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25호]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글 /이진혁

사진/씨네21최성열

미안하다, 미친세상을 물려줘서

어린이 교양잡지<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착하기만 한 롤모델 인터뷰는 가라! 이번 달 MODU가 선정한 롤모델의 충격 발언! “아마 제가 한국 최초의 오토바이 폭주족이 아닐까요?”, “청소년에게는 문제가 없다. 전부 어른들 문제다”, “고작 선생님 말 좀 안 듣는다고 애들을 때리겠다고? 정신 나간 소리다.” 어때, 지금까지 봤던 ‘착한 인터뷰’와는 다르지? 너희가 이 인터뷰를 재미있게 읽을 거라 믿는 것도 이런 이유지. “기성세대로서 청소년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는 착한 한마디도 빼놓지 않는 4월의 롤모델!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김규항 발행인이야.

김규항 발행인은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논객으로 꼽혀. 신문지면에 여러 칼럼을 쓰며 사회에 쓴소리를 던지기도 하지. 그러나 언제나 그에게 제일 큰 관심은 ‘어린이’야.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항상 힘든 이 땅의 어린이들이 너무 안쓰러웠대. 몇 년 전 어린이였을 너희는 어떠니? 공감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린이가 ‘좋은 상품’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는 김규항 발행인. 그래서 그가 만든 것이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야.

 

<고래가 그랬어>를 언제 창간했나요? 창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3년 10월에 창간했어요. 최근 124호가 나왔죠. 지금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처음 <고래가 그랬어>를 만들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어린이 잡지를 만들게 된 거죠. 세상이 참 각박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각박한 세상에 나오고 싶어 나온 게 아니에요. 태어나보니 그런 세상과 마주하게 된 거죠. 요즘 아이들은 제대로 뛰어놀지도 못해요. 예전에 어른들은 ‘돈이 전부는 아니다’,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친구에게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가르쳤어요. 지금은 어른들이 점점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마음껏 뛰어놀라는 말도 하기 힘들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겁나는 세상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만 너무 힘들잖아요. 제가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런 상황 때문이에요.

 

정말 요즘은 어린이 때부터 힘든 삶을 살더라고요. 그런 김규항 발행인의 고민이 <고래가 그랬어>에 어떻게 묻어있나요?

예전에는 누구나 말했지만, 지금은 더이상 어른들이 들려주지 못하게 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거나 주입하는 건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하자는 거였죠. 잘 산다는 건 무엇인지, 또 즐겁다는 건 어떤 건지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랐어요. 또 하나 <고래가 그랬어>의 중요한 목표는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자는 거였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기편이 없어요. 아이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고민이나 직접 겪고 있는 고통에 귀 기울이기가 힘들죠. 그런 아이들에게 ‘아, 이 잡지는 우리 편이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어린이들이 그런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나요?

저한테 비밀 편지를 보내는 아이들도 있어요. 놀라운 건 ‘죽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다는 거예요. 아직 초등학생들인데도 말이죠. 또 ‘이민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요. 왜 우리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수 없느냐는 거예요. 사실 그런 고민은 제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을 함께 해주고 싶었어요.

 

<고래가 그랬어>를 읽은 후의 반응이 궁금해요.

아이들의 반응보다 부모들의 반응이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부모들이 웃으면서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죠. <고래가 그랬어>를 보여줬더니 아이가 아빠한테 이런 말을 한다는 거예요. “왜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워요?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되는 행동이잖아요.” 아이가 그런 말을 하다 보니 저한테 항변하는 경우가 있어요. <고래가 그랬어>를 보고 아이가 까다로워졌다고요. (웃음)

 

<고래가 그랬어>를 만들면서 제일 뿌듯할 때는 언제인가요.

아이들이 좋아할 때죠. <고래가 그랬어>가 정말 좋다거나 “<고래가 그랬어>는 우리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제일 뿌듯하죠. 창간 초기의 독자들이 이제는 청년이 됐어요. 이들이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고래가 그랬어>를 권하기도 하고, 어릴 때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말하기도 하죠. 그런 걸 보면 ‘크게 잘못하진 않았구나, 보람이 있구나’ 생각이 되죠. 또 하나, “<고래가 그랬어>보고 자란 아이들은 좀 달라”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도 참 좋더라고요.

 

김규항 발행인은 두 아이의 아버지야. 그의 교육관이 궁금했어. 그는 어른들이 자기 원하는 대로 아이를 길러내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해. 아이가 직접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할 능력일 길러줘야 한다는 거야. 좋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지. 너희는 어떠니? 지금 스스로 삶을 선택해서 잘 꾸려가고 있니? 혹시 뭐가 되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면 그런 고민도 함께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고래가 그랬어>의 가장 열렬한 독자는 자녀분이었을 것 같아요.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고래가 그랬어>를 읽고 실제로 자녀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사실 아이들이 경험하는 게 <고래가 그랬어> 말고도 많으니까, 이 책을 읽어서 아이가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래도 제 아이들이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큰 아이는 지금 스물한 살이고 둘째는 열여덟 살이 됐어요. <고래가 그랬어>가 창간할 때는 어린이였죠. 사실 제 아이들이 자기 아빠가 만든 잡지라서 재미있는 척을 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가르친 것도 있고요. 일부러 <고래가 그랬어>도 우편을 통해 집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항상 잡지가 배달되면 먼저 달려가서 가져와 읽더라고요. 화장실에 쌓아놓고 몇 번을 읽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생일선물로 <고래가 그랬어>를 사주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책이 나쁘지는 않구나’하는 걸 느낄 때가 많았죠. 사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어린이 책이 별로 없어요. 좋은 어린이 책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어른들 기준에서 그런 거죠. 좀 배우고 의식 있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은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정한 것들이 좋은 어린이 책으로 둔갑해요. 실제로 돈을 내고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은 어린이가 아니고 어른들이기 때문이죠. 사실 어느 나라나 그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심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거죠.

 

아이들에게 생각을 주입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요?

아이들을 대안학교로 보내는 일부 부모들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다 그런 건 아니고요. 요즘 시골에 대안학교가 많잖아요. 거기서 생활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집에 가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왜 대안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도 없고 동의를 한 적도 없대요. 그냥 부모가 생태주의자면 아이들을 생태적인 대안학교에 보내는 식이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봐요. “너 집으로 가면 열두 시까지 매일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그게 더 좋아?”하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그게 더 좋대요. 부모 입장에선 지옥 같은 학교와 입시에서 벗어나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거겠지만, 아이들은 그 지옥으로 가고 싶은 거죠. 부모들이 자기 생각대로 아이를 몰아붙이는 거예요. 하지만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이의 삶이 있는 거니까. 아이의 삶에 대한 결정을 할 때는 그 아이가 직접 충분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거예요.

 

김규항 발행인은 아이들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계신 것 같아요.

아까 한 이야기와 혼동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무조건적인 존중은 존중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제 친구의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컴퓨터 게임을 하는 걸로 엄마와 갈등이 심했어요. 그러니까 제 친구가 이렇게 말을 한 거예요. “너 컴퓨터 게임 때문에 엄마랑 자주 싸우는데, 사실 그거 너 혼자 알아서 조절할 수 있지 않으냐”하고요. 세상에 어떤 남자애가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하지 “아니에요. 저는 아직 관리가 필요해요”하고 말하겠어요. 친구는 그래서 잘 해결이 된 줄 알았는데, 친구의 아이는 석 달을 피시방에서만 살았대요. 이게 아이를 존중하는 걸까요? 아이의 자율성이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걸 선택하기 위한 식견을 키워주는 거예요. 필요한 정보도 주교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하기 싫은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구별할 방법이 없어요. 하기 싫은 것을 무조건 하지 않아도 될 권리처럼 주장하게 된다면 올바른 교육이 아니죠. 교육을 올바로 해야지, 교육하지 않는 것을 교육이라고 우기면 안 돼요. 어려운 일이죠. 부모들이 많이 노력해야 해요.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존중은 존중이 아니다. 교육이란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에게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어. 그의 대답은 “청소년의 문제는 없다. 어른들의 문제다”, “교육 문제는 없다.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였어. 어쩌면 너희 중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기도 해. 이렇게 힘든 게 정말 우리 때문인가 하고 말이야. 거기에 대해 김규항 발행인은 “아니”라고 대답을 하는 거지.

 

김규항 발행인은 청소년기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어릴 때는 조용하고, 공부만 잘하는 아이였어요. 어머니가 아주 편찮으셔서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뛰어놀지 못했거든요. 그래서인지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랐어요.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어요. 오토바이 타는 것도 좋아하고 그랬죠. 한국 최초의 오토바이 폭주족이라고 할까요? (웃음) 자랑스럽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그렇다면 청소년기에 어떤 꿈이 있었나요?

꿈은 없었어요. 정말 아무런 꿈도 없었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장래희망이란 걸 못 적어내서 문제였죠. 우리 때는 ‘장군’, ‘대통령’ 이런 게 대개 장래희망이었어요.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직업도 아닌 것들, 예를 들면 현모양처 이런 게 장래희망에 적혀있기도 했죠.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제대로 적지 못했어요. 뭐가 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인데, 도대체 20년 후나 3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다른 아이들이 신기하더라고요. 좀 이상하죠?

인터뷰하면서 ‘꿈이 없었다’는 대답은 처음인 것 같아요. 사실 많은 사람이 청소년기에 ‘이런 꿈을 가졌다’, ‘이런 준비를 했다’, ‘이런 걸 후회한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하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안철수 같은 사람들이 자기는 세 시간만 잤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이 세 시간만 잔다고 다 안철수처럼 되는 건 아니거든요. 아주 특별한 경우죠. 운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안 하고 마치 자기의 의지만으로 자기는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사실 사람이 열심히 산다고 꼭 잘 되는 법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청소년기에 이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이는 사람 하나를 위해서는 덜 인정받고, 대우도 못 받는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죠. 사실 사람은 모두 다 중요해요.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떠받드는 사람들도 이런 걸 알아야 해요.

 

신문에 칼럼도 쓰시고 사회에 대한 비판도 많이 하시는 데요. 요즘 청소년 문제가 많다고 하잖아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청소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청소년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어른들한테 문제가 있어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체벌을 해야 한다. 요즘 애들은 너무 버릇이 없어서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요.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지금 1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해요.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상을 만들어놓고는, 청소년들이 고작 선생님 말 잘 안 듣는다고 때려야 한다는 건 정신 나간 소리죠. 청소년들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겪고 있어요. 예전처럼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게 아니에요.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죽는 청소년이 많아요.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런 걸 발견하고 느낄 기회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기회를 어른들이 만들어주지 못한 거예요. 청소년 문제는 없어요. 다 기성세대의 문제죠. 간혹 정말 나쁜 청소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죠. 요즘만 있는 건 아니에요.

 

청소년은 문제가 없다는 말에 공감하는 청소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른들은 다른 생각일 것 같은데요. ‘기성세대의 문제’라고 하셨는데, 정확하게 어떤 문제인가요?

청소년들이 제대로 살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가 놓고, 청소년들이 ‘못 살겠다’고 하면 그것만 보고 “요즘 청소년은 문제”라고 말한다는 거죠. 지금 당장 사는 게 너무 힘든 아이들이 ‘저는 이러한 이유로 못 살겠습니다’하며 논리적으로 분석을 해야 하나요? 그럴 수 없죠. 저는 청소년을 무조건 아름답게만 볼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어른들이 만든 문제를 청소년 문제라고 우기는 건 좀 웃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교육 문제는 어떤가요? 교육이 문제라는 말도 항상 있었는데.

교육 문제도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교육’이 없기 때문이죠. 다들 교육문제라고 말하지만 사실 대학입시제도의 문제에요. 청소년을 어떻게 교육할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떤 대학에 보낼지를 고민하죠. 교육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키우는 거예요. 교육을 잘하면 본인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죠.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학교도 없고, 선생님도 없고, 심지어 그런 생각을 하는 청소년도 없죠. 물론 경쟁은 필요해요. 하지만 지금 한국은 해도 너무 하죠. 지구 상에 이런 나라는 하나뿐이에요. 돈이 없어서 학원에 못 가는 아이들을 빼고 모든 아이가 학원에 다녀요. 슬픈 일이죠. 상황이 이런데도 문제를 못 느끼는 건 모두가 그렇기 때문이에요. 동네에서 몇 집만 그러면 사람들이 ‘애 잡는다’고 손가락질을 할 텐데, 지금은 다들 그러니까요.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 말했다는데, 다 몰라서 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아마 한 달만 한국에서 살면 그런 소리를 못 할 걸요?

 

<고래가 그랬어>는 이제 운영 어려움을 딛고 많이 자리가 잡혔는데요. <고래가 그랬어>에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다른 특별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고래가 그랬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도서관에만 있어도 참 좋을 것 같아요. 부모가 구독을 안 해줘서 못 보는 아이는 있어도, 부모가 돈이 없어서 <고래가 그랬어>를 못 보는 아이들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고래가 그랬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건 이런 의미죠.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게 유일한 목표예요.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대단히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소년들에게 항상 미안해요. 청소년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세상을 만든 것도 아니잖아요. 그전 세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살아내야 해요. 청소년의 힘든 상황에 대한 책임이 앞선 시대를 살아온 저한테 있는 거예요. 모든 어른은 청소년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해요. 이렇게 살게 해서 미안하다, 이렇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그런 사과가 없다면 어떤 말도 헛소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어른들이 요즘 애들은 어떻다느니,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그런 소리만 해요. 이 사회에서 굉장히 혜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제일 고통받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나도 어릴 때는 아팠어’라고 말하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돼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나쁜 놈이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겠죠.

청소년들이 자기의 삶과 사회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따라오라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힘든 게 ‘내 잘못이 아니구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잘못도 아니구나’, ‘도대체 세상은 왜 이렇지’를 고민해 보라는 거죠. 다들 이런 고민을 한다면 사회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 있고,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은 힘이 날 수도 있죠.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기의 삶과, 자기를 둘러싼 상황을 생각하며 힘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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