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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MODU, 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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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다

 편집장의 글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기형도 시 ‘바람의 집’의 일부입니다.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지는 지금, 이 시를 여러분에게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힘든 이 시기도 지나갈 것이니 조금만 버텨라”,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다”,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힘든 지금도, 언젠가 여러분이 그리워해야 할 여러분 삶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말이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참 많은 ‘지금’이 내일을 위해 희생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내일 더 행복하기 위해 기꺼이 지금의 불행을 참아내고, 내일 더 나아질 거란 믿음으로 지금 한없이 불안합니다. 남아 있는 힘이 없을 때 들려오는 ‘힘내’라는 말은, 가끔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혹시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지금을 돌보고 있진 않은지요. 그렇게 오래, 참고 견디고 있지는 않은지요. 지금 웃음보다 더 가치 있는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 웃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싱글벙글!

2014.10

편집장 이진혁

* 이번 호를 끝으로 임기를 마칩니다. 지금을 그리워하기 위해 저는 언젠가 더 큰 소리로 울어야겠지요. 여러분과 통하고 있음을 느꼈던,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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