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호] 외국어로 읽고 한국어로 쓰다, 전문번역가 김명철
인터뷰/글 진주영
사진 이진혁
외국어로 읽고 한국어로 쓰다
전문번역가 김명철
번역가를 꿈꾸는 너, 군대에서 고생하는 샘 해밍턴이 부럽지는 않니? 영어 잘하니까. 미군들이랑 대화도 잘 통하고. 한국말도 잘하고.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언제쯤 2개 국어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도통 영어가 늘지를 않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기사를 꼭 읽어야 해! 번역가에게 외국어 실력보다 더더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테니까 말이야.
안녕하세요. 주로 어떤 책을 번역하나요?
다양한 종류의 책을 번역하지만, 주로 경제나 경영 관련 도서를 번역하고 있어요. 영어로 된 원서를 한국어로 옮겨요.
경제나 경영 분야를 주로 번역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교 때 경영학을 전공했거든요. 자기가 잘 아는 분야를 번역해야 정확하고 빠르게 번역할 수 있어요. 이전에 소설 등 다른 분야도 번역해봤는데 아무래도 경제, 경영이 가장 잘 맞더라고요.
어문계열 전공자나 통번역 대학원 출신이 아닌데, 번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번역을 전문으로 하기 전에는 종합상사에서 수출입 관련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부업 삼아 번역을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제 적성에도 잘 맞고 재미있어서 쭉 하고 있어요. 굳이 덧붙이자면 모든 번역가가 어문계열 출신은 아니에요.
정말 신기하지? 번역가가 되려면 어학연수도 다녀와야 할 것 같고, 통번역 대학원은 당연히 졸업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번역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 번역가가 되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초반에는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다고요?
제가 번역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번역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도 잘 몰랐죠. 지금보다 정보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이미 번역가로 활동하는 선배들한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어렵게 혼자서 알아냈지만, 제가 힘들여 알게 된 것들을 후배들한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른번역이라는 회사군요!
그렇죠. 번역가들끼리 정보도 공유하고, 가능성 있는 후배들이 번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런 단체의 필요성을 이전부터 느꼈거든요. 한번은 의학 관련 서적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번역가 모임이 있으면 서로 의뢰도 할 수 있고, 정보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좋겠다 싶었어요.
회사뿐만 아니라 번역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직접 강의도 한다고 들었어요. 후배 양성을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바른번역이라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느낀 건 왕성하게 활동하는 번역가 수가 적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반대로 번역가 지망생은 또 되게 많아요. 어떻게 하면 번역가가 될 수 있는지, 뭘 잘하면 좋은지를 물어오는 걸 보면서 이런 아카데미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MODU 친구들에게도 한 수 가르쳐주세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쓰면 좋을까요?
저는 옛날 사람이에요. 그때는 다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알파벳을 배웠죠. 그렇지만 지금 학생들에 비해 예전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문장을 분석하는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요즘 친구들을 보면 회화도 잘하고 발음도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문장이 조금만 복잡해지고 길어지면 그 문장 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문장을 분석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문장 구조 분석!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될까요?
기본적인 문법 공부는 필수죠. 하지만 문장 구조를 잘 이해하는 것은 문법하고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문법에만 치중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거든요. 우리말로 된 글을 정확하게 읽는 사람이 원서도 제대로 이해해요. 그러니 문장 구조를 잘 분석하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으세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다’가 아니에요. 저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그 주장을 펼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글을 끌어가는지, 어떤 논리를 가져왔는지를 봐야 해요. 이게 외국어 공부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번역을 하려면 우리말부터 잘 익히라는 뜻이군요!
그렇죠.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 번역도 잘하니까요. 또 우리말 표현을 풍성하게 알고 있으면 번역할 때도 더 좋겠죠.
전문번역가가 알려주는 번역의 기술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던데요. 맞나요?
번역에서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는 맞는 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반대해요. 처음 번역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번역 아카데미에서 수업할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잊으라”는 거예요. 초심자에게 번역은 창작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말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언어로 쓰인 글을 있는 그대로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기는 게 번역이에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의역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그러다 보면 오역이 생기죠.
그렇다면 번역할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면 좋을까요?
말씀 드린 것처럼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단어 하나하나를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점을 둬야 하는 것은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가 아니라 한 문장, 문단, 글 전체를 생각해야 해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는 말처럼 넓게 보고 글의 흐름을 읽어내라는 뜻이에요. 초심자일수록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경향이 짙거든요.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 한다! 어렵네요.
한 문장 안에서 어떤 단어가 중요한지, 한 문단에서 핵심이 되는 문장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라는 뜻이에요. 파워(Power)라는 단어로 예를 들어보죠. 파워는 문맥에 따라 ‘권력’, ‘전력’ 등 다양한 뜻으로 쓰여요. 그걸 그냥 ‘힘’이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모여 오역이나 비문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제 조금 이해가 됐나요?
자유로운 만큼 책임감도 강해야
번역가란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기가 주도적으로 시간을 계획해서 쓸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인 것 같아요. 게다가 장소의 구애도 받지 않으니까 정말 자유롭죠.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제 근로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번역가 중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아요.
자유롭다! 정말 좋은 장점이지만 곧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자유로움과 함께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니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거잖아요. 그런 부분이 부담스럽다면 이런 직업은 어울리지 않죠.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요. 누군가는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게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직에서 일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요. 번역가가 되기 전에 이런 부분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하지만 마음껏 자유를 누리다가는 큰일나는 경우도 있다고요?
여기서 말하는 자유롭다는 뜻을 잘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자유롭다는 게 놀고 싶은 만큼 놀면서 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그만큼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특히 글 쓰는 직업은 마감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시간 관리를 잘 못 하면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겨요. 처음에는 주어진 시간이 넉넉한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거든요. 처음 번역을 시작하는 친구들이나 번역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이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데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나요?
한 권에 보통 두 달 정도 걸려요. 많이 해봐야 1년에 4~5권 정도 번역할 수 있는 거예요. 한번에 여러 책을 병행하긴 힘들고요. 대신 잡지나 영상 번역 같은 것들은 출판 번역하면서 같이 할 수 있긴 하죠.
지금은 어떤 책을 번역하고 있나요?
지금은 예전에 번역한 <경제학 콘서트>란 책의 저자 ‘팀 하포드’가 새로 쓴 책을 작업하고 있어요. 제가 가르쳤던 제자하고 같이 공동으로 번역하고 있는데요. <경제학 콘서트>는 미시경제학을 다룬 책이고, 이번 책은 거시경제학을 주제로 하고 있어요. 경제를 일반 사람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중고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은 꼭 번역해보고 싶다! 하는 책이 있을까요?
<다윗과 골리앗>라는 책을 쓴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데요. 그동안 의뢰가 몇 번 들어왔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한 번도 못 했어요. 아쉽죠. 나중에 꼭 한번 이 작가의 책을 번역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번역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번역가, 멋진 직업이죠. 다른 언어로 쓰인 글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게 참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번역가를 최종목표로 두기보다 더 큰 꿈을 설정했으면 좋겠어요. 제자들한테도 항상 말하거든요. 번역도 좋지만 자기 글을 쓰라고요. 저 역시 번역도 하고 제 이름으로 된 책도 내고 있거든요. MODU 친구들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번역가를 꿈꿨으면 좋겠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번역도 잘하거든요.
멋진 답변 감사합니다! 정말 한 수 배웠다. 그렇지? 알찬 내용으로 가득하다, 가득해. 번역가가 되고 싶은 MODU 친구들, 외국어 시간뿐만 아니라 국어 시간도 더욱 집중하자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써보고 말이야. 할 일이 많다, 많아. 마지막으로 어떤 언어를 번역할 지만큼 어떤 분야의 책을 전문 분야로 삼을지도 고민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