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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그들이 공항으로 간 이유-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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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그들이 공항으로 간 이유

아프리카 15,000km, 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6

여자친구_윤성

“나 암이래.”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스물 네 살 나이에 받아들이기에 암이라는 병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 얘기를 듣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세상이 노래졌다. 갑상선암이라고 했다.

“걱정할 거라고 엄마가 오빠한테 얘기하지 말라 그랬는데.”

“무슨 소리야, 당연히 얘기해야지.”

그녀의 꽉 다문 어금니 사이로 서러움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그녀는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그녀가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래 주었다. 오 분 정도를 그렇게 울던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나 때문에 한국 들어오지는 마.”

그녀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미술학원에서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 5년을 사귀었다. 군 복무 기간도 묵묵히 기다려준 고마운 그녀, 늘 헌신적으로 대해주던 여자친구다. 하지만 나는 좋은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그녀가 힘들 때마다 곁에 없었다. 그녀가 미대 입시 실기시험을 치를 때도, 15년 키운 요크셔테리어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도 나는 해외에 있거나 군대에 있어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하필이면 이번에도 그녀 곁에 내가 없다. 대체 나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일까? 좋을 때만 함께 하고 힘들 때는 함께 하지 않는 남자친구? 정작 필요할 때는 곁에 없는 쓸모없는 사람?

“갈게, 한국.”

“그러지 마, 오빠. 나 수술만 받으면 괜찮을 거랬어.”

“아니야, 갈게. 이번에는 옆에 있어줄게.”

전화를 끊고 나니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착잡하다. 이 여행은 나의 여행이지만 온전히 나만의 것은 아니다. 부모님께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반대하실지, 잘했다고 하실지, 별말씀 없이 나를 이해해 주실지. 내 옆에 있는 친구들도 문제다. 그들과 함께 차를 샀고 여행 중이다. 내 상황을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이들에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답답했다.

 

귀국 문제 윤성

‘여자친구가 병에 걸렸어. 한국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스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민재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이집트까지 함께 가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고 했다. 스캇이 내 어깨를 잡더니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미비아를 여행하며 틈틈이 아버지께 이메일을 보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여행을 계속 하기를 원하셨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여자친구가 수술을 하는 시기에 곁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 역시 간절했다. 결국 부모님께서 이해해주셨다. 아버지의 항공 마일리지를 사용하라고 하셨다. 덕분에 한국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여자친구의 힘든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여행을 끝내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일주일 뒤에 나미비아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넌 윤성이의 아버지가 아니야_민재

윤성이를 빈트후크 공항에 데려다 주기로 한 날이다. 윤성은 돌아가기 전 기념품 가게에 들르고 싶다고 했다. 때문에 두어 시간 일찍 나와 기념품 가게 밀집지역에 들렀다. 대략 십여 개의 가게들이 다양한 상품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윤성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이 가게 저 가게를 누볐고 스캇은 불안한지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나 역시 윤성이가 조금 빨리 기념품들을 골라주었으면 했다. 급기야 스캇은 한숨을 푹하고 쉬며 자신은 차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윤성이에게 나도 잠깐 음료수를 좀 마시고 오겠다며 스캇을 따라 나섰다.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향하며 스캇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에게 기념품을 당장 골라야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나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으나 스캇이 짜증을 부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메랄드들을 만난 뒤부터 스캇이 나와 윤성이의 보호자 내지는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행동하려 하는 것을 종종 느꼈었는데 달갑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우리 모두는 친구지만 각각 독립적인 여행자라는 것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콜라를 따서 툴툴거리고 있는 스캇에게 건네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스캇, 왜 그렇게 짜증이 나 있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기념품을 고르다가 늦을까 봐.”

“그런데 스캇. 넌 윤성이의 아버지는 아니잖아?”

“무슨 이야기야?”

“윤성이나 나나 너나 우린 모두 성인이야. 윤성이가 기념품을 고르다가 비행기를 놓치면 그건 박윤성이 비행기를 놓치는 거야. 그건 그의 실수고 그가 책임을 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 이건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지.”

스캇은 나와 콜라 캔을 번갈아 보다가 콜라를 들이켜고 이야기했다.

“네 말이 맞네. 비행기는 윤성이가 놓치는 거지, 내가 기분이 상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박윤성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물건을 골랐고 결국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가게로 돌아가 구매를 결심했다. 결제가 끝나자마자 나는 윤성이를 잡아끌었고 스캇은 총알택시 기사처럼 빈트후크 공항으로 달렸다. 다행히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잠깐의 포옹도 할 수 있었다. 박윤성이 출국 심사대를 넘어 사라지자 아쉬운 감정이 들면서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당분간 스캇과 윤성이가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고 나는 스캇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부분에서 조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의 여행을 함께할 영어권 친구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다, 나미비아 분업 운전 사건_민재

캠프 사이트의 장기체류자가 된 스캇과 나는 금세 친구들을 만들었다. 스캇과 둘이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서양인과 동양인의 여행자 조합은 친구를 사귀기에 꽤 훌륭하다. 우선 흔치 않기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둘이서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커다란 문화권을 대강이나마 아우를 수 있기도 하다. 윤성이 떠나고 이틀이 지나지도 않아 우린 전 세계인이 모인 무리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스캇과 나 사이에는 어떠한 형태의 충돌도 없었으며, 다람살라에서 함께 지내던 시간과 같은 즐거움과 행복감이 있었다.

꽤나가깝게지냈던멕시코인호르헤가공항으로가는날이었다. 스캇과나는우리가데려다 주겠다고했다. 뉴질랜드출신인제레미가자신도따라가겠다며나섰다. 스캇은경쾌하게액셀을밟았고일찌감치공항에도착하여배웅을했다. 뿌듯한마음으로차를돌려빈트후크시내로향했다. 그런데얼마달리지않아경찰차가우리를불러세웠다.

“면허증좀봅시다.”

“네경관님, 잠시만요.”

처음겪어보는상황이었다. 운전석에있던스캇은당황하여가방과지갑을뒤져서뉴질랜드에서발급받은면허를내밀었다. 경찰은면허증과스캇을번갈아가며한참을보더니이면허증으로는나미비아에서운전할수가없다고했다. 뭐라도하지않으면벌금을물어야할것같은곤란한상황이었다. 나는고개를불쑥내밀며이야기했다.

 

“저기, 나국제면허증있어요!”

“하하, 브루스 리네?”

경찰은동양인을본것이신기했는지, 웃으면서나를 ‘브루스 리’라고불렀다. 그의태도가적대적인것같지는않았다. 그래, 이상황을빠져나갈수있으면나를이소룡이라고부르든김정일이라고부르든무슨상관이랴. 나는국제면허증을찾아최대한공손하게웃으며내밀었다.

“이제괜찮은 거죠?”

“음, 잠시만요.”

경찰이잠시자리를비운사이, 우리는뇌물을줘야하는지, 준다면얼마를줘야하는지를두고쑥덕거렸다. 이윽고경찰이와서원래는법에저촉되지만이번만큼은봐주겠다고했다. 우리는신이 나서연신고맙다는인사를했고스캇은경찰의마음이바뀔세라시동을걸었다.

 

“잠깐! 당신 말고브루스 리가운전하세요.”

“네? 제가요?”

맙소사아프리카에서의첫운전이이런식이라니. 스캇은나에게눈짓을하며, 문을열고뒷좌석으로향했다. 나는운전석으로자리를옮겨스캇에게빠르게이야기했다.

 

“스캇, 나수동차량몰아본 지정말오래됐어.”

“일단출발해. 시야가벗어나는데까지만가자.”

“야, 엄청긴장된다고여긴고속도로잖아!”

“그러면이렇게하자, 내가구호를하면민재너는클러치를밟고제레미너는기어를바꿔. 문제없겠지?”

“그래, 알겠어.”

 

나는스캇의지시에따라클러치, 엑셀, 브레이크그리고핸들을맡았고제레미는보조석에서기어를조정해주기로했다. 첫출발시도는실패했다. 긴장을하는바람에기어가들어가지않은상황에서 액셀을밟았고우리차는제자리에서굉음을내었다. 스캇은비명을질렀고나는경찰의눈치를살피며두 번째시도를했다. 다행히차량은움직이기시작했고우리는빈트후크시내를향해내달렸다. 그렇게빈트후크시내에도착하여나는스캇과교대하였고우리는한참을깔깔대고웃었다. 그리고스캇은나에게운전법을가르쳐주겠다고했다.

 

여자친구_윤성

귀국 이틀 뒤의 일이다.

“여보세요?”

“으응……”

“지금 일어났구나?”

“맙소사……”

“괜찮아, 오빠. 나 지금 들어가니까 이따가 수술 끝나고 나와서 봐.”

“아…… 미안해. 수술 잘 받아.”

늦잠 자는 바람에 수술실 마중을 나가지 못했다. 전신마취를 하기 전 그녀 옆에 있어주고 싶었는데, 그녀의 전화를 받고 일어난 것이다. ‘난 누구지? 왜 여기 있는 거지?’ 죽고 싶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된 기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녀는 내가 오랜 비행에 지쳐 피곤했을 거라며 이해해 주었지만 나는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사람 부자 민재_윤성

그러던 어느 날, 민재에게 메일이 왔다. 스캇이 DSLR 카메라를 도난당했다고 했다. 작은 디카를 하나 사다 달라고 했다. 민재의 메일에는 도난사건 소식 외에 내가 꼭 만났으면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누나라고 했다. 민재는 내게 그녀가 전해주는 선물을 받아서 가져오라고 했다

“민재가 여행 간다고 했을 때 이걸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게 아쉽더라고요.”

“뭔데요?”

그녀가 건네준 종이봉투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필름 박스가 들어있었다.

“꼬맹이들 사진 많이 찍어주라고요.”

그 순간 조금 놀랐다. 친한 선배가 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이다. 뭐지? 둘이 특별한 사이인가? 어쨌든 우리에게 딱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여행을 떠나오면서 폴라로이드를 준비하려다 금액과 부피 때문에 포기했던 기억이 났다. 좋아하는 사진작가 중에 신미식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제삼세계국가를 여행할 때는 휴대용 프린터기를 가지고 여행을 다니며 피사체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다고 했다. 그 사진 한 장이 그들에게는 평생 가져보는 유일한 사진일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민재랑 다니느라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하하하, 고생은 뭘요. 심심할 틈이 없죠. 근데 걔가 좀 특별한 구석이 있긴 해요.”

배낭을 사주는 사람, 전자사전, 시계, 코인 티슈, 손 소독제, 샌들 등 잡다구리 한 준비물을 챙겨주는 사람, 민재가 세계 일주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보고 싶을 거라며 선물을 건넨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난 전부 내 돈으로 샀는데. 민재는 주변에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미 대박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폴라로이드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집에 오던 길에 민재가 부러웠다.

형씨가-선물한-폴라로이드

첫 동물 Safari_민재

카드보드박스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질 즈음 나와 스캇은 보츠와나를 향해 북향하기로 했다. 히치하이커 스띠앙, 제레미, 톰이 함께했다. 콜트의 캐노피는 배낭과 기타 등으로 꽉 찼고 다섯 개의 좌석 역시 그러했다. 언제든지 자리를 펴고 놀 준비가 된 그런 조합이다. 박윤성에게는 사파리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어놓겠다고 했지만 그냥 공짜로 태워주기로 했다. 스띠앙은 노르웨이에 겨울이 오면 나미비아의 친척 집에서 생활하는 친구였는데 여행 가이드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스띠앙은 보츠와나로 가는 길에 있는 ‘포퐈폴스’, ‘마항고’ 국립공원에 들를 것을 제안했고 우리 모두는 거기에 동의했다. 박윤성이 없는 것은 참 아쉽지만 드디어 첫 사파리다.

 

 

Stian의 real safari program, 하마 및 악어 서식지 급류타기_민재

“좋은 아침! 밥 먹고 사파리 가야지!”

스띠앙은 우렁찬 목소리로 나와 스캇이 자고 있는 텐트를 열어 재꼈다. 어젯밤 늦게까지 맥주를 마셨더니 늦잠을 잤나 보다. 해가 꽤 높이 떠 있었다. 톰은 언제 일어났는지 나비 칼을 나무에 던지며 놀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식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씹었다. 이윽고 스캇과 제레미도 텐트에서 기어 나와 자리를 잡고 시리얼을 먹기 시작했다. 스띠앙이 말했다.

“빨리 먹어. 악어 보러 가자.”

“악어? 근처에 악어가 있어?”

“응, 악어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 있어. 여기서 한참 가야 해. 다들 수영은 할 줄 알지?”

“그럼, 수영 좋아하지!”

스띠앙에 따르면 강을 건너고 모랫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 악어 지대가 나온다고 했다. 수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수영 바지만 입고 맨발로 스띠앙을 따라나섰다. 첫 번째 관문인 강 건너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살이 약한 곳을 골라 천천히 수영을 하면 건널 수 있는 넓이였다. 하지만 두 번째 관문인 모래사장부터가 문제였다. 나미비아의 뜨거운 태양이 달궈놓은 모랫길은 마치 프라이팬 같아서 잠시만 밟고 있어도 발바닥이 벗겨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그 옆에는 철조망 같은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긁히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발을 잽싸게 바꾸어 가면서 종종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우 고통스러웠다. 톰이 스띠앙에게 말했다.

“스띠앙, 얼마나 더 가야 해?”

“음, 이 속도로는 삼십 분 정도?”

“뭐라고? 삼십 분?”

“응, 그럼 뛰어갈까?”

스띠앙은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뛰어가니 발바닥의 불타는 고통은 줄어들었지만 하늘을 향해 서 있는 가시들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스띠앙은 참 빨리도 뛰어갔다. 학창시절에 오래달리기를 정말 싫어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뛰어둘 것을 그랬다. 한참을 달려가니 스띠앙이 바위 이끼를 밟고 서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널브러져 발바닥에 박힌 가시들을 뽑고 긁힌 상처들을 매만졌다. 전원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스띠앙은 다시 세 번째 관문으로의 진군을 시작했다. 계곡이라고 해서 간단한 곳인 줄 알았는데 사람 키보다 더 높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바윗길이었다. 바위의 거친 표면을 밟을 때마다 불모래에 데인 발바닥이 쓰려 왔다.

“헉헉, 스띠앙. 다 온 거야? 악어는 어딨어?”

“음, 지금 찾아보는 중인데, 없는 것 같아.”

“뭐? 악어가 없어?”

“응, 저번엔 있었는데, 오늘은 없네?”

체력이 좋고 튼튼한 톰과 스캇도 어지간히 지쳤던 것 같다. 하긴 체력이 좋다고 발바닥까지 튼튼할 수는 없겠지. 게다가 마실 물도 없었다. 우리는 스띠앙에게 이쯤에서 방향을 바꾸자고 했다. 스띠앙은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의 진행 방법을 설명했다.

 

“저기 큰 바위들 사이 보이지? 저기로 뛰어들면 돼.”

“저기로 그냥 뛰라고?”

“응, 저기가 물이 깊고 빠르거든. 저리로 뛰어들면 물살을 타고 아까 오면서 봤던 곳까지 갈 수 있어. 흑인들이 놀고 있던 곳 말이지. 내가 먼저 뛸 테니까 다들 따라서 뛰라고.”

 

만일 맨정신에 스띠앙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개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띠앙의 세 관문을 지나면서 정말이지 지쳐있었다. 뛰지 않고 되돌아가려면 그 세 관문을 다시 지나야 한다. 현기증이 났다. 특히 가시덤불 불모랫길은 진심으로 싫었다. 수영을 잘하는 스캇과 제레미는 스띠앙을 따라가자고 했다. 이미 3:2다. 톰과 나도 들었다.

‘아, 나는 살면서 계곡 수영을 해본 일이 있었던가? 아, 나는 수영장 속 개구리에 불과했구나. 아, 괜히 까불었다. 아아, 나는 여기까지인 건가?’

 

바위 사이의 물살은 엄청나게 깊고 빨랐다. 뛰어들자마자 물살에 휩쓸렸는데,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떠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코로는 물이 들어왔다. 그 와중에 떠내려가는 속도는 빨라서 몸이 바위들에 가서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혔다. 생에 대한 애착은 참 강한 것인지, 그 와중에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최대한 뒤로하고 사지를 최대한 앞쪽으로 뻗었다. 바위들을 조심하면서 숨을 참자고 생각하는데, 물살이 약해지고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급한 숨을 몰아쉬면서 주변을 보니 앞에 흑인 녀석이 바위 위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에는 그 손이 부처님의 손처럼 느껴졌다. 손을 한껏 내밀어 녀석을 움켜잡았는데, 이 녀석이 그만 내 손을 놓쳐버렸다. 별수 있겠나. 더 떠내려가야지. 그래도 물에는 뜰 수 있고 호흡도 가능하니 좀 더 물살이 약한 곳까지 가서 수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흑인들이 외쳤다.

“크로코다일! 크로코다일!”

‘민재! 나가야 돼! 헤엄을 쳐라!’.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수영을 했다.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오니 스띠앙이 깔깔거리면서 나를 맞아주었다. 조금 더 떠내려가면 늪지대 입구로 가게 되는데, 악어의 상습출몰지역이라고 했다. 그래서 흑인들이 더 떠내려가면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른 거라고 했다. 하하 어쨌든 살았다.

스띠앙식-사파리1

네 번째 멤버 톰_민재

우리 다섯은 열흘 정도를 함께했다. 세 곳의 캠프사이트에서 머물렀고 스무 번이 넘는 식사를 함께했다. 다들 좋은 친구들이었지만 앞으로 함께 여행하고 싶어지는 사람에 대한 선호는 존재하는 법. 스캇과 나는 이따금 누구와 남은 여정을 함께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처음 톰을 봤을 때, 그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하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톰을 봐. 이종격투기 선수 같아.”

“맞아, 하지만 그는 여행을 할 줄 아는 친구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우리는 스띠앙과 보츠와나의 국경에서 작별을 했다. 스띠앙을 데려갈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우리는 북진을 할 것이고 스띠앙은 나미비아의 해변에서 기타를 치며 연말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스띠앙이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도록 주유소에 들렀는데, 그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빈트후크로 향하는 고급 세단의 주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나미비아의 사막지대를 넘어 이제 오카방코 삼각주가 있는 비옥한 땅 보츠와나다.

외롭게-서있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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