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특집기사

[26호] 청소년이 직접 말하는 다섯가지 멘붕의 이유

/ 이진혁

일러스트  /김윤지

우리는 이럴 때 멘붕이다!

청소년이 직접 말하는 다섯가지 멘붕의 이유

 

청소년은 자주 진다. 엄마의 잔소리에 지고, 스마트폰의 유혹에 지고, 쏟아지는 졸음에 지고, 가끔은 친구와의 경쟁에서도 진다. 이렇게 맨날 지고 살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다. “괜찮아. 엄마는 늘 그렇지”, “스마트폰 안 본다고 공부할 것도 아닌데 뭐”, “잠이 보약이야. 사람이 자면서 살아야지”, “내가 그래도 다른 건 걔보다 잘해.” 이런 ‘정신승리’는 맨날 지고 사는 청소년들에겐 약이다. 너무 약해서 질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정신으로라도 이겨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정신승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멘탈붕괴(멘붕)’가 온다. 멘붕이란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사소한 일에도 “완전 멘붕!”을 외치며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진짜로 멘탈이 ‘붕괴되기도’ 한다.

멘탈이 붕괴되는 이유는 개인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사건이 다른 누군가의 멘탈을 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 다양한 이유로 우르르 멘탈이 무너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멘붕’ 시대다. 너나없이 자기 멘탈이 더 붕괴했다고 내보이는 현상은 기이하지만 동시에 사실적이다. 왜 여태껏 잘 있던 멘탈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을까. 다들 멘붕, 멘붕 하는데 멘붕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이번 달 MODU는 멘붕에 관한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준비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개별 연락을 통해 청소년들이 멘붕하는 이유를 두루 물어봤다.

 

1. 너무너무 억울해서 무너지는 멘탈

“제가 진짜 열심히 공부하다가 잠깐 졸았거든요? 5분만 자고 일어나서 다시 공부할 생각이었어요. 아야! 선생님 아파요~”(김선화), “나는 정말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다들 나보고 잘못했다는 건지…”(최유선),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오해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어요. 억울하고 속상해요.”(이우승)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멘붕이 발생한다면, 멘붕의 가장 큰 감정은 ‘억울함’이다. 많은 청소년이 억울할 때 멘탈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억울한 기억을 그냥 잊어버리는 건 쉽지 않다. 마음속에 깊이 각인돼 잘 사라지지 않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기억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생생해지는 경우가 많다. 억울했던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반복재생하며 자다가 몇 번씩 이불 속으로 하이킥을 날리기도 한다. 이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 나섰다가는 더 크게 마음을 다칠 것만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앞에서 멘탈은 무너진다.

물론 억울함이 청소년에게만 유독 강한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도, 직장인도, 노인들도 “아이고 억울해”를 외친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청소년의 억울함에는 탈출구가 없다. 청소년이 살아야 하는 세계는 좁고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걔를 안 만나면 그만이지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억울함에 대해 의연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 억울함이 해결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한다. 청소년은 다르다. “안 만나면 그만이지 뭐”가 불가능하다. 매일 만나는 이들을 내일도 모레도 만나야 한다. 다른 세계로 탈주할 수 없는 생활 속에서 억울함은 마음의 응어리로 남기 마련이다. 억울함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넘게 지속되는 이유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학교에 가기 싫어지거나 성적이 떨어지거나 인간관계에 소극적이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다.

특히나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생기는 억울함은 해소되기 힘들다. 학생들의 말은 종종 ‘핑계’나 ‘꼼수’로 받아들여져서 믿음을 얻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곧 ‘선생님에게 대드는 것’이 되기 십상이다. 억울함을 마음속으로 삭이는 청소년이 많은 이유다. 이렇게 억울함을 삭이다가는 더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에게 “억울하면 네가 잘해라”고 말하거나 “가끔은 손해를 보고 살아야 한다”며 훈수를 두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MODU의 한 에디터는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어릴 때 짝이 나를 너무 때리고 괴롭혀서 하루는 그 애 의자를 발로 찼어. 그 애는 넘어져서 조금 다쳤지. 그런데 걔가 집안의 3대 독자였던 거야. 다음 날 그 애 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온 교실을 발칵 뒤집었어. 나는 끌려나가서 맞고 정말 난리가 났지. 너무 억울했어. 걔가 나를 괴롭힌 게 훨씬 심했고, 걔가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거든. 억울하다고 엄마한테 이야기했더니 엄마는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면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씀만 하셨지. 지금은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어릴 때는 정말 너무 억울해서 멘붕이었어.” 청소년은 너그럽게 모든 걸 이해하기에는 어리다. 그리고 여리다. 인내를 강요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억울해할 주변 사람과 친구가 필요하다.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고, 같이 화를 내기도 하면 그들의 마음은 위안을 얻는다. 그들의 억울함을 돌봐주지 않으면 멘탈은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위의 이야기를 들려준 에디터는 아직 그 일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2. 벌컥벌컥 열리는 문, 사생활은 없다

“잠이 와서 내 방에 들어갔는데 누나가 침대에 누워 나가지 않을 때 멘붕!”(현표), “방에 있는데 자꾸 가족들이 문을 벌컥벌컥 열어요”(김소은), “집에도 학교에도 학원에도 내 공간이 없는 것 같아요.”(이민희) 사생활이 사라질 때도 멘붕이 온다. 청소년들 가운데는 자기 공간이 ‘아예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 자기 공간이라고는 다섯 뼘짜리 책상과 세 뼘짜리 사물함이 전부라는 것이다. 건강한 멘탈을 위해서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마음의 휴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보장되는 사생활의 공간이 지나치게 적은 탓이다. 학교라는 ‘단체생활’에서 벗어나 집에 와도 사생활이 없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반쯤 잠들어 있다. 그래도 자기 전에 잠시 자기 시간을 갖고 싶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기도 하고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기도 하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고 싶은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은 적다. 엄마가 들어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부하기가 힘들지는 않았는지 물어본다. 동생이 들어와 짜증을 낼 때도 있고 아빠가 들어와 잔소리를 할 때도 있다. 엄마가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에게 짜증 부리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안다. 그렇지만 가끔 하루에 1시간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집 안에도 집 밖에도, 내가 혼자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마음의 피로는 늘어난다.

‘잠이 와서 방에 들어갔는데 누나가 있어 멘붕’이라는 현표의 사례를 보자.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런 일로 뭐가 멘붕이야?’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본 청소년이 너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나 남학생은 여학생과 비교하면 외부로부터 차단된 자기 방이 없는 경우가 많다. 노크 없이 방문이 열리는 건 다반사다. 이런 일에는 대체로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청소년이 아직 덜 컸기 때문에 어른의 품 안에 있어야 하며, 보호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의 방문을 ‘허락 없이’ 여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이 다 자라지 않은 건 사실이다. 청소년에게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고,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청소년이 자기 공간을 가질 수 없어서는 안 된다. 1928에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썼다. 이 책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자아실현을’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자기 공간이 없어서 멘붕”이라는 외침이 이를 증명한다. “혼자 있고 싶어요, 모두 나가주세요”란 말은 농담처럼 쓰이지만, 청소년들에겐 꼭 필요한 한 마디다. 어른들의 ‘보호’를 ‘감시’라고 느끼는 청소년이 많은 지금, 그들의 공간을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있고 싶은 친구를 가끔은 혼자 있게 내버려두는 것도 좋다. 무너지지 않는 멘탈을 위해.

 

3. 너덜너덜한 몸에 깃드는 너덜너덜한 멘탈

“자도 자도 피곤할 때가 제일 멘붕이죠”(박호연), “아침에 알람 소리가 들릴 때 세상이 너무 야속합니다”(박민교), “선생님이 휘두른 회초리가 머리에 닿기 직전! 아픈 것보다 멘붕….”(노진영)  몸과 마음은 떨어질 수 없는 법! 몸의 붕괴가 멘탈붕괴로 이어진다는 호소도 많았다. 멘붕의 가장 큰 원인은 피곤한 몸이다. 아침에 알람 소리는 들리지만 눈이 떠지지는 않는다. 알람이 울리는 시간을 5분 연장, 5분 더 연장, 다시 5분 더…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다 보면 지각이 확실한 시각. 멘붕이 찾아온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항상 피곤하다. “해 뜨기 전에 학교, 해 지고 나서 집, 비타민D가 필요하다”는 광고카피는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 어느 나라도 해를 못 보는 청소년을 앞장서 만들지는 않는다. 한참 자라야 하는 청소년의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 30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하루 평균 5시간 40분 정도 자고 있다. 4년 전에 비해서도 1시간이나 줄어들었다. 3명 중 2명이 수면부족일 정도로 각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이나 프랑스의 청소년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자고 있다. 잠을 많이 자야 공부도 잘할 수 있다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지만, 한국 현실에서 많이 자는 학생은 게으르다는 낙인이 찍힌다. 몸만 피곤한 게 아니다. 마음도 동시에 축난다. 충분히 잠을 자지 않으면 불안함과 우울함을 키울 수도 있다고 한다. ‘피곤해서 멘붕’이라는 말이 과학적인 근거를 얻는 대목이다.

몸의 문제는 피로만 있는 게 아니다. 체벌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전 시대에 비해 나아졌다지만, 아직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일상적인 체벌에 노출돼 있다. 수업시간에 회초리를 들고 들어오는 선생님을 보고도 의아해하지 않는 나라도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심지어 최근에는 체벌 때문에 한 고등학생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가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멘탈이 건강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학생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청소년들이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교실이 망가졌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을 때리는 것도 동물 학대라고 손가락질받는 세상에서, 청소년을 때리는 게 올바른 훈육이라는 주장은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청소년이 맞지 않아서 말을 안 듣는다는 ‘꼰대적인’ 발상은 이제 없어져야 할 때가 아닐까.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는 교복 입은 몸들은, 상시적인 폭력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라고 했다. 정말 몸이 힘들어 멘붕인 청소년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4. 해도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무너지는 마음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성적이 안 오를 때 멘붕”(조용성), “시험에서 두 가지 선택지 중에 고민하다가 정답을 고쳤는데, 원래 체크했던 게 정답일 때”(이현지), “학년 초에 5등이었던 등수가 17등까지 떨어졌을 때”(김옥수), “공부해야 하는데 자꾸 딴짓만 하게 될 때가 제일 멘붕이죠.”(최슬기) 언제 멘붕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은 성적과 관련이 있었다. 공부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을 때, 자꾸만 경쟁에서 뒤처질 때 멘붕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청소년이 성적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많은 청소년의 멘탈이 성적 하락과 함께 붕괴될까. 청소년은 대부분 ‘학생’이고, 학생은 성적으로 줄 세워져 평가받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소년은 예비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성적하락의 멘붕은 수능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못 받았을 때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을 때 극대화된다. 12년 동안 ‘좋은 대학’에 가는 걸 목표로 살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능성이 작아질 때 멘탈이 붕괴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불안함의 문제다. 성적으로 인한 멘붕은 ‘점수’나 ‘등수’라는 숫자 때문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잖아요. 대학에 못 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없고, 나중에 결혼도 못 하겠죠. 지금이 인생을 완전히 결정하는 시기에요. 그런데 노력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오거나, 남들이 저보다 더 잘하면 불안하고 멘붕이 오죠. 앞으로 평생을 뒤처져 살아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이러한 고민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주변 사람은 드물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거나,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위로 또한 없다. 청소년을 경쟁에서 이기게 하는 것만이 청소년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 앞에서 청소년의 멘탈은 매일매일 깎여나간다.

 

5. 마구마구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밀려오면? 정말 멘붕!

“아침에 학교에 좀 늦을 것 같아서 서둘러 나가려다가 교복에 우유를 쏟고, 그걸 치우려고 허둥대다 문에 발가락을 찧고, 신발장을 엎고… 완전 멘붕의 연속!”(최은성),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갑자기 절교선언을 할 때”(전재민), “알고 보니 시험이 다음 주일 때!”(강민정) 청소년이 멘붕하는 마지막 경우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자주 일어난다.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스마트폰 데이터가 어느 순간 바닥이 나 있기도 하고(민은실), 화장실에 있어야 할 휴지가 없는 경우(황은진)도 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함에 청소년이 멘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생활은 이미 그들 멘탈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에 근접해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컵 속에서 넘치기 직전의 물 같은 상태다. 여기에서 뭔가 작은 일이라도 더 일어나면 짜증이 폭발하기도 하고 서러움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엔 별일 아닌 일에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별일’들은 그 전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뭔가 더 일어나는 일’은 항상 불안하며,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다. 위태위태했던 멘탈이 작은 일로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때문에 ‘뭐 저런 일로 멘붕씩이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보다는 그들의 위태로운 마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시 지금 옆의 친구가 내가 한 별것 아닌 장난에 불같이 화를 낸다면 서로가 “어이없어. 완전 멘붕”을 외칠 게 아니라, 한 번 더 친구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겪고 있는 현실은 서로 똑같이 위태위태한 멘붕 위험 상태일 테니까.

 

우리는 늘 “멘붕”을 입에 달고 살아. 억울해서, 내 생활이 없어서, 피곤해서, 성적이 떨어져서, 자꾸자꾸 나쁜 일이 생겨서. 이런 멘붕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보장되는 것들이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 이제는 주위의 “멘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해. 붕괴되는 것은 그냥 한 친구의 ‘멘탈’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생활일 수도 있으니까. 정말로 견디기 힘들게 멘탈이 붕괴되는 게 느껴진다면 한 발 떨어져 천천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어떡하면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어떡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더는 너희의 멘탈이 붕괴되지 않도록 MODU가 응원할게. 멘붕 없는 청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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