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26호]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

인터뷰/글 : 이진혁

사진/ 씨네21 백종헌

전세계를 누비며 묻다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인류학자, 전경수 서울대학교 교수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곳을 다녀본 사람들은 누구일까? 논란이 분분하겠지만, 나는 ‘인류학자’라고 생각해. 인류학자하면 누가 떠올라? 고대의 유물을 찾아 탐험하는 인디아나 존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트? 하지만 이런 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원시 사회를 찾아가 그들의 삶을 살펴보는 사람, 인간의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을 인류학자라고 해. 그래서 이들은 아마존의 밀림에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고,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서 몇 년을 살기도 하지. 영국의 대도시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들도 있어. “인류학자가 없는 곳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말씀.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항상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 이번에 MODU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류학자인 전경수 교수를 만났어.

 

Q. 전 세계에서 인류학자가 연구를 하는데요, 인류학자는 어떤 연구를 하는 사람인가요?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해요. 물론 인간에 대한 연구를 인류학만 하는 건 아니에요. 철학도, 문학도, 생물학도 인간에 대해 연구하죠. 그러나 인류학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연구한다는 점이 달라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가서 관찰하죠. 그래서 삶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살펴봐요.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인사는 어떻게 하는지,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 싸움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같은 것을요. 이런 것들을 세세하게 관찰해서 문화를 연구하는 거예요. 선사시대를 대상으로 하면 ‘고고학’, 현재를 대상으로 하면 ‘사회인류학’이 되는 거죠. 대략은 이런 게 인류학이에요.

 

Q. 대답이 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인류학자를 한마디로 정의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른 삶을 한 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어요. 인류학자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죠. 관찰을 하다 보면 질문이 생겨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게 에스노그래피(ethonography)예요. 에스노그래피는 민족지 또는 민속지로 번역되는데, 영상으로 만들 수도 있고 글로 쓸 수도 있죠.

 

이제 인류학자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겠지? 일본 문화를 연구한 <국화와 칼> 같은 책들이 청소년에게는 유명한 에스노그래피지. 다른 세계,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이런 책들을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을 거야. 영상을 더 좋아한다면 영상으로 구성된 에스노그래피도 있어.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바로 인류학자라는 사실, 알고 있었니?

 

Q. 다른 삶을 살아보는 노력이라니.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인류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어떤 것인가요?

일단, 뭐든지 잘 먹어야 해요. 사람이 먹는 건 다 먹을 수 있어야 하죠. 못 먹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아무 데서나 잘 수 있어야 해요. 이 두 가지가 인류학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음식을 가리거나, 잠자리 바뀌면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은 인류학자가 되기 힘들죠. 이런 신체적 조건이 필요해요. 그 다음에 필요한 게 태도죠. 사실 우리가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지만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요. 절대로 다른 사람 입장이 되어볼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노력은 해야죠. 최대한 상대방에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해요. 인류학자에겐 그런 태도가 필요하죠.

 

Q. 올해 45년째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으신데, 지난 45년 동안 가장 관심을 갖고 연구한 주제는 무엇인가요?

생태계에 대한 연구에요. 저는 생태학 공부도 많이 했죠. 1974년에 대학에서 조교를 했어요. 학생들과 경기도 용인으로 실습을 나갔어요. 그때 농가에서 가스버너를 두고 싸우는 부부를 발견했어요. 가스버너가 작동이 잘 안 되니까 부부가 서로 탓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가스버너가 대단히 특이했죠. 재래식 변소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이용하는 방식이었어요. 저런 걸 이용하면 자원 고갈의 문제나 생태계 파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경험이 생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요. 그때부터 ‘똥’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죠. 똥도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1992년에 쓴 책 제목이 <똥이 자원이다>예요. 그 책을 냈는데도 사람들이 별 반응이 없었어요.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고요. 기분이 나빠서 2002년에 다시 낸 책 제목이 <똥도 자원이라니까>예요(웃음). 지금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죠. 원시사회로부터 이어진 지혜를 바탕으로 이 심각한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제 전공을 그래서 ‘생태인류학’이라고 해요.

 

Q. 그래서 댁에서는 특별한 변소를 사용하신다고요?

원래 제가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그러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주택으로 이사를 했죠. 생태변소를 쓰는 거였어요. 용변을 보고 물을 내려서 버리는 게 아니라 거름 같은 자원으로 만들어 쓰자는 거예요. 일종의 재래식 변소죠. 몇 년 하다가 지금은 실패했어요. 주변 집들에서 반대했거든요. 제가 만든 화장실이 옆집 부엌이랑 좀 붙어있긴 했어요(웃음).

 

Q. 그런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수세식 변기의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물이 얼마나 내려가는지 아세요? 평균 13리터가 내려가요. 네 식구가 살면 하루에 최소 100리터가 넘게 버려지는 거죠. 이건 심각한 문제에요.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다음 세대에는 마실 물이 없죠. 물이 순환한다지만, 세상에 무한한 건 없어요. 예를 들어 제주도에 비가 한 방울 내리면 그 물을 다시 용수로 쓰는 데 8년이 걸려요. 상황이 이런 줄도 모르고 물을 마구 버리고, 지하수를 마구 뽑아 쓰다간 미래가 없죠.

동아프리카 마사이족을 연구한 적이 있어요. 거긴 건기와 우기가 있는 곳이죠. 우기에는 물이 풍부해요. 하지만 건기가 되면 상황이 달라지죠. 이들이 동트기 전에 하는 일이 물을 구하러 가는 거예요. 이슬을 따는 거죠. 그래서 하루에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물의 양이 1리터가 안 돼요. 마실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죠. 이런데 우리가 한 번에 13리터씩 물을 버린다는 건, 정말 죄악이죠. 처음에 한국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할 때 아무런 고민이 없었어요. 서양 것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런 걸 다 반성할 때가 된 거예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 매력적이지 않아? 전경수 교수는 그래서 가정에서도 이런 태도를 강조한대. 아버지라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한 명 한 명을 동일하게 대한다는 거야.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은 비중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지. 이런 태도는 우리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걱정에 놀랐어. 우리가 무심코 하는 일들이 ‘죄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 여태껏 해본 적 있어?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실 물이 없는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면.

 

Q. 부산에서 자라셨다고 들었어요. 청소년기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어떻게 인류학을 공부하게 됐나요?

뭐, 엄청난 모범생이었죠(웃음). 아버지는 함경도 출신이고 어머니는 제주도 출신이에요. 고등학교 때는 내가 키가 크니까 농구선수를 했어요. 아버지도 제가 농구선수가 되길 바라셨죠. 그런데 제 키로는 농구선수를 하기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죠.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는데 성적도 좋았어요. 그때는 육군사관학교가 제일 좋은 학교였죠. 그래서 선생님들이 육군사관학교를 가라고 했어요. 저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했더니 펄쩍 뛰며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고향이 함경도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당시는 반공 사상 같은 게 지금보다 훨씬 강했으니까요. 그때 참 많이 좌절했어요. 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고향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으니까요.

그때 아버지가 고고학 공부를 하라고 하셨어요. 정치에서 제일 멀리 있는 학문을 택하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 진학했어요. 저는 모범생이고 말도 잘 들었으니까요. 고고학, 인류학이 뭔지도 모르고 간 거죠. 그렇게 또 고고학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까 고고학이 저와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죽은 사람 말고 산 사람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은 인류학과로 진학을 했죠.

 

Q. 그렇게 시작해서 45년 동안 인류학을 공부하고 계신 거네요. 인류학을 전공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였나요?

미국에서 유학할 때였어요. 그때 참 지도교수를 잘 만났어요. 공부를 혹독하게 했죠. 지도교수가 내주는 과제를 하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이는 것 같았어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아마존 사람들, 에스키모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보이더라고요. 그냥 생각으로만 대충 알게 된 게 아니라 실감이 났죠. 그때 기분이 참 좋았어요. 인류학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맨 처음 열일곱 명이 박사과정으로 입학했는데, 제가 제일 빨리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인정을 받은 거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때 우연히 학과 도서실을 폐쇄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물어보니 도서실에 있던 책을 전부 중앙도서관으로 옮긴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옮기려는 책은 중앙도서관에 똑같은 책이 있었거든요. 책이 중복되면 별로 가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도서실 위원회에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책 입장이 한 번 되어봐라. 책이 가치가 없어지는데 좋겠느냐. 지금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이 책을 나에게 달라.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다른 입장이 되어보는 게 인류학의 첫걸음이잖아요? 책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말한 거죠(웃음). 그렇게 설득을 해서 책 5,000권을 한국으로 가져왔어요. 지금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도서관에 있죠. 제가 그 책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도 인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Q. 그럼 반대로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자금 문제 때문에 힘든 적이 있죠. 80년대 초반에 미국 경제가 나빠서 지원을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죠. 10년 전쯤에 인류학 공부를 한 것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처음에 제가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라고 말하며 인류학을 택했잖아요. 죽은 사람은 대답이 없지만 산 사람은 대답을 하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가 미처 생각 못 했던 게 있더라고요. 거짓말의 문제에요. 죽은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하지만 산 사람은 거짓말을 하잖아요. 아버지께서 2002년에 돌아가셨는데, 빈소에 앉아 있으면서 ‘아버지 말을 듣고 고고학을 계속 공부할걸’하고 후회를 했죠. 산 사람은 거짓말을 해요. 세상 모든 문제가 거짓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도 그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거짓말에 대한 연구도 해 볼 생각이에요. 아마 거짓말에도 문화적 차이가 있겠죠? 인류학을 통해 연구할 수 있을 거예요.

 

전경수 교수는 185센티의 키에 숀 코너리 같은 외모였어.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가 농구선수의 꿈을 접고, 군인의 꿈도 포기하고 인류학자가 되는 과정을 듣다 보니 너희 생각이 났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겪겠지. 그래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새로운 길이 찾아온다는 걸 전경수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알았으면 좋겠어. 너희에게도 전경수 교수가 인류학을 만난 것처럼 의미 있는 만남이 있을 테니까.

 

Q. 인류학자가 되어 얼마나 많은 곳에 다녀오셨나요?

그건 정확하게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오대양 육대주 안 가본 곳이 없죠. 연구를 하지 않은 곳은 유럽 지역이 유일해요. 나머지 지역에는 다 찾아가서 연구를 했어요. 정말 많은 곳에 다닌 거죠.

 

Q. 그럼 그 가운데에서 청소년들에게 가보기를 권하는 곳이 있나요?

그런 곳은 없어요. 어디가 좋다, 안 좋다는 건 결국 ‘내 문제’거든요. 내가 좋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좋으리라는 법은 없죠. 거기에 간 사람의 문제에요. 얼마나 진지한 마음으로 찾아가느냐가 중요해요. 어디에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저는 위험하게 다녀온 곳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특히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 위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거든요. 저는 아프리카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이틀 동안 의식 불명이었던 적도 있고 베트남에서는 식중독에 걸려 3일간 기절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인류학자니까 죽어가는 저를 관찰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약초를 빻아 주면 무슨 약초인지 물어보고…(웃음). 그렇게 치열하고 진지하게 다녀온 곳은 기억에 많이 남아있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놀기 위해 여행을 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여행은 휴식이죠. 요즘 사람들은 일하고 놀고 일하고 놀고를 반복해요. 쉴 틈이 없죠. 그래서 여행을 하고 와도 녹초가 되어 뻗어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행하는 동안이라도 좀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올해 퇴임이신데, 퇴임 후에 연구해보고 싶은 곳은 있으신가요?

연구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죠.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아마 중국으로 갈 것 같아요. 제 책이 <환경인류학>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번역이 돼 있거든요. 지금 중국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중국의 한 학교에서 와 달라는 요청이 오긴 했어요. 아마 퇴임을 하고 거대한 중국 대륙의 생태와 환경 문제에 대해 다루게 되지 않을까 해요.

 

Q. 지난겨울에는 시골에 있는 학교로 강연 봉사활동도 하셨는데요. 주로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그렇게 고등학생을 찾아간 게 세 번이에요. 항상 하는 이야기는 비슷해요. 저는 고등학생들에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요. 쉽게 말하면 육하원칙이에요. 육하원칙에 두 종류가 있는 거 아세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은 단답으로 대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왜’와 ‘어떻게’를 말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굴려야 하죠. 왜와 어떻게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게 논리적인 사고예요. 이런 훈련이 없으면 그야말로 주입식 교육이죠.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이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요.

강연봉사를 하게 된 건 제 경험과도 관련이 있어요. 제가 고3 여름방학 때였어요. 자습하러 방학 때 학교에 나갔는데 방송이 나왔어요.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강의를 한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수학 문제 하나 배울 수 있다고 신나게 달려갔죠. 그런데 알려달라는 문제는 안 알려주고 그 교수가 ‘수학적 사고의 기본’을 강의했어요.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설명한 거죠. 다른 학생은 다 실망했지만, 저는 참 감동했어요. 그래서 제가 1982년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자마자 그분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기도 했죠. 논리적 사고도 비슷한 거예요. 시험에서 한 문제를 더 맞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거죠.

 

자신의 경험을 지금 청소년들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전경수 교수의 태도가 훌륭해 보였어. 그리고 퇴임을 앞두고도 아직 팔팔한 ‘현역’인 에너지도 멋졌지. 고등학교 강연 이야기를 하다가 전경수 교수는 한 마디를 덧붙였어. 지금 학교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야.

 

과거에는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이었어요. 지금 지역 문제를 보세요. 도시는 도시대로 과밀화되고 시골은 시골대로 과소화되고 있죠. 이런 상황에는 학교의 책임도 있어요. 지역의 문제를 학교 안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학 입시과정을 가르치기에 급급하죠. 지금 시골에 가보면 폐교되는 곳이 참 많죠. 그 학교들이 사실은 예전의 그 지역 사람들이 직접 만든 곳이에요. 예전에 학교를 짓는다고 정부에서 땅을 주는 것도 아니었죠.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땅을 사고, 벽돌도 나르고,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돌도 줍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학교들이에요. 그야말로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이었어요. 다시 그 모습을 찾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가 해체되고, 시골의 문제도 도시의 문제도 동시에 커져요. 개인적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지금의 ‘지역균형선발’ 이상의 기회를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군이 좋지 않아도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세상’, 그런 희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거짓말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조하고 싶은 것도 ‘정직’이에요. 왜 이영돈 피디가 선정한 ‘착한식당’이 그렇게 인기가 있겠어요. 모두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죠. 모두가 거짓말을 해서 거짓말에 대해 무뎌진 세상이에요. 그래서 더욱 정직한 게 중요하죠. 이런 게 그냥 당위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제가 45년 동안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결과에요. 지금의 작은 거짓말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 하는 거짓말은 큰 죄악이 될 수도 있어요. 정직하게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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