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28호] 국제구호전문가 권기정 소장

글 이진혁

사진 <씨네21> 최성열

아이들이 웃는 세상을 꿈꾸며

국제구호전문가 권기정 소장

 

 

누구나에게 아주 어린 아이였던 시절이 있어.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던 때, 사람들은 일생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 작은 다리로 일어서고 말을 배워가는 그 시기가 중요한 건 그때가 한 ‘사람’이 되어가는 첫 걸음이기 때문일 거야. 그 시기의 행복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지. 하지만 세상에는 어린 시기가 너무나 어려운 아이들이 있어. 전쟁과 재난을 겪기도 하고, 팔려 나가거나 납치를 당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이런 아이들을 위한 초록빛 우산이 있다는 말, 들어봤어? 무슨 이야긴지 잘 모르겠지? 이번 달 MODU가 만난 롤모델, 국제구호전문가 권기정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을 거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어떤 곳인가요?

1948년에 설립된 NGO단체예요. 역사가 참 오래됐죠? 설립 당시는 일제강점기 지나고 우리나라가 많이 피폐했던 시기였어요.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하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아동을 돕겠다고 외국 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중 하나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전신인 ‘기독교아동복리회’였고요. 1980년대에 기독교아동복리회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아동복지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제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가 됐으니까요. 해외에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에요. 지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는 국내 아동 5만 8천여 명, 그리고 해외 23개국 아동 2만 4천여 명을 돕고 있어요. 각종 캠페인도 진행하고요. 설명이 길어졌는데요, 말하자면 ‘역사가 오래된 아동복지 단체’ 그리고 ‘국내와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단체’라는 거예요.

 

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린이들을 돕고 있나요?

다양한 활동을 해요. 경제적 지원도 하고, 학교폭력이나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사업도 하고요. 보통 저희 같은 단체를 구제보호개발단체라고 하는데, 해외에서는 특히 교육지원을 많이 해요. 어린이들이 바르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거죠.

 

소장님께서는 주로 어려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일을 시작한 게 2001년부터에요. 그때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 911테러가 있었죠. 테러 이후에 미국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했잖아요. 그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을 TV에서 매일 보여줬죠. 그걸 보면서 ‘저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돕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해 겨울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긴급구호 활동을 떠났어요. 그리고 르완다,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이티를 거쳐 최근의 남수단까지 13년 동안 외국에서 활동을 한 거죠.

 

에티오피아, 이집트, 남수단. 주로 아프리카 국가가 많은 것 같아요.

꼭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제가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공교롭게 아프리카 지역에 오래 있었던 거죠. 아무래도 아프리카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난한 나라가 가장 많은 지역이죠.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최근에는 남수단에서 활동을 하셨는데요. 생소한 지역인데,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2011년 7월에 독립한 신생독립국이에요. 독립한 이유는 북수단과의 갈등 때문이었죠. 북수단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이었는데, 남수단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는 아프리카인이었거든요. 그렇게 다른 두 종족을 섞어놓으니 많은 갈등이 있었어요. 그래서 독립을 했는데, 남수단 지역은 발전이 안 돼 있어서 상황이 많이 안 좋았어요. 물도 없고 전기도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바닥부터 열심히 나라를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는데, 작년에 내전이 발생했어요. 1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죠. 아직 전쟁이 안 끝나서 여전히 사람들이 어렵게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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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위험한 지역에서 활동을 하셨는데요. 전쟁도 있고, 위생상태도 안 좋고, 풍토병도 많은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활동하기 무섭지는 않으세요?

사실 별 일을 다 겪었죠. 전쟁, 지진, 내전 같은 상황 속에 있었으니까요. 권총을 든 강도를 만난 일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일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적은 것 같아요. 사고는 어디에나 있는 거니까요. 한국에 있다고 제가 안전하게 지낸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죠. 제 생각에 위험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제 집이 거기니까요, 거기서 살아야죠. 사고가 있다고 집에서 안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런 사고가 있었으니 더 조심은 해야겠지만요.

 

그러면 집을 떠나계신 건데, 건강이 안 좋아져서라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지난 13년 전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만 돌아다녔으니까요. 작년에 회의도 있고 해서 한국으로 휴가를 왔어요. 한국 들어온 지 보름만에 몸살이 생기더라고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럴 때 더 움직여야 한다’며 등산도 다니고 했죠. 알고 보니 말라리아였어요. 현지에 있었으면 바로 말라리아를 의심했을텐데 한국에서 증상이 나타나서 그런 생각을 바로 못했던 거죠. 그때 후유증으로 아직 건강이 안 좋아요. 하나 웃긴 건, 제가 아내를 르완다에서 활동하다가 만났어요. 아내가 저와 같은 꿈을 꾸고 활동하는 사람이라 정말 친하고 가까운데, 말라리아도 같이 걸렸어요. 그래서 부부가 중환자실에 같이 누워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죠.

 

그럼 지금은 건강하신가요?

사실 올해 초까지 몸이 정말 이상했어요. 온 몸에 종기처럼 두드러기가 나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보세요, 멀쩡하잖아요(웃음). 아직 한국에 남아 있는 이유는, 제가 많이 소진됐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뭔가를 나누기 위해서는 제가 풍성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쉬면서 건강도 회복하고, 또 책도 많이 읽고 있어요. 말하자면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죠.

 

언제부터 지금 하는 일을 꿈꾸셨나요?

어릴 때는 많은 꿈을 갖잖아요. 커가면서 잃어버리는 부분도 있고, 현실에 맞춰가는 부분도 있지만요. 얼마 전에 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 제일 존경하던 사람이 슈바이처 박사였어요. 저런 삶을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의사가 되어야지 ‘ 생각하다가, 의사보다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꿈이 정치인이었죠. 좋은 제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원하는 대학에 못 가고 경영학과로 진학을 했어요. 그러면서 또 좋은 기업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취업을 준비하다가 면접 며칠 전에 스리랑카 긴급구호를 가게 됐어요. 갔다 오면서 ‘그래, 이게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선택의 기로에서 이 길을 선택한 거죠.

 

잘 선택하신 것 같으세요?

사실 처음에는 다들 미쳤다고 그랬어요. 당시에는 국제구호개발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거든요. 지금이야 한비야 같은 분들을 보고 이 일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지만요. 그런데 한 10년이 지나고 나니까 다들 저를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제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이 제 직업이 되어서 행복해요. 지금 생각해도 잘 선택한 것 같아요.

 

13년, 긴 시간동안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가장 뿌듯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작은 일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가 도와주러 간 사람들이 처음에는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다가, 어느 날 마음을 열고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순간순간 참 뿌듯하죠. 최근에는 남수단에 있었잖아요. 전쟁이 발발해서 급하게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준비를 해서 남수단에 돌아갔어요. 갔더니 현지 사람들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에게 제가 친구가 된 거죠. 제가 안전하길 기도했다는데,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일하는 보람을 느꼈죠.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한국에도 마찬가지지만, 홈리스들이 많잖아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정말 불편해요. 불쌍하다는 게 아니라, 제가 불편해요. 성인들에게도 그런데 어린이들이 집 없이 길에서 지내는 걸 보면 더 마음이 아프죠. 일을 하다 보면 저희가 열심히 도움을 줬음에도 그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어요. 질병 때문일 때도 있고, 전쟁 때문일 때도 있죠. 지금 남수단에서도 아마 그런 일이 있었을 거고…. 그 죽음을 보면 참 절망적이죠. 그런 충격을 받을 때가 제일 힘들어요.

또 하나, 현지인들이 저희 같은 사람들을 늘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건 아니에요. 적대감이 있는 경우도 많고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마음이 안 열리면 ‘왜 진심을 몰라주지’하는 마음에 힘들 때도 있어요.

 

홈리스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셨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나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유야 어찌됐건 반에 도시락을 못 가져오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가난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있죠. 도시락을 못 싸오는 친구가 있으면 밥을 나눠 먹잖아요. 혼자 먹는 건 정말 불편한 일이니까요. 누구를 돕겠다는 마음 이전에 이런 종류의 불편함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커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주변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은 자기가 게을러서 그래’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생기는 거죠. 그러면서 그 사람이 굶는 것이 정당해지고, 또 나 혼자 먹는 것도 정당해지는 거죠. 그런데 옆에 친구가 못 먹고 있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는 전혀 없잖아요? 당연히 같이 먹어야 되는 거고요. 사회 전체를 봐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산다는데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 많은 건 뭔가 이상한 일 아닐까요? 그렇다면 굶는 이들에게서 눈을 돌려선 안 되죠. 그런 일은 정말 ‘불편한’ 거니까요.

 

이제는 국제구호개발이라는 일이 많이 알려져서 청소년 때부터 소장님과 같은 일을 하기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온 것이 무척 긍정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이런 구호개발로 유명한 이들의 삶 자체가 부러워지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거든요. 많은 나라에 다니고, 잘 알려진 사람에게 집중이 많이 되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 그 사람의 지위보다는, 그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 또 무얼 지향하는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이 어떤 걸 준비하면 좋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전 마음의 준비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에요. 저는 그 중에서도 제3세계의 어려운 나라에서 일을 할 뿐인 거죠. 지역만 달라진 거예요. 그런데 아까 말한 것처럼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은 많아요. 빈곤층도 늘어나고 있고, 이주 노동도 늘어나고 있죠. 그런데 그런 일에 대해선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나는 제3세계의 어린이를 도울 거야’라는 생각은 좀 잘못된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떤 일을 먼저 시작하면 좋을까요?

제가 하는 일의 출발점은 그렇게 멀리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최근에 월드컵이 끝났잖아요. 축구 경기를 위해선 축구공이 필요하죠. 그런데 축구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600번이 넘는 바느질을 손으로 해야 해요. 그게 대부분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아동 노동을 통해서 이뤄지죠.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축구공을 하나 사더라도 ‘이 공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아동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밸런타인데이도 마찬가지죠. 그날 초콜릿 엄청 많이 사잖아요. 그때도 공정무역 초콜릿을 찾아보는 거죠.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 농장의 노동자 대부분은 어린이들이에요. 납치나 인신매매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초콜릿은 거부할 수 있어야겠죠. 제가 하는 일의 출발은 이런 데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사람이, 같은 반에 왕따 당하는 친구는 무시하는 그런 일이 생겨선 안 되는 것처럼요.

 

청소년들이 국제구호개발을 하는 것을 추천하시나요?

요즘 청소년들이 직업을 정할 때 어떤 가치관을 우선시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한 일을 하는 게 직업을 정할 때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일을 하면서 내가 행복하고 또 내가 일을 함으로써 남까지 행복해지는 거죠. 제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않는 길이니까, 도전해 볼 가치도 있죠.

 

일을 하며 많은 나라의 청소년과 마주하셨을텐데요.그들에 비해 한국의 청소년은 어떤가요?

가끔 청소년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면 보여주는 영상이 있어요. 많이들 아시겠지만 ‘만일 지구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에요. 이 영상을 통해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너희는 세계에서 1% 안에 들어갈 만큼 선택받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요.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죠.

그런데 물질적인 풍요에 비해서 문화적인 풍요는 못 누리는 것 같아요. 제3세계 아이들을 보면 자연이나 공동체에서 얻는 지혜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 안에는 그런 게 너무 적죠. 이건 청소년들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런 여건을 못 만들어주는 사회의 잘못이죠. 그래서 청소년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다른 면에선 많은 것들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으신가요?

우선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외에는 한국 사회의 결혼 이주나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우리 사회는 ‘다름’에 대해 인색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든가, 아니면 도움을 줘야만 하는 대상으로 대하고 있죠. 그런데 그런 것 말고 함께 손잡고 갈 친구로 대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필리핀에 ‘코피노’라는 친구들이 있어요. 한국인 남성들과 현지 여성들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인데, 대부분이 버려졌어요. 아닌 경우도 있지만, 한국인들이 잘못한 일들이 참 많거든요.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도움이나 보호도 한국인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코피노를 지원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청소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하고 싶은 게 없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아직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겠죠.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영역이 너무 좁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영역을 넓혀나갔으면 좋겠어요. 실패해도 좋으니까 다양한 일을 해보고요.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이 생기겠죠. 뭘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고 진짜 자기를 발견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 나중에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겠죠. 요즘은 웬만한 직업은 밥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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