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특집기사

[25호] 청소년, 그 우울한 이름에 대해

글 /이진혁

일러스트 /김윤지

‘사실, 지금 너무 슬퍼요’

청소년 그 우울한 이름에 대해

 

  4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계절이야.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 가벼워지고 나무들도 푸른 빛을 찾는 것 같아. 봄꽃도 피어나고 말이야. 봄이 와서 변하는 건 날씨와 옷차림뿐만이 아니야. 봄기운을 눈치챈 마음에도 변화가 생겨나. 봄을 맞아 급변하는 마음을 두고 흔히 ‘봄탄다’고 표현해. 너희 중에도 유난히 봄을 타는 사람이 있지? 봄을 타는 마음은 크게 두 종류인 것 같아. 이상하게 마음이 콩닥콩닥 설레거나, 아니면 한없이 우울해지거나. 콩닥콩닥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오늘은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해. 봄의 우울은 특히 힘이 세거든. 혹시 너희 중에 봄이 되면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 주변에 나를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만 빼고 세상이 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없거나, ‘왜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는 사람은? 혹시 자기가 지금 그렇다고 생각이 되면 이 글을 눈여겨 읽어주면 좋겠어.

 

#1.

  “너 무슨 문제 있니?”

며칠 밤을 고민한 후 상담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다. 그의 눈빛과 태도가 거짓이 아님을 나는 안다. 하지만 나의 우울함이 ‘문제’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입을 닫기로 했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우울한 것은 남들보다 ‘비정상적’으로 ‘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아뇨, 아무 일도 아니에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하다.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말도 있다. 표현을 안 해서 다들 잘 모르지만 한 학급의 절반 정도가 우울함과 싸우고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우울하지 않다면, 내 짝은 우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심각한 문제처럼 들리지만 우울함은 청소년이 갖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나가 우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우울함을 곱게 보지 않는다. 우울은 보듬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낙오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우울함을 토로하면 “왜 그 정도로 엄살이야?”, “남들은 다 잘 견디는데 너만 왜 그러니?”라는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인 것도 그런 이유다.

상황이 이러므로 청소년은 우울함을 감추게 된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소년의 경우에도 대다수는 자신의 우울함에 대해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고 한다. 우울함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무서운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우울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우울하다”고 말도 꺼내지 못하는 현실은 아프게 다가온다. 자기가 우울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우울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혹은 자기가 너무 우울해서 다른 이의 우울함을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도 이 시대 청소년이 겪는 슬픈 현실이다.

 

 

#2.

  “그게 다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기 때문이야.”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내 우울함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데서 나는 놀랐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우울함의 이유를 그가 이토록 정확하게 알고 있다니. 헛웃음이 날 지경이다. 나는 ‘우울하다’고 말했지 내 우울함을 분석해달라고 한 게 아니다. 나는 ‘그래, 많이 힘들지’라는 위로가 필요했을 뿐이다. 비난받기 위해서 내 마음을 터놓은 것은 아니다. 더 말하기가 싫어서, 더 말하기 무서워서 이 대화를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하고는 헤어졌어요.”

“거봐, 그러니까 네가 우울하지.”

 

많은 청소년이 우울하다는 사실 앞에, 기성세대는 청소년이 우울한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우울함의 원인은 다양하다. 연애, 성적하락, 교우관계, 가족관계, 흡연, 음주,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이 청소년의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들의 분석이 어느 정도 맞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과연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우울해진 것일까. 오히려 우울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의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타당한 것이 아닐까.

청소년 우울증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보자. 대부분의 연구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우울하다고 한다. 또 인문계 고등학생이 실업계 고등학생보다, 고3이 고1보다 우울한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적이 낮은 학생이 성적이 높은 학생보다, 가난한 집 학생이 부잣집 학생보다 우울하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들은 타당하다고 보는 게 맞다. 엄밀한 실험과 설문을 통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그래, 고3이 제일 우울하지.’ ‘맞아, 가난한 사람이 더 우울하지’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긍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왜 우리는 여학생이 더 우울한 것이, 가난한 집 학생이 더 우울한 것이, 성적이 나쁜 학생이 더 우울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걸까.

그렇게 모두가 ‘더 우울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면, 그럼에도 왜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우울한 것일까.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탓하기 전에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런 상황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 건 아닐까.

 

 

#3.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다.”

어른들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 시기엔 다 그런 것’이라 말한다. 지금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를 믿으라고 말한다. 그 말을 믿기 싫은 게 아니다. 나도 믿고 싶다. 그러나 지금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지만 지금 죽을 만큼 힘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나는 오늘도 한없이 우울한 마음으로 ‘지금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우울함의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은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 질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우울함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병세만 더욱 키울 뿐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청소년 우울증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빠른 치료”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의 다른 예를 떠올려보자. 예전에는 누구도 여드름을 피부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의 일부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사람이 여드름은 피부병임을 알고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도 공감한다. 청소년의 우울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시기에는 누구나 그런 것’이라며 훈수를 두기보다는, ‘그래 얼마나 힘드니’라며 청소년의 우울함에 귀를 기울여줘야 한다. 여드름 흉터가 피부에 평생 남듯이 우울함으로 인한 마음의 흉터도 평생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우울함을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만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문화사회연구소 김성윤 연구원은 청소년의 우울함을 질병이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김 연구원은 “과거에도 10대는 똑같이 우울했을 것이다. 유독 지금의 10대가 마음이 약해져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우울함을 ‘질병’으로만 바라보면 우울함이 ‘개인의 문제’가 되기 쉽다. 그러기보다는 지금 청소년의 정서적 위기를 초래한 ‘사회적 안전장치’의 붕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학교에서 ‘우리 학교’, ‘우리 반’이라는 생각이 옅어졌는지를 살펴야 하고, 왜 학생들 대부분이 정서적으로 위태로운지를 더 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4.

  “지금 네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니?”

일주일에 한 번 기타를 배우겠다고 했더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다들 과외받고 학원 다니기 바쁜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었다. 더 슬픈 건 그 말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기타는 대학에 가서도 배울 수 있지만,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학에 못 갈 수도 있다. 그런 사실은 나도 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마음으로 나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기타를 배우면 정말 나는 뒤처져 어떤 대학에도 못 가게 되는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어느 것 하나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왜 완벽한 사람이 아닌 걸까.

“…..”

 

우울함을 그냥 내버려두는 게 가장 나쁘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자기가 우울증인지 아닌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내가 얼마나 우울한지, 그래서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너무 우울하다면 “우울하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말했듯이, 청소년의 주변 환경은 개인의 우울함에 무심한 경향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나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여기며 가만히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울함은 내버려 둔다고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주변에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는 우울함을 막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거나 일기를 쓰라고 추천한다. 또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우울증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청소년들은 많다. 잠깐이라도 학업을 손에서 놓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도 건강해진다는 것을, 청소년들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는 청소년 개개인에게 ‘경쟁에서 이길 것’을 요구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한 번 경쟁에 뛰어들면, 경쟁의 종목이 아닌 것들에는 신경을 쓰기 힘들다. 기타를 치거나 시를 쓰는 ‘외도’는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청소년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모두가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쟁을 요구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청소년의 미래를 걱정하는 배려가 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토닥임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지금’을 희생시키는 세태는 과연 올바른 일일까. 모두가 한 번 더 생각해 볼 문제다.

 

 

#5.

  “이번 생은 안 되겠어. 엄마 미안해.”

쪽지를 쓰고 나니 눈물이 났다. 터놓을 곳 없던 마음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창문에 입김을 불어 ‘참 힘들었다’고 썼다. 무섭다. 삶을 떠나는 것도, 계속 살아가는 것도 나에게는 무서운 일이다. 너무 무서운 세상에 던져진 내가 원망스러웠다. 누구를 떠올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땅에서 청소년으로 산다는 건 끊임없는 싸움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공부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자기 안의 우울함과 벌이는 치열한 사투일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힘으로 이 우울함에 이기는 건 어렵다. 그리고 우울함에 졌을 때 찾아오는 결과는 슬프고 끔찍하다. 그러므로 우울함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과 혹은 다른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이러한 고민이 싹을 틔우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정신보건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동안 무심하던 어른들도 ‘이대로는 안된다’며 한마디씩 거들고 있다. 학교에선 상담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우울증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금 반짝하다 그칠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청소년의 마음을 더 잘 다독일 수 있는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도 함께 고민해주고 힘이 되어줄 이들이 근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청소년의 우울함에 대한 단 하나의 해법은 없다. 청소년 개개인이 다르고, 그래서 우울한 이유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의 우울함을 넓은 시각에서 보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청소년인권운동가 필부 씨는 “학교가 너무 권위적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우울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권위적인 학교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른들은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마음대로 조퇴할 권리도 없고 방학을 누릴 권리도 없다. 야간자율학습은 강요되고 공부 이외의 활동은 지적당한다. 이렇게 수직적으로 구성된 학교의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꿔간다면 청소년 하나하나가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고, 우울함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올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청소년 스스로 자기의 우울함과 힘든 상황을 토로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완벽하지 않음 때문에 우울하기보다는, 모두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아끼는 모습이 당연한 풍경이 되길 기도한다.

 

 

 

지금 얼마나 우울한가요?

 

1. 나는 요즘 외롭다 (그렇다 / 아니다)

2. 나는 마음이 약해져 별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많다

3. 나의 미래는 너무 불안하다

4.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하는 게 많아 열등하다.

5.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6. 요즘 부쩍 신경이 날카롭다.

7. 다른 사람에 대해 의심하는 일이 많다.

8. 친구나 가족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

9. 요즘 부쩍 식욕이 없어서 밥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혹은 지나친 폭식을 한다.

10. 잠을 잘 못 자는 날이 많다.

 

‘그렇다’고 응답한 개수가

0개~3개 : 건강한 마음을 가지셨군요. 지금의 건강함을 계속 유지하길 MODU가 응원합니다. 항상 싱글벙글 행복하시길!

4개~5개 :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거나, 약간 우울한 상태인 것 같아요. 본인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꼭 주변에 이야기하세요. 마음이 맞는 사람에게 우울함을 털어놓다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거예요.

6개~7개 :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지금 많이 우울한 것 같아요. 우울함 때문에 몸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네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가족이나 선생님에게 “요즘 너무 우울하다”고 말해보세요. 분명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8개 이상 : 지금 생활이 많이 힘들죠. 얼마나 외로울까요. 참는다고 우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두려워하지 말고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37페이지에 있는 이연정 전문의와의 인터뷰도 한 번 읽어보세요. 상담하고 치료를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여러분에게 피해가 되는 일도 아니랍니다. 얼른 지금의 힘듦을 덜어낼 수 있길.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연정 소아정신과 전문의

 

Q1. 청소년 우울증에는 어떤 증상이 있나요?

A. 성인의 우울증과 청소년 우울증은 증상이 달라요. 성인의 경우에는 우울해지고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이 나타나요. 청소년은 꼭 그렇지 않아요. 집중력이 떨어져 성적이 저하되기도 하고, 복통이나 두통이 생기거나 몸이 피로해지기도 하죠. 그래서 청소년의 우울증을 ‘가면성 우울증’이라고도 해요.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들과 다른 증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죠.

 

Q2. 그렇다면 청소년 우울증이 다른 나이의 우울증에 비해 심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성인에 비해 청소년은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에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발달이 아직 미성숙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거나 요청하는 것을 잘 못해요. 그래서 증상이 더 심각해지거나 쉽게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죠. 다양한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청소년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성인기에 나타나는 정신과 질환 절반 이상이 청소년기에 시작되거든요. 청소년의 우울증이 심각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정확한 진단과 빠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Q3. 청소년 자신이 느끼기에 어느 정도가 되면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우울증 치료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궁금해요.

A. 사실 누구나 우울할 수 있고 힘들 수 있죠. 항상 행복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치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의 기준은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하나는 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에요. 힘들어서 그동안에 잘해오던 기본적인 일상생활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는 치료가 꼭 필요하죠. 다른 하나는 주변 사람이 봤을 때 너무 힘들어 보이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우울한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주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게 필요해요.

 

Q4. 정신과 치료, 특히 약물치료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약물치료도 필요한가요? 부작용이 있지는 않나요?

A.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할 것 같아요. 우울증은 마음이 약해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뇌 질환이거든요. 버틴다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당뇨나 고혈압 치료를 위해 약물을 사용해야지 버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것처럼요.

약물에 대한 후유증이나 중독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약의 종류도 많아졌고 약의 품질도 점점 좋아지고 있거든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문제가 생긴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약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병의 경과라고 보는 게 맞아요. 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또 하나, 정신과 치료 기록은 절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어요. 본인이나 보호자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죠. 그런 문제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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