소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나를 가운데로 앉히며 중심을 잡게 했다. 우리 일곱은 코뿔소의 구령에 맞춰 노를 저었다. 드디어 잠베지 래프팅의 시작이다!

돈내고-하는-자살

세탁기 속으로 _윤성

‘이렇게 죽는구나.’

숨을 쉴 수 없었다. 눈을 뜨면 온통 부연 거품뿐이었다. 남자친구의 고양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가 체포당한 영국 여자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고양이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수면 아래서 기침을 해대며 발버둥 쳤다. ‘어떻게든 살아야 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기침을 참고 눈을 크게 뜨자 물거품 너머로 하얗고 예쁘게 내려오는 빛이 보였다. 빛으로 돌진하는 불나방이 되어 미친 듯이 발버둥쳤다. 그러나 웬걸 물의 색이 점점 더 짙어졌다.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물에 빠지면 당황하지 마! 발버둥 치지도 말고! 팔을 모아서 몸에 붙이고 거북이처럼 목을 주욱 뺀 다음 가만히 기다려. 그러면 저절로 몸이 뜰 거야.’ 교육 시간에 강사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양팔을 몸에 붙이고 목은 거북이처럼. 침착하자.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주변이 점점 더 밝아졌다. 보글거리는 물거품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파란색 하늘이 보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친구들이 탄 배가 물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명의 장정에 의해 배 위로 끌어 올려졌다. ‘아 살았구나.’

오후에도 래프팅은 계속됐다. 죽을 뻔 한고비를 넘긴 터라 정말 조심했다. 잠베지 래프팅 코스에는 급류마다 이름이 붙어있는데 악마의 변기, 못난 세 자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커머셜 수이사이드와 같은 식이다. ‘이름이 못난 세 자매라고? 뭐, 변기?’ 지도에 적힌 코스 이름들을 보면서 톰과 비웃던 게 떠올랐다. 급류의 이름들이 참 귀엽다고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정말 살벌하고 무시무시하다. 특히 ‘커머셜 수이사이드’, 상업적인 자살이 무슨 뜻인가. 이름이 참 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의미가 와 닿는다. 바로 ‘돈 내고 하는 자살’이란 뜻이다.

 

여행의 두려움_민재

여행의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고나 질병 때문에 몸이 상하는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고, 무언가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다음일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불안이 있다. 이러한 감정들이 여행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사실 두려움은 여행할 때는 필요한 감정이다. 두려움이 있어야 합리적인 결정이 가능하다. 세렝게티의 어두운 밤, 흔들리는 수풀을 보고 두려움 없이 다가가는 사람보다는 사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물러나는 사람이 안전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는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 느끼는 두려움이 나를 보다 안전하게 해줄 것이라고. 두렵지만 도전하고 싶은 건, 바로 시작해 보자고.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