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4호] 기업가정신-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

자료제공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 21세기북스

서울대학교 학생벤처네트워크

편집 권태훈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 의장은 한게임(현재 NHN엔터테인먼트)과 카카오를 설립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인이다. 한게임이 자금 위기를 겪을 때 PC방 프랜차이즈 ‘미션 넘버원’을 창업하여 돌파구를 마련하였고, 뒤이어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을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7년에는 NHN에서 나와 (주)카카오를 세운 뒤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 다시 한 번 커다란 성공을 이룬다. 위기의 순간마다 남다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질문으로 자신의 방향을 결정해온 김범수 의장을 만나보았다.

 

 

[시골 소년, PC 통신에 반하다]

김범수 의장은 전라남도 담양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과 목공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식당 일을 하셨다.

 

먼저 의장님의 중고등학생 시절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일들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일이 있으신가요?

부모님이 터치를 안 하는 스타일이고 ‘너 스스로 잘할 수 있다’ 같은 신뢰가 굉장히 강한 교육 방식이었어요(웃음). 그래서 초반에는 좀 놀기도 하고 땡땡이도 하고, 몇 번 그러다가도, ‘아,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 굳히고, 뭔가 스스로의 의지력을 키울 수 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축구 보고 TV보고 그런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TV에서 뭔가 재미있는 걸 하거나, 친구들이 놀러 와서 같이 놀고 나면 막 ‘아, 나 공부했어야 하는데’ 이런 자책감에 시달리잖아요. 그래서 이런 방식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방법을 바꿨어요. 아예 부모님한테 이야기해 친척 분 중 빈방이 있는 데를 알아봐달라고 해서 무조건 학교 끝나고 거기서 잤어요. 그러고 새벽 2시에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새벽 2시부터 빈방에서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유혹에는 계속 이길 수가 없잖아요. 환경에는 사람이 이길 수가 없는데 환경을 바꿈으로써 좀 더 쉬워진 거죠. 그러면서 한 4~5개월 정도 오롯이 내 시간에 투자하고, 수학이나 이런 거 딱 다져 놓으니까 그 다음부터 성적이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거죠.

결국 사람은 환경을 이길 수 없다, 환경이 바뀌어야, 또 어떻게 환경을 꾸미냐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아이들에게도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죠. 네가 만약 성공하고 싶다면, 그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의지력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인 이상 의지력도 에너지라서, 이걸 다 써버리면 결국 망가진다.

 

 

이어서 대학 시절 이야기도 여쭤보고 싶은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1992년도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삼성SDS에 취직하셨는데요,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인데 삼성SDS에 취직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저는 86학번인데 1세대 벤처, 인터넷 세대가 거의 86학번들이에요. 신기하게도 그게 왜 그런진 잘 모르겠어요. 네이버 이해진 의장, 넥슨 김정주 회장,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다 86학번 그 세대인데, 제가 대학교 1~2학년 때인가 그때 IBM XT라고 하는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그 영향이 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이제 컴퓨터에 접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특히 기억나는 것은 대학원 때 후배 사무실에 놀러 가서 PC통신이라는 걸 처음 접한 거에요. 연결되어있는 세상, 이것이 굉장히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PC통신이라는 게, 뭔가 멀리 있는 사람이랑 연결되어 있다, 서로 채팅을 하고 자료를 교환하고, 신기하고, 그때 처음으로 연결된 세상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접하게 된 거예요. 그걸 딱 보는 순간에 여기에 뭔가 무한한 세상이 있다, 연결된 무한한 세상이 있다, 그런 게 정말 운명처럼 다가왔었고 ‘난 이걸 해야겠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됐죠.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까 ‘아, 컴퓨터를 제대로 해야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문서작성 하던 수준이었거든요. 그래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데가 어디지?’ 하다 보니까 그때 우리 과 학생들은 삼성전자, 하드웨어 이쪽으로 가던 때였고 컴퓨터 쪽은 안 갔었는데, 왜냐하면 우리 산업공학과에서는 컴퓨터를 안 했었으니까. 그런데 난 이쪽 소프트웨어 쪽으로 해야겠다 해서 거길(삼성SDS) 들어갔죠.

 

 

그럼 의장님 같은 경우는 삼성 SDS에서 근무하시면서 그 동안 어떤 점들을 배우고 나아졌던 것 같으신가요?

우선 ‘몇 년 있다가 창업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들어갔던 건 사실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좀 뭔가 올인해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영역은, 이 ‘연결된 세상’에 대한 잠재력 때문에 컴퓨터를 하고 그 세계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한 거였기 때문에 삼성 SDS에서도 계속 그 부분을 보고 있었어요. 운 좋게도 삼성에서도 PC통신 사업을 한다고 해서 아, 난 이걸 해야 된다고 해서 거기로 들어갔어요. 또 운이 좋았던 거는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다 보니까 그때는 9명 가지고 시작을 했고, 사람이 적다 보니 영업, 마케팅, 프로그래밍 등 모든 영역을 다 해봤어요. 정말 개인적으로는 그때의 모든 그런 경험들이 나중에 창업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그걸 계속 하다가 보니까 사용자에 대한 감각도 좀 생기고, ‘아 어떤 서비스를 했더니 사용자가 반응을 하는구나’ 그런 게 점점 보이는 거죠.

이렇게 해서 그런 것에 대한 준비가 돼 있었죠. 준비가 돼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이 온 거죠.

 

 

[삼성 퇴사 후 한게임 창업, 지금의 네이버를 만들다]

김범수 의장은 삼성SDS에서 5년 가까이 근무를 한 뒤 돌연 퇴사하고 게임 개발에 나선다. 그는 이미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겨온 바둑이나 장기, 고스톱 같은 게임들을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1999년 12월에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한게임은 시작한 지 3달 만에 1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하였고, 이후 NHN(당시 사명은 ‘네이버컴’)과 합병을 결정한다.

 

 

그다음 본격적으로 퇴사하고 창업을 하셨는데요. 멀쩡한 직장을 다니다 창업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김범수 의장님: 그 당시는 훨씬 더 그랬죠) 혹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아주 우연한 계기였어요. 확실히 나는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 맞다고 생각해요. 사실 삼성에서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었거든요. 일도 잘되고 있었고, 나름대로 남들보다 앞선 경험을 하고 있는 느낌도 아주 좋았고, 적극적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우연히, 아내가 옛날에 다이렉트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을 시작하면서 마케팅 기법을 가르쳐 주는 세미나에 나를 잠깐 초대했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당신의 꿈이 무엇입니까, 하고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게 사실 준비가 안 돼 있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까지는 맞는데, 앞으로 10년 후 그림이 없더라고요. 10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까 삼성의 임원이 보이는 거잖아요. 사실 삼성의 임원은 정말 혹독해요. 주말도 없고. 아무튼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네,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어요(웃음). 그래서 창업을 해야 되겠다.

그러면 창업 아이템이 뭘까 고민하던 차에, 인터넷이 또 맞물리면서 아이템도 그 당시에 PC통신 운영하면서 데이터 가지고 봤던 것 중에 아 게임이 폭발력이 있구나 하는 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그 얘기 하잖아요. 고시를 공부하는 건 과거를 공부하는 거고, 창업이나 이런 걸 배우는 건 미래를 준비하는 거고. 공무원 시험을 배우고 토익을 보고 이런 건 과거를 배우는 것 같고, 창업을 배우고 인턴을 하고, 이런 건 미래를 배우는 걸 텐데 거기서 길이 갈리는 것 같아요. 자기 삶이 어디에 더 가까운지에 따라 갈리겠지만, 또 내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창업을 많이 해서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해야 된다(웃음). 왜냐하면 뭐 좋은데 취직하는 것은 정 안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창업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네, 이후 한게임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 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많은 경쟁 회사를 물리치고 한게임이 1등 게임 포탈 사이트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한게임이 나오기 전에 바둑게임, 고스톱 게임 그런 거는 좀 있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그게 다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이었어요. 다운받아서 하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으로의 대세는 인터넷인 거예요. 인터넷에, 사이트에 사람들이 오는. 그러다 보니까 인터넷 사이트가 없이 클라이언트에서만 하는 게 느낌이 좀 틀린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 인터넷 버전을 만들었죠. 사용자는 인터넷에 들어와서 그냥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게임이 되는 구조까지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게임포탈을 처음 만든 거죠. 그래서 하나의 게임을 성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게임 하나가 터지면 자동으로 그 사이트가 유명해지는 거죠. 왜냐하면 그때의 트렌드가 ‘사이트’였기 때문에, ‘사이트’가 핵심이었거든요. 그 판단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게임이야, 인터넷이야’의 갈림길이었는데, 인터넷으로 가자.

비즈니스를 하든 다른 뭐를 하든 뭔가에 대한 질문,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질문을 잘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해요.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에, 틀린 질문을 하면 올바른 답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네이버와 합병한 과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게임 트래픽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서버가 늘어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는 거죠. 그 당시에 특별히 돈을 많이 벌고 그런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자금이 떨어져 가는 모습도 보이고. 그런데 이때 네이버는 트래픽을 어떻게 늘릴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야후, 다음, 라이코스, 네띠앙, 그다음 네이버 이 정도 수준이어서, 5등인 네이버 입장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을 때고 트래픽이 필요했던 때죠. 다행히 네이버는 돈도 좀 있고, 마케팅도 해야 되는 시점에 있었어요. 그래서 만나서 어차피 인터넷에서 1등을 해야 되지 않겠냐, 그래서 같이하자는 데로 의기투합이 됐죠.

 

 

[네이버를 떠나 카카오톡 창업으로]

 

의장님은 승승장구하던 NHN에서 2007년 9월에 나오셨는데요, 어떤 배경에서 NHN을 떠나 새로운 벤처회사 카카오를 설립하게 되셨습니까?

98년 정도에 창업해서 10년쯤 되어가는 시점에 삼성에서 했었던 ‘이제 한 10년쯤 더 하면 삼성 임원쯤 되겠지’, 이런 느낌과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어요. 회사가 영향력이 있는 회사로 컸고, 목표했던 거보다 훨씬 큰 부도 이루고, 그런 찰나에 자문을 하게 됐는데, 꿈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결론 내버린 느낌이 들더라고요. 꿈이라는 거에 있어서 ‘남자로서 성공해봐야지’, 그런데 성공이라는 걸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이런 정도의 추상적인 걸로 정의를 해버리고 여태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 든 거예요. 그다음은 뭐지 이런 생각을 해보니까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모르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40살까지 쉼 없이,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앞으로 수명이 늘어서 80년을 산다고 하면 아직도 40년 가까이 남았는데, 앞으로는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놓은 성공의 정의, 그거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그걸 정의를 해야겠다 하면서 멈춰야겠다 해서 미국으로 간 거거든요.

미국에서 느낀 건, 슬로우 라이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되게 느리고, 맨날 가족들이랑 공원 가고. 뭐, 완전히 다른 생활이잖아요. 그러면서 슬로우 라이프의 느낌도 받고, 내가 한게임, NHN 한다고 아이들 크는 거 보지도 못하고 같이하지 못하고 그런 거에 대한 자책감도 들고 그런 의미에서 ‘좀 멈춰서 고민하다 가자’ 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창조(創造)할 때 창자가 무슨 창자인지 아나요? 곳간 할 때 창자와 칼 도에요, 그게 왜 거기 붙어 있을까요? 곳간을 부수는 게 시작이다, 그걸 부수지 않고는 절대 창조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부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아 내가 떠날 때가 됐다, 삼성 나올 때처럼. 그리고 인생에서 미진했던 것들을 해야겠다고 생각, 가족들이랑 놀자고 하고 중3, 고1이었던 아들딸들과 1년 동안 게임하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놀았어요.

 

네. 이후 의장님은 다시 벤처회사를 설립하셨는데요, 내놓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서비스들은 성공하지 못했었습니다. 이것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도는 사실 100개 중에 1~2개가 성공하는 거고요. 애초에 한 번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몇 개 툭툭 내보았던 거고요. 이후 세 번째를 준비하고 있던 찰나, 미국에 딱 갔는데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된 거예요. 그 현장에 있으면서 또 ‘재밌네?’ 모바일 세상이 열리겠다’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PC통신을 보면서 뭔가 연결된 세상에 대해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모바일, 스마트폰 세상 이런 게 하나의 연결된 것처럼 대단한 느낌을 받았어요. “게임이냐 인터넷이냐” 처럼, “인터넷이냐, 스마트폰이냐” 그럼 스마트폰이지, 그 전에 하던 거는 접읍시다 라고 했죠.

 

그런데 아까 질문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똑같아요. 문제를 찾아가는 방식인데, 뭘 만들지 빨리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 그럼 스마트폰에서 뭘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려면 무슨 질문을 해야 되느냐, 사람들이 뭘 많이 쓰느냐. 막 이런 걸 브레인스토밍도 하고 얘기를 해나가는 과정에, ‘스마트폰이 뭐야?’ 하는 질문을 하고, ‘스마트폰은 전화지’, ‘그럼 전화에 가장 중요한 게 뭐야?’ 라고 해서 ‘문자랑 통화지’, ‘그럼 문자를 대체해볼 수 있나? 전화는 좀 그렇고.’ 해서 일단 문자를 대체해봅시다. 해서 자연스럽게 카카오톡이 탄생한 거죠.

 

 

앞으로의 운영계획이나 방향 같은 것에 대해서도 조금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 회사가 돈은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다일까?’ 이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아까 얘기한 2년간의 고민과, 가족들과 있으면서 성공에 대한 정의를 찾은 게, 저는 에머슨 씨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시가 되게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시는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이렇게 시작을 해요. 많이 웃는 것도 성공이에요. 그런 세세한 것부터, 지금이라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 이런 게 성공이다, 이게 너무너무 맞는 거 같고, 아 이 정도면 내 두 번째 인생 2막에 대해서 이걸 좀 지침으로 삼고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나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카카오의 철학이에요.

 

To laugh often and love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rsons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obation of honest   citizen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give of one’s self;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have played and laughed with   enthusiasm and sung with exulta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this is to have succeeded.

랄프 웓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산문시 행복(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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