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특집기사

[27호] 고함쳐라! 목소리를 잃은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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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혁

고함쳐라!

목소리를 잃은 청소년

 열여덟 태훈이의 일상으로 본 청소년과 정치

 

“에라이 죽일 놈들!” 뉴스를 보던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는 하루에 말 몇 마디 안 하는 아버지는 선거철만 되면 말이 많아진다. 이 후보는 이래서 문제고 저 후보는 저래서 문제고 그 후보는 그래서 문제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세상은 문제 덩어리다. 아버지 말의 핵심은 이거다. “정치가 썩었어!” 어릴 때부터 듣던 이 말이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일까? 정치는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오래도록 썩어있는 걸까. 선거 때만 되면 썩었다 썩었다 하면서 왜 바뀌는 건 없는 걸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MODU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정치는 뭐죠? 선거는 왜 하는 거죠? 우리는 투표를 못하나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이번 달 MODU의 커버스토리는 바로 청소년과 정치! 청소년과 정치는 너무 먼 이야기 같다고? ‘법과 정치’는 사회탐구 과목 아니냐고? 사람들은 정치라고 하면 국회나 대통령을 떠올리거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뭔가 ‘더러운 것’을 떠올려. 그렇게 생각하면 정치는 정말 나와는 관계 없는 먼 일이지. 하지만 원래 정치라는 건 일상적인 거야. 권력을 갖고 결정하는 모든 걸 정치라고 해.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보통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 식탁을 결정하는 엄마의 권력은 어마어마해. 엄마가 차리는 밥상도 정치가 될 수 있어. 그런데 가끔 우리는 반찬투정을 하기도 하잖아? 그러면 저녁 메뉴가 바뀔 때도 있지. 이것도 정치의 중요한 부분이야. 이런 걸 권력에 대한 견제라고 해. 그렇게 생각하면 청소당번을 정하는 일, 어디에 앉을지 자리를 정하는 일을 전부 정치라고 할 수 있지.

정치를 제도로 만든 것이 ‘선거’야. 권력을 공정한 방법으로 나눠주자는 거지. 선거제도가 없을 때를 생각해 봐. 그때는 왕족이나 귀족이 모든 권력을 가졌어. 정말 불공평한 세상이었지. 길가다가 이유 없이 얻어 맞거나 가진 것을 뺏겨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니까. 그런 불공평함을 막기 위해 선거제도가 도입됐고, 공평하고 공정한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어. 결국 정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인 거야.

아직 와 닿지 않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 이번 호 MODU는 18세 태훈이가 학교에서 겪는 이야기를 소개할 거야. 말했듯이 정치는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태훈이의 이야기에도 정치가 녹아있지. 오늘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

 

“학생회장은 누구인가”

고등학교 2학년은 올해가 없다. 내년을 사는 기분이다. “내년이 수능이다”, “수능이 코앞이다”, “내년엔 늦다.” 공부…성적…대학… 늘 듣는 말이라 새롭지도 않다. 다행히 나는 모범생이다. 아니, 모범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적이 좋다. 학교에선 성적이 좋은 학생을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가는 게 목표다. 물론 지금 점수로는 불안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는 성격도 아니면서 세상 일에 관심이 많다는 거다.

학기 초에 반장선거가 있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치며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반장선거가 주는 무게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분명 반장선거를 할 때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누가 반장이 되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학생들도 관심이 없고 선생님들도 귀찮긴 마찬가지다. 처음 고2가 되던 날 담임 선생님은 임시 반장이 필요하다며 ‘성적을 보고’ 나를 반장으로 지목했다. “일단 임시반장은 태훈이가 하자. 반장선거는 다음 주에 있을 거야.” 그리고 1학기가 끝나가는 지금도 반장은 나다. 다음 주에 있을 거라던 반장선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장선거 날 선생님이 말했다. “원래는 오늘 반장선거를 해야 하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태훈이가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선거하고 이러는 거 귀찮고 부끄럽잖아? 너희들 생각은 어때?” 선생님은 분명 ‘너희들 생각은 어때’라며 물어봤지만 저건 누가 봐도 강요다. 반 친구들은 별로 관심도 없다. 몇몇이 “좋아요”라며 동의했다. 그렇게 흐지부지. 나는 지금 2학년 3반의 반장이며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께 대한 인사를 주도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더 이상한 건 학생회장 선거였다. 어느 날 “반장, 부반장은 모두 회의실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무슨 일인가 하여 가 봤더니 학생회장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말은 이러했다. “너희가 오늘 정해야 할 게 있는데, 학생회장 선거의 방식에 대해서다. 첫 번째 안은 직접선거고 두 번째는 간접선거다. 직접선거는 전교생이 전부 투표에 참여하는 거고 간접선거는 여기 있는 너희들이 학생회장을 뽑는 거다. 직접선거는 모두가 참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곧 모의고사가 다가오는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유세하고 그러면 시끄러울 수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 할지 생각할 시간을 1분 주겠다. 1분 후에 바로 결정하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렇게 갑자기?! 이런 걸 결정하려면 미리 말해서 반 친구들 의견 정도는 모을 시간을 줬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저 설명은 또 뭐지. 그냥 대놓고 ‘간접선거로 하자’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결국 그 자리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간접선거 방식이 결정됐다. 반장도 그렇게 뽑더니, 학생회장도 이렇게 뽑는구나…

학생회장 후보 1번은 3학년 중에 내신 성적이 제일 좋은 형이라고 했다. 2번 형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후보 1번이 학생회장을 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수시모집 원서 쓸 때 한 줄을 더 채우기 위해서’다. 다들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본인도 별로 숨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두 후보의 고만고만한 연설이 끝났다. 압도적인 1번의 승리. 공부 잘~하는 반장들이 공부 잘~하는 형에게 투표한 결과다.

1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문득 옆의 짝에게 물었다. “야, 너 우리학교 학생회장 이름 아냐?” “아니? 누군데?” 사실 나도 잘 기억이 안 난다.

 

[MODU의 한 마디]

청소년은 정치의 경험이 없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반장선거의 설렘은 중학교를 지나며 사라지고,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생회장을 대충 뽑기도 한다. 수시모집에 한 줄 경력을 넣기 위해 학생회장이 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이들이 학생회장이 되면 공부하기 바쁘다. 학생회는 이름뿐인 껍데기가 된다. (투표도 직접 하고, 학생회장이 활동도 열심히 하는 학교는 정말 복 받은 학교다.) ‘정치에 대한 경험이 없다’를 달리 말하면,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다’가 된다. 집에서 정해주는 대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일을 스스로 정하는 게 정치의 핵심이라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총체적인 ‘정치 없음’의 상태다.

 

“유관순도 청소년이었는데…”

법과 정치 시간에 선생님이 물었다. “어이 경호, 국무총리가 뭐 하는 사람이야?”,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사람이요.” “맞아. 그럼 창수, 우리나라 국무총리 이름이 뭐야?” “…네?” 반에서 성적이 좋은 편인 창수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통할’이라는 어려운 단어는 잘 대답하면서 요즘 실시간으로 네이버 메인화면을 장식하는 국무총리 이름은 모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책에 안 나오니까.

학교 밖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나오는 게 아니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씩 이 무관심의 틈으로 이상한 말들이 파고 들어올 때도 있다.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한 마디씩을 던진다. “노무현은 있어서는 안 될 대통령이었어. 그 사람이 북한에 퍼준 돈만 몇 백억이야. 그 돈으로 북한이 핵폭탄 만들었잖아”, “이명박은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야. 생긴 걸 봐.” 그런 말을 던질 때면 교실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진지하게 듣기도 한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거짓들이 진실로 둔갑하는 공간이 교실이다.

우리 반에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준형이가 있다. 그 친구는 가끔씩 이과 친구들을 만나 잘난 척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너 그때 우리나라가 북한에 퍼준 돈이 얼만 줄 알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답답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잘난 척하는 놈이 되긴 싫어서 잠자코 있는다. 이과 학생들의 반응은 대개 시큰둥하다. “야, 우리는 그런 거 몰라도 돼. 그런 건 문과 애들이나 아는 거지” 아니면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알아 듣지도 못해. 우리가 주기율표 이야기하면 좋겠어?” 자뻑과 자괴를 오가는 대응에는 아랑곳 없이 준형이는 그들을 가르치려 든다. 관심 없음에는 문과 이과 차이가 없다.

생각해보면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에서 만세를 부른 건 지금 나와 같은 열여덟 살 때다. 역사적으로 봐도 4.19, 5.18, 6월항쟁처럼 역사적인 정치의 현장에는 항상 청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무언가가 잘못됐을 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은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다. 월드컵 부정심판에는 분노해도 우리나라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나면 ‘내 일이 아니’라며 공부만 하지는 않을까. 어른들은 정말 이런 모습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MODU의 한 마디]

정치 참여는 이미 청소년의 주요 일탈 가운데 하나다. 선생님들이 항상 경계하는 것도 이것이다. ‘촛불집회는 나쁘다’, ‘댓글을 달지 마라’, ‘관심을 갖지 마라.’ 어느 순간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건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게 아니라,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게 됐다.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경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가 미성숙이라면, 100년 전 청소년들은 왜 그렇게 성숙했던 걸까. 30년 사이 청소년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이나 미성숙해진 걸까. 청소년더러 정치에 관심 좀 가지라는 ‘꼰대짓’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것도 청소년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관심 갖지 말 것을 강요하거나 ‘대학 가서, 나중에 관심 가져도 된다’고 설득하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너는 어느 편이냐!”

우리 반에는 정치 전문가가 있다. 역사 전문가를 자처하기도 한다. 반에서 가장 말 많은 그 친구의 이름은 병충이다. 병충이는 항상 “훽트”를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팩트(fact)의 에프발음만 저렇게 강조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빨갱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감성팔이’야.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하려고 눈물을 짜내는 거지. 지금 여기서 훽트는 말이야…” 병충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열에 하나 정도는 ‘훽트’가 맞다. 나머지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그냥 ‘구라’를 치는 거면 크게 신경쓸 것도 없다. 어차피 구라가 판치는 세상인데 뭐. 그런데 병충이의 언어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세상의 여자는 모두 다 나쁜 존재이며, 우리나라 국민 절반은 몰래 북한을 찬양하고 있다. 그걸 ‘훽트’랍시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는 꼴이 우습다. 나는 병충이가 쟤 한 명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어쩌다 재수없게, 어마어마하게 낮은 확률로 저런 인간을 반 친구로 둔 거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병충이가 있다. 참다 못해 병충이에게 한마디 한다. “야,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좀 조용히 해.”

병충이가 하는 말은 인터넷 댓글에서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병충이 혼자 저 많은 댓글을 다 다는 게 아니라면 분명 저런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댓글을 보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뭐 그렇게 서로 원한이 많은지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단골 소재는 지역감정이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이 난무한다. 모니터 너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들? 나와 같은 고등학생? 아니면 나보다 어린 학생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뉴스를 보고 있다. 선거철의 아버지는 거칠다. “저놈이 당선이 되면 안 되는데… 저런 게 선거에 나왔어!” 아버지가 저런 것들이라 싸잡아 욕하는 이들은 특정 지역 출신이다. 이렇게 좁은 나라 안에서 저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편을 갈라서 싸울 이유가 있나 싶다. 문득, 웃으며 인터넷 댓글을 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MODU의 한 마디]

정치에 대해 알려주는 이도 없고, 경험해 본 일도 없다. 이런 상황이 왜곡된 정치 의식을 낳기도 한다. 왜곡된 정치 의식은 다른 게 아니라 ‘폭력’이다. 교실이나 집에서 가르쳐 주는 이가 없으니 댓글이나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치와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알다시피 인터넷 공간에는 여과되지 않은 언어가 많다. 특히나 지역이나 이념에 따라 편 가르는 폭력의 언어가 대부분이다. 정치적 미성숙의 단면이다. (물론 다른 나라라고 인터넷의 상황이 더 나은 건 아니다.)

청소년을 어리고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놨지만, 결국 부작용은 있다. 어른들의 패싸움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는 ‘관용’이 부족한다고 말한다. 관용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테러가 있었다. 극우주의자가 폭탄테러와 총기난사로 78명을 살해한 것이다.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당시 오슬로 시장은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죄인을 벌할 것입니다. 더 관대해지고 더 관용을 베풀고 더 민주적이 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증오와 분노에 똑같이 분노로 대응하면 미래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저 연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돌이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증오와 분노는 고스란히 청소년들이 물려받고 있다.

 

“결국 피해는 우리가 본다”

오늘은 월요일. 강당에 모여 조회를 하는 날이다. 친구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건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다.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은 짧으면 40분, 길면 1시간 반이다. 내가 입학하기 전에는 2시간 반을 이야기한 적도 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강당에서 학생들이 서있다가 픽, 픽 쓰러지는데도 꿋꿋하게 훈화말씀을 하셨다고 하니 대단한 분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난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좋다. 일단 내가 싫어하는 월요일 2교시 수학 수업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1시간 반 훈화를 한 날은 교실로 돌아오니 이미 2교시가 끝나 있었다. 물론 좋은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사실 교장선생님 말씀이 재미있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큰일나겠지) 가끔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 노인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더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는 “공부보다 중요한 게 많다”로 요약할 수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세상에는 분명 공부보다 중요한 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막상 우리는 공부 말고 달리 할 게 없다. 해본 적도 없다. 뭔가 다른 걸 하기 위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허락을 받는 건, 분명 공부해서 대학가기보다 어렵다.

아쉽게도 훈화말씀이 빨리 끝났기 때문에 수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수학선생님이 며칠 전 선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러이러한 것들이 달라질 거라고 했다. 교육정책도 아마 저러저러하게 바뀌게 될 것이고, 여태껏 하던 것들 중에 상당수는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는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선거 공약을 보면 무엇 하나 나와 관련 없는 게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수시로 교육정책이 바뀌어서 고생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데 한 마디 거들기가 너무 힘들다. 선거 기간에 후보들을 보면 간이라도 빼줄 것 같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별 짓을 다 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니다. 하루에 명함을 만 장 넘게 뿌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한 장도 받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그들에겐 그렇게 중요한 비즈니스 상대가 아닌 것이다.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도 투표권을 주면 좋겠다. 그럼 선거 기간만이라도 우리가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겪을 일을 정할 때 내 의견이 반영되면 좋겠다는 바람은 정말 너무 과분한 것일까.

여름 햇볕이 따갑다. 어젯밤 ‘내년부터 수능에서 고전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고 한다. 고전을 잘 가르치는 학원을 두고 아이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MODU의 한 마디]

“공부만 잘 한다고 다가 아니다.”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 늘 듣는 말이지만 인간이 먼저 될 기회를 잡는 건 쉽지 않다. “그럴 시간에 공부를 한 자 더하라”는 말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모범생’은 ‘성적이 좋은 학생’이고, ‘타의 모범이 되었다’는 말은 ‘남들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이 자기 일을 생각하고 결정하는 건 힘들다.

기성 정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 당선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게 교육관련 공약이다. 늘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바뀐다. 하지만 그 안에 청소년들 자신의 목소리는 없다. 스스로의 일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언제나 정책의 피해자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열여덟 태훈이가 본 세상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청소년으로 가득했어. 공부나 성적 외에 다른 가치들은 쉽게 무시되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아. 민주주의를 학습해야 할 학교에서는 ‘반장선거’조차 제대로 치르지 않고, 청소년에게는 “바깥 세상에 관심을 끊을 것”을 요구해. 정치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왜곡된 정치관을 갖는 이들도 생기고, 어른들의 논리를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해. 십 년이 넘게 ‘정치가 썩어있는’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이겠지.

“가만히 있으라.” 생때같은 목숨을 수백이나 앗아간 한 마디였어. 이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아. 그렇다고 반항을 하라는 게 아냐. 청소년 시기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때라는 건 명확하니까. 다만 자기가 겪을 일들이 정해질 때 한번 더 생각해 보라는 거야. 거듭 말하지만 정치는 일상적인 거거든. 남이 정해주는 대로만 산다는 건, 좀 기분 나쁜 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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