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29호] 개그맨, 재즈가수 이동우

글 이진혁

사진 씨네21 백종헌

자신의 삶을, 자신있게 사는 것 

 개그맨, 재즈가수 이동우

 

그는 외로운 아이였다. 가난했고, 늘 사랑이 고팠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는 더 많이 웃었다. 그가 ‘딴따라’가 된 건, 아마도 그가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그는 깊은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발을 씻겨주고 싶다는 말, 멀리서 지켜보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 꿈은 꺾이는 게 아니라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의 깊이가 느껴졌다. 누군가 그를 두고 “그 사람은 빛을 잃었다”고 말한다면, “아니, 그는 누구보다 밝은 빛을 내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번 달 MODU의 롤모델은 개그맨이자 재즈 가수, 이동우다.

 

 

최근에 공개한 버킷리스트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전국의 일진 학생들을 찾아 다니면서 발 씻어주기’였는데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청소년 때 참 많이 힘든 아이였어요.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했죠. 정말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지금 힘든 청소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보고 ‘문제아’라고 하죠. 그런데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건 친구들의 옷이나 돈, 술이나 담배가 아니라 사랑이에요. 지극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죠. 사랑을 못 받으니까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는 거예요.

저는 그런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청소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됐죠. 또 저는 한 아이의 아버지니까요. 지금은 어린 제 딸이 언젠가는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지금 정말 힘든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고민했어요. 무작정 ‘그래, 그들을 사랑하자’고 하는 건,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죠.

그러면서 떠오른 게 친구들의 발을 씻겨주는 거였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는 건 굉장히 숭고한 행위예요.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누구와 마주 앉아 있어도 손을 내밀 수 없죠. 손은커녕 쳐다보기 싫어지기도 하잖아요. 저는 사실, 제일 부담 없이 그들의 몸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죠. 친구들의 발을 씻겨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발을 씻겨주고 돌아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게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저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런 걸 반복하다 보면, 학생들 마음에도 뭔가가 심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그게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언제쯤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버킷리스트에 넣은 거기도 해요.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내셨다니,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으신가요?

자세하게 모든 걸 이야기하긴 힘들어요. 참 많이 가난했어요. 그런 게 정말 고통스러웠죠. 그나마 저는 다행인 게, 진로를 일찍 정했어요. 어렸을 적부터 ‘딴따라’가 되고 싶었어요. 그게 꿈이었죠. 그래서 고등학교도 예고로 진학했어요.

가서는 연극을 했어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했죠. 외로움, 쓸쓸함, 가정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불만, 허전함 이런 마음까지 모두 연극에 쏟아 부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연극을 하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학교에서 연극을 할 때는 행복하지만, 그 활동이 끝나면 저는 다시 한없이 외로운 학생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집에서는 연극을 한다는 걸 절대 이해해주지 않았고, 집은 여전히 가난했으니까요. 그래서 연극을 하면서도 많이 억눌려 지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내가 일반 고등학교에 갔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끔찍해요. 아마 엄청 많은 사고를 쳤을 것 같아요. 저는 다행히 연극을 하면서 작품으로 사고를 쳤죠.

 

 

‘딴따라’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탈출구로 딴따라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딴따라가 되겠다는 생각은,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끼가 아주 다분한 애였거든요. 늘 나서길 좋아하고, 남들을 웃기는 걸 좋아하고, 나를 드러내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게 제일 자신 있었고, 그러고 있을 때 제일 마음이 편했어요. 저는 그런 재주로 친구들과 소통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더 안 했던 것 같아요.

 

 

수많은 딴따라 중에서도 개그맨을 선택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어요. 돈 때문이었죠. 저는 사실 연극배우나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제 집을 봤는데 정말 가난해도 너무 가난한 거예요. 군에 입대하며 집의 경제적 상태를 정확하게 알게 됐는데,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그때는 아무래도 철이 들 때니까 ‘이 경제난을 어떻게 극복하지’를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댄서를 할까, 가수를 할까, 개그맨을 할까 고민을 했죠. 사실 뭘 해도 자신은 있었어요. 뭐든지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그 중에서 개그맨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업소에서 행사 출연을 하면 됐거든요. 그래서 개그맨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시험을 봤어요. SBS 공채 개그맨 2기로 한 번 만에 합격했죠.

그리고는 정말 ‘미친듯이’ 일했어요. 행사도 하고, 방송도 하면서 집의 그 많던 빚을 다 갚았어요. 그러고 나니 아무래도 집에 좀 당당해지더라고요. 정말 인정받지 못 하던 아들이었는데, 내가 고집하던 ‘딴따라’로 집안 문제를 해결한 거니까요.

 

 

개그 한 길을 걸으신 건 아니고, 중간에 ‘틴틴파이브’라는 가수로도 활동하셨는데요. 가수와 개그맨, 어떤 게 더 좋으셨나요?

저울질하기가 힘들었어요. 둘 다 좋았고, 틴틴파이브 활동을 하면서도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했죠. 그래서 당시에 ‘국내 최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그룹은 많았지만, 저희처럼 정말 많은 것들을 함께 하는 그룹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이것저것을 하는 게 좋았어요. 지금도 그래요. 연극 무대에 서면서, 재즈가수로 노래를 하고 있잖아요. 뭐 하나 버리기가 힘들죠.

자꾸 나누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개그맨을 해야 할 것인가, 가수를 해야 할 것인가를 나눌 이유가 없죠. 우리나라는 특히 사람들을 잘 분류하잖아요. 이 친구는 ‘정통파 배우’ 저 친구는 ‘성격파 배우’ 다른 누구는 ‘감초 역할’, 이렇게요. 그 나누는 것의 첫 번째 이유는 교육 환경에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이과와 문과를 나누고, 우등생과 열등생을 나누고,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죠. 모든 걸 다 나눠버려요. 저는 그런 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댄스가수는 댄스만 해야 하나요? 딴따라는 그냥 딴따라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잘 하는 것을 눈치 안 보고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거운 질문을 드릴까 해요. 결혼 직후에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으셨는데요. 이후에는 시력을 잃으셨죠. 그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우리가 많은 사고를 당하고 살잖아요. 나무젓가락을 가르다 가시 하나가 박혀도 사고죠. 그런 사고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죠. 이유가 분명한 건, 해결책도 분명해요. 일단 가시를 빼고, 다음부터는 나무젓가락을 가를 때 더 조심하면 되겠죠.

그런데 사고 중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어요. 제 병이 그런 경우예요. 병에 걸렸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제일 고통스러울 때는 ‘억울할 때’라고 생각해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정말 억울했어요.

희귀병이라는데, 해결을 할 수가 없잖아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죠. 어떤 사람 때문에 너무 억울하면 그 사람을 죽이든가, 아니면 자기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한다고 해요. 난 내 병을 죽일 수 없으니까, 죽어버리고만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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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는 그 병을 극복하신 것 같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해요. 그 병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그 절망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극복이란 건 없어요. 극복은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이 하는 거죠. 만약 이 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 방법이 개발된다면 그땐 병이 극복된 거겠죠.

하지만 아직 저는 병을 갖고 있고, 제 병은 진행 중이에요. 극복하지 못 했죠.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저에게 ‘어떻게 병을 극복했는지’를 물을까요. 그건 아마 제가 다시 웃는 얼굴로 세상에 나섰기 때문일 거예요. 극복이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고, 아마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 할 거예요. 절망, 좌절, 실패는 친구처럼 늘 데리고 다니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전히 장애가 있죠. 그에 따른 우울함, 안타까움은 늘 남아 있어요. 그리고 아마 절대 없어지지 않겠죠. 저는 그런 것까지 다 받아들인 사람이에요. 그런 절망이나 우울함과 친구가 된 거죠.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을 대체로 떨어뜨리려 발버둥칩니다. 가장 쉬운 선택은 외면하는 거죠. 외면하는 순간, 정말로 불행해져요. 나에게 찾아온 불행을 끌어 안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물론 그걸 안을 때까지 시간은 좀 걸리죠. 장애가 있지만 세상과 소통하며 사는 사람들은, 아마 저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들 할 거예요.

 

 

몇 해 전에는 누군가 눈 기증을 하겠다고 하는 걸 거부해서 화제가 됐는데요.

그게 2011년의 일이에요. 방송을 통해 제 사연이 공개되자, 생면부지의 한 남자가 눈을 주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죠. 그 사람은 근육병 환자였어요. 몸에 멀쩡한 곳이라고는 눈밖에 없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한 건, 우선 가장 먼저 눈 이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현대 의학으로도 아직 눈을 이식하는 기술은 없다고 해요. 그러니 준다고 해도 받을 수가 없었죠. 그게 첫 번째 이유였어요.

그런데, 만약에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걸 받을 수 있었을까요? 나와 똑같이 숨쉬는 사람에게 눈을 받으면 그 사람은 실명하는 거잖아요.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받을 수가 없죠. 그 사람은 아홉 개를 잃어버리고 눈 하나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저는 눈만 아플 뿐이지 나머지 아홉 개를 다 가진 사람이고요.

그 사람의 제안을 받고 ‘그래, 나 산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만큼 멋지게 살 자신은 없지만, 그 사람에게 받은 용기로 한번 살아보겠다 생각하고 일어섰어요. 이후에 그 사람과 저는 친구 사이가 됐죠.

 

 

‘아빠 이동우’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어떤 아빠라고 생각하는지, 또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신지요.

딸에게 점점 점수가 깎이고 있어요(웃음). 부모 되기란 정말 힘들죠. 아이가 저를 평가하기 시작하니까 점점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점점 제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고 있죠. 예전이 90점이었다면, 지금은 50점 정도 될까요? 아마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전적으로 제가 무지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또 한번 깨닫는 거죠. ‘아 점수가 깎였구나’ 하고요. 그럴 때마다 자주 저에게 주문을 걸어요. ‘이동우라는 아빠! 정신차리세요!’

어떤 아빠가 되고 싶냐면, 지금보다 더 거리를 두고 지켜봐 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물론 가까이 가서 안아주고 토닥거리고 쓰다듬는 모습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자꾸 제 욕심을 주입하게 되더라고요. 더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이가 어떤 길을 가든지, 그 아이를 믿고 지켜볼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가 ‘내 자식이다’하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그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고 사람이니까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데, 제가 그 아이에게 어떤 인생을 강요할 수 있겠어요?

 

 

“직업적인 꿈은 꿈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꿈이라고 하는 단어 안에는, 사실 희망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어요. 그렇다면 희망이 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겠죠. 사람들이 희망의 반대를 절망이라고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희망과 절망은 사실 전혀 관계 없는 말이에요. 희망 안에는 절망이 없거든요. 희망은 꺾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계속 진행하는 거죠.

꿈에도 그런 속성이 있어요. 계속 진행하는 거예요. 만약 되고 싶은 직업이 있는데 되지 못해서 ‘꿈이 꺾였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꿈이 추락했다’ 그런 말을 많이 하는데요. 틀린 말이에요. 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죠. 꿈이 만약 빛을 잃었다면, 그건 처음부터 꿈이 아니에요. 그래서 더 꿈이 아름다운 거고요.

그래서 꿈을 갖는 건 그만큼 힘들기도 해요. 만약 누군가의 꿈이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치죠. 만약 그가 의사가 됐다면 그 꿈은 이뤄진 건가요? 그러면 그 사람은 앞으로 무얼 향해 살아야 할까요? 정말 꿈은, 의사가 되고 난 다음에 오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자기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도 못한 꿈을 ‘이뤘다’고 착각하며 허탈해져요. 저는 그래서 직업적인 소망은 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말씀 드렸듯이, 제 꿈은 늘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새로운 일을 계획하기보다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더 충실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겠죠. 건강을 위해서 많은 걸 하고 있어요.

어떤 일을 계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늘 제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유쾌한 일들이 펼쳐질 거고, 그런 일들을 계속 찾게 되겠죠. 그런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늘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죽는 순간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거니까요.

 

 

끝으로 청소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요. 저는 이 나라의 어른이니까요. 청소년들이 외롭고 힘든 이유는 모두 우리 어른들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누구도 무릎 꿇고 그들에게 사과하지 않죠. “우리 때는 이랬는데, 너희는 편한 거야”라는 망언이나 하고요. 그래서 저는 우선 청소년들에게 이 나라의 어른으로서, 마음을 담아 사과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럼에도 이렇게 밝게 살아주는 청소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참 기특하고 장하다는 생각을 늘 해요. 저 같았으면 아마 큰 문제를 일으켰을 거예요. 이 시대의 청소년으로 살았다면요. 잘 버티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저는 구태의연하게, 꿈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래요. 그냥 지금 자신의 삶을, 자신있게 살아내길 바라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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