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9호] 기업가정신-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SNUSV

편집 권태훈 이진혁

자료제공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 21세기북스

‘바람의 나라’부터 ‘리니지’, ‘아키에이지’까지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 

송재경 – 엑스엘게임즈 대표

 

서먹했던 사이를 하트 주고받는 사이로 다시 맺어주며 온 국민을 열광케했던 게임 ‘애니팡’. PC방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게임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케이블 게임 중계를 보며 열광하는 수많은 E-스포츠 팬들을 보면 한국만큼 게임을 생활 속에서 가까이 하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이러한 게임 산업 강국 한국에서 게임 산업을 이끌고 있는 회사는 단연 넥슨과 엔씨소프트다. 이 두 회사는 ‘리니지’, ‘크레이지아케이드’, ‘바람의나라’ 등 한국 게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게임을 출시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가깝게 여기도록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우며 오늘날의 게임 강국 한국을 만들었다. 이 두 회사의 초창기를 함께 하며 한국 게임의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 한 번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대박 게임을 연이어 만들어 낸 천재 개발자가 있다. 바로 한국 온라인 게임의 아버지라 불리는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전세계에서 인기를 모으며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게임 ‘리니지’, 그리고 세계적인 게임 기업 넥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특별하지않았던어린시절, 대학시절

 

Q. 대표님이 만든 게임들은 모두 이전에 없던 획기적인 게임이었고 거의 모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을 천재의 상징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천재성을 나타내셨나요?

그렇지 않았어요. 공부는 반에서 4~5등 하는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굉장히 모범생이어서 학교, 집, 학교, 집만 오가는 스타일이었어요. 딱히 취미로 뭘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늘 말없이 있고, 존재감도 별로 없었어요. 친구들과도 거의 말을 안 했는데, 지금도 동창들 이야기가 “너는 하루에 한 10마디 이내로 말했다”더라고요.

 

Q. 혹시 어린 시절 기억 중에 게임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동네 전파상에서 ‘오트론’이라는 게임기를 봤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 당시엔 매우 신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쯤 처음으로 8비트 컴퓨터를 보게 됐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에 나기도 했어요. 저희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서 주로 친구 집에서 컴퓨터를 했죠.

 

Q. 그럼 컴퓨터공학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으니까 컴퓨터공학과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학생 때만 해도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어요. 특별히 게임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고 게임 개발자가 될 생각도 없었어요.

 

Q. 대학 시절 대표님의 관심사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86학번으로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는데 같은 학번에 지금 넥슨 김정주 회장도 있었고, 네이버를 만든 이해진 의장도 있었어요. 김정주 회장과는 1학년 1학기 초부터 친해져서 졸업할 때까지 붙어다녔어요. 과학원(KAIST) 에서도 같은 실험실에 있었고, 박사과정 때 지도교수도 같았어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농담 삼아 “우리도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처럼 거대 제국은 아니라서 어떻게 하면 금방 따라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Q. 그럼 동아리 활동이나 학회 활동 같은 건 안 하셨나요?

네, 안 했어요. 대신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개인용 IBM 컴퓨터가 생겼기 때문에 집에서 놀다가 프로그램을 짜고 그랬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보면서 본격적인 프로그래머의 길에 뛰어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폰트를 하나하나 그리면서 워드프로세서 한글 에디터를 제작하기도 했고, 터보 파스칼을 이용해서 기초적 레이싱 게임을 만들거나 모방형 게임을 만드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십대후반, 게임에눈을뜨다

Q. 대학원에서 진지하게 게임 개발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었어요.

석사과정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입학 전에 약간 비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과학원에 키트머드(KITMUD)라는 게임이 대유행해서 다들 그걸 하고 있었죠. 키트머드라는 건 텍스트만 나오는 게임이라 여러모로 번거롭기도 했고, 글씨로만 보이니 방향도 잃어버리고 해서 아예 직접 게임의 내부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소스 코드를 받아서 어떻게 만들어졌나 보고, 박사과정 들어가서도 게임에 그래픽을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런 저런 시도도 해봤죠. 논문 쓰는 건 잊고서(웃음).

 

Q. 그러다가 직접 게임을 만들게 되신건가요?

네 처음에는 대학원 연구실을 나와 한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했어요. 한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은 대학 학부 시절부터 관심 있던 주제였거든요. ‘한글과컴퓨터’에서 게임 개발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다가 지인의 요청으로 우연히 ‘쥬라기공원’이라는 머드게임을 만들게 됐어요. 아마 1994년도 6월, 7월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 교보문고에 『쥬라기공원』이라는 어드벤처 책이 있었고 ‘어떻게 미션을 수행하면 7페이지로 간다’ 이런 식으로 앞뒤로 페이지를 넘겨가며 책으로 하는 게임이었어요. 그 어드벤처 책

을 참고로 텍스트 머드 게임을 만든 겁니다. 기반으로 하는 게임 개발 소스가 한글 처리가 안 돼 있었기 때문에 한글이 되게끔 제가 고쳐줬구요, 이후 그 책의 내용을 그대로 거기에 입력을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천리안’ 이라는 사이트에서 분당 20원에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딱히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쥬라기공원’의 출시는 매우 성공적이었어요. 출시되자마자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계기로 이후 많은 유사한 머드게임이 등장하면서 30개가 넘는 온라인 게임들이 서비스되기 시작했어요.

 

Q. 이후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건가요? ‘한글과컴퓨터’를 다니다 김정주 회장과 함께 넥슨을 창업하기까지의 이야기도 들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글과컴퓨터’에서 일하던 중에, 창업해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어요. 1994년 12월에 넥슨을 창업했고, 이후 지금의 넥슨을 만들어준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죠. 이런 걸 순간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고, 학교 다니면서도 꾸준히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학부 때는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소프트웨어로 먹고 살겠다는 정도만 생각했죠. 게임 개발로 진로를 정한 건, 박사과정 때였어요. 네트워크 기반의 머드게임 쪽을 개발하고 싶었죠.

 

Q. ‘바람의 나라’는 MMORPG 분야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게임이었는데요. 대표님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게임을 좋아할 거라고 예측하고 ‘바람의 나라’를 만드신 건가요?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게 1997년이었어요. 제가 ‘바람의 나라’를 만들기 시작한 게 1995년이니 개발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를 본 적이 없죠. 당시에 ‘쥬라기공원’이라는 텍스트 머드게임이 있었는데, 쥬라기공원을 통한 수입이 많으면 한 달에 5000만원 정도라고 들었어요. ‘바람의 나라’를 개발할 때도 그정도를 예측했죠.

만들면서도 이렇게까지 큰 산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그 당시 머드게임이 많이 생겼는데, 바람의 나라는 그래픽적인 요소가 많아서 눈에 띄는 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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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만든 리니지, 그만의생각 프로세스

Q. 이제 넥슨에서 엔씨소프트로 옮겨 리니지를 만든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는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되었나요?

넥슨 이후 저는 군복무를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아이네트’라는 회사에서 게임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만들던 게임이 ‘리니지’ 였어요. 그런데 만들고 있던 도중 외환위기가 와서 아이네트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리니지’ 개발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어요. 게임을 계속 만들려면 다른 회사에 가야 했죠. 다른 회사를 알아보던 중 마침 김택진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고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죠.

 

Q. 그럼 리니지는 대표님 혼자서 기획 단계부터 방향을 잡은 건가요?

네.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가 배경이라 자료 찾기도 어려웠어요. 이번엔 정통 중세 판타지를 만들기로 했죠. 이건 룰이 널리 퍼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창 연재 중이었던 만화 ‘리니지’를 선택하고 작가인 신일숙 씨에게 연락 후 계약을 했어요. 제가 처음 게임 ‘리니지’ 기획서를 썼어요. 그렇게 개발을 1년 넘게 하고 나서 엔씨소프트로 옮겨 간 거죠.

 

Q. 리니지를 좀 더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 대표님께서는 어떤 고민들을 히셨나요?

그 시절, 그러니까 1998~2002년에 비슷한 게임이 몇 개 더 있었어요. ‘신영웅문’도 있었고 우리보다 앞서 가고 있던 ‘바람의 나라’, ‘레드문’도 있었죠. 그 당시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300명 정도였어요. 서버 기술이 나빠, 동시접속자가 300명을 넘어서면 서버가 다운되고 그랬거든요. 다른 회사가 동시접속 300의 장벽을 넘는 데 오래걸렸다면, 우리는 한 달 만에 그 벽을 넘었죠. 그러니까 1998년 말에 동시접속 1000명이 넘어가더라고요.

 

Q. 대표님께서 개발한 게임들은 늘 게임산업 내에서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먼저 생각하고 만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생각하는 과정은 간단해요. 제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만든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나와있던 A, B, C를 적당히 조합하는 거예요. ‘바람의 나라’를 예로 들어보죠. 당시에 텍스트머드는 이미 있었고, 싱글RPG도 있었죠. 이걸 타일 단위로 옮겨 다니는 툴과 결합한 게 ‘바람의 나라’예요. ‘리니지’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Q. 대표님께서는 지난 시간 동안 여러 회사를 경험하고 게임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요.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은 역시 한글과컴퓨터에 안주하지 않고 ‘바람의 나라’를 만든 거예요. 딱히 후회스러운 결정은 아직 없는 것 같기는 해요. 아쉬운 점이야 많았겠지만, 그런 건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이에요.

 

Q. 마지막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한테 조언 부탁드립니다.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젊었을 때 한 번쯤 도전해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대부분 실패하니까, 실패했다고 해서 우울해할 필요도 없어요. 성공이 실력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 운에 좌우되니까요. 실패했다고 해서 본인의 책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번씩 도전해보세요. 20대에 한번 해보고 나서 다시 30대, 40대에 해본다고 하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학교나 회사에서 배울 수 없는 아주 멋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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