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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관찰과 창의력,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만들다, 폴 스미스

글/권태훈

이미지 제공: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찰과 창의력,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만들다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가장 영국다움을 잘 표현하는 디자인, 품위 있는 클래식 속에 유머와 위트, 전 세계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영국 총리와 팝의 전설 비틀스도 팬임을 자처하는 브랜드. ‘폴 스미스 (Paul Smith)’ 를 가리키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매년 수많은 브랜드가 생겼다가 사라질 만큼 빠르게 유행이 변화하는 패션 시장에서 폴 스미스는 생긴지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 샤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 브랜드를 오늘날 전 세계 70개국, 250개 매장을 가진 패션 왕국으로 건설한 사람이 바로 영국 출신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다. 그는 디자인과 패션에 대한 어떠한 정규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더 창의적이고 재치 있는 디자인을 만들며 세계 패션 시장을 이끌고 있다. 브랜드 폴 스미스를 대표하는 독특한 컬러조합의 얇은 줄무늬 패턴 (일명 멀티 스트라이프) 만큼이나 독특하고 재미있는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삶. 그 속에서 그의 창의성과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어떻게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공부가 싫어 학교를 그만두고 자전거 선수를 꿈꾸다

1946년 영국의 노팅엄에서 태어난 폴 스미스는 어릴 적 난독증 때문에 글을 잘 읽지 못했다. 이는 자연히 학습장애로 이어져 학교 성적 또한 몹시 낮았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부모님 또한 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탓에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결국 학교에 지루함을 느낀 폴 스미스는 15살 때 자퇴한다. 학교를 그만둔 기쁨으로 즐거워하던 것도 잠시, 그는 며칠 뒤 아버지가 소개한 의류 창고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그렇게 우체국 배송 업무를 돕고 잔심부름을 하던 어릴 시적 폴 스미스의 꿈은 자전거 사이클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자전거에 무척이나 관심을 보였던 그는 일주일에 평균 600km씩 자전거를 타며 사이클 선수가 되기 위해 맹연습을 했다. 그러나 자전거 연습 도중 자동차와 부딪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되었고, 결국 18살 때 자전거 사이클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디자인과의 첫 만남, 경험을 통한 배움

하지만 이 불의의 사고와 병원 입원이 폴 스미스를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병원에 함께 입원해있던 사람들과 친해져서 퇴원 후 맥줏집을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그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며 디자인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마치 새로운 빛을 보는 것처럼 예술과 디자인의 세계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나 선뜻 디자인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과 본인이 학교를 자퇴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술집에서 자기 패션 가게를 여는 것이 목표이던 여성 디자이너 ‘자넷’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디자인은 할 줄 알았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폴 스미스도 가게 운영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자넷과 함께 일한다면 디자인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그런 부분은 잘 압니다. 같이 일합시다”

늘 긍정적이던 폴 스미스는 경험이 없었지만 자신 있게 부딪히면서 그녀를 도와 부동산 계약을 하고 매장도 꾸미면서 결국 가게 오픈에 성공한다. 그곳에서 그는 6년간 일하며 디자인을 배우고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열기 위한 돈도 착실히 모은다. 1970년, 24살의 나이로 폴 스미스는 독립하여 첫 가게를 열었다. 그 해에 그는 왕립예술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6살 연상의 여성 폴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는 연인이자 스승 같은 존재로서 그에게 재단하는 법과 더 넓은 디자인 세계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에 성공한다.

클래식 속의 위트,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우연한 기회로 디자인을 배우고 디자이너로서 옷 가게까지 열었지만 초기에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무명의 디자이너에게 사람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고 폴 스미스는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의 4일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3일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디자인을 자유롭게 연습했다. 그리고 다시 6년이 지난 30살 때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폴 스미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상반된 성격을 함께 배치하여 조화시키는 것이 브랜드 ‘폴 스미스’의 특징이었는데, 이를테면 바깥쪽은 클래식한 슈트지만 안쪽은 화려한 색상과 튀는 디자인 패턴을 배치하여 의외성을 주는 식이었다. 이러한 의상은 당시 젊고 개성이 강하며 도시적인 남성들의 성향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1980년대 런던에서 트렌디한 남자들은 모두 폴 스미스 의상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폴 스미스’는 영국을 넘어 뉴욕, 파리, 그리고 아시아까지 급속도로 번져나갔는데, 특히 일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루이뷔통과 프라다 등 전통 명품 브랜드를 모두 제치고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유럽 패션 브랜드가 되었다. 이러한 폴 스미스의 성공에는 그만의 차별화되는 매장 디자인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직접 모든 매장을 디자인하였으며 심지어 가게가 위치한 도시마다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조금씩 모두 다르게 만들었다. 이러한 전략은 매장에 대한 호기심을 높이고 브랜드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이바지했다.

 

창의성의 원천, 관찰과 상상

오늘날 ‘폴 스미스’는 의상에서 가방, 향수, 생수병,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며 사랑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위트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영감을 얻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색을 보거나 벽화를 볼 때, 심지어 지금 인터뷰하면서도 당신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습니다. 세상은 정신없고 재미있는 모험으로 가득 차있고 새로운 것투성입니다. 관찰과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는 다른 사람의 디자인이나 패션 잡지는 전혀 보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머리를 채우기 싫기 때문이다. 대신 연필과 메모장, 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가능한 모든 순간과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이를 영감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과정이 항상 즐겁다. 폴 스미스가 직접 쓴 자서전의 긴 제목은 그 자체로 디자이너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창의성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You can find inspiration in everything

and if you can’t ,

look again

(당신은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한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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