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1호] 사회를 뒤집는 상상가, 문화기획가-류재현 감독님을 만나다

사회를 뒤집는 상상가, 문화기획가-류재현 감독님을 만나다

 

글 _ 서울대 경제학부 06 유승은

안녕하세요. 문화 기획가가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하하. 좀 생소한 이름이죠? 문화 기획가는 쉽게 말하면 판을 짜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고, 이것을 실현 시키기 위한 다양한 요소들을 잘 섞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음악이 필요하면 음악 프로듀서나 밴드 등을 섭외하고, 미술이 필요하면 디자인 인력을 데려오기도 해요. 그래서 하나의 잘 짜여진 틀,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문화기획가 입니다.

 

문화기획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인생이 원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웃음) 이전에는 ‘서진 기획’의 PD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IMF가 와서 그만두게 되었죠. 그리고는 ‘서울시 정책개발연구원’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공공정책을 연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재밌었어요. 개인이나 회사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에서 오는 쾌감 같은 게 있었거든요. 매일 아이디어를 기획한다는 것도 물론 재미있었고. 그러다 보니 ‘문화기획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죠.

문화기획가란 판을 짜는 사람이죠.
컨텐츠를 섞고 비비고 조립함으로써
막힌 소통을 뚫어주는 직업이에요.

 

그럼 차근차근 문화기획가를 준비하신 것은 아니네요?

강호동이 개그맨으로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국민 MC가 되었잖아요.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그것은 다른 직업을 찾는 또 다른 거름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남들보다 월등히 잘 하는 것을 찾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계속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나, 기획을 현실화 할 때 필요한 요소들과 사람들을 잘 찾아내는 일을 제 강점으로 삼고 있죠.

그럼 문화기획가가 되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지금의 홍대 앞 클럽은 나이가 서른 세 살이 넘으면 못 가잖아요. 이것이 싫어서 만든 것이 ‘나이 없는 날’이에요. 또, 한 번은 서울시 관광과 직원과 일을 하면서 평소에는 ‘문화유적 보존’을 위해 닫아둔 사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서울 문화의 밤’을 열어 하루는 시민에게 문화유적을 개방하는 축제를 만들었죠. 이렇게 제 나름의 방법으로 사회에 있는 구조적인 모순들을 바로잡고 문화적 소통의 길을 여는 게 문화기획가로서 제가 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하시는 일의 범위가 넓은 만큼 처음에는 많이 방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죠.(웃음) ‘어디든지 가봐라. 그럼 누군가는 무언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해 봐라. 제안을 잘하면 성공하게 되어있다.’ 이게 제 신조에요. 게다가 아이디어라는 건 원래 잘 떠오르지 않는 거라서, 그걸로 힘들어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뭐 저는 이제 내성이 생겨서 괜찮지만요.(웃음)

저는 지금 대학교에서 축제를 가르치고 있는데
저는 축제를 배워본 적이 없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면
직업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문화기획이라는 일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설득하는 것이 어려워요. 처음에 DJ 페스티벌을 제안하는데 기성세대의 경우에는 DJ하면 다방 DJ를 생각하잖아요. 사고와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면 설득하는 것이 어렵죠.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할 때는 시청 앞 광장에서 ‘비보이 배틀’을 시도했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그것이 베를 가지고 천을 짜는 거냐고 물으시더라구요. 배틀을 이해하지 못하신 거죠.(웃음)

예산에 대한 부분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제일 싫어하는 말이 ‘예산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말이에요. 기획자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기획을 해야 하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의 경우에는 5월에 행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3월 초에 기획하려고 보니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고안한 것이 ‘블라인드 티케팅 시스템’이에요. 쉽게 말해 초반에 필요한 자금은 대출을 해서 일단 행사계약을 하고, 인터넷에 라인업 공지를 한 뒤 티켓예매를 통해 빌린 돈을 갚은 거죠. 그러니까 돈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문제는 진정성 입니다.

진정성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처음에 상상공장 홈페이지를 열고 티케팅을 했더니 사람들이 예매를 안 했어요. 돈을 들고 도망갈까 봐 걱정이 됐나 봐요. 그래도 계속 행사에 대해 알리다 보니, 마감 이틀 전에 돈이 한꺼번에 들어 오더라구요. 극복을 한 거죠. 제가 이 분야에서 10여년 동안 있으면서 클럽데이나 101레이버스 같은 행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설득시킨 원동력이었어요. 저는 정말 의미 있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제 돈을 써서라도 실행시키거든요. 제 진정성을 사람들이 알아봐줬던 거죠.

 

결국 요지는
성공하고 싶다면
꾸준하고 진정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에요.

1년 이상을
돈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어야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죠

감독님의 고등학생 시절은 어땠나요?

솔직히 고등학생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몰랐어요. 친구들과 농구하고 라면 끓여먹는 것이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고3이 되자 교육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교복, 두발 자유화가 시작되었고, 내신도 생겼고, 또 학력고사를 보기도 했어요. 그 중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내신적용이었는데, 공부를 못하면 인간적으로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죠. 우리 때는 내신을 15등급으로 나눴었는데, 저는 이렇게 사람을 나누는 것이 싫었어요. 내가 성적으로 평가 받고, 인생의 패배자로 찍히는 것이 너무 싫었죠.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에 담임선생님의 압박이 싫어서 고등학교 1학년 당시에는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았죠.

감독님은 서울대를 가기 위해 4수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서울대를 가야겠다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고3 학력고사 점수를 받은 다음에 (지금으로 따지면 수능점수가 발표 난 다음이죠.) 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거였죠. 그래서 재수를 결정했어요. 물론 담임선생님께서 난리가 나셨죠. (웃음) 그래도 전 재수를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대학을 어디를 갈까 생각을 했더니 미대하면 홍대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홍익 중학교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홍익 중학교는 큰 강당이 없어서 졸업식을 홍대에서 해요. 그러니까 저는 홍대에서 졸업을 한거잖아요.(웃음) 그래서 당연하게 서울대를 가기로 했죠. 그 때는 일년에 남학생을 18명밖에 안 뽑았었어요. 그래도 저는 일단 내 삶의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뛰어넘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후회 없이 공부해 보고 싶었어요. 사실 대학 때문에 콤플렉스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입학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어요. 비록 그 확률이 1%라 할지라도.

재수는 어떻게 하셨어요?

학교-학원-화실 이렇게 왔다 갔다 시계추 같은 생활을 했어요. 특히나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제가 고2까지는 70명 정원에 5~60등이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공부하자는 마음을 먹고 나서는 독서실을 등록했어요. 그런데 맨날 뛰어 놀다가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미치겠는 거에요. 그래서 방법을 바꿨죠. 제가 단편소설을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단편소설을 읽는 것으로 일주일을 공부하다 보니 앉아있는 게 몸이 적응이 되더라구요. 그 뒤 시중에 있는 국어 14종 자습서를 사서 다 풀었어요. 그 후에는 국사, 지리, 세계사 이런 식으로 과목을 늘려나갔죠. 계속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 하다가 한번만 더 공부하고 이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합격했죠.

그렇게 들어간 서울대학교는 어땠나요?

굉장히 행복했어요. 원래 84년도에 했어야 했을 일을 6년이 지난 90년에 이루었을 때의 행복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매일매일 학교에서 살았어요. 법대생은 얼마나 공부를 잘할까. 경영대생은 얼마나 공부를 잘할까 궁금했죠. 그래서 온갖 과목을 다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사람은 다 똑같다는 거에요. 저도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거죠.

 

감독님의 10년 후의 모습은 어떠실 것 같으세요?

음.. 아마 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겠죠. 문화기획가가 좋은 점은 점층법이 적용된다는 거에요. 쉽게 말해 점점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아마 10년 뒤의 나는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동남아시아, 아시아의 빈국들을 위한 행사도 기획하고 싶구요. ‘문화기획가’는 하나의 일을 성공시키면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계속해서 욕망을 갖고 있고, 누군가는 그것을 해소해 주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왜 고등학생, 중학생 때 되고 싶은 직업을 정하죠? 차라리 ‘나는 적어도 50개의 나라를 여행을 갈 거야.’ 아니면 ‘나는 전세계 각 나라의 CEO 한 명씩을 만나고 다닐 거야.’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직업은 자연히 정해지는 것인데. 저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의사가 될 거야.’가 아닌 ‘나는 무엇을 할거야.’라고 생각이 바뀌기를 바래요. 직업이라는 것에 너무 얽매어서 하고 싶은 일을 짜맞추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또 하고 싶은 얘기는, 버티라는 것, 비교하지 말라는 것, 또 실수하고 실패하라는 거에요. 특히 우리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아요.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마세요.

 

꿈을 가지세요 도전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끈질기게 매달려 보세요
꿈을 꼭 이뤄야 합니까?

꿈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죠
꿈을 다 이루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나에게 꿈이란 죽는 그 순간에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슴 속에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꿈을
숨쉬게 해주세요.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