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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사막에서 만난 에메랄드-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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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사막에서 만난 에메랄드

아프리카 15,000km, 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5

 

사막의 온천_민재

아침 일찍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더워서 일어난 거다. 나미비아의 사막지대는 해가 뜨기만 하면 금세 달아오른다. 스캇과 윤성이는 아직 자고 있다. 이 추세라면 금세 텐트가 찜통이 될 것 같아 살금살금 기어 나왔다. 일찍 일어난 김에 친구들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하려고 차의 트렁크를 열어 조리 도구를 꺼냈다. 공용 부엌 쪽으로 도구들을 옮기는 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미비아에서의 첫 숙소는 시설이 매우 훌륭했다. 고급 리조트 수준의 숙박시설과 식당, 취사시설과 수영장 등이 있었고 모든 것이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들을 위해서는 저렴한 가격에 캠핑을 할 수 있는 잔디밭을 제공하고 있었다. 조금 더운 것이 흠이었지만, 여기는 아프리카니까. 스파게티용 토마토소스 통조림을 열며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헉헉, 좋은 아침!”

“하하, 좋은 아침! 좀 덥지? 이리 와!”

스파게티 면이 다 삶아질 즈음 스캇이 숨을 몰아쉬며 부엌으로 왔다. 무척 더웠는지 웃통을 벗고 타일이 깔린 개수대 위에 벌러덩 눕는다. 텐트가 있는 곳을 보니 태양이 그야말로 작열하고 있다. 찜통 속에 있을 윤성이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스파게티가 다 되었는데도 윤성이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식구인데 깨워야지 싶어 태양 아래를 가로질렀다. 텐트를 열어젖히니 열기가 훅하고 나온다. 괴로운지 심하게 일그러진 윤성이의 얼굴이 우스웠다. 이 날씨에 침낭까지 덮고 있다.

“야! 일어나! 밥 먹자. 이러다 죽어!”

몇 차례 몸을 흔들어 깨우자 그제야 윤성이는 땀으로 범벅이 된 눈을 뜨고 말했다.

“몇 시야? 너무 더워.”

“아침이야. 그늘 가서 밥 먹어!”

“으으, 금방 나갈게. 너무 더워.”

윤성이를 버려두고 스파게티를 먹었다. 뜨거운 것이 속에 들어가자 한층 더 더웠다. 스캇은 묵묵히 포크 질만 계속 했다.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든 더위였다. 윤성이 몫을 남겨두고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 몸을 식히고 싶어 차가운 물을 틀었다. 서늘한 물에 머리를 적시니 살 것 같았다. 샴푸로 머리를 박박 문질렀다. 그런데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 뭐야 왜 뜨거워.”

분명 파란색인데? 설마 수도꼭지를 반대로 붙여놨나 싶어 빨간 쪽으로 돌렸다. 그랬더니 이번엔 펄펄 끓는 물이 나왔다. 화들짝 놀라 원래대로 돌리자 이전의 뜨듯한 물이 나왔다. 온천이 나오는 캠핑장이라더니 화장실에도 온천수를 틀고 있구나! 차오르는 수증기에 숨이 턱턱 막혀 대강 씻고 나왔다. 눈앞에 수영장이 보여 그대로 뛰어들었다. 뜨겁다. 이번에도 온천수였다. 사막 한가운데 온천이라니! 넓은 수영장에 아무도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수영장이라니… 이곳에 정녕 탈출구는 없는 것인가? 저 멀리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저기로 가자.

 

악마의 찜통_윤성

빨간색 디지털 온도계가 섭씨 87도를 가리키고 있다.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비 오듯 했다. 도저히 더는 있을 수가 없어서 냉탕에 몸을 담그러 뛰쳐나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 보아도 밖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문고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크게 몇 번 들이쉬다 정신을 잃었는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앞에 민재가 있었다.

“일어나서 밥 먹어!”

꿈이었구나. 얼굴을 괸 팔이 땀에 젖어 미끈거렸다. 현실 세계에서도 숨쉬기가 무척 어려웠다. 어서 그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손을 더듬어 안경을 찾아 쓰고 지퍼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서자 자외선 샤워가 시작됐다. 세상이 전부 하얗다. 눈을 뜰 수가 없어 망원경처럼 손을 모아 눈을 가린 뒤에야 겨우 앞을 볼 수 있었다. 사막이라더니, 정말 화끈했다.

상상할 수도 없이 강렬한 햇살과 뜨거운 온도, 거기에 완벽에 가까운 건조함까지. 정말 지독한 곳이다. 눈을 좀 더 붙이고 싶어 그늘을 찾아다녔다. 그늘에 세워둔 차로 갔다. 창문이 전부 열려있는 차 속 온도계를 보니 41도, 여기는 틀렸다. 햇빛 아래서 타 죽는 뱀파이어는 이런 심정일까, 시원한 그늘을 찾아 시체처럼 돌아다녔다. 샤워실, 화장실, 주방 등 작은 건물의 그늘은 도움이 안 된다. 리조트의 1층 로비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스캇과 민재가 그곳에 있었다.

 

에메랄드와 친구들_민재

얼음물을 마셔대며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고 있는데, 저 멀리서 수영복 차림의 백인 아가씨들 한 무리가 들어왔다. 딱 보니 뜨거운 수영장 체험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안녕! 수영장이 참 따뜻하지?”

“응, 여기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구나!”

“하하하. 이쪽으로 와! 여기는 시원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네 명의 미국인과 한 명의 벨기에 출신 아가씨들이 아프리카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남아공에서 차량을 빌려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폭포까지 갔다가 되돌아갈 예정이라고. 깔깔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 멀리서 스캇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타는 땅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스캇에게 맥주 한 병을 쥐여주고 에메랄드와 여자애들을 소개해주니 그제야 화색이 돌면서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곤 한풀이라도 하듯이 속사포처럼 영어를 쏟아냈다. 다수의 영어권 이성을 만난 스캇의 표정이 풍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친김에 여자애들과 저녁까지 먹기로 했다. 스캇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다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래, 너도 여러 가지로 답답하긴 했겠지. 영어 잘 못해서 미안하다. 빨리 배울게.

 

동행_민재

“야 너 같이 가고 싶지?”

“음, 솔직히 그렇지.”

“알았어. 기다려봐.”

스캇은 영어권 이성을 만나면 숫기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종종 나의 친화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 어차피 스캇과 윤성 사이의 완충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바이다. 그리고 에메랄드와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함께하는 차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여행길은 더 안전해진다. 윤성이는 아마 괜찮다고 할 것이다. 나는 에메랄드에게 나미비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는 나미브 사막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나미브 사막까지 동행 어때? 너희가 보다시피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하하하. 우리가 나쁜 사람들이면 어쩌려고? 좋아! 내일 출발하자.”

“해치지만 말아줘! 부탁이야.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거다.”

옆 테이블에 있던 남아공 출신 크리스까지 합류했다. 이로써 우리는 모두 아홉 명, 차량은 석 대. 나미비아를 여행하기에 최고의 조합이다.

 

미국 여자들_윤성

그녀들이 남아공에서 렌트해온 자동차를 구경하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냉장고에 물탱크까지 달린 차라니. 차도 대단하지만 이런 차를 빌려서, 남자도 없이 여자들끼리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이 차 빌리는데 얼마나 줬어?”

“한 달 빌리는데 4,500달러.”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아.”

“응, 다섯 명이 나누면 괜찮은 가격이지.”

그녀들은 2인 1조로 자동차 천장에 올라가 텐트를 설치하고, 테이블을 꺼내서 펴고 접고, 심지어 타이어 공기압 체크도 직접 해냈다. 여자는 힘이 없으니 험한 일은 남자들이 도와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어쩌면 여태껏 속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숭? 그게 뭐지? 하는 듯한 그녀들의 쿨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정말 멋졌다.

그녀들은 온몸을 퉁겨 가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신이 나면 매번 그런 식이었다. 그녀들의 흥겨운 의식이 시작되면 남자들은 허허 웃으며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쩜 저렇게 솔직할 수가 있을까? 나이, 성별, 국적, 사회적 지위, 그 무엇도 그녀들을 말릴 수 없었다. 끓어 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 내는 그녀들의 방식이 참 건강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감정을 쏟아내는 것, 그게 그녀들의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면 눈을 끝까지 마주치고 이야기에 집중해 주었다. 존중과 배려심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놀 때는 미친 듯이 놀고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해진다. 유쾌하고 솔직하고 배려심 가득한 그녀들 덕분에 나미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스캇과 나 사이에 불편한 일이 생길 틈 역시 없었다는 것은 보너스다.

Ai-Ais캠핑장-아침의-모습

 

퍼스트드라이버의 수난_민재

우리는 사막의 온천을 떠나 세스리엠 국립공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거대한 나미브 사막의 한 부분인 세스리엠 국립공원에는 나미비아 사막에서 가장 큰 언덕인 ‘듄 45’와 ‘빅대디’ 가 있다. 국립 공원 내부는 초입부만 포장도로이고 나머지는 모두 모랫길이기 때문에 힘이 좋은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지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의 스바루를 캠프에 남겨두고 에메랄드네 차와 우리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가기로 했다. 뒷좌석에 크리스틴과 에리카를 태운 스캇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거칠게 운전했다.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고 싶은 것 같았다. 포장도로가 끝날 즈음 나는 스캇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저기 스캇, 이제부터는 사륜구동으로 바꿔서 운전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 내 생각엔 괜찮을 것 같은데? 난 운전 잘하잖아. 걱정 말고 즐기라고.”

결국 모랫길에서 우리의 차량은 5분을 채 못 달리고 멈추어 버렸다. 스캇이 재차 액셀을 밟아 보았으나 뒷바퀴는 모래 위를 헛돌며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갈 뿐이었다. 나는 소리를 질러 앞서 가던 차량을 멈춰 세웠고 트렁크를 열어 삽을 꺼내 모래를 퍼내기 시작했다. 스캇은 혼비백산하여 냄비 등을 꺼내 차 밑의 모래를 퍼내었다. 여자아이들은 깔깔거리면서 나뭇가지를 모아왔다. 이러한 일이 생길 경우, 박윤성은 일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로 정했는데, 덕분에 스캇의 당황한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주변의 모래를 제거하고 물을 뿌린 뒤 나뭇가지들로 지지대를 만들었다. 크리스가 시동을 걸고 나머지는 차를 밀었다. 커다란 엔진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들과 모래를 박차고 차가 빠져나왔다. 대략 한 시간은 씨름했던 것 같다. 스캇이 나를 쿡 찌르며 넌지시 차량을 어떻게 사륜주행으로 바꾸는지 물어왔다. 여자아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럴 때는 그냥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멋진 거다. 스캇은 신중하게 운전을 시작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는 크리스틴과 에리카에게 ‘너희를 만난 것이 이전보다 더 고마워지네’라고 했다. 다들 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다시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고 스캇의 표정도 다시 편해졌다.

스캇의-말썽

 

소셜한 새들_윤성

빵가루를 먹으려고 작은 새들이 모여들었다. ‘소셜위버버드(social weaverbird)’라고 크리스틴이 말했다. 소셜한 놈들, 정말 이름값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봇대와 나무에 커다랗게 얹혀져 있던 지푸라기 더미의 주인공이 바로 이놈들이다. 귀엽게 생긴 녀석들이 총총 뛰어서 가까이 왔다. 빵가루를 던지니 멀찌감치서 지켜보던 수십 마리도 푸드득 거리며 다 함께 날아들었다. 몰리가 손에 빵조각을 올려 팔을 뻗었다. 순식간에 새들이 손 위에 올라탔다. 몰리는 새들이 떠나갈까 봐 입을 막고 소리쳤다.

“어머, 어떡해!”

한 놈은 자리가 모자라 다른 놈의 등 위에 올라탔고 몰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행복해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사람만큼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또한 참 순수하구나.

몰리와-소셜한-새들

 

Dune 45로 가던 길_윤성

듄45번을 향해 가던 길, 차창 밖은 아름다웠다. 찻길 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모래언덕이 칼로 벤 것처럼 날카로운 음양의 대비를 보였다. 양지는 붉은색, 음지는 검정색이다. 극렬한 콘트라스트에 눈이 매료됐다.

DUNE45로-가는길

“아! 정말 좋다. 저런 콘트라스트가 너무너무 좋아.”

“맞아. 나도 정말 좋아해.”

내 유치한 감탄에 뒷자리에 탄 몰리가 맞장구를 쳤다. 항상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던 그녀다. 역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풍경 앞에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루브 아마다의 앳더리버(At The River)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가사에 모래언덕이라는 말이 나오는 데다가 분위기도 딱 알맞을 것 같았다.

“스캇, 음악 좀 바꿀 게. 듣고 싶은 게 있어.”

스캇의 소형 스피커에 내 아이팟을 연결했다. 볼륨을 최대로 놓고 눈을 감았다. 내 몸이 자동차 시트에 사르륵 스며들었다.

고음에서 지지직거리고 출력도 형편없는 싸구려 스피커로 듣고 있지만 상관은 없다. 익숙한 음악을 즐기는 것은 기억의 연장선에 있으니 음질 따위는 문제 되지 않는다.

‘If you fond of sand dunes and salty air,

quaint little villages here and there……’

(당신이 만약 모래언덕과 짠 공기, 그리고 여기저기의 작고 진기한 마을들을 좋아한다면……)

눈을 감으면 짠 공기와 진기한 마을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래언덕의 색이 달라져 있었다. 더 오묘한 색으로 붉게 변해 있었다. 이 음악을 듣는 이 순간이 너무나 완벽했다.

 

Dune 45의 기억_민재

“서두르자. 빨리 움직여야 석양을 보고 나올 수가 있어.”

“그러게, 이제 한 시간쯤 뒤면 해가 질 것 같네.”

“그래 그럼 바로 출발하자.”

우리는 듄45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 듄45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듄45는 일출, 빅대디는 일몰이라더니 해 질 녘의 듄45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리는 친구들의 얼굴도 주황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느릿느릿 듄45를 오르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해가 넘어가면서 시시각각 풍경이 변했다. 꽤 수다스러운 우리 집단도 저마다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처럼 조용히 석양을 감상하며 모래언덕을 올랐다. 나는 먼저 올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세상을 온통 물들인 지는 해의 주황빛이 점점 진해져 갔다. 스캇과 윤성이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는 맥주를 열어 건배를 했다. ‘멋지다’, ‘대단하다’와 같은 결코 그곳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몇 마디의 감상이 오갔고 우리는 조금씩 떨어져 앉아 각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것들은 자연을 넘어설 수가 없다고 했다. 위로는 넓은 하늘과 움직이는 구름, 아래로는 붉은 사막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야 전체에 주황빛 석양이 깔리고 있었다.나미비아-캠핑

 

스캇의 남성성_민재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어제 늦게까지 윤성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해가 채 뜨기도 전부터 요란스럽다. 내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자 스캇이 다그친다.

“접시들이 냄비에 끼어버리는 바람에 커피를 마실 수가 없잖아!”

“뭐라고? 이리 줘 봐. 비누 가지고 빼보게.”

“난 참을 수가 없다고!”

에메랄드들을 만난 이후로 스캇은 종종 과잉행동을 했다. 특히 스캇이 마음에 들어 한 에리카가 있으면 그 증상이 두드러졌다. 어제는 모래사장에 차를 처박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냄비 가지고 야단이다. 설거지를 하고 넣어둔 접시 네 개 중 두 개가 냄비에 끼인 모양이다. 내가 비누를 들고 냄비 속에 있는 접시를 빼려고 하는데, 스캇이 차에서 도끼를 가져왔다. 그리곤 내 손에서 냄비를 낚아채어 도끼로 퍽퍽 내리찍었다. 결국 플라스틱 접시 두 개는 냄비 안에서 깨어졌고 냄비에는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 스캇은 깨어진 플라스틱 접시 잔해를 버려두고 도끼와 냄비를 든 채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떠났다. 아침부터 봉변을 당한 윤성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아이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다. 나는 깨어진 접시를 치우며 내뱉었다.

“이제 한 명은 접시 없이 밥 먹게 생겼네.”

샤워를 하고 식사를 간단히 마친 뒤, 책을 들고 멀리 떨어져 있는 캠프사이트의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스캇과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 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관절 왜 저렇게 망아지처럼 날뛴단 말인가? 어제는 차량을 모래에 처박고 오늘은 도끼로 접시를 깨었다. 그리고 나와 윤성이를 대하는 태도는 전과 다르게 조금은 건방졌고 약간은 공격적이었다. 게다가 결코 사과를 하지 않았다. 누구는 거칠게 행동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나. 그의 행동이 미국 여자애들을 반하게라도 하면 모를까. 여자아이들 역시 스캇의 거친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람살라에서 보았던 스캇과 나미브 사막의 스캇은 다른 사람이었다. 스캇에 대해 더 생각하면 그가 미워질 것 같아 다시 책에 집중하려는데, 윤성이가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좀 짜증 났지?”

“아니, 뭐. 스캇 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 다행이네. 난 오늘 아침에 스캇한테 조금 실망했거든.”

“하하, 무슨 실망까지 하고 그래.”

윤성이는 스캇과 나름의 갈등관계 속에서 있어서 그랬는지 스캇의 행동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다람살라의 스캇과 남아공의 스캇, 그리고 나미브 사막에서의 스캇을 비교해가면서 이야기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조금 개운했다. 윤성이는 스캇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쉬운 작별_민재

나미브 사막에서의 2박 3일이 지난 뒤, 우리는 에메랄드들과 헤어지기로 했다. 에메랄드들은 다른 곳에 갔다가 빈트후크로 향한다고 했다. 스캇이 매우 아쉬워했지만 나는 더 이상 스캇의 과잉행동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경로를 바꾸지는 않았다. 연이 닿는다면 빈트후크에서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나의 말에 스캇은 에메랄드들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고 재차 연락을 달라고 했다. 우리는 사막지대에 있는 휴게소까지 함께 간 뒤에 그곳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사막의-단체-사진

윤성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더니 단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 아홉 명이 함께 나온 유일한 사진이다. 가야 할 길은 멀었으나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작별이 길어졌다. 에메랄드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친구의 사진을 찍었고 나는 에메랄드, 몰리와 전에는 하지 않던 장난을 치며 어울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와 한 명 한 명 포옹을 하며 나중을 기약했다. 따뜻한 만남이었고 행복한 동행이었다. 결국 더 지체할 수 없는 때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이제 다시 셋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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