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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자살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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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글 _ 서울대 사회학과 05 김강민

흉흉했던 올 봄

올 봄에는 여러 가지로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 저는 카이스트 학생 네 사람의 죽음이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난 1월, ‘로봇영재’로 불리던 한 학생의 자살을 시작으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과학고 출신을 포함한 세 명의 학생이 연달아 죽음을 택했죠. 카이스트 학생 4명의 잇따른 자살로 ‘징벌적 수업료제’, ‘수업 재이수 횟수 제한’ 그리고 ‘전면 영어 강의’ 등 카이스트의 대학개혁은 전 사회적인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서남표 총장의 개혁안을 전면 폐기하라며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반대로 일부 사람들은 서남표 개혁안이 학생들이 자살한 진짜 이유가 아니라며 반대하기도 하였습니다.저는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더 넓은 범위의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자살은 과연 개인적인 문제일까요, 사회적인 문제일까요?’

베르테르 효과: 자살은 마음의 문제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현상의 이름은 독일 문학가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소설의 결말에서 베르테르는 사랑에 실패한 슬픔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마는데, 소설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자 베르테르를 따라서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2008년 10월 유명 탤런트 최진실 씨가 목숨을 끊은 뒤 자살률이 전달보다 60% 정도 증가하여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지요. 다른 말로 ‘자살 전염’이라고도 부른답니다. 한 사람의 자살이 소설이나 신문,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서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는 의미이지요.

대체 왜 한 사람의 자살이 다른 사람들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인간은 쉽게 흔들리는 약한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상식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대답이지요. 베르테르 효과에서 ‘타인의 자살’은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들 중 하나인 것입니다.

베르테르 효과, 한 사람의 자살이 주변에 전염되는 현상은 자살이 개인의 심리적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삶의 불행은 사회로부터 온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실업이나 파산 등 ‘경제적 불행’이나 배우자의 변심이나 부모의 이혼 같이 ‘가족관계에서 오는 불행’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불행들은 항상 똑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달리 나타나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살의 ‘사회적 원인’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실업이 자살의 원인이 되었을까요? 서양 중세의 신분사회를 생각해봅시다. 부모의 신분을 자손들이 물려받는 시대이니 농노의 자손들은 부모와 마찬가지로 농노가 됩니다. 그리고 땅을 경작하거나 영주 집안에서 시중을 들 수 있겠죠. 이런 시대에는 기본적으로 실업이 존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자살이라는 행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외부 원인은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실업이 없는 시대에는 실업은 자살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중세 신분사회와 같이 부모의 신분을 물려받는 사회에서 실업은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살론: 자살의 사회적 성격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은 자살이라는 행위를 통계를 사용하여 치밀하게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자살론>이라는 책인데, 논술을 준비할 때 많이 얘기되는 책이기 때문에 이미 들어본 분도 많으실 겁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분명 개개인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죠?

뒤르켐은 이걸 잘 알면서도 ‘개인의 심리적 측면’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살률이라는 통계치를 검사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는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의 수를 나라 또는 도시마다 계산한 결과입니다. 만약 어느 두 지역의 자살률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 두 지역에는 이러한 자살률 차이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는 개인의 심리와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자살의 사회적 원인’이 됩니다.

중세와 현재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중세는 농노가 있는 신분사회였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았겠죠. 또한 당시에는 기독교가 믿어져 종교적인 강제도 많았습니다.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기적으로 고백성사에 참여하는 등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동일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사회는 잘 통합된 편이었습니다.

반면 현대에는 주된 생활공간이 대도시로 옮겨갑니다. 또한 기존의 가톨릭을 개혁한 개신교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도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대도시에서는 공동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삭막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더욱 개인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뒤르켐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이 오히려 규범을 잃고 방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로 올 수록 자살이 폭증하는 것을 사회의 병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카이스트 사태? 무한경쟁 때문!

뒤르켐에 대한 논의에 이어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을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 기왕에 ‘자살에는 사회적 원인이 작용한다’는 논의를 살펴보았으니 이런 관점을 적용해 보도록 하지요.

2006년 서남표 총장이 취임한 이후 카이스트는 학생들의 공부 부담을 늘리는 강력한 개혁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징벌적 수업료’의 경우 학점이 3.0 미만(평균 C학점)인 학생들에게 최대 600만원까지 수업료를 내도록 했습니다. 카이스트는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30%가 C학점을 받는 상대평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진 누군가는 반드시 수업료를 내게 됩니다.

영어 수업 확대 방침으로 영어 수업 비중은 2011년을 기준 91%까지 높아졌다고 합니다. 또 학점을 잘 받지 못한 과목에 대한 재수강은 졸업할 때까지 3회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 정도면 전국 모든 대학을 통틀어 가장 “빡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남표 총장의 대학 개혁 방안이 학생들의 무한경쟁을 자극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처럼 경쟁이 가열된다면 카이스트 내부에서 공동체의 통합은 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요. 만약 어떤 학생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 그 학생을 붙잡을 힘도 함께 약화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학교 학생들이 자살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집니다.

‘무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공동체의 통합을 해친다’는 생각은 이런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카이스트 뿐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과 ‘정규직 취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으로까지 논의를 확대시키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 오히려 규범을 잃고 방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로 올 수록 자살이 폭증하는 것을 사회의 병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개개인의 속사정을 간과할 수 있다

앞에서 뒤르켐은 개인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사실 이러한 경향은 찬반논의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카이스트의 경우도 개인의 측면에서 뒤집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우선 자살을 택한 네 명의 학생들 중 실제로 ‘징벌적 수업료’를 납부한 학생은 두 명뿐이었습니다. 또 카이스트 비상학생총회에서 열린 ‘서남표 총장에게 개혁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하자’는 투표에서는 참석인원 852명 중 317명이 반대하였습니다. 즉, ‘빡센’ 경쟁 때문에 힘들긴 한데, 그것 때문에 이 학생들이 목숨을 끊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투표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학생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이들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모르는 사람들이 자살의 원인을 쉽게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남표 총장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징벌적 수업료(서남표 개혁) 때문에 연쇄 자살이 발생했다’는 판단에 근거를 둡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자살과 서남표 개혁 사이의 연관성이 불분명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징벌적 수업료를 폐지해도 학생들은 계속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살의 개인적 성격에 주목할 때 가장 먼저 제시되는 해결책은 심리상담입니다. 학생 스스로의 정신력을 길러주는 것이죠. 아닌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살이 이어지면서 카이스트는 학생들에 대한 심리 상담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뭐가 맞다는 거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남겨드릴까 합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사회’에 두는 생각은 오늘날에는 거의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비단 이 글에서 다룬 ‘자살’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현상에서도 적용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회적 원인만을 강조하게 되면, 예를 들면 비극적인 자살을 택하는 개개인의 마음은 잘 설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즉, 사회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개인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을 둘 다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글에서 두 입장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두 입장이 모두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지만, 사실 두 입장 중 어느 쪽에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의 원인이 ‘복잡한 개인의 사정’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경쟁의 원리를 축소하자’는 대책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두 입장이 대립하는 셈이죠.

독자님들께서“그래서 뭐가 맞는 건데?”라고 질문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죠? 문제에 관해서 차분하게 고민한다면 독자님들 스스로 훌륭한 결론을 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

생각해볼거리

다른 현상도 개인/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해 봅시다.
예를 들면 최근 이슈인 ‘오디션열풍’을 볼 수 있죠.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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