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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국경으로 가는 길-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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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국경으로 가는 길

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 vol.3

 

크고 무서운 사람들_윤성

자정을 넘긴 시각의 케이프타운 롱 스트리트.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거리로 나오는 순간 긴장이 됐다. 건물 대부분은 굵은 철창이 단단하게 내려와 있었다. 주변에 경찰서는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치 큰 흑인들이 가득한 거리에 동양인은 우리 둘뿐이었다.

 

‘저기 가보자.’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핫도그를 파는 곳이 있었다. 눈치를 보며 먹는 말라 비틀어진 핫도그가 유난히 뻑뻑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음식이라고 입에 넣으니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제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한 거리는 군데군데 요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조명이 있는 곳은 하나같이 시끄러웠는데, 술집이나 클럽 같아 보였다. 도로변 인도는 상당 부분이 건물의 베란다들로 덮여있어 매우 어두웠다.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났다.

 

“What?”

“What!”

 

민재와 커다란 흑인이 대치하고 있었다. 민재도 꽤나 큰 편인데, 그 남자는 민재보다 머리 반 개 정도가 컸다. 몸집은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도대체 저 무서운 남자랑 이 밤중에 뭐하는 짓인가? 나라도 소리를 지르며 달려야 하는 건가? 하지만 민재와 남자는 아랫입술을 내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들어 빈 손바닥을 보였다. 다행히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았다. 큰 남자는 뒤로 돌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민재를 잡아끌어 종종걸음으로 숙소의 철창 안전문 안으로 들어갔다.

 

 

 

“야, 방금 뭐였어?”

“아 별거 아냐. 담배 지갑 때문에 그랬어. 이거 뒷주머니에 넣어놨는데, 훔치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거야.”

 

민재는 검정 낙타 가죽 담배 주머니를 흔들며 이야기했다. 생김새가 꼭 지갑 같았다. 흑인 남자가 오해할 만했다.

 

“그냥 손이 막 들어온 거야? 어떻게 알았어?”

“아, 아까 나오면서 일부러 삐져나오게 넣어놨었어. 좀 보이라고. 여기 진짜 위험한지 보려고 그랬지. 근데 오 분도 안 걸리네.”

“야, 미쳤어? 끌려가서 맞으면 어쩌려고.”

“에이, 아까 밖에 사람 많았잖아. 숙소 앞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건 뭐 훔쳐가도 별거 없는 물건이니까. 아무튼 장난 아니다 여기. 아까 걔 덩치 봤지?”

 

할 말이 없었다. 당돌하고 겁 없는 녀석이다. 황당한 방식이긴 했지만 이곳의 치안 상태는 확인했다. 지갑은 가방 속에 숨겨두고 딱 필요한 돈만 가지고 다녀야겠다.

 

 

적응, 여행 준비_민재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오니 박윤성은 아직 자고 있다. 밤새 이를 벅벅 갈더니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샤워를 하고 컴퓨터를 챙겨 게스트하우스의 테라스로 나와 앉았다. 박윤성을 여기까지 데려오긴 했는데,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 목록부터 만들어 보자.

 

  1. 중고차량 구매 및 차량 등록
  2. 폴리스 클리어런스 등 제반 문서 마련
  3. 차량 보험 가입
  4. 캠핑장비 구입
  5. 함께할 또 다른 백인 친구 찾기

 

목록을 작성하니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일까? 우선은 차량 구매가 가능한지, 그리고 재판매 역시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은 유경험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우선은 은영 아저씨께 전화를 드려 만나 뵐 수 없는지를 여쭈었다. 아저씨와 점심 약속을 잡은 뒤, 게스트하우스의 관리인에게 중고차 구매에 대해 몇 가지를 물었다. 그는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하지만 남아공에서 외국인이 차량을 구매하고 등록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는 답변을 주었다. 시작이 좋다. 박윤성을 깨워야겠다.

 

 

“일어나.”

“아웅 몇 신데.”

“잘 만큼 잤어. 빨리 일어나서 씻어.”

“아, 알았어.”

 

우리는 부엌에서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물가가 서울 수준인 이곳, 체류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요리를 해먹는 편이 낫다. 샌드위치를 씹으며, 오늘 하고자 하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우선 중고차 여행이 정말 가능한지 아직 확신이 없잖아? 오늘은 어떤 것들을 어디서 확인해야 하는지 정보 수집을 좀 하자.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진행하자는 거지.”

“좋아. 아프리카 오버랜드 책에 대강의 정보가 나와 있으니까 이거 토대로 준비하면 되겠다.”

“응, 근데 책만 믿다가는 분명히 실수가 생기니까 발로 뛰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에 비슷한 종류 책이 있는지도 좀 알아봤으면 좋겠어. 있다가 은영 아저씨께서 들르신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는 나가서 돌아다니자.”

 

우리는 밖으로 나가 인근 서점과 여행사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러 지도들과 책자 등을 찾을 수 있었지만 입맛에 꼭 맞는 것은 없었다. 대신 여행사 직원들로부터 차량을 등록하는 것이나 국경을 넘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었다.

 

 

자동차를 살 수 있을까?_윤성

“너희들 이거부터 받아라.”

“아저씨 이게 뭐예요?”

“아주머니께서 너희들 가져다주라고 김밥이랑 유부초밥을 만드셨네.”

“우와! 감사합니다.”

 

은영 아저씨가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앞길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나타난 은영 아저씨는 마치 구세주 같았다. 차량에 대한 민재의 질문에 은영 아저씨께서는 몇 가지를 대답해주셨다.

 

“일단 남아공에서 외국인이 중고차를 구매하는 건 가능한 일이야, 직거래랑 매매소가 있는데, 직거래가 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구할 수는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등록하는 절차나 국경 같은 경우는 내가 정확히는 모르겠으니 조금 더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괜찮다면 지금 차량관리국에 가서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 주시면 저희야 정말 감사하죠. 아 그리고 아저씨, 혹시 황열병 주사도 맞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근처에 있을 것 같다. 여기 관공서는 금방 문을 닫으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차량관리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은영 아저씨는 주의사항을 열거했다. 차량 문을 항상 잠글 것, 해가 지면 돌아다니지 말 것, ATM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주위를 살필 것 등 대부분 치안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곳에서 5년간 생활하신 아저씨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도착한 차량 관리국, 원론적으로 우리의 계획이 가능한 것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필요한 서류의 목록과 그것을 처리해주는 관공서들의 위치 역시 알아냈다. 마지막으로는 병원에 도착하여 민재에게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혔다. 무언가

착착 진행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부모님의 걱정_민재

어느 날, 새벽 6시. 휴대전화가 울려댔다. 잠결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버지. 비상시에만 사용하기로 한 전화인데,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받아보니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나무라시는 아버지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아프리카 차량 여행에 대한 불안감에 전화를 하셨던 것. 위험하게 꼭 차량으로 여행을 해야 하느냐는 말씀에 좀 더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 했다.

 

“아버지셔?”

 

아래층 침대에서 윤성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엉, 트럭킹* 하라시네.”

 

트럭킹* 말 그대로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주하는 여행

 

우리는 부모님들의 걱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프리카와 우리의 여행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 편안한 대화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프리카 차량 여행을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이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고 어떤 이들은 불가능한 일이며,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매우 위험한 일이라 했다. 여행 준비를 도와주신 은영 아저씨께서도 몇 번이나 트럭킹 등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아프리카 그리고 차량 여행, 우리를 향한 혼재된 시선들 속에서 나는 몇 번 정도 차량 여행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책과 블로그 등을 통해 같은 방법으로 아프리카를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을 다졌었다. 여행이 모두 끝난 지금, 누군가 꼭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겠다.

 

“하세요. 저는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아프리카를 그렇게 여행하는 사람들 꽤 많아요. 만약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도와줄게요.”

 

 

불안_윤성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뒤로 민재는 불안해했다. 다음 날 은영아저씨께서도 전화로 걱정이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서류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케이프타운에서 만난 사람들조차도 우리의 여행 계획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한국인 숙소에서 만난 사장님, 호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게스트하우스의 여행자들도 그러했다. 급기야 민재는 ‘다른 방법으로 여행할까?’ 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롱 스트리트에 즐비한 오버랜드 전문 여행사들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 달 코스로 남쪽과 동쪽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상품, 두 달 코스로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상품. 우리의 계획과 비슷한 루트의 여행상품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환상이 너무 커져 버렸던 탓일까? 트럭투어 상품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민재에게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밀어 붙여보자고 이야기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동물만 보는 것이 아프리카 여행이 아니었다. 여행을 하면서 계획을 짜고 준비하고 꾸려나가는 과정 역시 여행이었다. 사자만큼이나 케이프타운의 현지인들이 무섭게 느껴졌었고 중고차 시장은 사막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다.

 

사실 우리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셨다. ‘꼭 차를 사서 여행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수차례 하셨다. 그때마다 ‘일단 아프리카에 가서 상황이 괜찮으면 진행할게요.’라고 말씀드렸었다. 그 뒤로도 전화통화를 할 때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험악한 사건 이야기를 들으셨다며 근심 어린 말씀을 하셨다.

 

 

결심_민재

도착한 지 벌써 열흘, 얼마 뒤에 스캇이 비행기 표를 끊을 것이다. 윤성과 스캇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곳까지 오는 것이다. 나는 여행 방법을 정하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이에 오버랜드 트럭투어와 지역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 그리고 중고차 여행을 적었다. 그리고 각각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과연 나는 어떤 여행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박윤성과 스캇에게 최고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나는 정말 중고차 여행을 시작하고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을까? 나는 윤성에게 물었다.

 

“정말 중고차 여행해보고 싶어?”

“음, 하고야 싶지 당연히. 그런데 왜? 부모님 때문에?”

“응, 그런 것도 있고 막상 시작하려니 겁도 난다.”

“사고 같은 거 날까 봐?”

 

사고는 어떤 방법으로 여행을 하든지 간에 날 수 있다. 두려운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너나 스캇을 끌어들였잖아. 그런데 이 여행이 만약에 실패하거나 하게 되면 좀 힘들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윤성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깨를 툭 치며 대답했다.

“에이 왜 그런 걸 생각해. 여기서 실패한다고 너 탓할 사람 아무도 없어. 그게 왜 네 탓이야. 결국 내가 내 발로 여기에 온 건데. 적어도 나는 안 그럴게.”

 

잠들기 전, 2층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 통화목록에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냥 오버랜드 트럭투어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인도 여행 중 자꾸만 의견을 묻는 내게 로베르토가 이야기했었다. ‘왜 자꾸 나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보니? 내 여행은 내 여행이고 니 여행은 니 여행이야.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는 거야. 넌 네 여행을 해야만 해.’

 

 

그렇다. 아프리카에 있는 것은 나 자신이지 아버지가 아니다. 지금 나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람은 박윤성이지 어머니가 아닌 것이다. 만약 중고차 여행을 포기한다면 그 뒤에 따라올 후회는 부모님 때문이었다고 말할 것인가? 아프리카에서 중고차를 사겠다는 아들이 불안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이곳의 상황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며, 나 자신과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나는 정말이지 친구들과 함께 초원과 사막을 달리고 싶었다.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나름의 자신도 있다. 나는 박윤성을 불렀다.

 

“자나?”

“아니 왜?”

“최대한 빨리 차 한 대 뽑자.”

“진짜? 갑자기 뭐야? 마음먹은 거야?”

“아 그냥 빨리 차 뽑자. 내일 아침부터 알아보자.”

“맥주 한잔 할까?”

“아니, 빨리 자자. 내일부터 서두를 거야.”

“그래, 일단 자자.”

 

후련했다. 이제 단단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늦게까지 차량을 구매할 방법들과 부모님의 불안감을 덜어드릴 방법들을 생각하다가 잠에 들었다.

 

 

 

 

 

케이프타운의 중고차 시장_민재

남아공은 중고차의 천국이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케이프타운의 벨빌 이라는 곳인데, 약 5km에 걸쳐 중고차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도요타와 닛산 등 일본 차량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벤츠와 BMW, VW, 푸조 등 각종 브랜드의 차량들이 즐비했다. 거래되는 차량은 적게는 5년부터 많게는 20년 정도 된 것들이다.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 중고차를 대량으로 들여와 수리하여 판매하는 것이 꽤나 훌륭한 사업이라고 했다. 중고차들에겐 제2의 탄생지라 할 수 있겠다. 아주 오래된 차량들도 수리해서 사용하고 신차의 판매 비중이 낮기 때문에 중고차의 가격은 일이 년이 지나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중개상을 통하지 않은 개인간 거래 역시 활성화되어있다. 개인 간 거래를 할 경우 중고차 시장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기를 당하거나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다.

 

‘아프리카 오버랜드’에 따르면, 성공적인 아프리카 차량 여행을 위해서는 사륜구동의 일본 차량이 가장 좋다. 그리고 수동 변속기와 수동 레버로 열고 닫는 창문 등 뭐든지 오래되고 간단하면서 튼튼한 것이 좋다. 전자장비는 고장이 날 경우, 수리하는 것이 어려우니 지양해야 하며, 짐 싣는 곳에는 캐노피가 있는 것이 사람과 원숭이 등 약탈자들로부터 물건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또한 캐노피가 있을 경우, 그 위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어 사자와 하이에나 등 포식자들로부터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수도 있다.

 

 

네팔에서 박윤성을 꼬셔오길 잘했다. 윤성은 군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는데, 덕분에 차량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차량을 보는 나의 눈은 해태나 염소의 그것과 비교할만했다.

 

중고차량 판매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차량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던 윤성에게 나는 적당한 가격의 ‘닛산 사니’를 강하게 주장했다. 자주색의 깔끔한 외관과 새로 덮은 비닐 시트로 꾸며진 내부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 정도 차라면 국립공원에서 사파리 사업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차량은 엔진 소리가 소달구지 같았으며,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는데, 창문 버튼을 눌러도 창문이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 무서운 차량이었다. 뜨거운 사막에서 창문도 열지 못하고 불타는 비닐 시트에 앉아있는 상상을 하니 정말이지 끔찍스러웠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그 옆의 보다 튼튼해 보이고 수동창문이 달린 차량을 골랐다. 이번에는 아예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중고차 고르기_윤성

민재 때문에 똥차들과 씨름하던 중, 그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판매소의 사장이 직접 나왔다. 안 된다고 했는데도 민재는 똥차들을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열어보고를 반복했다. 성실한 놈, 이곳이 벌써 열한 번째 판매소다. 나는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정녕 이 똥차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창문도 안 열리며 에어컨도 안 되는 놈을 택하느니 디젤에서 휘발유로 과감하게 엔진을 교체를 했지만 그나마 창문은 열리는 Hilux로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예산 부족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덜 똥차인 걸로 골라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이런 차를 사면 솔직히 불안할 것 같은데.”

“그쵸?”

 

은영 아저씨의 말씀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야 너희들 이리 와보렴.”

 

얼씨구, 사장이 직접 나온다. 이따위 똥차들을 팔면서 사지도 않을 거라면 꺼지라는 것인가? 그런데 사장이 우리를 잡아끌고 가게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무실 옆에 주차되어 있던 깔끔한 픽업트럭을 보여주었다. 미쓰비시 콜트 V6 3000 이라고 적혀있었다. 민재가 대뜸 물었다.

 

“이건 무슨 차야? 왜 가격표가 없지?”

“이건 내가 직접 타고 다니는 차니까 없지.”

 

사장이 직접 타고 다니는 차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민재가 물었다.

 

“사장, 근데 이거 팔 거야?”

“생각 중이야.”

“그럼 얼른 시동이나 좀 걸어봐.”

 

 

그는 키를 가져와 운전석에 앉았다. 단번에 시동이 걸렸다. 우렁찬 엔진 소리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괜찮다. 한번 몰아보고 싶었다. 내가 정중하게 물었다.

 

“한번 몰아보면 안 될까?”

“돈 내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돼. 이 차는 내가 얼마 전까지 타고 다니던 거야. 완벽하게 작동하고, 아무 문제도 없어. 들어봐. 엔진 소리가 끝내주잖아. 내 신용을 걸고 말하는 거니까 믿고 사든지, 아니면 말든지.”

 

남아공 특유의 딱딱한 억양으로 흥분한 채 튀어나오는 영어, 얼마나 자랑스러운 매물이기에 그렇게 침을 튀겨가며 말했을까? 민재는 차를 볼 줄도 모르면서 버튼을 눌러대고 본네트를 열어 달라고 하며 바퀴를 발로 차대고 있었다. 정말이지 성실한 녀석이다.

 

“이건 얼마야?”

“65,000란드이고, 절대로 할인은 없어.”

 

한국 돈으로 천만 원이다. 생각하고 있던 가격의 최대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 차다 싶었다. 가격이 부담되긴 했지만 이거면 되겠다는 느낌이 왔다. 15년 된 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외관이 깨끗했고 차 바닥에 흠집도 적었다. 게다가 보닛 속 엔진이 힘있게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적 주행거리는 22만 킬로미터. 한국에서 98만 킬로미터를 달린 택시도 타보았는데 이 정도는 양호했다. 민재가 물었다.

 

“뭐야, 이거 살 거야?”

 

민재는 가격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음, 내 생각엔 제일 괜찮은 것 같아.”

 

은영 아저씨도 옆에서 거들었다.

 

“차는 좋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가격 때문에 내키지 않아 하는 민재를 설득했다. 거지 같은 차를 타고 가다 망가져 고생하느니 탈 만한 걸로 사서 제값 받고 파는 게 남는 거라고 했다. 민재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서는 좋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 민재가 사장에게 물었다.

 

“이 차로 이집트까지 갈 수 있냐?”

“물론 갈 수 있지.”

 

사장은 자신만만했다.

 

“이거 확실히 좋은 차지? 너랑 아저씨가 더 잘 알 것 아냐.”

“응 이만한 차 구하기 힘들 것 같아.”

“좋아. 이걸로 하자.”

 

이제 남은 문제는 단 하나, 어떻게 천만 원을 지불할 것인가? 송금이니 은행이니 한국말로 한참을 쑥덕이던 우리는 사장에게 30분만 기다리라고 이야기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현금 인출 대작전_민재

천만 원을 어떻게 지불해야 할까? 온라인으로 입금하려면 남아공 현지 계좌가 필요하다. 머니 트랜스퍼라는 방법이 있지만 며칠씩 걸리고 불확실하다. 은행에서 수표를 끊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에 은영아저씨께서는 그렇게 큰돈을 수표로 끊으면 은행 점원이 네가 나가는 순간 전화로 누군가에게 네 인상착의를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현금지급기에서 뽑아 오는 거다. 불안해하는 은영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겠다고 근처에서 대기해달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작은 가방 하나를 탈탈 비워 어깨에 둘러멨고 박윤성에게는 딱 현금카드 하나만 들고 나오라고 했다. 현금지급기로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사람이 없었다. 간단하다. 딱 천만 원만 뽑아서 나오면 되는 거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젠장. 한번에 2000란드(35만 원) 밖에 못 뽑네?”

“그게 최대야?”

“응, 망 좀 보고 있어.”

 

아뿔싸, 65,000 란드까지 갈 길이 멀다. 떨리는 손으로 연신 기계를 눌러대며 현금과 명세서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내 돈을 내가 찾는 것뿐인데, 온 신경이 곤두섰다. 몇 번을 찾았을까? 기계가 삑삑 울렸다. 현금이 다 떨어진 것이다. 윤성을 잡아끌어 차로 돌아갔다. 철컥 소리가 나며 잠겨 있던 차 문이 열렸다. 냉큼 타서 문을 잠그니 은영 아저씨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다 뽑았니?”

“아뇨, 반도 못 뽑았어요. 현금 부족이에요.”

“허. 위험한데.”

“일단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한 명은 돈을 뽑고 한 명이 경계를 서기를 여러 번, 우리는 세 곳의 현금지급기를 비워버렸고 네 번째에 이르러 겨우 65,000 란드를 채울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현찰들과 명세서로 가방 속이 불룩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생 그렇게 소중한 가방을 가져본 일이 없다.

 

 

 

철창 속 거래_윤성

“현금 가져왔어.”

“정말이야? 세상에! 빨리 들어와.”

 

사장은 곧장 가게의 셔터를 내렸다. 이 녀석이 우리를 총으로 쏘고 우리 돈을 갈취하는 것은 아닐까? 벌써 친구들에게 연락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판사판이다. 일단은 들어가 보자. 다행히 사무실엔 사장과 사장 여동생뿐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장 여동생과 우리는 돈을 세어 내려갔다. 천만 원이 크긴 크구나. 세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사장이 500란드를 꿀꺽하려고 계산 실수를 연출했는데, 그것을 내가 매의 눈으로 잡아낸 것을 제외하면 모두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계산을 마치고 키와 서류를 건네받은 뒤 사장이 셔터를 열었다. 촤르륵 하는 소리와 쏟아지는 햇살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갱스터 영화 한 편을 찍은 기분이었다. 시동을 걸고 사장에게 물었다.

 

“계산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어? 이 차로 정말 이집트까지 갈 수 있는 거지?”

“나라면 안 가겠어. 위험하잖아. 남아공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뭐라고?”

“위험하니까 남아공만 여행하라고.”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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